하나님께 속한 자 시181-6, 3:12-17 2020.4.26

 

미국의 LA마라톤 대회에서 다리대신 두 손으로 마라톤 전 코스를 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브 위랜트(Bov Werant)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두 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입니다. 그는 미국대륙 4,454km를 두 팔로 걸어 38개월 6일 만에 횡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실의에 빠진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기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횡단에 성공한 그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느냐" 고 기자들이 묻자 위랜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게는 권태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보면 속상해 합니다. 그러나 위랜트는 물구나무의 자세로 걸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 안에 거함으로 인해 감사하며 행복하게 여겼습니다. 위랜트처럼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힘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시면 무슨 일을 만나도,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두려울 것도,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1.언제나 사랑과 평강 가운데 감사하며 삽니다.

 

구약 본문 시18:1에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 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맛보아 알 때 다윗처럼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가 확고해 지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상관없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게 되고, 감사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다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랑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특징을 보면 사랑의 대상을 잘 못 선택하여 잘못된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잘 선택하지 않으면 큰 불행을 당할 수 있고 파괴와 파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에 사단을 따르고, 사신 우상 사랑하다가 망했습니다. 16:4"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랑의 대상을 제대로 사랑하기만 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행복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독일 군 포로들이 시베리아에 끌려가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특징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구나, 좋은 날이 올 때까지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야지.'하며 사랑의 끈을 가진 사람은 쉽게 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3:13-14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어느 젊은 검사가 의사를 찾아왔는데, 그는 위궤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를 치료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병을 고치려고 했으나, 당신의 병은 낫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위궤양이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검사는 사실 저는 증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복수심에 불탑니다. 제가 어릴 때 이웃집에 사는 사람과 할아버지가 토지 문제로 서로 싸웠습니다. 그때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할아버지를 밀어 돌아가시게 하고, 또 토지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것을 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이 다음에 크면 반드시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반드시 그 원수를 갚을 것입니다. 한 순간도 그 모습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당신의 병의 원인은 바로 그 원한 때문입니다. 그 복수심이 당신의 위를 무섭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용서해야 병에서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검사는 고개를 저으며 도저히 저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의사 곁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 의사에게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더 초췌해진 모습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검사는 의사에게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당신의 원수를 갚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죽겠군요. 복수도 하기 전에 그 원한이 당신의 몸을 죽이고 있으니 하루 빨리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라고 말한 뒤,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복수심이 다 사라지게 하시고, 이 모든 원한이 다 사라져서 다시 건강을 되찾게 하옵소서.” 그러자 그 검사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로소 그에게 평안이 다가왔고, 그 후로부터 그는 점점 건강을 회복하여 신앙 안에서 용서함을 통해 위궤양을 완전히 고침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한으로 인한 복수심과 증오의 마음은 먼저 내 자신을 파괴합니다. 기쁨을 빼앗아 가고, 평안을 빼앗아 가고, 사랑 대신 미움이 가득하여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의 사람이 되면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사람, 평강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평강 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께 절대 가치를 두고 삽니다.

 

구약 본문 시18:2-3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강한 나라나 우상이 아닌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믿음이 연약한 때가 있어 실패하고,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와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 절대 가치를 두고 신뢰하며 살 때 하나님은 그의 힘이 되셨고, 그는 놀라운 일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3절에서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여기서 찬양 받으실 하나님 즉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이심을 다윗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힘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사울 왕의 시기로 여러 번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가능했고, 아들 압살롬의 모반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죽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절대 가치를 알아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길 줄 알았기 때문이요, 나단 선지자가 자기의 죄를 책망할 때 사울처럼 선지자를 죽이거나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한 것도 하나님의 절대 가치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사랑 하셨고, 그를 높여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온 백성들의 존경 받는 왕이 되도록 높여 주셨습니다.

 

3: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게 하려면 주님께 절대 가치를 두고 주님만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환경에 휘둘림을 당하며 사는 사람은 환경이 나빠지면 마음에 평강도 사라집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 던 사람은 돈이 떨어지면 불안하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던 사람은 자신이 의지 하던 사람이 마음이 변하거나 떠나거나 죽게 되면 견디지 못합니다. 주님 보다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환경을 이겨낼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지금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도 하잘 것 없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실 인간은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아야만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외부로부터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그의 삶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아무리 농사의 경험이 많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도 기후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모든 환경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주님의 도우심을 공급 받는 자들은 환경을 초월하여 평안을 얻게 되고, 감사하는 자로 살 수 있게 됩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었고, 큰 기쁨을 가지고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이나 바울처럼 하나님께 절대 가치를 두고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말씀에 순종하여 겸손과 인내의 삶을 삽니다.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기의 말씀이 풍성히 거한다.’는 것은 많은 성경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새겨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말씀 안에 풍성히 거하는 자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자에게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주님의 사랑받는 자들은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여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과 상관없이 살다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일시적으로 말씀을 대할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말씀 안에 자리를 잡고 살아야 합니다. 즉 말씀이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런던에 유명한 주정꾼이 있었습니다. 낮에도 술을 마시고 싸우고 부인을 구타하는 등 이웃의 미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싸우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서로 연행될 때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이 때 한 소녀가 그 주정꾼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저씨, 힘내세요. 제가 경찰서까지 함께 가 드릴게요.” 곁에서 명랑하게 노래 부르며 함께 걷는 소녀를 보며 주정꾼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의 부인이 된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 여사였습니다. 그녀가 열두 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난 주정꾼을 소녀의 사랑이 회개시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라는 말씀이 그녀에게 가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주님의 사랑받는 자는 말씀이 풍성하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는 겸손과 온유함이 있습니다. 3:12 하반 절에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했습니다. 예수님은 마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벧전5:5?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항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높이고 겸손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윗을 존귀하게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게 된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왕위도 빼앗기게 되었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인내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했습니다. 사람들은 고가의 좋은 옷을 입고 치장을 하여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입어야할 옷에 대해 성경은 의의 옷,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고,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특징 중 하나가 인내라고 했습니다. 고전13:4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12:1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했습니다.

 

성도는 어떠한 시련을 만나도 겸손히 주님의지하며 인내로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긍휼을 기다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인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가 한 때 시력이 나빠져 어려움을 겼었습니다. 병원에서 눈을 진찰하던 의사가 말합니다. "당신의 눈은 의학적으로 더 이상 고칠 수 없습니다.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는 생각합니다. "남에게 나쁜 일 한 것 없이 착하게 살아 왔는데 이게 어인 일인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아내에게 성경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44일 동안 어두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이사야 354절을 읽을 때입니다.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리라." 가가와는 말합니다. "잠깐, 여기의 '겁내는 자에게' 라는 말씀은 '성급한 자에게' 란 말씀인데, 내가 너무 성급하고 조급히 굴었어! 하나님, 나의 조급함을 용서하소서." 가가와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계속 읽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가가와 도요히꼬는 외칩니다.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라고요. 되었어요. 나의 눈도 밝아질 것이요." 그리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가가와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어두웠던 눈이 44일 만에 밝아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천성을 향해 갈 때 많은 환란을 겪게 됩니다. 그런 중에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면서 인내로 달려갈 길을 마치는 자가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과 인내로 달려갈 길을 마치는 복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사랑과 평강 가운데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께 절대 가치를 두고 삽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겸손과 인내의 삶을 삽니다. 아멘.

 




116:1-19/ 내게 주신 모든 은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16:12)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이와 같이 느껴본 때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시편 116편을 누가 썼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아서 그 분은 큰 환난과 슬픔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아마 큰 질병 가운데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고 나서 환난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너무 감사해서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병중에서 나은 것을 감사할뿐더러 다른 모든 은혜도 겸하여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해서 여기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이 모든 은혜를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은 너무 벅차서 이렇게 탄식을 한 것입니다. 오늘 감사주일 아침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 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지금까지 먹고 입고 살아오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루에 죽을죄를 세 번씩 짓는다고 하는 말이 있거니와 오늘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총이 함께 하는 까닭입니다. 우선 각각 내게 주신 은혜 가운데 특수한 은혜를 생각하여 보십시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어떤 이에게는 금 닷 냥을 주고, 다른 이에게는 두 냥을 주고, 또 다른 이 에게는 한 냥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는 두 냥을 받고, 어떤 방면에는 한 냥을 받았지만 사람마다 어떤 분야에는 닷 냥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지식 방면에, 또 어떤 이는 물질 방면에, 기술 방면에 특별히 닷 냥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닷 냥의 재능이 있습니다. 문학, 이학, 음악, 혹은 수학에 닷 냥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에 닷 냥의 은혜를 받아서 일생을 살 때에 별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사는 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잘 가르치는 은혜, 잘 권면(勸勉)하는 은혜, 지혜의 은혜, 장사를 잘 하는 은혜, 공장을 잘 경영하는 은혜, 건축을 잘 하는 은혜, 각각 받은바 특기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이 특수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합시다. 그리고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각 방면으로 잠깐 생각해 보십시다.

 

다윗은 그 감사의 시103:2절 이하에 이와 같이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矜恤)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렇게 자기 영혼을 스스로 깨우쳐 노래했습니다. 여기 특별히모든이라는 말에 주의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지어 온 모든 죄악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고 이 천재지변이 많고 전쟁의 공포가 있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생이 유지되는 것도 모든 파멸에서 구원을 얻은 까닭입니다. 모든 유혹에서 구원을 받은 까닭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신앙생활도 계속합니다. 사실 인자와 긍휼의 관을 우리에게 씌워 주셨습니다.

