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음/삼하 7:1-17 

 

성경본문 : 사무엘하 7:1-17

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오늘 말씀은 다윗이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행 13장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말씀을 들었을까요? 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외모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이 아름다워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얼굴 예쁜 사람 찾지 않습니다. 외모 바른 사람 찾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다윗과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럼, 다윗의 어떤 면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을까요?

그의 마음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에는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1)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다윗이 왕이 된지 오래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모든 대적을 파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궁에 평안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그가 마음에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다음 2절을 보십시오.

(2)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려울 때의 마음과 평안할 때의 마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하다가 평안해지면 은혜 다 잊어버리고 감사한 마음을 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에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평안해 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 잊지 않고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궁에 평안히 있을 때,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못 내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그래서 3절에 보면 나단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이 말은 나단이 감동해서 한 말입니다. 나단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오늘 목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목사의 마음이 어떨 때 가장 기쁜가 하니, 성도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 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회있는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는 때 목사의 마음은 한없이 기쁩니다.

 

특별히 목사를 찾아 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지 그것을 의논할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어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때, 주의 종의 마음은 한없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울 때는 하나님 찾다가도 모든 일이 잘 되고 평안 할 때는 하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 세상에서, 다윗은 받은 은혜 감사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전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입니까?

그런 다윗을 만난 나단 선지자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다 이런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 잘 의지하지만, 또한 형통하고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나 개인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일 먼저, 내 이익과 즐거움 보다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과 발전에 더 관심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길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온 그의 청이 거절되었을 때에 보여준 그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 다음 4절을 보십시오.

(4)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5)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

 

무슨 말씀입니까?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언제 너에게 전을 지어 달라고 했느냐? 나는 전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이 다윗의 청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얼마나 실망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을 돌렸습니다.

 

(18)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9)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20)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다윗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고, 하나님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일이 될 때에는 신이 나서 일을 잘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감사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일이 안 되거나 자기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 돌아서기 쉽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를 막으시고 나의 아름다운 생각과 뜻을 다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자칫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신경질을 부리고, 하나님 앞에 불평과 불만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때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찬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뜻과 다른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마음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은, 내 뜻이 좌절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태도를 통해 잘 나타납니다.

 

이것이 다윗의 아름다운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혹시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이나 결정에 No!라고 하실지라도 섭섭하게 생각지 말고 더 좋은 하나님의 뜻과 더 좋은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면서 계속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렇게 하나님께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들을 가까이 하며 성도들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축복해 주십니다. 풍성한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축복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의 청은 안 들어 주셨지만 그런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셔서 그를 마음껏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기 8절 이하를 보십시오.

 

8절 이하 16절까지가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 다윗을 축복하신 말씀인데, 그 요약은 한 마디로 하나님이 그를 위해 집을 이루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11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무슨 말씀입니까?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서 집을 세우겠다고? 고맙지만 사양한다. 나는 너희들이 만들 집에 머무르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야. 이것이 필요하다면 진작 네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너는 나를 위하여 집을 지을 수 없어. 그러나 너의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내가 너를 축복해 주지. 오히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마."

 

다윗은 자기가 가진 것, 자기 힘으로 무언가 하나님을 위해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 합당하겠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성전을 지었던 솔로몬이 말하기를 "어찌 그 크신 하나님이 인간이 지은 집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네 가지 축복을 의미합니다.

 

 

첫째로, 그의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9절에 그랬지요.

(9)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이름은 신구약을 통 털어서 880절에 1000번 이상이나 불리우는 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말할 때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오늘 우리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 잘 섬기면 이런 축복을 누립니다.

우리의 이름이 존귀케 됩니다.

 

 

둘째로, 그 땅에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실제로 다윗의 시대에 처음에는 전쟁이 있었지만 후에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사방이 평안했습니다. 그의 나라를 넘보는 외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나중 그의 아들 대에까지 이르는 것을 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 우리들의 가정도 이렇게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업을 넘보는 세력이 없고 우리를 해칠 세력이 없는 그런 참으로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셋째로, 그 자식을 그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또 14절부터 16절을 보십시오.

