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양하라 시47:1-9, 7:9-12

 

바흐는 교회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가 쓴 악보에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포르테나 피아노, 즉 음악의 셈여림표가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연주자의 강하고 부드러움 또는 빠른 손놀림이나 화려한 기교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주해 감동을 선사한 연주자에게 환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바흐는 그런 요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작곡한 모든 음악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표제를 붙여 놓았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작곡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흐는 항상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곡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고 화려한 기교도 아닙니다. 비록 바흐의 음악이 느림이나 셈여림이 없을지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정확성입니다. 한 음, 한 음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소리 내는 게 그의 음악에서는 어떤 것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바흐는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찬송할 때, 말씀을 들을 때, 봉사하고 헌신할 때, 모든 일에 자신이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일이 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경배와 찬양으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시47:6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했습니다. 신약 본문에도 각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무리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외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과 어린양만이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될까요? 그 이유는

 

먼저 만물의 창조주요, 섭리주가 되신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교회당 울타리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통치는 하늘과 땅과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간섭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그 손에 있고 그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분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느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은 교회 안에서 좋은 성도이면 교회 밖에서도 좋은 성도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에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계7:10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자 곧바로 죄에서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예비 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대로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세상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여기에 죄 사함의 길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세상 어떤 위대한 인물 누구도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으며, 그들도 다 죄인이요, 구주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었으니 어찌 경배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심판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불신앙 가운데 온갖 죄에 억매여 사는 자들에게 임할 진노가 어떠하겠습니까?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외면한 자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던 주님은 성경의 약속대로, 우리의 신앙고백대로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은 어린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생에 참여하는 은총을 받은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온 세상 만민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물과 함께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영국의 왕 가운데 카뉴트 왕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카뉴트 왕은 왕관을 쓰지 않고, 신하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받들고 찬양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카뉴트 왕은 신하들에게 왕좌를 해변으로 옮기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닷가에 놓인 왕좌에서 수평선을 응시하던 왕은 밀물이 밀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바다여, 멈추어라!"하고 명령했습니다. 여러 번 명령했지만 물결은 사정없이 밀려들어 왕좌의 절반까지 들어왔습니다. 파도에 밀려 임금은 왕좌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로 이때 카뉴트 왕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모두는 똑똑히 보았느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권력이란 것은 하찮은 것이다. 우주를 다스리는 권능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만유를 다스리는 권능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날 이후 그는 왕관을 벗어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자라도 주님만이 창조주요, 섭리주가 되시고, 구원주가 되시며, 심판주가 되심을 알고 믿는 자들은 겸손히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만 높이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 외에 어떤 자라도 우리의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만 경배하고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에 대해 상고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1:11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또 히13:15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로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할까요?

 

먼저 흰 옷을 입고 찬양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천사가 여섯째 인을 뗄 때에 사도 요한에게 나타낸 계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앞으로 될 장래의 일을 보여주실 때에 요한 사도는 천사가 그 여섯째 인을 개봉하는 순간에 앞에 나타난 큰 흰 옷 입은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무리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기 흰 옷 입은 무리들은 누구일까요? 7:14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했습니다. 바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주의 백성들로 천국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여 의의 예복을 입은 자라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고, 이 모습이 찬양 부를 자격을 갖춘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의의 예복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의의 예복을 입고 믿음생활 잘 하다가 사도 요한이 본 천국 백성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을 경배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즐겁게 찬양 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본문 사47:1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이어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5)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은 그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고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받은 자들은 마땅히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 드려야 합니다. 찬양뿐만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에도, 물질을 봉헌할 때에도, 교제를 나눌 때에도, 봉사할 때에도 모든 일에 즐거움으로 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찬양해야 합니다.

7:10큰 소리로^^” 12절에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요, 입술의 열매이며,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이 흰 옷 입은 무리들은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있음을 인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구원 얻은 우리는 만방에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며, 손바닥을 치며, 악기를 동원하여 온 마음으로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또한 예수 믿는 것을 자랑하고, 예수님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경배와 찬양 드릴 때 의의 예복인 흰 옷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백성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경배와 찬양은 풍성한 은혜와 은총을 받게 합니다.

 

본문 시47:4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 하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어 영원토록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구원과 영생의 복입니다. 이런 자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이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찬송이 있으면 여러모로 큰 유익이 됩니다.

 

먼저 우리 몸의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17:23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 노래가 있으면 혈액순환도 잘 되고, 소화도 잘되고, 신경의 긴장이 풀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엔돌핀이 나와서 건강에 좋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학자가 조사한 내용이 잡지에 나온 일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건강 상태와 평균 수명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평균 수명보다 더 길고, 건강 상태는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양호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가 하고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집에서나 교회에 와서나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을 줍니다.

12:2에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으면 불안이 없어집니다. 근심과 걱정도 사라집니다. 기도문이 열립니다. 오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찬송이 있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이기고, 달려갈 길을 잘 달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서 무슨 책임을 맡든지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 훼방하는 자들의 모함을 받아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마음속에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할 때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쇠고랑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옥을 지키던 간수가 회개하고 예수 믿고, 그 날 밤 그의 가족까지 구원받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찬송이 있으면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감격을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래 전 영국의 여객선 스텔라호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됐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친 파도는 승객들이 탄 구명보트를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여성이 탄 구명보트는 노가 없이도 계속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 보트에는 유명한 가수인 마가렛 윌리암스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승객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께 의지합시다. 믿음의 징표로 함께 찬송을 부릅시다." 12명의 여성은 찬송을 부르며 공포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사나운 폭풍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순양함이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여인들의 찬송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여인들이 구명보트에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12명의 여인들을 구출했습니다.

신앙은 삶의 위기에서 더욱 빛납니다. 고난 속에서 부르는 찬송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을 주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여 더욱 큰 하나님은 은총을 받게 합니다. 이런 은혜가 경배와 찬양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오늘은 경배와 찬양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만이 창조주와 섭리주가 되시며, *구원 주가 되시고, *심판 주가 되십니다.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자세에 대해 상고했습니다. *의의 예복인 흰옷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찬양합시다.

 

.경배와 찬양은 풍성한 은혜와 은총을 받게 합니다.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께 기쁨이 될 뿐 아니라 건강에 유익하고, *마음에 담대함과 평안을 주며,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축복을 받자 시편 325-8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절기상으로 어제가 우수(雨水)였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우수에는 대동강의 얼음이 녹아서 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따뜻해 져서 봄기운이 도는 날씨입니다. 정말 대동강의 얼음이 녹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봄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느새 지리산 계곡에는 개구리가 산란을 하였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꽁꽁 얼어붙은 땅도 서서히 해동이 될 것이고 한 겨울 숨죽이고 있던 나뭇가지들도 싹틔울 준비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계절을 맞이하여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우리들의 신앙도 새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 술도 좋아하고 놀기도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다. 죽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다. "나는 틀림없이 지옥 갈 텐데..." 그러다 정말 죽어서 천국에 갔다. 그곳에 가보니 베드로 사도가 문 앞에 딱 서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당신 천당 갈래 지옥 갈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어떻게 이걸 나에게 물어본다는 말이요?” 그래서 부탁했다.

"그러면 한 번 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뭐요?"

"먼저 나 천국과 지옥 구경 좀 하게 해주세요. 구경한 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그러게나."

먼저 천국을 갔다. 흰옷을 입은 성도들과 천사와 다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뒤에서 좀 앉아있으니 따분하고 영 마음이 안 들었다. 이번에는 지옥으로 갔다. 그곳에는 카지노도 있고 술집도 있고 여자들도 많고 왁자지껄한 게 맘에 쏙 들었다. 이게 지옥이라면? 두말 할 것이 없었다. 베드로 앞에 가서 결정한 바를 말했다.

"저는 아무래도 지옥체질입니다. 그러니까 지옥으로 보내주세요"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후회 안 합니까?”