 

모든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자연계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도 생각하여 보십시다. 시편104편을 읽으면 특별히 대자연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와 달과 뭇 별들을 비롯해서 산천초목, 오곡백과, 산해(山海)어류, 맑은 공기, 시원한 물, 말하자면 사람의 육체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기초적인 은혜를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땅에서 먹고, 입고, 잘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자연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영적 방면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는가 잠깐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친히 보혈을 흘리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주셨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끊어서 우리의 생명을 이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기업을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여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의 위로와 화평(和平)과 지혜와 능력의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귀한 생명의 말씀,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도고 진리의 푯대가 되는 이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 나와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룩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만방에 전파하시고 교육사업, 모든 문화사업으로 이 민족과 국가를 축복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면으로 자녀는 가지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기르시고 입히시고 먹이시는 부모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 또는 가정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 남편 된 사람은 아내를 통하여 주시는 은혜, 아내 된 사람은 남편을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도 잊지 마십시다.

 

부모 된 사람들은 자녀를 통하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학생들은 학교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 선생님들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친구를 통하여 어려울 때에 내게 주는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까닭에 사회를 통하여 내게 주신 그 은혜도 기억해야 합니다. 국가를 통하여 주신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과거 우리의 조상님과 선배들을 통하여 내게 주신 모든 은혜, 친척을 통하여 이웃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 현대 문화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혜, 자유우방 국가를 통하여 내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기억하십시다.

 

또는 시간적으로 금년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도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다 조금 더 뒤로 물러가서 내가 세상에 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회상해 부시기를 바랍니다.

 

노인들은 특별히 어릴 적에 주신 은혜, 젊은 시절에 주신 은혜, 장년, 중년기에 주신 은혜, 이렇게 연로할 때까지 주신 모든 은혜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늘의 별을 우리가 혹 세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은혜는 우리가 세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139:17-18절을 보면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 지요. 내가 세려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 소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는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내게 주신 은혜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어찌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까?

 

아마도 그 이유 한 가지는 그 은혜가 너무 많고, 크고 넓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른 듣기에는 모순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그 귀한 햇볕의 감사함을 우리가 얼마나 느낍니까? 공기도 마찬가지일줄 압니다.

 

흙이, 물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도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별로 기도 드리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많아서, 너무 흔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몰론 보지 못하지만 너무 밝은 것도 못 본다고 합니다.엑스광선 같은 것은 너무 밝아서 못 봅니다. 우리의 귀는 적은 소리도 못 듣지만 너무 큰 소리도 못 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지구 돌아가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합니다.

 

요순시대에 정치를 얼마나 잘하였던지 그 때의 백성들이 국태민안(國泰民安)해서 어려움 없이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격양가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내가 밭 갈아 밥을 먹고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는데 임금의 은혜가 내게 무슨 상관인고?

 

정치를 너무 잘하니까 그 은혜를 오히려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부잣집 아들들이 부모의 은혜를 더 모른다는 말이 있어요. 이를테면 우리가 다 부잣집 아들딸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잣집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효자노릇을 좀 하려고 한다면 부모의 은혜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감사의 날에 우리 아버지의 크신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게 크지만, 우리가 그날그날 당하는 환난, 슬픔 가운데서 큰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낙심도 하고 불평도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인간생활에 이따금 밤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하늘에도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원한 소망의 별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아무리 환난의 검은 구름 아래라도 하나님의 은총의 아름다운 무지개는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일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약속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모든 것을 통치하셔서 우리의 불행과 환난까지도 다 축복해 주시는 전화위복의 하나님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그날그날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여름철 장마를 지난 때에는 그저 매일 비가 와서 일년내내 장마만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년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아요. 비오는 날 며칠 없고, 해 나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성도들은 환난 중에도 감사하였습니다. 검은 구름 아래서도 그 위에는 햇빛이 있는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환난이 변해서 무지개가 될 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기가 사자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왕의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혔다는 말을 듣고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열어 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 도 감옥에서 많은 매를 맞은 그 날 밤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이 나이 많아서 로마 감옥에 갇혀 언제 참형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여러 교인들에게 편지를 할 때에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시편을 읽을 때에 느껴지는 것이 자기가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다음에 그 은혜를 감사하고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을 당하기 전에 이런 은혜를 깨달았다고 하면 얼마나 더 고맙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있어요. 전에 미국에 어떤 부자 목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각각 교회 일을 맡아봅니다.

 

어느 주일 날 아침 아버지는 차를 타고 자기 교회로 가고, 아들은 자기 차를 타고 자기 교회로 갔습니다. 날이 다 저물 때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오고 조금 후에 아들이 돌아오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는 말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가 은혜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예배를 보고 올 때 어떤 운전수가 차를 몰고 앞으로 달려오기에 그것을 피하려다가 차가 뒤집어졌지만 저는 그저 핸들만 꼭 잡고 있었더니, 별로 다치지 않았고 차도 상 한데가 없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정말 감사하다고 하면서 잠시 생각하더니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도 감사하다. 나는 아무런 사고 없이 예배를 보고 돌아왔으니 이거 얼마나 감사하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큰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면 몰론 감사한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환난 없이 평범한 가운데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가도 깨닫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감사일 전날 꿈을 꾸었는데 꿈이 천당에 가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합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서 서로 싸우듯이 큰 소리로 변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천당에도 싸움하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 곁에 가서 그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두 노인들이 서로 은혜를 더 많이 받았다고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말하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나빠서 부모에게도 순종치 않고 학교에도 잘 가지 않아서 나중에는 깡패가 되고 도둑놈이 되어서 나쁜 짓을 하고 살인 강도죄를 짓고는 교도소에서 종신징역을 받게 되어서 소망이 없었는데

그 교도소에 어떤 분이 들어와서 성경을 전해주어서 그것을 읽는 가운데 예수 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나도 구원하려 오셨다는 깨닫고 회개해서 예수 님을 믿고 천당에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세상에서 갖은 죄를 지었는데 이렇게 죄 사함을 받고 천당에 오게 되었으니 나보다 큰 은혜 받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듣고 있던 다른 노인이 말하기를

 

그것도 큰 은혜이긴 하지만 내 얘기를 좀 들어보십시오, 나는 어릴 적부터 잘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유아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에도 빠지지 않았고, 열대여섯 살 났을 때 입교문답을 하고, 주일학교도 가르쳤고, 성가대도 하고 그러다가 집사 책임을 밭았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또 장로 투표에서 장로로 피택(被擇)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작은 죄도 지었지만 남처럼 큰 죄는 짓지 않았고, 교회에 봉사하고, 선교사업을 하고, 봉사사업도 하고, 교육사업도 하면서 일생을 평안히 믿고 편안히 살다가 이 천당까지 왔으니 나보다 더 큰 은혜가 뉘게 있단 말이요?하고 변론한단 말입니다.

 

여러분도 어느 분이 더 큰 은혜를 받았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이 두 분이 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환난 가운데서 은혜를 받는 것만 큰 은혜인 줄 생각합니다. 혹은 많은 죄를 짓고 회개함으로써 은혜를 받는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평범한 가운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앞으로의 생활은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 시편을 기록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봉사의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이후에 우리의 생활은 무엇을 하든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기도하십시다.

 



바로 사는 지혜 시90:10-17, 5:15~21

 

어느 날 북대서양을 항해하는 큰 기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은 아주 거대한 태풍으로 폭풍우가 휘몰아쳤기에 아무리 큰 배라도 속수무책으로 거센 바람에 떠 밀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근심스러운 승객들은 선장을 중심으로 갑판에 모여서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참으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배 옆으로 한 빙산이 폭풍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는 수만 톤이 넘는 기선임에도 불구하고 세찬 바람에 가랑잎처럼 떠 밀려가는데 저 빙산은 어떻게 해서 태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승객들은 선장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선장님, 어째서 저 빙산은 이 엄청난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했더니 선장은 웃으면서 저 빙산은 겉보기 하고는 다릅니다. 드러낸 부분은 약 1/10 정도이고 9/10는 물에 잠겨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8%가 드러나 있고 92%는 잠겨있습니다. 즉 빙산은 거의 전부가 바다 물에 잠겨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바다 밑에는 거대한 해류가 흘러가고 있는데, 이 빙산은 바다 밑의 해류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면 위에 그 어떤 태풍이 불어와도 빙산의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빙산은 오직 바다 깊은 곳을 흐르는 해류의 흐름을 따를 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와 같을 지라도 하나님을 의뢰하여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결코 요동하거나 표류하지 않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환경과 처지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세상 풍조를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바로 사는 자가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바로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시간을 바로 헤아릴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시90: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했습니다. 모세는 본문에서 인간의 생애가 너무 짧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인생을 비유하기를 "티끌"로 돌아갈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3). 여기 티끌은 먼지’, ‘이란 의미로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4절에는 인간의 천년은 하나님 앞에는 밤의 한 경점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 한 경점(更點) 같다는 말은 밤을 네 등분 한 것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데, 시간으로는 4시간인데 잠깐이란 뜻입니다. 5-6절에서는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벤바 되는 풀 같은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돋아나서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9). 그것도 모두 수고와 슬픔뿐인 것이라 했습니다(10). 왜 인간의 일생이 이렇게 허무하고 덧없는 걸까요?(7-9). 두말할 것 없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죄 짓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믿음으로 살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오라 하시면 잠을 자다가도, 운전 중이라도, 건물을 짓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서류를 만들다가도 그만 두고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11-17). 모세는 본문 말씀을 마감하면서 인생의 비관적인 면만 말하지 않고 소망의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4-15절에서 인자를 베풀어 기쁨이 평생 넘치도록기도하였습니다. 16-17절에서는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들에게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해달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확실하게 계속 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의 짧음과 불확실성, 그리고 거기에 항상 죽음과 영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주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신약 본문 엡5: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고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여기에서 세월이라는 단어는 "카이론"이라는 단어입니다. "카이론"이라는 단어는 "카이로스"에서 나온 단어로 "카이로스""크로노스"와 더불어 유대인의 시간 개념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참 세월 빠르다.’ ‘정말 시간 잘 간다.’라고 말하는 시간이나 세월을 의미합니다.