(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며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의 자식을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시는데, 혹시 그들이 죄를 범할지라도 그들을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해서라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폐함을 입은 사울같이 되게 하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복을 못받아도 우리 자녀 대에 복을 받는 다면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 같이 우리 자녀들도 다 이렇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기를 바라며, 그들이 혹시 죄를 범할지라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징계해서라도,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지 마시고 우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몸에서 낳은 아들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 축복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3)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그러니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저는 우리들이 다윗처럼 이런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름이 존귀케 되는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들의 삶이 이 세상에서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지 못하였으나 솔로몬이 지은 것처럼 우리 자녀대에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만 ,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대답이 No!일 때, 나의 선하고 아름다운 동기를 하나님이 막으시는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아름다운 다윗과 같은 아름다운 마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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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비보셋으로 본 복음 (삼하 9:7-10)

 

7.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9.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이 시간에 므비보셋으로 본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할 때마다 감사한 것은 제가 길눈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장치는 항공기나 선박 같은 곳에서만 사용되던 고급 항법유도장치인데 지금은 자동차에까지 가능하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는 복음의 지도와 항법장치가 수천 년 전에 이미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에 수 만 가지로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의 므비보셋은 다윗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몰락 당한 사울 왕가의 마지막 남은 다윗의 친구 요나단의 아들입니다. 여기에 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므비보셋을 통해 보여주신 구원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예수 공로로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7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므비보셋은 목숨 바쳐 다윗을 도운 아버지 요나단 때문에 다윗의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요나단의 공로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목숨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정으로 서로 돕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후일에 다윗은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아들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불러 왕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왕 자리만 아니지 모든 은총을 다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모든 은혜와 복을 받은바 된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골1:4-5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했습니다.

 

므비보셋의 이름은 부끄러움의 추방자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죄를 지으면 사회에서 추방됩니다. 혹은 전염병이 들어도 사회에서 격리됩니다.더구나 므비보셋은 다섯 살 때 사울의 비보를 듣고 급히 안고 도망치던 유모의 실수로 두 다리 모두 절뚝발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범죄한 아담 안에서 쫓겨난 인생이요, 죄악으로 가득한 황량한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원하는대로 산 진노의 자녀들이요. 구원에 대해서도 무엇을 할 수 없는 전적부패 무능력한 만신창이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요나단을 기억하여 그를 왕궁으로 불렀듯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죄인 된 인생이지만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하늘의 온갖 보배를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내게 주신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늘 감격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8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므비보셋이 자기를 돌아본 다윗에게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한결같이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며 엎드립니다. 더 나아가 죽은 개와 같은 자라고 자기를 낮춥니다. 사울왕가의 왕손이었지만 철저히 자신을 낮춥니다. 낮출 뿐 아니라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사울의 손자로서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왕노릇하며 자행자지하고 살았지만 우리는 왕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왕 삼고 더 낮아지고 더 낮아져 그를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제왕시대에 왕이 지나가면 모두 땅에 엎드렸던 것처럼 엎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하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4:6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찬양과 감사가 나옵니다. 그 때 주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해도 감격이 없다면 왜 없는지 돌아보세요. 과연 죽어 마땅한 벌레보다 못한 자를 불러주신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한다면 어떻게 감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겸손함을 갖게 되면 저절로 하나님을 높이고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의 계단에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우리 마음에서 감격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골2:6-7"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처럼 입술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그 감격을 모르기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3.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12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여기 어린 아들이라고 한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므비보셋이 은혜를 받으려면 그가 사울왕가의 왕손이기 때문에 다윗을 대적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왕가가 멸망했지만 아직도 사울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사울이 40년간 통치했으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다윗은 사울 왕국을 지지한 11지파의 도전을 7년 반 동안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왕가에 똑똑한 사람이 난다는 것은 다윗에게는 무엇보다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가라는 이름은누가 같은가?”라는 뜻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마가엘 천사와 같은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던 마귀와 싸우는 하늘의 천군장 미가엘의 이름입니다. 이처럼 철저히 자기 교만과 영광과 자행자지하려는 마음과 싸워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데 가장 싸워야 할 큰 대상은 자기입니다. 그래서 마16:2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은혜의 사람이란 나 인간의 속성이 사라지고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을 비롯한 예수의 속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나타나면 냄새나고 부패한 것밖에 없어요.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나를 죽이고 싸워야 합니다. 내가 나타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1871년 가을, 무디가 부룩클린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심과 정열을 다해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하나 둘 다 떠나가고 몇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마음에는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 날 예배가 끝난 후 한 여성도가 무디에게 나와 겸손히 말했습니다.