안합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갔다. 그런데 지난번 왔던데 와 달리 술집도 카지노도 여자도 없고, 탄광 굴 깊숙이 들어가는데 뜨거운 불 속에서 일하라고 했다. 그는 안내자에게 따졌다.

"이거 좀 틀리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왔던 데가 여기가 아닌데요. 술집도 있고, 카지노도 있었는데..." 그 때 안내자가 말했다.

"그 때에는 관광비자로 왔고 이번에는 영주권입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참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조물주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 속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범죄하여 하나님의 보호권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갓 난 어린 아기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살아가야 정상적으로 성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기가 나아준 부모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손에서 키워진다면 친부모처럼 잘 보살펴 줄 수가 없습니다.

한갓 여행을 할 때도 안내자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절대적으로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입니다. 강팍한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그의 강팍함을 여지없이 꺾으시고, 홍해에서 길을 열어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애굽의 군대는 수장되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광야의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에서 생수가 솟게 하시고,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시며, 메추라기를 주신 것은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 인생길은 한 번 길을 잘못 가게 되면 좀처럼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박을 하는 사람이 도박에서 손을 끊지 못합니다. 술과 담배를 한 번 배우게 되면 좀처럼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마약에 손을 대게 되면 그 마약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 번 인생에 실패를 하면 재기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인생에 대사(大事)라고 하는 결혼도 한 번 잘못하게 되면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이와 같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잘못 인도된 결과만큼 크고 아픈 상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인생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30:19)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잘못된 인생이라도 치유함을 받고 인생의 새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 아무리 하여도 치료되지 않아서 좌절하고 낙심하시는 성도가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란 뛰어난 재능이나 학문을 연마하고 부요의 축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 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실패도 있었고 잘못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을 두려워 말고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처 난 조개가 진주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란 숭고한 영혼을 만드는 하나님의 비밀 통로입니다. 또 인간의 행복이란 공장에서 나온 물건처럼 완제품이 없습니다. 100% 행복한 사람도 없고, 100% 불행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인도하심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손에 붙들림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다윗은 모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도 늘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지었을 때의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다윗의 일생에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는 밧세바를 취한 후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그는 눈물을 흘려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한 후에 그 어두움과, 두려움과, 근심과, 공포는 물러가고 밀물과도 같이 밀려오는 하늘의 평안과 행복을 노래한 것입니다.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다윗이 회개한 뒤의 고백은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곧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함이 없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었으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받고 나니까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이 함께 함을 찬양하였습니다. 할렐루야!!

 

 

1.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한 번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되면 의욕이 상실되어 적극성이 결여됩니다. 자꾸만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어떤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올 때는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긍휼과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5:11절 이하의 말씀에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방탕으로 다 허비하고 거지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아들을 받아주고 아들의 모든 신분을 보장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실 인생이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단 한 번의 사건이나 경험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도 한 번의 실수나 경험으로 이제 나는 틀렸다고 자신을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날마다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한 두 번의 실수나 실패에 자신을 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고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한 번의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결코 인생의 잡다한 일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설혹 다른 그 무엇이 나를 얽매고 나를 잡아끌었다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의 인도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명백한 사실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앙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그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찾고 기다리는 가장 순수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와 같은 뜨거운 열망이 없습니다. 뜨거운 열정이 없습니다. 신앙의 불은 꺼지고 시커먼 숯덩이만 붙들고 있습니다. 자기 믿음이 중병이 든 것도 모르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래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회개하여야 합니다.(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은 지금도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그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G.S>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2. 우리가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현 시대만큼이나 어지럽고 험한 살기 힘든 시대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온 지면을 심판하실 때 그때에 사람이 패역하고 죄악이 관영 하였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입니다.

유황불로 멸망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하였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입니다.

애굽이 아무리 패역하고 강팍하였다고 하여도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자면 나를 사로잡는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힘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권력이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돈도 안 됩니다. 명예도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열망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 예배를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 이상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배를 위해서는 목숨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산 속이나 지하실에서 숨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으면서 목숨 걸고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나 공산 치하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주의 종들이 목숨을 버려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뜨겁게 주님을 열망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주여!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허물 많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의지하오니 나를 도와주소서” <아 멘>

뜨거운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32: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3.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는 조건적입니다.

 

우리 피조물 된 인생이 조물주 되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정녕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주인공들이나 역사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이삭도, 야곱도, 다윗도, 다니엘도, 모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아무나 인도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만 이 특권을 베풀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충성하는 성도를 도와주십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따라 사는 자를 인도해 주십니다.<아 멘>

(5:18)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고 행6장에는 초대교회에 일곱 집사를 세울 때에 믿음과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캄캄한 밤중에 길을 잃고 거친 들판을 헤맬 때 누군가 나에게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얼마나 기쁘고 고맙겠습니까? 그런데 그 반대로 안내자가 없어졌다면 얼마나 절망이 되겠습니까?

 

캄캄한 밤중과도 같은 이 세상길에서 끊임없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오늘날까지 여러분들의 삶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고 마치 거친 광야를 방황하듯이 살아왔다면 영원한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며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열망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열심히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107:9) 고 약속하셨습니다.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이 윤택하여질 것입니다. 무의미하던 삶이 보람을 느끼며 새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풍성한 은혜의 법칙 시36:5-12, 4:10-20

 

서울 어느 학교 가정 연구원에서 상, , 하 부류의 가정, 60만 가정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 가정은 행복합니다.'는 응답이 약 2만 가정이 나왔습니다. '우리 가정은 불행합니다.'는 응답은 약 43만 가정이 나왔습니다. '우리 가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는 응답은 약 13만 가정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60만 가정 가운데 행복하다는 가정은 2만 가정밖에 안 나왔습니다. 2만 가정을 분석하니 기독교인이 85%였습니다. 여기서 불교인은 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응답의 결과가 우연일까요?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풍성한 은혜의 법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매 순간 은혜의 원천으로부터 공급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36:8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했습니다. 신약 본문 빌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부족을 알면서도 안타까워만 하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루 종일 말씀을 듣다가 배고픈 군중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6:5-15).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엡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3:20)라고 소개합니다.

 

유명한 무디 목사님은 시편 36:8의 구절을 그리스도인들의 은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공급의 원천은 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 은행은 영광스러운 은행이며 이 은행의 금고는 결코 바닥나지 않을 만큼 풍성합니다. 이 은행은 고객들의 필요를 반드시 공급하는 철저한 신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십니다. 온갖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까요? 문제는 이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같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강퍅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미국 개척 초기 서부텍사스에서는 하도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 아예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참 흥겨워진 술자리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렸습니다. 그 중에 한 젊은이가 옆에 앉은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을 쏜 사람이 평소에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언제나 이웃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던 젊은이였습니다.

 