 

이와는 달리 "카이로스"는 어느 특정한 시간이나 특별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일을 테면 어떤 여자가 오늘 오후 2시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다면 그 여자에게는 오늘이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뜻 깊은 다른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간 속에서도 오늘은 다른 일요일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특별한 날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지키는 주일도 으래히 지키는 주일이라면 크로노스의 시간일 뿐이지만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주님과의 더욱 깊은 교재의 시간이 되어 새로운 결단이 있고, 새 출발이나 믿음의 진보가 있게 되었다면 카이로스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헛되이 보낸 의미 없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시간, 소돔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시간, 모세가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임재와 보호를 체험하는 시간,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주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 바울 사도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를 체험한 시간, 많은 수고와 고난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시간, 주님 앞에 구제와 선행을 행하며 봉사를 행하며, 주 안에서 믿음으로 행하여 주님의 기념 책에 기록 될 만한 아름다운 행실의 열매를 맺는 그 시간들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결코 헛되지 않는 시간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뒤 늦게 탄식 하지 말고 시간을 바로 헤아리고 사는 지혜 있는 성도가 됩시다.

 

 

2.성령 충만 하여 주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의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열심은 더욱 주님과 멀어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구약 본문 시90:9-10에서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했습니다. 여기서 일생이 왜 분노 중에 지나가고 왜 수고와 슬픔의 인생이 될까요? 그 것은 주의 뜻을 거스르는 삶의 결과입니다. 주의 뜻을 바로 알고 순종할 때 주님 은총으로 기쁨과 감사와 평강이 넘치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약 본문 엡5:17-18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지혜롭지를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에게는 이미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내 심령 속에 임재하면서 나는 성령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자는 말씀의 지혜를 소유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올바르게 인도합니다. 이 성령과 말씀이 빛이 되어 내 안을 비취게 될 때 나의 죄와 추한 모습을 보고 회개하는 자가 됩니다. 미국이 낳은 위인 부커 와싱턴(booker washington)은 집이 너무 가난하여 어려서 노예로 있을 때 오막살이집에서 청소를 맡아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주인은 더 잘 하라고 했습니다. 부커는 세 번 퇴자를 맞은 후에 더 깨끗이 청소를 하고 자신 있게 주인을 오막살이로 데려왔습니다. 주인은 들어서자마자 고함질렀습니다. ‘창문은 왜 안 닦았느냐!’ 하루 종일 있으면서도 그 오막살이에 유리창문이 있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부커는 나면서부터 유리창문이 있는 집에 살아보지를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창문에 먼지가 많이 앉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커는 부지런히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그 순간 찬란한 석양 빛이 오막살이의 어둠침침한 방안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이 경험이 부커 와싱턴의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창문을 닦읍시다. 창문을 닦읍시다. ‘미래라고 하는 창문을 닦읍시다. 양심의 창문, 신앙의 창문 거기에 먼지가 앉으면 암담합니다. 미래도 보이고 현재도 밝아지도록빛을 맞아들이는 창문을 닦읍시다. 성령과 말씀의 지혜는 내 안을 밝게 하고, 이 어둡고 험한 인생에서 밝은 등불이 되어 우리들이 천국을 향해 바로 걸어가도록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줍니다. 이 지혜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인도하여 줍니다. 여기에 참 생명이 있고 영원히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어떻게 관리해야 성령의 지혜와 말씀의 지혜로 지혜 있는 자같이 지혜롭게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령의 지혜를 잘 관리하는 길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삶을 술 취함의 삶과 대비 시켜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술에 취하면 술의 기운에 사로잡히게 되면 신경이 마비되고 인격이 마비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술에 인 박이게 되면 술을 자꾸 먹고 싶어 견디지 못해 하며 술 중독자가 됩니다. 그러다가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윌리암 세익스피어는 오 보이지 않는 술의 신이여! 당신에게 이름이 없다면, 그대를 앞으로 마귀라 부르리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의 삶이란 술 취함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 취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취하면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어 주님의 성품을 닮게 되며, 지혜롭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한 말씀의 지혜를 관리하는 길은 주야로 말씀을 가까이 하여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성령과 성경의 빛을 통해 간교한 사단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고, 점점 더 악해져 가는 세상을 사는 동안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주님의 뜻을 따라 바로 사는 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하면서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고, 말씀으로 충만하여 주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사는 성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인생을 영원히 견고케 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시90:16-17에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했습니다. 본문은 죽음을 앞둔 모세의 기도입니다. 티끌로 돌아가는 짧은 인생 속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고 또 삶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된 성도들은 변하고 썩고, 없어지는 세상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을 바라보았기에 티끌로 돌아가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주어진 생애를 성실하게 살았던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원한 삶을 바라보며 15절에서는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했고, 16-17절에서는 우리와 우리 자손이 견고케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만세반석이 되시는 주님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One Month to Live)' 이란 책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뮤니케이터인 케리 슉과 크리스 슉(Kerry & Chris Shook) 부부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변화된 삶을 살도록 가르치며 양육하는 일에 헌신을 하다 얻은 경험을 통해 저술한 책입니다.

 

저자는 남은 생애를 후회 없이 보내는 데 필요한 삼십일 간의 영적 여정 속으로 초대합니다. 성품, 건강, 모험, 실패, 헌신, 그리고 꿈 등 하루 한 가지 주제를 삼십일 간 묵상함으로써, 열정적으로 살고(live), 두려움 없이 사랑하며(love), 겸손히 배우고(learn), 담대히 떠나는(leave)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묵상할 삼십일 간을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해 보라고 권합니다. 특히 삼십일 간의 묵상을 통해 근본적 변화를 통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세계를 꿈꾸도록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던집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연습을 시작하라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도록!"

 

인생은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의미를 새기며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남은 날들이 한 달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분명 지금과 다른 인생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만 생각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이웃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지나쳤던 작은 것 하나라도 다시 돌아보고 감사하며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는데 열정을 느낄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카타콤에 숨어 지내면서도 굳센 신앙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카타콤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카타콤 즉 지하 묘지에 살면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보면서 영원한 하늘 기업의 소망을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8:13-14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세상에서 잠시 사는 동안 육신의 소욕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성령과 말씀의 인도를 따라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살다가 하늘나라 기업의 상속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도 나와 자손이 기쁨을 가지고 영원히 견고케 되기 위해서 만세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살다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바로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로 사는 지혜는,

 

 

.시간을 바로 헤아릴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하여 주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사는 것입니다.

 

.인생을 영원히 견고케 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자녀의 소망 시146:1~10, 8:12-25

 

영국의 한 의학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5살 난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점쟁이가 아들을 보더니 "얘는 43살 밖에 살지 못하겠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런 채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초조한 마음이 날로 증폭되는 것입니다. 43살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점점 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43살이 되는 생일을 당하고 1주일 만에 죽었습니다. 병명은 마약 중독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입니다.

 

이 사람은 그가 부른 노래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많은 영광을 누렸지만, 어릴 때 점쟁이가 했던 그 말로 말미암아 평생토록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괴로워서 마약에 빠졌고, 필경은 중독되어 죽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 많은 사람에게 추앙을 받았어도 밝은 미래가 없으면 오늘을 살 길이 없고, 소망도, 영광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에게는 환경을 초월해서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있고, 장래에 큰 복과 영광이 따르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자녀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의 신분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약 본문 롬8:14-15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자녀라는 한 마디의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온 우주 만물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할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 거하시며, 감히 우리의 좁은 입술로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주적인 은총이요, 엄청난 사랑이요,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본문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은 황금 문자로 씌어졌으면 좋을 뻔 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는 극히 찬양할 만하며 위로에 넘쳐 있는 말씀이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한 신학자는 "기독교란 무엇이냐?" 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기독교의 원리를 철저히 연구해 본 결과 세 가지 즉,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이웃을 형제로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드리는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고, 그 대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고 "아버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은 바로 아버지 앞에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잘 났든지, 못났든지 허물이 있고 없고 간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죄 아래 놓여 있고 멸망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롬8:9-10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 ‘성령이란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모두 같은 성령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일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며 쭉정이 인생일 뿐입니다. 육적 생명은 살아 있으나 영적 생명은 죽은 자들입니다. 죽어 있는 쭉정이를 모판에 심고 싹이 나기를 기대하고 10100년을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이 내 안에 있으면 생명 되신 주님 안에서 영적 생명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사단 마귀의 인도를 받거나 자기 마음대로 자행자지하며 사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 롬8: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갈 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무조건 그저 따라 갑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도 그와 같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무조건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여 내 인생의 핸들을 조정하여 살아왔지만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는 오직 성령의 뜻과 생각만을 좇아 순종하여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가지고 성령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는 성령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도움과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구약 본문 시146:5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했습니다. 시편 146편에서 150편까지 5권으로 구성된 시는 처음과 마지막이 할렐루야로 되어 있기에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불리어집니다. 본 시편에서는 하나님 의뢰함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말하며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예배 시입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의 모든 것은 믿음의 대상도, 소망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시146:3-4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도울 힘도 없습니다. 호흡이 멎으면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군왕도 대통령도 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고 실존입니다. 건강이나 재산도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땅에 속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작은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온전한 역사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참으로 의지하고 소망을 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예인 건축연구소 이효진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생후 18개월 때 얼굴 전체에 3도 화상을 입은 그녀는 파충류 같다, 괴물 같다라며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땅만 보고 다녔습니다.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라며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고통은 하루면 끝났지만 자기 고통은 평생 끝나지 않으니 자기 십자가가 예수의 십자가보다 훨씬 힘들다고 불평했습니다. 21살 때 고통을 견디다 못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스스로 없애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복수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결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며 늘 하나님을 향해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다시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마지막 기도회 때 효진이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제목을 나누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기도대로 하나님을 만난 그녀는 성령으로부터 미스 헤븐이라는 별명을 받았습니다. “효진아, 너는 이 땅에서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너는 나의 미스 헤븐이다.” 이후 하나님 나라를 알리는 홍보 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화상을 입은 얼굴도 예쁘다며 프러포즈를 한 청년과 결혼하여 두 남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자라면서 엄마의 얼굴을 부끄러워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아이들을 재우려고 하는데 아들이 엄마는 너무 예뻐, 너무 멋져, 너무 잘 생겼어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6살이 되었을 때 엄마! 지구는 너무 아름다워.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있으니까라는 말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잘 생겼다는 말을 처음으로 듣고 펑펑 울던 미스 헤븐 이효진, 하나님 나라 홍보 대사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라는 책에서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에게 수많은 놀림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셨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며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였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변하고 썩어질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소망을 두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의 결국은 복이요, 영광입니다.