 

"무디 선생님, 세상 이야기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 해주세요." 무디는 그후부터 하나님 말씀만 설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설교에 능력이 생기고 교인들이 힘을 얻고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만 나타내는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4. 슬퍼 애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에게 시험이 닥칩니다. 삼하 16장을 보면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을 속여 자기 주인을 모함합니다. 압살롬이 난을 일으켰을 때 시바는 나귀에 온갖 좋은 것을 싣고 지친 다윗을 대접하면서 자기 주인 므비보셋이 왕이 되려고 모반했다고 속입니다. 그 때 다윗은 속아 넘어가 므비보셋에게 준 재산을 빼앗아 시바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돌아온 다윗은 노하여 므비보셋을 책망합니다. 므비보셋은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삼하19:26-27) 하면서 왕이 수도를 떠난 날부터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아니하고 옷도 빨지 않고 왕을 따르지 못했음에 애통했다고 말합니다. 그 진심을 본 다윗은 시바의 모함인 줄 알고 시바에게 넘겨준 재산의 절반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시바는 바로 우리 육체입니다. 이 몸이 주님 따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육체가 변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이 늘 사기치고 유혹하고 하나님을 모반하려고 합니다. 우리 영혼을 진탕에 빠지게 합니다. 게다가 약해지고 병들기 쉽습니다. 몸을 온전히 드리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 역시 미숙하고 연약한 육체의 한계 때문에 온전히 영광 돌리지 못함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달래서 사용해야 합니다. 다윗이 시바를 죽이거나 재산을 다 빼앗지 않는 것도 어쩌면 은혜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수염도 깍지 않고 그 슬픔을 애도한 므비보셋처럼 늘 기도하며 금식하며 자기를 슬퍼하며 애통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한계에서 실망하지 말고 더 온전히 순종하지 못함을 늘 슬퍼하며 애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 주심을 믿음으로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구원 받고 복을 받은 자로 믿고 날마다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고 싸우고 죽이고 순종하고 복종하고 육체의 약함과 속성을 가진 자로서 날마다 애통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온갖 은혜를 실제로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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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표현인 징계 삼하15:13-23, 12:1-14

탐험대원을 이끌고 탐험을 하던 탐험 대장 존 프랭클린은 어느 날 눈과 빙산 사이에서 추위에 떨며 잠든 일행을 보았습니다. 탐험 대장은 30분이 지나면 경험으로 보아 의식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깨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얼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얼마간 쉬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제발 가만히 잠자게 내버려 두시기 바랍니다.

30분이 지나자 그들은 대장이 말 한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탐험 대장은 그들을 치고 때려서 잠에서 깨웠습니다. 그들은 텐트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갔고 따뜻한 음료수로 몸을 녹여 그들은 살아났습니다. 그들을 때린 손이 그들을 구해 낸 손이 된 것입니다.

건방지고 으스대며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좋은 말로 가르쳐 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주먹으로 때리고 손바닥으로 쳐야 말을 듣습니다. 이 같이 하나님도 말로 해서 듣지 않는 성도들에게 가혹하게 치고 때리는 징계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의에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의 표현인 징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징계는 성도가 마땅히 행할 길을 가지 않을 때 옵니다.

구약 본문 사무엘하 15:23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했습니다. 이 모습은 다윗의 범죄로 인한 징계의 내용 중 하나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땅히 행할 길을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행할 것을 명하시고,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케 되고 형통케 될 것이라고 누차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항상 깨어 있지 못하면 어그러진 길을 가게 됩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통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은 매우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차기 이스라엘 왕을 선출할 것을 명하셨을 때, 사무엘은 장자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하시면서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붇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악기로 찬양할 때 사울 왕에게 역사했던 악신이 떠나갈 정도로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시기하여 무고히 자기를 여러 번 죽이려 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왕이라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 줄 아는 신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갈 때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하는 말씀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아비나답의 집에 수 십 년간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친히 모셔왔으며, 그는 호화로운 궁에 기거하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천막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성전을 건축하기로 계획하고, 많은 은금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바쳤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좋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절대 순종한 다윗은 후대 왕들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국가를 잘 통치한 왕들을 평가할 때 아비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거나, 조상 다윗의 행한 대로 행하였다고 평합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많은 시가 시편으로 전해 오는 것으로 보아 성령으로 충만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사람 다윗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히 여기시면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13:22)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지만 그도 역시 범죄 하였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0:12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했습니다.

그의 범죄는 그가 왕으로 다스릴 때 충성스런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 여인이 임신하자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부인과 자리를 같이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생각하고 그의 아내 곁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결국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명하여 전사한 것처럼 가장하여 간접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간통과 살인은 요즘도 가장 흉측하고 포학한 가정 파괴범에 속합니다. 이런 잔혹한 범죄를 믿음이 좋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복하는 다윗이 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깨어 기도하면서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어그러진 길로 갈 때 하나님은 호되게 징계 하셨습니다.

그 징계는 먼저 밧세바가 낳은 아들의 죽음에서 시작합니다. , 아들을 하나님께서 치시니 다윗은 하나님께 엎드려 금식하고 철야하며 간구하였지만 결국 일주일 만에 죽습니다.