살인을 한 젊은이가 사형에 처할 운명이 되자 그 젊은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구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람이 담긴 탄원서가 주지사에게 전해졌습니다. 탄원서를 읽은 주지사는 큰 감동을 받고 자신이 직접 그 청년을 만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죄를 짓고 난 뒤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자포자기하여 비뚤어진 생각만 하고 나중에는 행동까지 난폭해졌습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가지고 그를 면회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구명 운동 덕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큰 은혜를 그는 저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으로 인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열어 놓으셨지만 믿음으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에 용서받을 기회를 잃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사람이 되어 은혜의 원천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풍족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항상 드리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하게 공급받을 욕심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공급해주셔도 자신을 위하여 쌓아 놓기만 한다면 고여 있는 물처럼 썩어 못쓰게 되고, 결국 그 공급은 중단될 것입니다. 우리가 풍족한 삶에 계속 거하려면 나누고 드림에 있어서도 풍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에도 체면 때문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지 않고 마음에 정한대로 즐겨 드리는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자에게 넘치는 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십일조를 드리고 부당한 제물을 거절하고, 심지어 독자 이삭이라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창12: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하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을 통하여 축복과 은혜의 강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어 주는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해도 계속 탐욕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나눔과 드림의 삶에 인색하다면 그는 부족함이 많은 인생입니다. 그러한 자의 마음에는 기쁨도 감사도 평안도 없습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드리고 나누기를 기뻐하는 성도, 그러한 교회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하셔서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축복하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아직 연륜이 얼마 되지 않았고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향해 가다가 성령의 지시로 방향을 유럽으로 돌이켜 전도한 유럽의 첫 번째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드리고 구원을 경험한 그들은 바울사도의 복음 선교 사역에 동참하고 싶어 물질적으로 지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15절과 1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서는 복음을 받은 그들이 이제 복음을 주는 일에 참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6절에서는 이런 빌립교인들의 선교적 지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이런 삶은 그들 자신을 영적으로 유익하게 하는 일이었고, 18절에서는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부나 만족은 창고나 은행에 쌓아 놓을 때 오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나누고 드릴 때 찾아옵니다. 아무리 많이 쌓아 놓는다 해도 그것은 결코 쌓아 놓는 자의 것이 아닙니다. 많이 쌓아 놓고서 벌벌 떨다가 쓰지도 못하고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도적이 와서 도적질 해 갑니다. 자기 욕심만을 위하여 사용한 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죄만 더 쌓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자기 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넘치도록 공급해 주시는 그분의 뜻대로 가치 있게 사용한 것만이 영원히 기억되는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베풀고 드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국 창고에 쌓아 놓는 보물이 되게 하시고, 동시에 하늘 보고의 문을 활짝 열어 아낌없이 부어 주심으로 풍족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고 베푸는 일에 본을 보이면서 사도행전 20:3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항상 드리고 베푸는 일에 풍성하여 복의 근원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3.환경을 초월하여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풍족해지는 세 번째 법칙은 자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쌓아 놓고도 만족함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더 갖지 못해서 욕심 부리고 안달을 하며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만족 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풍부한 환경 속에 살면서도 만족해하며 행복할 줄 모르고 늘 다른 사람이 가진 것만을 바라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을 동경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서신서 본문 빌4:11-12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서 배운 소중한 교훈중의 하나가 자족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족한다면 더 원함이 없으므로 만족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다윗처럼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맥락을 살펴보면 자족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에서 오기 때문에 환경의 지배나 영향과는 관계없이 오는 자족의 마음입니다.

워렌 위어스비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은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온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온도계는 공기가 더우면 올라가고 추우면 내려갑니다. 그러나 온도 조절기는 바깥 공기가 더우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도록 만들어 온도를 내려주고 추우면 더운 바람이 나오게 하여 온도를 올려줍니다. 그래서 덥든지 춥든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조절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온도조절기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배부를 때가 배고플 때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부를 때 우리가 직면하는 영적인 위험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배부른 중에 교만하기 쉽고 게으르기 쉬우며 도덕적으로 더 쉽게 타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배고플 때에도 배부를 때에도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답게 적응하여 승리하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그의 사역의 배후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늘 부족함이 없고, 염려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가난한 사람이 다 부자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배부를 수 있고 또는 배고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어떤 환경 중에서도 자족할 수 있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 될 때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기도 하는 일입니다. 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배부르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배고프다고 비굴치 말고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거기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리스도 때문에 만족해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혹시 너무나 부족함에 사로잡혀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궁핍함에 눌려 여유를 찾지 못하고 늘 쩔쩔매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이 사실이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분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데, 재물, 건강, 평안, 능력, 생명, 지혜와 지식, 사랑, 행복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분께는 언제나 풍성하신데 왜 그분의 자녀인 나는 만족함이 없이 부족함 투성이로 괴로워하고 초라하게 살아간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과 믿음이 잘못되었으면 바로 마음 그릇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도 기도하지 않고 살았다면 오늘부터 기도를 시작하고 풍성함을 부지런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 드리는 자세가 빈약했다면 결단하시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기쁘게 드리는 삶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나누는 마음이 인색했다면 기쁨으로 나누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고 감사가 부족했다면 어떠한 형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독일의 정치가 중 한 사람이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이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했는데, 그것은 그가 한번은 구두가 다 떨어 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그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습니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감사가 나옵니다. 우리 모두 환경을 초월하여 자족하는 마음을 배우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풍성한 은혜의 법칙,

 

.매 순간 은혜의 원천으로부터 공급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드리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자족하는 비결을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맡기는 자가 받는 복 (37:5-6)

 

이 시간에 맡기는 자가 받는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 중 가장 좋은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옛날 한 수도사가 기름이 필요하여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마시고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주시옵소서" 주께서는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 수도사는 또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의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주께 기도드리오니 해를 주시옵소서." 그러자 검은 구름을 몰아버리고 해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라고 수도사는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작은 나무에는 서리가 앉아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보니까 죽어 있었습니다. 그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의 방을 찾아가, 그의 이상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동료는 "저도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랍니다. 나는 나무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요. 그 분은 저보다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방법으로도 고정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주여! 이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옵소서. 강풍이든, 햇빛이든, 또한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께서 때를 따라 주시옵소서. 주께서 만드셨고, 그리고 잘 아시나이다.'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가 최고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은 온전하신 반면 인간은 어리석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대중 목욕탕에 가보면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맡기지 않은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가 내 인생의 선장되어 살아왔다면 반성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맡기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일까?

 

 

1. 맡길 때 우리의 신원을 보장해주십니다.

 

 

37:5-6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이 시를 쓴 기자는 무수한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모함과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너도 나도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악인에게 둘러싸여 그의 상황이 칠흑과 같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무흠함을 빛과 같이 정오의 태양 같이 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그 앞길이 험악했지만 자기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이모로 저모로 연단하시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자기 민족과 주변 국가의 많은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어떠했습니까? 아말렉 사람 하만이 파사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는 신앙을 이유로 하만에게 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만은 하나님의 원수인 아말렉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사실을 고자질하여 알게 된 하만은 악심을 품고 모르드개는 물론 그가 속한 유다 민족까지 모두 죽이려고 합니다.

 

 

4:3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를 비롯해 모두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셔서 모르드개를 달려던 장대에 하만이 달렸고, 유다 민족을 죽이려던 날에는 하만의 민족 아말렉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파사의 제 2인자의 자리에 앉혀졌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비단 그들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사건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를 악인 만들고 넘어지게 하여 우리 심령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속의 꿈틀거리고 시험들게 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악인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많아요.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엎드려 기도하면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도 잔잔하게 해주시고 우리 신원을 책임져 주십니다.

 

 

2. 맡길 때 우리의 경영을 책임져 주십니다.

 

 

16: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경영이 무엇입니까? 경영(經營)이란 사업이나 기업 등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로서,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고도의 업무수행이 가능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회사나 조직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가 경영학을 공부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일도 경영입니다(고후1:17). 경영을 잘해야 합니다. 나라의 일도 경영이고 농사도 경영이고 회사도 경영이고 가정이나 자녀교육도 경영입니다. 경영의 목적은 잘되어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경영자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경영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경영자이십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봉사했지만 라반은 온갖 꾀를 내어 야곱을 부려먹을 궁리만 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으나 라반은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들어보내 야곱과 결혼시키고, 그래서 야곱은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7년을 일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나머지 6년도 창31:7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했듯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의 경영에 위기가 생겼습니다. 더구나 라반은 야곱을 죽이고 딸들을 빼앗으려고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정은 하나님이 경영하셨습니다. 야곱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꿈속에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31:10-12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2절에도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숫양을 이용하라는 힌트였습니다. 야곱이 그대로 했더니 그 무늬 가진 양이 떼를 이룹니다. 그래서 라반의 양을 다 빼앗아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라반 몰래 도망쳐 나올 때도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해치지 못하게 하셨고, 얍복강을 건너 형 에서를 만날 때도 간 밤에 천사를 보내 씨름으로 기운을 빼서 추한 몰골을 갖게 하시고 천사에게 맞아 환도뼈가 위골되어 걷지도 못하는 비참한 모습을 만드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에서 역시 20년간 칼을 갈던 동생이지만 너무나 비참해 복수를 하지 못하고 동정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니까 안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경영해 주십니다. 열심히 일도 해야 하지만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이삭도 기근 들어 애굽으로 가려다가 하나님께서 블레셋에 머물라 하셔서 머물렀더니 그 사막 같은 땅에서도 갑부가 되게 하셔서 양과 소도 떼를 이루고 노비도 심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3:5-6) 라고 교훈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받는 복입니다.