 

구약 본문 시146:5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했습니다. 또 시146:7-9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소망을 두고 살면 간구를 들으시고 억눌리고 갇힌 자를 자유하게 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 고난 중에 보호 하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입어 절망 가운데 빠진 자라도 주 안에서 새롭게 회복 되게 됩니다. 가수에서 목사로 변신한 이종용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 ‘겨울아이’,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을 부르면서 1970년대를 풍미하던 가수였습니다. 그런데 1975년 가요대상 시상식에서 최고 가수 상을 받는 날, 대마초 소지죄로 구속 수감이 되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있던 그는 감옥에서 사형수를 만납니다. 그가 구리로 만든 십자가를 주면서 당부합니다. “나는 사형당하겠지만, 당신은 곧 출소할 테니 예수 잘 믿고 내 몫까지 살아주시오!” 그는 그 말을 듣고 지나온 인생을 회고해 보니 하나님을 떠나 살던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인기스타 생활의 이면에 허무감이 가득했기에 대마초에 손을 댔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YMCA 활동도 했으나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소망은 세상이나 인기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 앞에 돌아왔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가수 시절 불렀던 노래 제목이었고,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때는 노래를 부르면서 의미를 몰랐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과거 인생이 바보 같았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는 가수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쓴맛 인생에서 단맛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에게 고난도 따르지만 그 결국은 영광입니다. 신약 본문 롬8:17-18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했습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의 특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상속권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예수님과 함께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소망이 교차하는 종교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6:8-10에서 신앙생활에서의 체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난과 소망은 이처럼 역설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특권과 영광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가르쳐줌과 동시에 고난도 함께 말하고 있는 진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주님도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그 사실에 대해 벧전4: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하였고, 고후 4:17에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영광스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Pearl S. Buck) 여사는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작품에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22살에 결혼을 한 어머니는 선교사 남편을 따라 미지의 대륙 중국으로 갔습니다. 굶주림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 남편을 도와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일곱 자녀가 태어났는데 네 아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펄벅은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우울한 어머니의 노래를, 어머니가 꾸며준 우리의 방에서 어두운 그림들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들려준 얘기 가운데 절망적인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언제나 소망이 넘치는 믿음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러한 모습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입술에서 우울한 노래 슬픈 노래를 멈추어야 합니다. 절망의 이야기, 근심의 이야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소망의 이야기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지니셨을 뿐 아니라, 한 결 같이 신실하십니다. 택하신 백성들을 자비와 긍휼로 돌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봅시다. 변하고 썩어지는 세상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참 자유와 돌보시는 은혜와 복과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자녀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의 신분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도움과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의 결국은 복이요, 영광입니다. 아멘.

 

 



성도의 행복 시126편1-6, 4:4-7

 

어떤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동산에 올라 좋은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앉아서보니 좀 더 위쪽이 더 좋아 보여 그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이 훨씬 아늑해 보여 다시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맞은편이 더 나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연인은 한번만 더 자리를 옮기리라 생각하고 맞은편으로 갔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일까요? 다시 보니 아래쪽이 가장 좋은 자리로 보여 "한 번만 더..." 하며 아래쪽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아래쪽에 앉은 남녀는 똑같이 마주보고 쓴 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 자리는 자신들이 맨 처음 자리 잡았던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븐슨의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찾고, 더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좀 더 좋은 것을 찾으려면 한이 없습니다. 행복은 현재의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33: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주님을 경외하는 우리와 이 땅의 모든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너는 행복자라고 말합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가정마다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소망하며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행복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의 행복은,

 

1.주안에서 오는 기쁨을 가졌기에 행복합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울 때는 기뻐할 때입니다. 근심이 있다면 아무리 아름답게 화장을 해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얼굴만이 아닙니다. 육신의 건강도 기뻐할 때 가장 좋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약이 되지 못합니다. 실재 있던 일입니다. 웃으면 암도 녹인다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은 날마다 미친 사람처럼 웃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큰 암 덩이가 고름이 되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밝혀진 바에 의하면 웃을 때 악성 종양인 암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융해하여 죽이는 면역 세포인 엔케이 세포가 크게 증가함이 밝혀졌습니다. 마음이 기쁘면 소화도 잘 됩니다.

 

어린이가 자랄 때 엄마가 피부접촉을 하며 늘 따스하게 해 줄 때 기분이 좋고, 행복감을 느끼며, 포근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그 때 체력과 성격은 물론 지능지수가 놀랍게 자란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대인 아이의 양육법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천재국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즐거움보다 더 좋은 양약은 없습니다.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참 기쁨을 소유 하려면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불가능합니다. 신약 본문 빌4: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했습니다. 주님 안에서는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죄 사함을 받음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 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지만 마음에 악한 것이 있으면 늘 씻어야 합니다. 마음에 죄를 품고 있는 동안에는 기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32:3-4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했습니다.

 

아담 부부가 범죄 한 후에 마음이 불안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를 주님 앞에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오고, 평안이 옵니다. 주님은 요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 받는 자가 됨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도 기뿐데 하물며 창조주요, 섭리주요, 심판주가 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받은 성도는 그 사랑을 받고 배워 이웃을 사랑하고, 관용으로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된 기쁨입니다. 구약 본문 시126:1-3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 되어 돌아 올 때도 이렇게 기뿐데, 성도가 사단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구원 받은 백성이 되어 천국에 이르게 되어 주님과 앞서간 성도들을 대할 때 그 감격스런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오는 기쁨을 가진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기도의 특권을 가졌기에 행복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렵고 답답한 일을 만날 때 의논할 대상도, 도움을 구할 대상도 없다면 얼마나 삶이 각박하고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성도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아뢰고, 의논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있습니다. 그분은 전능자요, 만물의 주인이시오, 심판주가 되시며,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좋으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 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간구를 원하시고, 간구에 응답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십니다.

 

신약 본문 빌4:6-7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하시고, ”너는 내게 부르 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하시는데, 무엇을 망설이고,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만 믿음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함으로 아뢰면 주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염려하면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하면 염려가 달아납니다. 기도하면 염려는 사라지고 대신 감사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마귀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자꾸 염려하게 만듭니다. 낙심하게 만듭니다. 쓰러지게 만듭니다. 마귀의 목적은 기도하지 못하게 하여 불행하게 하고, 죄 짓게 하고, 타락하게 하여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구약 본문 시126:5-6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했습니다. 기쁨의 단을 거두기를 원하는 자는 눈물 흘릴 각오부터 해야 합니다. 농부가 땀을 흘리지 아니하고 결단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져올 수가 없는 것처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거두는 자가 되려면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눈물이 없습니다.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해서 과외도 많이 시키고 공부도 많이 시키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일에 힘쓰는 어머니가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은 하지만 그러나 정말로 나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눈물의 애국자가 그리 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제자를 위해서 우는 스승의 눈물도 만치 않고, 남편을 위해서 우는 아내의 눈물이 많지 않고, 영혼을 위해서 우는 전도자의 눈물이 너무나 많이 식어 졌습니다. 기쁨과 행복한 변화를 바라며 눈물을 흘리려야 소망이 있습니다.