다음에 암논이란 아들이 그의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 그 일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사건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그의 이복형 암논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다가 잔치 날 살해하는 살인 사건으로 비화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다윗이 범한 죄가 그대로 자녀들에게서 재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압살롬의 모반으로 이어집니다. 압살롬은 그의 용모를 앞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아버지의 왕권에 도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부도덕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다윗의 후궁 10명이 백주에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아들 압살롬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다윗의 부도덕한 죄의 후유증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한 가정과 가문을 넘어 이스라엘 전 국민이 양분되어 요단강 동쪽 넓은 평지에서 사생을 결단하는 전쟁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지도자 한사람의 실수는 결국 국가의 내란을 야기 시켰고, 백성들은 양분되어 명분 없는 싸움에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 모습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 모두 죄에는 형벌과 심판이 따름을 바로 알고 항상 깨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회개하고, 버려 성결한 신앙인으로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징계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신약 본문 히12:6-8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했습니다. 성도가 징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19에도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3:19)했습니다. 고전11:32에서는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징계가 없는 사생자들은 징계가 없으니 더 마음 놓고 악을 행하다 영원한 심판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징계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기에 받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사생자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 목사에게 어떤 여자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범죄 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분이신 것이 분명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 목사는 부인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부인! 부인은 지금 부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 라고 부인이 반문하자 무디 목사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이요." 교회에 많은 출석을 하였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관계를 갖지 못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징계는 자녀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자녀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과 매를 듭니다. 그처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징계가 올 때 기도하면서 징계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대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징계를 받을 때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성도의 잘못을 고치기 위함이고 또 다른 면은 신자를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신자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되며 그 고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잘 못된 것을 회개하고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때 롬8:28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돕는 자들을 붙여 주시어 환란의 시험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징계가 올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줄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 큰 유익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큰 유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다윗은 징계를 통해 죄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잘 견디고 연단을 받으면 복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약 본문 히12:11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 하시는데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는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아버지와 격의 없이 교제를 나누는 자들이요, 장차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하셨고, 본문 히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하신 것입니다.

또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도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징계를 받게 되는데, 징계로 인해 회개하여 죄를 그치고, 의로운 일을 힘써 행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 갈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깃들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과 평화하게 되고, 이웃과도 평화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훈련시키는 수단이며, 내세에서의 더 큰 상급을 보장해 주는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그녀의 음악 교사에게 피아노를 치면 손가락이 아프다고 말했더니 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픈 줄은 나도 알지만 손가락이 튼튼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단다."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선생님,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아픈 것 같군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을 결코 헛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징계를 통한 괴로움과 슬픔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을 매우 사랑하시며 고통의 통로로 다가오는 귀중한 영혼을 강하게 하십니다. 욥은 불 시험을 당하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고한 신앙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있던 찌꺼기 같은 교만이나 죄와 허물들이 제거되고 정금처럼 순결한 신앙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징계가 이러한 유익이 있기에 본문 히12:12-13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 다리라는 표현은 모두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장기 레이스인 마라톤을 하고 있다면 손과 무릎, , 다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손이 피곤하고 무릎이 연약해 지고, 발이 아프고, 다리를 전다면 절지 않도록 치료하고 힘을 내어 달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히 12:1-2에서 말씀한 믿음의 경주 장에서 수많은 증인들이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이 때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치료약은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부끄러움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믿음의 경주 자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주님을 바라볼 때 힘을 주시고 피곤한 손과 저는 다리와 연약한 무릎을 치료해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성도의 삶에서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때 그 증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이를테면 요즘 성인병인 당뇨가 있다면 그 증세는 무엇입니까? 입이 마르고 물을 많이 마신다든지, 전신이 노곤하고 쉽게 피로하며 일할 의욕이 없어지거나 손발이 저리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이 나타난다고 의학서적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경주에 피곤함과 저는 증세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 중에 가장 큰 증세는 예배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주일이나 수요일 밤 예배, 기도회가 그렇게 기다려졌는데, 이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고 가기 싫다면 신앙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교사나 성가대원, 식사 등 여러 가지 봉사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는데 여기에 회의가 생기고 피곤감이 몰려드는 증세가 있다면 이 역시 믿음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 보다 세상 것을 더 좋아하는 증세가 있다면 내 믿음 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기쁨과 감격이 있었는데 무감각한 증세가 있다면 처음 사랑을 잊은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평안 대신 불평과 원망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믿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치료 받고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주님 의지하여 고침 받고 승리하여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사랑의 표현인 징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징계는 성도가 마땅히 행할 길을 가지 않을 때 옵니다.

.징계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큰 유익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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