 

 

3. 맡길 때 우리의 무거운 짐을 져주십니다.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간단히 말하면 주님이 주신 짐을 내가 지면 주님은 내가 진 무거운 짐을 져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짐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짐입니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짐도 아닙니다. 주님의 짐은 쉽고 가볍다 했습니다. 문제는 다양해도 방법은 같아요. 예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하면 하나님이 도움의 길을 내실 뿐 아니라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게 해주십니다. 인생길을 가다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견디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여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며칠간 성지 순례하는 것도 수백만 원 경비가 들어가는데 수백만 명을 강한 나라 애굽에서 구원해 내어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40년 간 의식주를 책임지고 보호하며 영육 간에 만족케 하면서 인도하는 것은 보통 짐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책임도 못 지면서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고 간다면 나중에 어려울 때 그들에게 맞아죽을 일입니다. 실재로 몇 번이고 불신의 백성에게 맞아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전진 또 전진하였습니다. 그러한 그의 앞에 백성들을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시는 놀라운 기적이 40년 간이나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두 벌 옷을 갖지 말고, 신발도 두 켤레를 가지지 말고 돈 주머니도 차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벌 옷이 죄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을 믿게 하는 훈련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전여행과 비슷한 믿음훈련이었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이 돌아와서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신비하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시며 역사해 주심을 체험했습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갇혀 순교 직전에 해방되어 살아난 안이숙 여사가 부른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험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노래했던 그 가사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면 우리가 가는 인생길 험하고 끝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 할 일 다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길을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염려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또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는 주님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 짐까지 다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문제를 붙잡고 근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려운 가운데서도 신원해 주시고, 경영해 주시고, 삶의 무거운 짐 져주셔서 우리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 외칠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힘써 할 일 시96:1-13, 16:14-18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주에는 래브라도라는 해안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 백인들이 거주한 것은 19세기가 되어서였고, 그 전에는 척박한 환경 때문에 소수의 에스키모들만이 고기를 잡는 어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곳의 에스키모들은 오랜 세월을 별 다른 교류 없이 살았기 때문에 외부 인들에게 매우 배타적이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렌펠 목사님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지역의 많은 에스키모들을 개종시켰고, 또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렌펠 목사님이 나중에 퇴임을 하고 난 뒤에 여러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목사님을 초청했는데, 목사님은 선교의 사명을 훌륭히 감당할 수 있던 노하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래브라도 지역에는 파도가 매우 심해서 어부들의 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들의 배는 쉽게 망가졌고, 그물은 금방 상했습니다. 저는 먼저 튼튼한 그물을 만들 수 있는 방법과 배를 수리하는 법을 배워서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선교의 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전도는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즈음 같이 교회가 많은 비난을 받고 전도하기 어려운 때는 전도 대상자나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때 더욱 효과적이 됩니다. 쓸데없는 변론, 비난과 비방을 멈추고 사랑의 행실로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교회가 힘써 할 일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아름답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구약 본문 시96:9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했습니다. 대통령이 어느 지방이나 외국에 가게 되면 대통령의 예우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례한 겁니다.

 

그러면 예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우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모든 만물 위에 최고의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절을 지켜서 예우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 하는 일이요,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가치라는 뜻을 가진 Worth라는 단어와 돌린다.”라는 뜻을 가진 scribe라는 단어가 합쳐서 가치를 돌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걸 맞는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과 기도와 예물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우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그 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은혜 받는 성도는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4:24)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준비하여 성령의 감화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도, 물질도, 몸가짐도, 옷차림도 준비되어야 합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미리 와서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는 이미 집을 떠나기 전부터, 일주일의 우리의 생활이 모두 예배와 관련이 됩니다. 일주일의 삶은 아무렇게 살고 주일날 허겁지겁 예배에 참여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주간을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신약 본문 14절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주일예배 후 교인들과 인사를 하는데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목사님에게 와서 제가 자녀들에게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 동안 받은 선물을 감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10년 동안 저를 위해 엄청난 선물 덕분에 제 심장병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은 그 할머니께 엄청난 선물을 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물었습니다. “권사님. 언제 제가 그런 선물을 드렸던가요?” “저는 이 교회에 다니는 동안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현관에서 목사님께서 제 손을 잠아 주실 때 저는 한 손을 저의 가슴에 대었답니다. 목사님의 손이 제 손을 잡는 순간 저는 안수기도라고 믿고 살았답니다. 그 안수 기도 덕분에 놀랍게도 심장병이 나았답니다. 결국 목사님은 10년간 저에게 엄청난 안수기도라는 선물을 주신 목사님이십니다.” 기적은 믿음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말씀을 듣고 입으로 아멘으로 시인하고 가슴으로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병자를 치유하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낳게 하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복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귀에 듣기 좋은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내 뜻이 이뤄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 이전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자가 될 때에 삶에 성공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예배 자를 찾고 계심을 알고 아름답고 거룩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구원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는 일입니다.

 

구약 본문 시96:2-3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일꾼들을 세우시는 목적은 인류와 만물의 구원입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 민족을 애급에서 구원하여 한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그 후에는 히브리민족을 통한 인류구원을 계획하시고,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나게 하시고, 메시야를 통하여 인류와 만물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여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노래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이적의 놀라움과 행적이 어떠한 것인지는 담고 있습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적에 대한 선포입니다. 시편교회는 찬양을 통해서 열방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전파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경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자기들을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찬양으로 선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져야할 참 모습이 무엇입니까?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기뻐하며 노래하고 즐거워할 뿐 아니라 구원의 메시지를 찬양으로 만방에 증거 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16:15에서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신 다음에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영원한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입니다. 만민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생명 되신 예수님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빠지면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내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소망이 생기고 평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1883년에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이 남양 군도의 어느 섬에 갔습니다. 식인종들이 사는 미개하고 천박한 마을을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섬을 가 보았을 때 놀랍게 변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벌거벗고 살던 사람들이 옷을 입고 있었고 토굴과 나무 밑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고 살던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알고 보니 존 패튼이라는 영국 선교사가 와서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가르치고 예배당을 세운 결과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윈은 그것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고 존 패튼 선교사를 파송한 영국의 런던 선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전해진 곳에 새 사람, 새 사회,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던 사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사람을 살리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물고기를 잡던 시몬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사람을 낚는 사도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살았던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면서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교회가 힘써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구약 본문 시96:7-8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빛나게 해드리고, 높여드리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영광 돌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포함한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성호를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셨고,(5) 만유를 통치하시고,(10) 만민을 공평하게 판단하시며,(10) 광대하시고,(4) 존귀와 위엄이 있으시고 능력이 많으신(6) 분이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도가 은혜를 받고 주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형상을 닮은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의 못된 인간성, 완악한 마음, 죄악을 자행하던 내가 변화 되고 새로워집니다.