 

오랜 옛날, 로마 시대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스위치 하나만 올리면 전등이 켜지고, 손잡이만 돌리면 가스 불이 켜지며, 온도계만 조절하면 집 안이 따뜻해지는 오늘날과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 대신에 마을마다 중앙 광장에 1년 내내 하루 24시간 타오르는 화로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 화로는 마을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화로 관리인을 고용했습니다. 혹시 관리인이 임무를 게을리 해서 불이 꺼진다든지, 태풍이나 폭우로 불을 꺼뜨리는 날에는 불 관리인의 목숨도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불길을 주셔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타오르게 하십니다. 기도의 불, 성령의 불, 사랑의 불, 은혜의 불, 열심의 불이 어떤 이유에서든 잘 관리하여 꺼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내 심령에 불이 꺼져 갈 때 부채질을 하면서 피어나는 연기로 인해 눈물이 나더라도 새 불쏘시개를 넣고 불길을 일으킴 같이 눈물의 기도로 거룩한 불을 일으켜 살리지 않으면 사단이 다른 불을 마음에 일으켜 죄 짖고 타락하게 하여 영혼을 파멸시키고 지옥불로 던져 넣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을 잘 활용하여 거룩한 불길을 일으키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장래에 기쁨으로 거두게 될 하늘 기업의 소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명절 때가 되면 고향 가는 길이 막히고 힘들지만 고향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함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고향을 찾습니다. 성도가 최종적으로 기쁨으로 거두게 될 열매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 기업, 영원한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처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우리가 죄악이 많은 악한 세상에서 성결한 믿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박해와 핍박을 견디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오해를 받고 억울한 일을 감수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토굴에서 유리하며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늘 소망을 가지고 영광된 미래를 바라보며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의 눈물을 흘리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를 하며, 선한 씨앗을 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것을 거두게 하실 날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심고 거두는 원리를 바로 알고 그 원리를 따라 잘 심는 자가 되면 귀한 것을 거두는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심고 거두는 원리는,

 

*심는 대로 거두는 원리입니다. 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을 받고 쫓겨난 이유는 돈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자기 주인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잘 못 생각했습니다.(25:24-25).

 

*적은 것을 심고 많은 것을 거두는 원리가 있습니다. 8:7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8:7)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바람을 심으면 광풍을 거두고 이슬비를 심으면 소나기를 거둡니다. 악을 밭 갈고 심으면 심판을 거두고, 선한 것을 심으면 칭찬과 상급을 거둡니다. 화평을 심으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3:18).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둡니다(10:12).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므로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도와주십니다(고후 9:8).

 

*심고 기다려야 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오늘 심고 당장 내일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변함이 없으므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했고, 12: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선한 것을 심어 하늘 기업의 상속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의 행복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의 행복은,

 

.주안에서 오는 기쁨을 가졌기에 행복합니다.

 

.기도의 특권을 가졌기에 행복합니다.

 

.장래에 기쁨으로 거두게 될 하늘 기업의 소망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아멘.

 



삶의 가장 큰 힘과 지혜 18:1-6, 4:10-13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한 슬기로운 유태인이 아들을 예루살렘으로 유학시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유학 가 있는 동안 중병에 걸린 아버지는 아들을 보기가 어렵게 되자 유서를 썼습니다. 그 내용은 전 재산을 한 사람의 노예에게 물려주되 아들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 중에서 한 가지만을 아들에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사망했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횡재를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아들에게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유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들은 몹시 놀라며 슬퍼했습니다. 부친의 초상을 치르고 난 아들은 앞날의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랍비를 찾아가 사연을 설명하고 아버지의 처사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왜 아버지는 저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을까요? 전 아버지를 단 한 번도 화나게 하거나 불효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랍비는 찾아온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천만에. 자네 부친은 매우 슬기로운 분이고 자네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네. 이 유서를 보면 그걸 당장에 알 수가 있네.” “노예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자식에겐 땡전 한 푼 안 남겨 주신 걸 보면서 사랑하기는커녕 저를 미워하셨던 게 분명합니다.”

그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자네도 아버지처럼 슬기롭게 머리를 쓰게나. 자네 아버지께서 무엇을 바라고 그러셨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자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네.” 랍비는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자네 선친께서는 자네를 만나지 못하겠기에 자신이 사망했을 때, 노예가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거나 그 재산을 탕진할까봐 걱정하셨던 걸세. 최악의 경우 자신이 사망했다는 사실마저도 숨긴 채 노예가 재산을 독점할는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신 나머지 전 재산을 노예에게 물려주신 거네. 전 재산을 물려주면 노예는 기뻐서 급히 아들에게 달려갈 것이며 재산도 고스란히 보존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일세.” “그게 제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들은 계속 불평했습니다. 랍비는 안타깝다는 듯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젊은 사람은 역시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군. 자네는 노예의 재산은 모두 주인에게 속한다는 법률을 모르는가? 자네의 부친이 한 가지만 자네에게 주라고 하셨으니까 자네는 노예만을 선택하면 되는 걸세. 이 얼마나 슬기롭고 자상하신 배려인가 말일세.” 오늘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능하신 주님을 나의 힘과 지혜로 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주님이 나의 힘과 지혜가 되어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어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삶의 가장 큰 힘과 지혜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삶의 가장 큰 힘과 지혜는,

 

1.주님을 나의 힘과 지혜로 삼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시18:1-2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성전 안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에서 현장체험을 통해서 드려지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삶속에서 체험되고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힘이 있는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인데 내 삶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믿음의 자세로 반응했는가에 따라 어떤 일이나 문제는 내게 큰 은혜와 유익을 얻는 체험으로 다가 옵니다. 체험이 없는 지식적 믿음은 공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음지와 양지, 형통의 날과 시련의 날을 겸하여 주셔서 우리 인격을 다듬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윗도 여러 날 동안 좋은 상황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힘든 상황을 거치면서 정금 같은 인격으로 다듬어져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모든 일에 성공을 구가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인생의 겸손함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허약함을 선물로 받았다. 내 인생에 더 가치 있는 일을 분별하여 힘쓸 수 있도록^^

나는 하나님께 부유함을 원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함을 주셨다.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분별하며 살도록^^

나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연약함을 선물로 받았다. 하나님을 의지함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 그러나 나는 생명의 영생의 선물을 받았다. 이때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

나는 내가 기도한 모든 것을 다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나는 하찮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모두 응답해 주셨다. 나는 모든 사람가운데 가장 축복받은 자다." 이 시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힘과 지혜가 되어 주시면 힘없고 무능한 자라도, 아무리 소망 없어 보이는 자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가맹점을 갖고 있는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타미의 이야기입니다. 타미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그리고 하도 불량학생으로 찍혀 중학교 때 퇴학을 당하는 불행한 소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신앙의 좋은 교사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타미를 모두 멀리하였지만 이 교사는 타미를 가까이하며 신앙으로 격려하였습니다. "타미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버리고 너를 욕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너를 버리시지 않는단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큰 별을 따도록 노력 하거라."

결국 타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타미는 피자가게에 취직을 하였는데 얼마나 열심히 일하였든지 피자 한 판을 11초에 반죽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힘과 지혜로 삼고 살아간 타미는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타미는 피자가게를 열었고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세계 49개국에 5,254개의 가맹점을 갖게 된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도미노 피자 전단 지에 꼭 들어가는 문장이 있습니다. "청년들이여! 그대의 생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단 한 번 크게 승부를 걸어보라."

여러분은 누구를 힘과 지혜로 삼고 있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을 힘과 지혜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신앙으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 라는 것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다윗은 양을 칠 때에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도 자기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성공 자가 되고 큰 부자가 되었지만 이제 내가 주인이 된 것처럼 살지 않고 여전히 자기는 종이요, 하나님을 그의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세상에는 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이 있고, 사단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는 삶이 달라지고,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고, 최후의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한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처음 이 강아지는 아주 게으른 사람을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그 강아지는 누가 보아도 보기 흉하고 냄새나고 혐오감을 주는 그런 볼품없는 강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아마 게으른 사람이 그 강아지를 팔아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아지의 새 주인은 아주 부지런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강아지는 새 주인을 만나 함께 지내면서 몰라보게 변하였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강아지로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단을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면 온갖 죄에 빠져 더럽고 추한 타락한 인생으로 전락 하게 되지만,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귀한 사람으로, 존귀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피로 값을 주고 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래 죄의 종,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를 값을 치르고 사셔서 '너는 내 것이라'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 되면 행복합니다.

서신서 본문 빌4: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워 자족의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 맞고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기쁨이 충만했고, 본문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주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능력을 공급해 주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이면서 유명한 소설가인 크로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가난한 광부들이 모여 사는 광산촌에서 의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간호사가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좌천되어 환경이 열악한 그 곳 병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간호사는 억울하게 쫓겨 온데다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불평이 없을 뿐 아니라 항상 생글생글 웃었고, 늘 여유 있고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나도 제일 늦게까지 일을 하곤 했습니다. 이 간호사를 주목해 보던 크로닌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예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호사는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이 그때까지 헌신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못했던 크로닌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당당하게 일하게 했던 삶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곳, 어떤 위치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일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어떻게 인정을 받고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다윗처럼, 바울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전심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시편 본문의 부제를 보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라고 되어있습니다. 다윗에게 과거 어려웠던 일들이 다 지나갔습니다. 암울했던 눈물의 나날은 지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를 대적하던 모든 원수들을 깨뜨리고 그를 끝까지 추적하며 괴롭히던 사울의 칼날도 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럴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 하고, 경배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며 살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종이라 하신 것입니다.

신약 본문을 (4:10-13) 기록한 바울 역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방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고 수많은 위협과 박해와 고난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죽도록 충성함으로 주님 은혜에 보답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도 기도 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주만 바라보며 감당했습니다. 수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많은 교회를 세우는 수고를 했지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렸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우리는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매가 무서워서 억지로 마지못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면 기쁨이 없습니다. 물론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그건 기쁨이 없는 불행한 신앙생활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이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짓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곤 머리를 아래 위로만 흔드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은 내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 있게 하는 사람에겐 큰 상을 내리겠노라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 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만들어 보려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007 가방을 들고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도록 해보겠습니다.” 하더니 007 가방에서 빨간 벽돌을 한 장 꺼내어 개에게로 다가가더니 느닷없이 개의 머리를 벽돌로 두, 세 번 내리찍자, 놀란 개가 뛰다시피 임금님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개를 빠끔히 쳐다보자 한마디 했습니다. “더 맞을래?” 개는 겁에 잔뜩 질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상금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이 있은 후 개에게서 또 다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젠 개가 고개를 늘 좌우로만 흔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임금님은 개의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 수 있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고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또 그 007 가방을 든 남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게 해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007 가방을 열고 빨간 벽돌을 보이면서 개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 나 알지?” 개가 고개를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는 빨간 벽돌을 보고 두려워 순종하는 개처럼 주님이 두려워 마지못해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기뿐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매사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삶의 가장 큰 힘과 지혜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삶의 가장 큰 힘과 지혜는,

.주님을 나의 힘과 지혜로 삼는 것입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심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멘.



영을 살리는 하나님말씀 119:9-16, 5:24-29,37-40

옛날 영국에 한 시골에 과부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외아들이 아파서 사경을 헤맵니다. 그 어머니가 안타까워 하다가 60여리 떨어져 있는 도시에 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의사선생님, 저는 시골에서 왔는데 저희 아이가 죽어 갑니다. 와서 고쳐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돈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 시골집에 가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간곡히 애원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의사는 생각했습니다. '이 밤중에 돈 한 푼 벌 수 없는데 왕복 120리 길을 왜 가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못 간다고 말은 못하고 옆방에 가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야 되는가, 가지 말아야 되는가?' 양심에서 한 편으로는 '의사는 환자를 고쳐야 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밤중에 그나마 돈 한 푼도 받을 수 없는데 왜 가느냐?'고 말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이 의사는 가기로 결정하고 어머니를 따라서 그 시골집에 갔습니다. 의사는 죽어 가는 아이를 밤새 정성껏 잘 치료하고, 약을 주면서 잘 돌보게 하고 자기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그 어린아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 의사는 은퇴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초청장이 왔는데 새로운 재무부 장관이 취임하는데 꼭 취임식에 참여해 달라는 그러한 초청장이었습니다. 이 의사가 생각하기를 '나를 이렇게 초청할 사람이 없는데 누가 초청을 하는가?'궁금해 하면서 초청 식장에 참석을 했습니다. 새로 취임하는 재무부 장관이 와서 인사를 합니다. '의사선생님 저는 오래 전에 선생님께서 밤중에 60리 길을 오셔서 살려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오늘 재무부 장관에 취임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면서 의사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을 하며 극진히 대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무부 장관이 말하기를 '저는 어머니를 통해서 의사선생님이 저의 병을 고쳐주셨다는 말씀을 듣고 그 병원을 오고 갈 때마다 의사선생님이 잘 계시는 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은퇴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오늘 장관에 취임하면서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모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도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에 보답을 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유익이 없는 것 같고,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말씀에 순종하기에 큰 희생이 따르기도 하고, 큰 부담으로 다가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되면 마침내 하나님의 칭찬과 사랑과 엄청난 상급과 복으로 다가오게 되는 은총을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성서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을 살리는 하나님 말씀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말씀은 참 생명의 양식입니다.

신약 본문 요5:24-25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육체적으로 죽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명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은 살려줘도 다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나사로도, 야이로의 딸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다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영생입니다. 10: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이 영생을 주시면 그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접촉합니다. 믿음이 생겨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과 연합이 됩니다. 그 때 참 생명을 얻게 되고 영생 얻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본문 요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이유는 성경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 양식입니다. 이 생명 양식을 잘 받아먹고 잘 소화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 됩니다. 밥은 잘 먹고, 잘 소화시켜야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영양이 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영의 양식도 마찮가지입니다. 3:1에는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이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말씀이 소화가 안 되어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갔습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소화가 안 되면 불순종 하게 되고, 오히려 더 해롭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소화가 되어야 내 것으로 묵상되고 실천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 수난에 대해 말씀 하실 때 그들은 그 말씀을 소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만류 하다 사단아 물러가라.’는 주님의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젖 밖에는 소화를 시킬 수 없는 어린 아이는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화력이 왕성한 건강한 사람은 고기뿐 아니라 어떤 것을 먹어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소화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지만 그 말씀을 소화 하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믿음이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 후에 제자들과 성도들은 모든 말씀이 소화가 되어 기꺼이 순교의 자리까지 순종했습니다. 말씀 순종에는 놀라운 약속의 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참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무슨 말씀이든 잘 소화 하여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게 합니다.

구약 본문 시119:9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했고, 11절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범죄 하지 않도록 이끄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할 때 나의 육체의 욕망을 가라앉힐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길을 찾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나의 죄 된 생각과 욕망을 통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얼마나 악의 유혹이 많습니까? 악하고 교만한 자들이 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얼마나 훼방하고 위협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면서 이 세상의 함정과 갖가지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깡패가 변하여 목사가 되어 한국 초기 교회에 놀라운 역사를 나타낸 김익두 목사의 일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깡패 청년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술을 끊었는데, 어느 날은 옛날의 술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익두, 한 잔 하러 가세." 그러자 김익두는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안 돼. 요즘 내가 약을 먹고 있어서 술을 마시면 안 돼." "어디 아픈가? 무슨 약인가?" 그 때 김익두는 성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걸세. 신약과 구약이네." 성경은 마음과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고 영혼까지 치유하는 약 중의 약입니다. 심령의 양약과 보약입니다. 성경의 신약과 구약을 잘 처방하여 믿고 복용하면 부작용이 전혀 없는 신비로운 만병통치약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딤후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에 온갖 인격을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의로 교육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받은 자, 성경을 상고하는 자는 성경적 인격이 형성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은 인격이 없습니다. 온갖 부도덕한 일을 거침없이 행합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거짓과 기만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미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고, 섬기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 대로 도적이요, 강도 같은 자들입니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지만 속은 노략하는 이리입니다. 귀신의 힘을 빌려 점치는 무당이 존댓말 하는 것 봤습니까? 무당은 어디서나 아무에게나 반말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는 겸손한 인격이 있고, 선함이 있고, 진실이 있고, 온유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남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 하지 않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기를 소망하며 삽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이 성도에게 부어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구약 본문 시119:11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했습니다. 여기 '두었나이다.'의 동사 '차판'은 비밀로 하기 위하여 누군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숨기다'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돈이나 보석 따위를 숨겨두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입니다. '두었나이다.'는 비밀스럽고 접근할 수 없는 장소인 마음 깊숙한 곳에 주의 말씀을 쌓아둔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보물처럼 쌓아두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둘 때 범죄 하지 아니합니다. 말씀이 죄를 책망하고 죄악을 물리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즐거움으로 받습니다. 본문 시119:14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했고, 16절에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 하리이다.”했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즐거워하며 사모함으로 받아야 영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 있다고 합니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게 뻗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모함으로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주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톰거룩한 책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순히 서가에서 침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서와 묵상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새겨두기 위해서이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거룩한 독서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읽기, 묵상하기, 기도하기, 그리고 관상하기의 네 단계입니다. 영성가인 귀고’ 2세는 묵상 없는 읽기는 건조하다. 읽기 없는 묵상은 실수를 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기만 해도 안 되고 묵상만 해도 안 됩니다. ‘이블린 언더힐묵상은 깊은 우물물을 손으로 직접 길어 올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묵상할 때에 비로소 말씀의 깊이가 살아나고 능력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밤 농장을 경영하는 분이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밤이 땅에 떨어져 하루가 지나면 벌레가 알을 깐다고 합니다. 밤이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벌레가 알을 까지 않고 괜찮은데 땅에 떨어지면 하루가 지나면 알을 까고 상품가치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밤은 땅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떨어져도 얼른 주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먹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렇습니다. 늘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을 상고하고, 매일 묵상할 때 신령한 생각으로 충만해 집니다. 말씀은 위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신앙의 날개를 펴서 하늘을 나르게 합니다. 말씀과 멀어지면 마음에 땅의 생각으로 가득 차 땅에 떨어진 밤처럼 금방 벌레가 알을 가게 되고 못 먹게 되고, 가치를 잃어버리고 못쓰게 만듭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성서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을 살리는 하나님 말씀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생명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아멘.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 시15:1-5, 히12:14-17


마을을 떠돌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먹음직스럽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기 때문에 자리를 펴자마자 떡은 다 팔렸습니다.

하지만 떡이 잘 팔릴수록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도 할머니는 다른 동네에서 떡을 팔았습니다. 여느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떡을 한번 산 사람들은 다시 와서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의 손에 금화(金貨)를 내밀었습니다.