짐 오켄펠스(Jim Ockenfels)라는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정부(情婦)와 살았습니다. 하루는 정부가 주일날 교회를 가자고 해서 함께 교회를 갔습니다. 그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정부를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설교시간에 말씀을 들으며 짐은 양심에 강타를 맞았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버린 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짐승도 자기새끼를 버리지 않는데 인간이 자식을 버린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준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짐은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도 부정직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이돈 저돈 도둑질해 먹은 죄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물이 났습니다. 옆에 있는 정부는 짐이 큰 은혜를 받는 줄을 알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짐은 옆에 앉아있는 정부를 데리고 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짐은 울었습니다. 그날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서 별거중인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녀는 마지못해 동의를 했습니다. 짐은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었는데 자기 감정하나 이기지 못하고 사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을 들으며 그는 또 울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는 회개의 시간에는 아내와의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자식과 가정을 버린 죄책감과 후회로 뒤범벅이 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짐과 그의 아내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들은 다시 합쳤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될 때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로, 감사와 기쁜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이나 시편에 보면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 돌리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총을 날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본문 1절의 새 노래는 구원받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요, 새롭게 된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새 노래입니다. 성 삼위 하나님의 광대하심, 왕 되심, 존귀하심, 은혜로우심에 대해 믿음으로 감사하면서 고백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새 노래입니다.

 

셋째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로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고 하였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자 인간을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 받고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됨으로, 감사와 기쁜 찬송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로 삽시다.

 

정리합니다.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1.아름답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2.구원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는 일입니다.

 

3.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할렐루야!

 



복이 되는 고난도 있습니다. 119:67-72, 벧전4:12-19

 

오스왈드 샌더스 목사님이라는 분의 간증입니다. 그 목사님의 아내가 중병으로 몹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일생을 목회에 협력자요 내조자인 아내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면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를 위로하며 간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모님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여보, 당신이 내 곁을 떠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곁에 계시므로 나에게 장애되는 일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너무 당황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해서 간호하고 있는 남편에게 장애가 된다는 말을 들으니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그 사모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 간호에 대해서 감사하지만 나는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나의 이 고통을 통해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은총을 입고자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사모님이 혼자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험을 통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었고 그 평안으로 고난을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인간적인 위로보다는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기를 원했고 고난의 주님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오는 여러 종류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에는 복이 되는 고난도 있습니다. 오늘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복이 되는 고난도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에게 복이 되는 고난은,

 

1.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고난입니다.

 

구약 본문 시119:67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했습니다. 마치 탕자가 고난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가,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분이고 그 분의 품이 얼마나 포근하고 평화로운가를 깨닫게 된 것과 같습니다. 이제 다시 아버지께 돌아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아버지의 용서와 자신을 위해 베푸시는 사랑을 맛보면서 이후로는 아버지를 더욱 사랑하면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때로 병원에 입원한 성도를 심방하다 보면 '목사님, 내가 이번에 깨달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이 허물이 만고, 충성도 제대로 못하는 자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고 깨닫는 은혜를 주시어 오히려 고난을 통해 주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게 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게 하는 유익을 주기도 합니다. 본문 시119:71"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의 말씀, 주의 뜻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평안할 때는 기도의 열심이 적지만, 고난을 당하면 주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 때 성도는 주님과 가까워지게 되고 주님의 더욱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은 평안할 때보다 고난의 시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의 눈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팠을 때 밤새도록 간호해 주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환경을 어둡게 하신 후에 만나주실 때가 많습니다. 야곱이 아버지 어머니 품에서 평안히 거할 때에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밤이 다가 왔을 때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형의 진노의 낯을 피해서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광야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두려움 가운데 땅 위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속에서 야곱을 만나 주셨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야곱은 외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28:16)라고 하며 서원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을 지나면서도 많은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꿈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 가운데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가 외삼촌의 집을 몰래 떠날 때에도 진노하여 추격해 온 외삼촌 일행에게서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아직도 형, 에서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일행을 앞서 보내고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아 있을 때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어 그를 만나 주셨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간구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 , 에서의 진노의 마음을 용서와 화해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광야 생활에서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다른 사람이 경영하던 공장을 인수받았는데 3년 동안 계속 적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것을 확신하며,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십일조 하는 것은 물론 주일성수까지 철저히 하였습니다. 어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면 공장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공장들이 문을 닫았으나 그 분의 공장은 흑자를 내는 유일한 공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주변 사람들은 '저 공장은 일요일도 쉬는데 이상하게 흑자를 내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장로님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에게 시련을 주셨고 3년 동안 나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점검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하여 믿음을 키워주시고 교만해지거나 세상 쾌락에 빠지는 위험을 미리 막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마라에서 쓴물을 마시게 하시고 난 다음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시련을 잘 이기고 나면 하나님께서 엘림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시련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그 뒤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놓쳐버리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고난을 통해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고난을 통해 준비된 심령이 되어 더 많은 은혜와 은총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연단을 이루어 귀한 신앙 인격을 만드는 고난입니다.

 

신약 본문 벧전4: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 가운데 하나가 연단을 위한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애급에서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고난의 광야에서 40년의 연단 기간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연단된 믿음의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5:3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1:3-4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대장간의 뜨거운 불 속에서 쇠를 넣고 달군 후에 수없이 두드리고 때릴 때에 그 속에 있던 불순물, 온갖 잡물이 다 빠지고 마침내 강철이 되어 좋은 농기구도 되고, 명검도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전한 믿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인격을 가지려면 오랜 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집을 떠나라 할 때부터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는 명령을 받을 때까지 수많은 고난 속에서 연단을 받음으로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결국 만국 백성의 신앙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일찍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았고, 부모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부족함 없이 살았으나 온실의 식물처럼 자라 담대함이 없었고, 은근히 자신을 자랑하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를 귀히 쓰시고자 애급의 노예로 팔려 13년 세월의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의 고난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 하는 법을 배웠고, 순전하고 담대한 믿음을 소유하게 함으로 하나님 앞에 귀한 인물로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후에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급에 왔을 때 형들은 자기들이 시기로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버린 요셉이 애급의 총리가 된 것을 알고 보복을 당할까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며 하나님이 형들을 통해 애급으로 형들 보다 앞서 나를 보낸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고난 중에도 돌보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메리 베르게세라는 여자 의학생은 수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그녀의 고향 인도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기념으로 메리는 다른 졸업생 몇 명과 어울려 역마차를 타고 소풍을 나갔습니다. 역마차를 몰던 사람이 앞서 있는 버스를 추월해 가려다가 그만 마차의 중심을 잃고 옆으로 세 바퀴나 굴러버리는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메리는 닷새 후 겨우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허리 아랫부분이 마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던 그녀의 꿈이 산산 조각이 나버린 것입니다, 메리는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끝없이 울었습니다. 그녀가 병석에 누워 지나간 비극적인 참사를 되새기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서 갑자기 옛 찬송가 귀절이 은은히 퍼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감동되는 대로 입을 열어 <내 손을 잡으사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바로 그때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 의사 한 분이 방문을 밀고 들어오며 말했습니다. '메리, 수술 보조원으로 나와 함께 일하지 않으시겠어요? 계단을 개조하고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되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 후에 문둥병으로 불구된 사람들 틈에서 일하며 인도 제일의 외과의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메리는 하나님께 걸을 수 있는 다리를 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주신 것입니다. 어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고 고백하는 성도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고난 중에서도 최고로 값진 고난이요, 영광스런 고난입니다. 성도가 고난을 통해 주님과 가까워지고, 고난을 통해 연단 된 신앙 인격을 이룬 성도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주님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 고난은 주님의 동역 자가 되는 영광스런 고난이요,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천국 공신이 되어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이 따르는 고난입니다. 그래서 신약 본문 벧전4:13-14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했습니다.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주님을 위한 고난에는 놀라운 축복이 따르게 되고, 주님은 그 사역을 위한 고난 중에 함께 계십니다. 모잠비크는 UN이 지명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이곳의 상황은 장기적인 유혈 내전으로 악화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기간산업은 파괴되었습니다. 도로, 다리, 마을, 학교 그리고 병원 등은 훼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어갔습니다, 또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 만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었으며 상해 자와 불구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비롯해 어른들도 지나가다 지뢰를 잘못 밟아 터져서 많은 사람들이 겨우 한 두 개의 수족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수천 명의 어린아이들이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검게 전소된 마을을 헤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헐벗은 채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롤랜드 선교사는 당시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남아프리카 출신의 크리스천들을 소형트럭에 태워서 그들을 돕기 위해 이 절망적인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지급품들을 나누어주는 일 등을 위해 그 밤 국경을 건너 모임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국경 문이 5시에 닫히기 때문에 일행은 서둘러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나 국경까지 약 5마일 정도를 남겨놓고 트럭은 길을 벗어났고 속도도 떨어졌습니다. 운전자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페달을 힘껏 밟았지만 트럭의 속도는 계속 떨어져만 갔습니다. 낙담한 사람들은 자신들 앞으로 다른 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 차는 결국 멀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약 52분전이 되어서야 국경 근처에 있는 고객 사무실에 도착 하자마자 엔진이 곧바로 꺼져버렸습니다. 다시 시동을 걸어 보지만 트럭은 전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행들 모두 "주님, 어찌하여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는지요?"라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국경 안내자들이 달려오면서 흥분하여 소리쳤습니다. 잠시 후 헬리콥터가 착륙했고 남아프리카 정부요원 한 명이 내렸습니다. 롤랜드 선교사는 그에게 다가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국경 건너에서 폭발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교전중인 적군들 중 하나가 달리던 차를 폭파했습니다." 롤랜드는 부상당하거나 죽은 사람들을 헬리콥터로 실어 나른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 바로 그들 앞에서 달리던 차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트럭 또한 제대로 달렸더라면, 그들 역시 폭탄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롤랜드 일행이 그 차를 운행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고난 받을 때 감당할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유익하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고난을 통한 연단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성도에게 복이 되는 고난은,