“이 금화만큼 떡을 달라는 거냐?”라며 할머니가 물었을 때 “아닙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화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떡장수 할머니는 원래 떡을 파는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많은 유산과 사업장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금화가 든 떡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 정직한 소년을 후계자로 삼아서 사업체와 많은 유산을 물러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욕심 때문에 큰 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세상 것에 대한 사랑과 욕심 때문에 주님을 바로 경외하지 못하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그르치며, 그 마음이 정직하고 진실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기업의 후사를 찾아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자들을 찾으십니다. 구약 본문 시15:1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했고, 신약 본문 히12:14-15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는,


1.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15:4에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은 모두 613가지라고 랍비 ’심라이‘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 15편에 11가지로 요약했고, 미가 선지자는 미6:8에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 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랍비 ‘나흐만 벤’은 모세가 받은 율법 613가지를 다 한가지로 요약했는데 그것은 하박국 2:4의 말씀으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망령된 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가난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세상 권세와 명예를 가졌거나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서약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신뢰하고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66권 성경을 통하여 약속을 다 지키셨는데 나는 몇 마디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팽개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 일꾼이 되며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4절에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했고, 신약 본문 히12:16-17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창25장 27-34절에서 에서와 야곱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에서는 장자인데도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망령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을 빼앗긴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한 그릇 식물 때문에 자기에게 올 신령한 복을 빼앗기는 망령된 자라는 것입니다. 망령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입니다. ‘경하게 여긴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기 생애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망령된 자는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렘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망령된 자는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의 생애는 결국은 헛된 수고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을 높여 주십니다. 낮은 자를 들어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비천한 자를 존귀하게 만드십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죤 영이라는 흑인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노예였습니다.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14명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은 철저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 가정의 가훈은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 14명 모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자녀 중에서 코넬 대학 교수도 나왔습니다. 간호사, 음악가 등 14명이 모두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경외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웃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요약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에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의 자격 중에, 그리고 신약 본문에 주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될 자의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15:3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하였습니다. 악은 선과 반대말이 되는데 선은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행은 불신자들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은 독사와 같아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본인은 물론이요 후손에게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시 1:5-6) 자손들까지도 망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사 14:20).

다음에,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15: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했습니다. 이는 말로 이웃을 해치는 것을 말합니다. 말은 무서운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즉 가까운데 있는 사람으로부터 먼데 있는 자들까지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남을 해롭게 말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자는 혀에 마귀가 있고 그 말을 잘 들어 주는 자의 귀에도 마귀가 있다." 고 하였습니다. 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사람을 축복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찬송은 성도들의 입술의 열매라"(히 13:15)고 하였습니다. 말로 이웃을 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주의 집에 거할 자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자가 되라했습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대인관계와 대신관계는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대인관계를 바르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좋습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나환자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환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미국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 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 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 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니 나환자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지려면 사람들에 원망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원망 들을만한 일을 했다면 풀어야 합니다. 마 5:23-24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람과 원수 맺지 마십시오. 사람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마십시오. 대인관계는 대신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주를 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함의 특징은 구별과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스스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플리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가라는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서 펀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들은 결코 음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둑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어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깨끗합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누구든지 그렇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의 장막에 거할 자답게 하나님의 은혜로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에 말씀을 주목해 보면 주의 장막에 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러 주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함을 몇 가지로 말씀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시15:2에 “정직하게 행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했습니다. 정직과 진실은 내 자신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모습 이대로, 죄인이면 죄인인 모습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대로 나와야 합니다. 가장하고 위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내 모습 이대로 진실하게 고백하고 보여 드려야 합니다. 죄인이면서 의인인척, 없으면서 있는 척,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서 회개하는 척, 미워하면서 사랑 하는 척 하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합니다.

하나님 앞에 꾀를 부리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가림이나 위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정직하신 분으로 속지 않는 분입니다.

다음에, 공의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시15:2에 으로 "공의를 실천하며" 했습니다. 주님의 장막에 거할 자는 공의를 일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공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공의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의는 성경이 말한 공의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는 인정하셨지만 공의와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공의로운 자는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선하고, 생각이 선하고, 행하는 일이 선하고, 보는 눈이 선합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공의를 행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시면서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자와 같이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의를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히 구하고 적극적으로 행하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쓴 뿌리를 제하여야 합니다. 신약 본문 히12:15에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했습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에 있어서 뿌리란 그 나무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열매는 뿌리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쓴 뿌리란 독이 있는 뿌리로 그 나무에서 자라난 열매란 자연히 독이 있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쓴 뿌리는 교인들이나 교회에 괴로움을 줍니다. 그래서 괴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데,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타락시켜 사망으로 이끄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계2장을 보면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쓴 뿌리가 나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타락시켰습니다.

모세 시대 고라당이 쓴 뿌리가 되어 모세를 대적하더니 자신과 가족과 그에게 속한 자들이 무서운 형벌을 받았습니다. 엘리야 시대는 아합과 이세벨이 이스라엘 교회를 망치는 쓴 뿌리 노릇을 하더니 자신과 민족이 큰 재앙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시대는 바벨론 박수 술객들이 쓴 뿌리 역할을 하다가 자신과 민족이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유대 종교 성직자들 즉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이 쓴 뿌리 역할을 하다가 자신과 민족이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울 시대는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쓴 뿌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성도는 밖에 있는 쓴 뿌리를 경계하고 대적해야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에 쓴 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은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잘 잊히는데 내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상처는 여간해서 잘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픈 상처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미래의 소망은 점점 줄어들고 과거의 추억만 쌓여갑니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 좀 즐겁고 유쾌했던 기억만 떠오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주 슬프고 불쾌했던 기억만 떠오릅니다.


어느 목사님은 나이 70이 훨씬 넘어 구순 계모가 세상을 떠나는 임종 자리에 어린 시절 그 계모로부터 학대받은 상처가 떠올라서 무척 괴로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에 전처소생인 자기와 동생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그 계모를 자신이 목사가 되었고, 이제 나이가 70이 훨씬 넘었는데도, 구순 노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마당에도 용서 보다 어린 시절 생모를 잃은 자기 친형제에게 상처를 준 계모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른거리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쓴 뿌리가 되어 뭔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옛날 받았던 상처가 새록새록 떠올라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 ‘쓴 뿌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나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쓴 뿌리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주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성령의 불로 태워서, 말씀의 검으로 도려내서 없애야 좋은 성도,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쓴 뿌리는 자라납니다. 그 쓴 뿌리가 자신과 남을 괴롭히고, 주변에 많은 것들을 더럽게 오염시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자신을 잘 단장하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합니다. 아멘.



감사하는 자로 살면 67:1-7, 6:8-13

어느 분이 정신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원장이 앞장서서 안내를 합니다. 어느 병동에 가니까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 중증(重症) 정신병환자들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경비하는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방문자는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원장님, 경비원이 하나뿐인데 위험하지 않습니까? 만일 이 환자들이 힘을 합해 폭동이라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장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위험하지 않습니다. 정신병 환자들은 힘을 합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자기만 생각 합니다" 방문자는 생각했습니다. "세계가 점점 자기 나라, 자기 마을, 자기만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정신병 환자나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 대신 시기, 분쟁, 불평, 원망 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로 살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자로 살면,

 

1.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행복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은총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본문 시67:1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감사하면 어려운 여건을 만났을 때에도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게 하시며,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게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또한 다윗은 본문 시67:2에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 알리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기도 하지만 구원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대속의 십자가를 통해 믿는 자들에게 속죄의 길과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을 예비하신 은총을 받았습니다. 죄와 사단의 올무에서, 율법의 정죄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어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본문 시67:6-7에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공급하신 하나님께서 육의 양식을 공급해 주실 뿐 만 아니라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님, 영의 양식이 되는 말씀을 공급해 주시어 영육 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는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놀라운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본문 시67:4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특히 구원을 받는 모든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해 찬송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높이며 그 능력을 찬송해야 합니다. 사울에게 악신이 역사할 때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악신이 떠나갔습니다(삼상 16:23). 바울과 실라가 복음 전하다 매 맞고 옥에 갇혔으나 한 밤중에 기도 하고 찬미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고, 간수와 그의 가정이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6:25-34)

광주 민주화항쟁이 절정에 달할 때 군인이었던 한 전도사는 정보담당 부처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는 밀명을 받은 후 등산객으로 가장하여 광주 시내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초를 서고 있는 5명의 대학생들에게 체포됐습니다. “군인인가?” “아니다.” “왜 산에서 내려오나?” “아침에 등산 갔다 온다.” 학생들은 그의 몸에서 육군이라고 쓰인 호신용 권총을 찾아냈습니다. 군인의 신분이 드러난 것입니다. “손들고 뒤로 돌아서라.” 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생명을 포기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러자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예수를 믿는가?” “나는 신학생 전도사다.”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종을 죽일 수는 없다.” 이 찬송으로 군인 전도사는 5명의 대학생 중 한 명의 예수 믿는 사람 때문에 살게 된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요,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는 능력이 있기에 찬송하다 위기에서 건짐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감사와 찬송으로 화답하여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행복한 성도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남자만 5천명쯤 되었습니다. 그 곳은 빈들이었고, 돈도 없었으며, 사전에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가운데서 시장기를 느끼고 있을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때 한 소년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본문 요6:11'예수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마치 한 가정의 가장이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과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듯이, 예수님께서 5천명이 모여 있는 그 앞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 소년 하나의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한 그 보잘 것 없는 것을 놓고도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5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 분이 만물의 주인이요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러한 주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이 적어서 내가 무엇을 감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일이 풀리는 것은 고사하고 자꾸만 꼬이기만 하고, 애들은 속을 썩이고, 몸도 아프고, 도대체 무엇을 감사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 한 부인이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내 남편은 쉬는 날만 되면 사냥 아니면 낚시 하러 훌쩍 떠나 버립니다. 도대체 내가 남편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못살겠습니다. 내 남편을 사 가시는 분에게는 사냥 기구와 낚시 도구를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랬는데, 남편을 사가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60여 통의 편지가 날아왔는데, 거기에는 모두 쓴 소리가 적혀 있었습니다. 남편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라! 남편이 쉬는 날만 나다니고 평일에는 직장에 나간다는 것을 감사해라! 남편이 병원에 가지 않고 낚시터에 가는 것을 감사해라! 당신 같은 사람을 데리고 사는 것을 감사해라. 남편과 헤어진 다음에 찾아오는 고통에 비하면 지금이 행복한 거란다! 전부 그런 충고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다음에 감사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것을 놓고 먼저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만족한 것이 못되고 아무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먼저 그것을 놓고 '하나님 이것이라도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할수록 커집니다. 불평도 할수록 커집니다. 그런데 감사는 은혜를 크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5). 은혜가 어떻게 더하고 넘칠 수 있었습니까? ‘감사함으로넘쳤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에 감사하는 자가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행복한 자가 됩니다. 인생의 승리자가 됩니다.