 

1.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고난입니다.

 

2.연단을 이루어 귀한 신앙 인격을 만드는 고난입니다.

 

3.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입니다.

 

주님이 우리 위해 고난당하심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이 사순절 기간에 복이 되는 고난을 통해 기꺼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다가 주님의 칭찬과 면류관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시편 161-11

 

*어느 날, 한 남자가 가이드 포스트지의 창시자인 노만 빈센트 필박사를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얼굴도 초췌하고...아주 얼굴표정이 당장 죽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의 절망적인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제는 끝장이 났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빈센트 필 박사는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 당신이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는데...그래도 조금 남은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남은 것을 여기다가 한번 적어보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부인이 있습니까?” “네 제 아내는 참 착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셋이 있습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 뜻을 잘 알아주는 몇 사람 친구가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그저 아직까지 건강은 괜찮습니다.”...이렇게 말을 해 나가다가 이 남자가 스스로 하는 말이... “어쩌면 내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진 것이 많군요!. 고맙습니다.”... 하고 물러갔고 합니다.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진 것이 불행이 아니라...가지고 있는 것을...가진 줄 모른다는 데...불행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한 번 찾아보세요!.

-다 잃어버린 것 같으나...아직도 가지고 있는 게 많습니다.

-못 가지고 있는 것 보다...가지고 있는 게 더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 더 근본적이고...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항상 흑자평가’...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적자’...만 계산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잃었는지...무엇을 못 가졌는지 만 계산합니다...그리고 거기에만 몰두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슬퍼합니다.

 

-아닙니다.

-이것을 잃어버리고...저것을 얻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믿음을 얻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리고 겸손을 얻었습니다.

-얻은 게 많습니다.

 

-얻은 것이 많은...이 흑자 쪽으로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은...그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이 무엇입니까?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최근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이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사람은...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변화하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생각하는 대로 변화하는 존재란 말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질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달라질 수 없는 사람은 못 달라집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환경에 관계없이 끝없이 불평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거기서 불평거리를 찾아 불평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된 대로 내 존재는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복을 받는 길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1-2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본문은 다윗이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복은...‘하나님 한분 뿐’...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이...우리의 복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은...언제 읽어보아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귀한 간증을 담고 있고...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시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밖에는 절대로 다른데서 복을 얻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들도...그렇게 고백하십니까?

-그렇게 고백하시는 성도님들에게...다윗에게 주신 복을 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3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대상은...성도들이라고 하십니다.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3...‘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여기서...‘존귀한 자’-헤마 -‘는 물질적으로 부요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부요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자로...하나님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는 자를...‘헤마’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우리 성도들을...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입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 속한 온갖 크고 놀라운 복들을...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는 자녀 된 우리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증수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찰은 아니지만...현찰과 꼭 같은 효력을 지닌...신용수표입니다.

-‘보증수표만 받으면...안심하고 아무 두려움이나 의심이 없이...큰 거래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왜냐하면...그 수표는 은행에서 보증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고 말하면서...‘땅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존귀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까닭은...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성도들에게 보증 수표가 되심을...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재벌 그룹 회장이...자기가 일생에 모은 재산을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자기 자녀들에게 다 물려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그에게 존귀한 자는...그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랑스럽고 귀한 자녀들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우리 성도들은...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여러분은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은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성도들이 하나님께 즐거움을 드리는 일이 됩니까?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 대답은 4절입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으로 믿고 고백하면서...다른 신들-우상들-에게 마음을 주지 아니하는 것...이것이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몇 가지가 있는데...그 중에서 가장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는...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며...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상숭배는...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하나님 보다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는 것...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존중히 여기는 것...하나님 보다 다른 것에 더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런 것들이 우상이고...우상 숭배입니다.

 

-꼭 부처나...깎아 만든 목상이나 석상 앞에서...절하고...기도하고...제사하는 것만이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성경적인 의미로는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데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하나님만 인생의 우선순위로 섬기고 공경하면...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즐거워하고...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까?

 

그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5-6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산업’-마나- 기업을 말합니다.

-‘소득’-헬렉- 몫이라는 뜻으로 분배되는 할당을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이 말씀은...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업을 하고...직장에 다니고...생업을 할 때...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시고...반드시 그 수고한 대로 충분한 몫을 가지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손으로 하는 모든 수고에 대하여...결단코 실패함이 없고...헛수고로 끝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의 약속입니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수고하고...땀 흘린 대가를 거두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손해를 보는 세상입니다.

-무슨 일에든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수고의 대가가 적습니다.

 

-그러나...하나님만 의지하고...공경하고...그 말씀 따라 살면 하나님께 복을 주시되...그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그의 수고의 잔이 넘치게 하시고...그에게 주신 분깃-기업을 지켜주셔서 흔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할렐루야!

 

-시편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편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약속들입니다.

-여러분들도...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그 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공경하여...이같이 흔들림이 없고...잃어버리는 것이 없고...땀의 수고대로 잔이 넘치는 것을 거두며...풍성한 복을 받으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박자의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9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요한3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조용기 목사님은 이 것을 3박자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integral-전인적인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공경하고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의 내용입니다.

 

-마음을 기쁘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면...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참 된 행복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면...기쁨이 넘치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을 누리고 살지 못합니다.

 

*영국에 재치와 농담으로 유명했던 카리니’...라는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하곤 했습니다. 그가 무대에 나서서 이야기하면 아무리 무뚝뚝해서 웃음을 모르던 사람도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은 웃겼지만 자신에게는 심각한 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환자와 상담한 끝에 의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병은 마음속에서부터 우울한 것으로 축적이 되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정말 기쁜 마음으로 웃을 수 있으면 그 병은 낫겠는데요!."..."그렇습니까?...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 카리니를 아시지요?..."그분의 코미디를 한번 들어 보세요!...그분의 코미디를 들으면 웃음보가 터집니다...그러면 당신의 병은 낫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못하면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때 카리니가 의사에게..."선생님!...,제가 바로 카리니’...인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어떤 웃음도...우리의 마음을 기쁘게...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살면...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바스커 빌-Basker Bill-의 간증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한 주간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행복한 월요일

-복된 화요일

-즐거운 수요일

-유쾌한 목요일

-좋은 금요일

-영광스런 토요일

-하늘의 기쁨이 넘치는 일요일

 

-이것은...일주일 내내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하루하루 이와 같은 기쁨을 누리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 (841-12)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도 아직 원인을 찾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연어의 회귀본능입니다. 연어는 강에서 산란하여 1년 동안 살다가 바다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3년을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나서 살던 곳을 찾아 돌아오는 회귀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귀본능이 얼마나 치열하든지 그 거센 물줄기를 헤치고 필사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장관이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을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오는가? 그리고 대체 무엇이 연어들로 하여금 그토록 강력한 회귀본능을 일으키게 하는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은 창조주 하나님만 아시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본능은 연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시편 84편의 고라자손들이 그렇습니다. 고라자손은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로서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고 아울러 성전의 문지기와 각종 수종 드는 일을 담당한 사람들입니다.

레위지파는 여러 반열로 조직이 되며 평소에는 전국에 흩어져서 목회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돕다가 차례가 오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찬양하며 제사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는지 본 시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 알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1-2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여기 여호와의 궁정은 바로 성전을 말합니다.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가 봉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구약의 성전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기에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성전이 예배의 처소라는 점에서는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도 예배당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따로 구별한 처소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하는 사람은 성도들도 사랑하고 주의 일군들도 사랑하고 예배당도 사랑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천지만물도 사랑합니다. 모두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를 보세요.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데 대적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을 해코자 합니다. 창조물에 대한 도전은 곧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꾸어놓고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이걸 모르고 사람들이 교회를 함부로 생각하고 우습게 보는데 그건 사탄적사고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이 공동체를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인정하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징이나 정당한 결정은 하늘에까지 통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습적으로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 날 아침 심하게 교회를 욕하고 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전복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때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핍박하다가 이런 일을 만났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핍박하지 않으련다." 불신자도 깨닫는 건 빠르더군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했던 것처럼 예수를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출석 잘하시고 교회를 향한 의무도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사랑을 예배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4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고라자손이 왜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했을까요? 자신들은 잠시 머물다가 갈 수밖에 없는 가령 여행 비자를 가진 사명자지만 이 짐승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둥지를 틀며 사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짐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주님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항상 주를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벧전2:9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다 신령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또 각인의 초소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반면 예배가 회복되면 모두 다 살아납니다. 예배 한 번만 잘 드려도 그 예배에 어떤 누가 변화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히10: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둘지라도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자 한 밤중에 옥문이 열렸잖아요.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복을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교회 정규예배 뿐 아니라 가정예배 개인기도시간을 정해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사랑을 주일성수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5-7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루살렘에 도달하려면 지형상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골짜기가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는 바가의 골짜기라 하여 시 23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도 부르는데 유대광야의 험준한 골짜기를 말합니다.

 

이곳은 물이 없어 메마르고 골짜기는 험준하고 동서로 깊게 파여 한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흑암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이 골짜기의 좌우 길목에는 동굴들이 많은데 그 안에는 한낮의 햇빛을 피하려는 맹수들이 득실거려 양들이 길을 잃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라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갈망했습니다. 메마른 골짜기에 비를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맹수에게서 지켜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힘을 간구했습니다. 용기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습관화가 되어 예배하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지만 일반인이 교회 출석하기란 마음 단단히 먹어야 가능합니다. 교회 한 번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한 번만 나오면 두 번째는 쉽습니다.

오늘 길에 맹수가 무엇입니까? 26: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을 이겨야 합니다. 형편도 이겨야 합니다. 상황도 이겨야 합니다. 불편함도 이겨야 합니다.

군에서 갖은 핍박 가운데서도 주일 지킨 이야기 들으셨을 것입니다. 너 이래도 교회 갈꺼냐? 하고 무릎 위에 무거운 다듬돌을 올려놓았는데 몇 시간 후에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교회 가야겠다고 해서 대체 네가 믿는 예수가 어떤 예수인지 나도 믿어보자 해서 그 핍박자가 나중에 장로가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신앙의 발걸음을 보시고 하늘의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기적은 고난 속에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과 눈물의 골짜기 통과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고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성령의 이른 비로 늦은 비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8-9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여기서 고라 자손들은 왕을 위하여 간구합니다.

 

 

여기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당시로서는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 다윗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 끝까지 퍼져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다각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라자손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11절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주일성수 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와 정상을 다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의 복 시116:5-14, 살전3:7-10

전북 부안군 동민면 하장리라라는 마을은 호남평야 넓은 들녘 한 가운데 있는 큰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사는 한 부자 집에 여러 명의 머슴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머슴들 가운데 예수 잘 믿는 김기홍이라는 머슴이 있었는데 그는 신실하여 주인의 인정을 받아 특별한 허락을 받고 주일에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는 드리지만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게 되면서 원하는 대로 교회 일을 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머슴살이 첫 해 맥추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날따라 갑자기 홍수 때문에 모든 일꾼들이 논에 나가 수로를 고르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날 밤 한잠도 못 자고 머슴방에서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주일도, 절기도 제대로 지킬 수 있게 도와주소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인에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가 되어 여름 보리 추수 후에 교회에서 지키는 맥추 감사절에 참여하고 싶다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에게 거절당했으나 계속해서 부탁한 후에 결국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되겠는데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서 다시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계속된 설득 끝에 주인이 그에게 보리 한 가마를 주어서 그것을 가져다가 감사 예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머슴이면서도 보리 한 가마니를 예물로 드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인이 궁금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생해서 번 곡식을 쉽게 교회에 바치는 것일까?” 호기심으로 교회에 가 보았습니다. 그 날 목사의 설교가 주인의 가슴을 찌르는 날선 검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 주인은 예수를 영접하고 주일마다 머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신실한 신앙의 사람 김기흥씨의 감화로 주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 그 주인이 교회를 다니면서 은혜를 받고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니 다른 머슴들까지 교회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의 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받은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구약 본문 시116:12절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 살전3:9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았어도 은혜인줄도 모르게 되면 감사의 마음도, 보답의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이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로 보답하는 성도가 되려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부터 알아야 합니다.

감사(thank)의 어원은 생각(think)입니다. 감사하려면 생각해야 합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생각하면 감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얕은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화입니다. 신학자 몬테 피오레는 “생각하고 감사하라(Think and Thank)”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묻지도 따지지 말고 무조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덜함 감독(Bishop Durham)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라는 이 말씀을 평생 외우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힘쓰며 살았다고 합니다. 은혜는 히브리어로 '타그물' 인데 '친절, 보상' 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측량할 수 없는 친절과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부어주신 보상을 받은 후, 그 은혜를 깨닫고 갚을 길 없어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말하는 은혜란 막연하게 생각하는 객관적인 은혜가 아니라 '내게' 주신 주관적 은혜입니다. '너에게'가 아닌 바로 '나에게'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는 바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거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과 어떻게 바른 관계가 맺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은혜를 안다는 것은 소중한 것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 성도와의 바른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세상적인 고민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이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길 없어 고민해 본 적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아는 사람만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요, 행복하고 깊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증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의료선교를 한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흑인 중에도 다소 문화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바나나, 달걀, 야자 등을 가지고 온답니다. 그러나 문화 접촉이 거의 없는 미개종족은 병을 고쳐주어도 고맙다는 인사와 보답은 커녕 멀리서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고 오히려 손을 내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운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일수록 감사할 줄 알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우리도 미개인입니다. 예수 안에서 감사를 알고 마음껏 감사함으로 사는 신앙의 신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2.받은 은혜를 잊지 않아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잊을 것은 빨리 잊어야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좋지 않은 기억, 남에게서 들은 상처의 말, 과거의 실패, 내게 고통을 주고 힘들게 한 사람과 행동, 내가 행한 선한 일 등은 빨리 잊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 자신이 상처 받지 않게 되며, 뒤 엣 것에 메이지 않고 힘차게 앞으로 전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자랑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때를 따라 도움을 주신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 내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도움을 준 사람들, 내게 믿음의 길로 가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바울은 환란 중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 큰 위로를 받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급할 때 서원의 기도를 하고 받은 은혜 등은 잊지 않아야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구약 본문 14절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다고 말합니다. 여기 구원의 잔은 감사의 잔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의 잔을 여호와께 높이 들고 나아가 은혜를 갚는다는 것입니다. 웨슬리(J.Wesley)목사에게 많은 신앙의 감화를 끼친 진젤돌프(Von Zinzendorf)백작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여 백작지위를 국가에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은여생을 기도와 전도에 바치며 일생을 하나님의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급할 때 서원하는 기도를 하여 은혜를 받은 후 서원을 잊고 살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장암' 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수술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수술 전날 목사님은 스웨터를 걸치고 병원복도를 거닐며 고백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충했음을 회개하며 낫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종이 되겠노라" 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수술 후 목사님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신앙이 의학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도 인간인지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술 받을 때 서원한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불만, 갈등, 괴로움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오백만원짜리 스웨터를 입고 그때를 생각하고 감사하면 다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웬 스웨터가 오백만원이나 가느냐고요? 당시 수술비가 오백만원이었답니다.