 

미국의 뉴스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의 진행자 데보라 노빌’(Deborah Norville)‘0.3초의 기적, 감사의 힘이란 저서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에 인생 전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감사의 말로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감사가 삶을 변화시킨 인물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윌 톰슨이라는 뚜렷한 직업이 없는 건달이 있었습니다. 오토바이가 옆을 지나가는데 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토바이를 구입하려고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객들이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고 불평할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배인이 종업원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고객들에게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고객이 있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이렇게 인사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이렇게 반복해야 합니다. “저희 식당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식을 주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여러분도 감사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인생에 성공이 찾아 올 것입니다.”

톰슨은 마지막 말을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그 동안 감사해 본적이 없었지만 성공을 내다보며 감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만나는 고객들에게 식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고객들이 좋아하며 팁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친절한 종업원으로 윌 톰슨이 뽑혔습니다. 주인의 눈에 들어 부지배인으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소원이 아니라 인생을 변화시키는 소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야간대학에 진학하여 경영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중소기업을 시작하고 얼마 후 사장이 되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감사할 때 놀라운 결과가 찾아옵니다. 감사는 만사를 변화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감사할 일을 허락하십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가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 더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복의 근원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구약 본문에 기록 된 이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복을 받기 원하는 대상이 점점 확대되어간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복을 주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2절에서는 "땅 위에", 더 나가서 "모든 나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3, 앞에서는 "민족들"이라고 했는데 뒤에서는 "모든 민족들"로 확대됩니다. 7, 앞부분에서는 "우리"가 뒷부분에 와서는 "땅의 모든 끝"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요,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하셨고, ‘너로 인하여 많은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아브라함에게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일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이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신약 본문에도 예수님이 축사의 기도를 하신 후 제자들의 나눔의 손길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배부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후에 이 제자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 전한 복음이 많은 민족에게로 흘러가게 되었고, 그 복음을 통해 구원 얻는 자들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 시67:2-3에서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선교하던 몰간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처음 그곳에 부임한 이후로부터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도무지 주민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산에 올라가 2주 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부인은 새파랗게 질려있었고 어린 딸은 염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그는 쉴 사이도 없이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밤중에 이르러 몰간아, 너는 죽어가는 네 딸 하나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아프냐? 병들고 못 먹고 죄로 죽어가는 전 세계 인류를 바라보는 아버지로서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즉시 부인을 불러 이 사실을 말해주고, 큰 민족으로부터 작은 민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함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았고 기도를 마친 몰간은 아이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딸아이의 이마를 짚어보았습니다. 마치 불덩이 같았던 몸에서 열이 내리고 아이는 깊이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딸아이가 깨끗이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의 범위를 넓혀 전 세계의 각 나라와 모든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성도로 삽시다.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로 살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는 자로 살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행복한 자가 됩니다.

.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됩니다.

.복의 근원으로 사는 자가 됩니다. 아멘.



감사를 아는 성도 시편1111-10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수장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절기는 단순히 추수에 대한 감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모든 삶을 지켜주시고 일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생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한해동안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한번 깨달아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어떤 믿음의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또래 청년들답지 않게 신실한 믿음으로 늘 감사하며 하나님을 향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청년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다리 하나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할 일도 많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한쪽 다리로만 살 것을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하여 절망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믿음이 좋다 하더라도 막상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지 않습니까

 없어진 것에만 집착하면서 여전히 남아 있는 다른 것은 보이지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간혹 자식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어떤 부모는 ‘00 야 내가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러면서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이 되다시피합니다.

 그러다가 자식을 따라가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사자는 너무 슬픔이 커서 그렇다고 하지만 정작 남아있는 가족이나 자녀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남아있는 가족과 자식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개 큰 슬픔을 당하면 지금당장 당한 것만 보이지 다른 것은 안보입니다. 이 청년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청년은 없어진 다리 대신 여전히 자신에게 남은 한쪽의 다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이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아직 다리가 하나 남아있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습니다.

 청년은 의족을 하고 이제부터 남은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청년은 선교사가 되기로 서원하고 훈련을 마친 후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교를 하던 중 그만 식인 부족에게 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혜가 떠오르기를 자신의 의족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의족을 빼서 식인종들에게 던져 주었고 이것을 받은 식인종들은 아무리 다리를 씹어도 먹을 수 없자 이런 사람의 살은 처음이다. 아마 하늘이 내린 사람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 선교사를 신적인 존재로 인정하게 되면서 복음이 쉽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그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다리 한쪽을 잃게 하신 이유를 깨닫고 진정한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렵고 힘든 현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시고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감사에 대한 중요한 세 가지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1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시편 기자는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감사를 드러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는 속으로만 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감사는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보이도록 앞에서 할 때에 더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회중 앞에서 여호와께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해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감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 말은 감사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감사를 누구에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감사는 사람에게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이웃에게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스승에게 하는 감사도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감사할 대상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만을 감사할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할 마땅한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복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절하고 빌지만 우리에게 가족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형제를 주시고 이웃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의 근원이 되시며 만물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다른 어떤 대상에게 감사하는 것보다 먼저는 하나님에게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 야 말로 진정한 감사를 아는 사람이며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사라고 할 때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낮은 수준의 감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원하는 것을 갖게 되었을 때에 즉 제한 적인 감사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는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란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할 수 있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있어서가 아니라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2차대전 당시 유대인을 숨겨준 죄목으로 포로수용소에 갇혀 어려움을 겪었던 코리텐 붐 여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는 감옥에서 숨겨둔 성경을 읽는 중에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안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녀는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속에 처해 있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에 꼭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옥이 어떤 환경입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 속에 처해 있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새로 옮겨진 감방엔 벼룩이 많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간수들이 그 방에 벼룩이 많다는 것을 알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두 그 방에 집어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가렵겠습니까? 긁어도 긁어도 가려움증 계속되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코리텐 여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는 감명을 받았지만 벼룩만큼은 감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언니 베시와 함께 기도를 하는 중에 주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우리들에게 이러한 환경을 주시고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자 코리텐도 할 수 없이 억지로 아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깨닫게 된 놀라운 사실은 벼룩 때문에 감방주위에는 간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들 자매와 믿음의 지체들은 그 방에서 마음껏 기도하며 교제하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놀라워서 진심으로 벼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자 간지러움도 사라졌다는 놀라운 간증이었습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대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감사의 조건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계속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왕이면 가난한 것보다 부유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건강도 약한 것보다는 강건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건강이 있나 없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내가 부자이냐? 가난하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감사의 조건은 구원의 하나님을 내가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하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여호와의 행하시는 일들이 크기 때문이며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행사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계획과 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게 은혜스러울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깨달아 발견하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모든 것이 움직이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가 일용하는 모든 양식과 재료들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솜씨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신과 닮은 자녀를 보면서 이것은 내 솜씨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솜씨가 놀랍습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개입되어 있으며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하나님이 은혜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행하신 모든 행사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니까 셀 수 없이 모든 것이 감사하며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다도 없다는 것이 시편 기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은혜에 감사의 이유를 찾으시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어나게 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고 세우시고 살아오게 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다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가운데 가장 감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영혼을 살려 주시려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그 은혜는 무엇으로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해서 많은 예물을 드리면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대신 죽으면 갚아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죄인인 나의 생명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의 사람은 아무리 갚아도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 몸과 마음으로 헌신을 하고 충성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늘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의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지막 때가 이를수록 감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러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생각이 허망하고 미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 이러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 세대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감사를 생각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저와 여러분들은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으로 감사로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감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더 큰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과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 못할 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리 과해도 좋은 것이 있다면 바로 감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 할 때에 주어지는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로 감사하면 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여러분 작은 일에도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랍게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우리가 감사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감사하면 내 삶의 의미가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찾게 되며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자들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며 날마다 새로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로 감사하면 내 인격이 더욱 성숙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감사가 앞서면 모두가 당연히 화를 내고 짜증 낼 일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격이 성숙하게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은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단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에 죄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형편이 감사한데 어떻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죄는 어떤 사람이 지을까요? 바로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죄를 짓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구했지만 도무지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한 사업가가 자신의 사업장에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정상인과 똑같은 급여를 지급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도 일자리를 주고 이렇게 차별 없이 급여를 주는 것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불의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불평하거나 몰래 딴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결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그 마음에 감사가 있기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우리의 가장 영적 강력한 무기이자 우리의 인생을 진정한 행복으로 초대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께 그 마음을 두고 그렇게 늘 감사하기로 마음에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감사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원하기는 형식적이고 마음이 없는 감사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회복되어서 이 감사를 가지고 다시금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가 마르지 아니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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