우리 모두 받은 은혜 잊지 말고 은혜에 보답하는 성도로 삽시다.

 

3.믿음과 순종으로 인색함을 버려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날들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셨던 과거의 은혜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역사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깊이 생각 하면 할수록 감사가 떠오를 것입니다. 부디 과거의 은혜를 생각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앙으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막힌 귀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우울해 하고 불평과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하여 감사한 마음이생기지 않는 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3:2에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타락한 인간에게 나타는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좋은 성도, 은혜 받은 믿음의 성도는 순종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교회에서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니까 너무나 건축헌금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습니다. 자신도 성전건축에 동참하고 싶고, 또 그렇게 해야 떳떳하게 교회 들어가서 예배드리지, 다른 사람이 다 헌금해서 건축 하고, 의자 만들고, 다 한 다음에 그냥 들어가면 부끄럽기도 하고 남한테 신세를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성전건축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저에게 물질을 주시면 저도 하나님 앞에 건축헌금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않게 여기저기서 좋은 일이 생겨서 물질이 생기고 풍족하게 되었으나 집사님은 그만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갑자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갑상선이 부어올라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나님, 왜 이렇게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고 갑상선이 생겼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깨닫게 하옵소서.’ 병원에 입원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너는 약속을 안 지키니까 징계를 받는 것이다.’ 그때서야 몇 년 전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은 것이군요.’

그녀는 교통사고로 받은 위로금을 뒤늦게 건축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감사가 넘쳐 났습니다. 잃어버린 건강도 되찾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에 대한 죄를 짓지 않게 하옵시고,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딸이 되게 하옵소서.’

순종할 때 질병도 떠나고, 순종할 때 가난도 떠나고, 순종할 때 환난과 풍파도 떠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축복 받을 사람이 축복 받지 못하고, 은혜 받아야 될 사람이 은혜 받지 못하고, 능력 받아야 할 사람이 능력 받지 못하고, 기적을 체험해야 할 사람이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인색한 마음 때문에, 약속한 것을 갚지 않은 죄, 불순종의 죄, 하나님 보다 세상이나 물질을 더 사랑하는 죄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감사 하는 자에게 더 큰 감사의 여건을 허락해 주신다는 믿음, 말씀에 순종하여 인색한 마음 버리고 풍성한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에게 넘치는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심을 믿고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가 되려면

 

1.받은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2.받은 은혜를 잊지 않아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3.믿음과 순종으로 인색함을 버려야 보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깨닫고, 항상 받은 은혜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더욱 풍성한 은혜 받아 주님 영광 위해 살다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복 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50:23) 감사 예배의 기적

불평만 일삼는 불평나라의 한 젊은이가 감사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친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나는 젊은이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이번에 감사나라에 가서 감사를 잘 배워서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쳐 주세요.”

이 젊은이는 감사나라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드디어 감사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사 박사학위증을 가지고 자기나라인 불평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잘 배워 왔을까 궁금해 하며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지겨웠습니다. 그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지 눈을 떠도 감사, 잘 때도 감사, 입만 열었다 하면 감사, 도대체 감사 밖에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전 정말 지겨울 정도로 징그럽게 감사만 배우고 왔을 뿐입니다.”

반대로 감사나라의 한 젊은이가 불평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많은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드디어 불평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어떤 것을 배워 왔는지 궁금해 하며 모여들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알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해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감사보다는 불평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불평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모든 관계가 좋아지고 환경도 점점 더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감사를 잘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성도라는 말의 뜻부터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예배드리는 자입니다. 본문이 속해 있는 시편 50편 가운데 5절을 보면 성도는 예배자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여기서 성도라고 번역한 원어는 하시드인데 경건한 자를 말합니다. 성도를 의미합니다. NIV 영어성경은 ‘consecrated ones’, KJV 영어성경은 ‘saints’라고 하여 성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라는 말이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말을 쉽게 부르고 있습니다만 성도가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5절을 보면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made a covenant with me by sacrific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희생제물(sacrifice)로써 하나님과 언약(covenant)을 맺은(made) 사람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희생제물로 만들어진 사이입니다.

여기서 희생제물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희생제물은 곧 제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라는 말의 출처를 잘 알아야 성도의 의미를 제대로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사, 즉 희생제물(제바흐)이란 의미를 어떻게 잘 알 수 있겠습니까?

제사의 뜻을 알려면 창세기 321절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화를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아담과 하와였지만 불쌍히 여겨주셔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죽옷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의 피를 흘리고 만든 옷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 양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속죄의 피로 용서받고 영생을 누리도록 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 아벨이 양 치는 자로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4:4). 노아가 제물을 드립니다. 창세기 820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드렸습니다. 창세기 1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제단이라는 말 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일어난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삭도 드렸습니다. 창세기 2625절입니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야곱도 드렸습니다. 창세기 46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이주할 때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46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약 400여 년이 흐른 뒤 애굽에서 나올 때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내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8절입니다.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후 애굽에 내린 재앙의 과정을 보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내 보내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는 제사도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애굽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다시 흘러 신약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상징이었던 어린 양 예수의 피를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도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희생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굉장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출 애굽한 성도는 하나님과 제사로 맺은 사이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데 그 표징 가운데 하나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주일 성수가 언약의 표징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날인지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31: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주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아니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집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그들은 어떻게 되어버립니까?

그러나 반대로 주일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58: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릴 때 성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희생제물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아울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주일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기쁨과 은혜와 축복까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좋을 때만 감사가 아니라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본문이 속한 시편 50편 가운데 14절을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NASB 영어성경에서 “Offer to God a sacrifice of thanksgiving”이라고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데 감사의 제물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7절부터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 나의 사랑하는 백성들아, 내 말을 잘 들어보아라. 나는 너희들이 드리는 제물 때문에 책망하지는 않겠다. 항상 잘 드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들의 희생제물을 가져가지는 않겠다. 천하에 있는 모든 희생제물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배가 고프다고 가정할지라도 너희들에게서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희생제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 예배는 잘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예배를 원하시고 계십니까? 그것을 14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무수한 예배보다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본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을 보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은 원어로 예샤라고 하는데 구원, 구출, 구조, 안전, 복리, 번영, 승리를 의미합니다. 건져주어 평안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을 보면 1절에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을 강조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4절과 15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최종적으로 23절에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감사로 예배드릴 때 구원해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요나가 그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외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편 서쪽에 있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서 그만 바닷물에 던져져서 커다란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요나는 불평하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나서 21절에서 9절까지 기도드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7절부터 9절까지를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자 요나를 육지에 뱉어냈습니다. 요나는 그리하여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감사하는 자를 눈여겨보시고 구원해주십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를 구원해주십니다. 우리도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처럼 삶과 사역 가운데 여러 가지 일로 괴로워하고 답답해하고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앞뒤 꽉꽉막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절망적인 신세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릴 때 건짐을 받습니다. 요나처럼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감사로 드리는 예배는 기적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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