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 대상5:1-2, 3:7-13
세상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며, 덜 중요한 것은 끝까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그 믿음을 통해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 소중한 것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사탄은 간교한 속임수로 우리에게 접근하여 약속된 면류관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빼앗긴 자는 신앙의 실패자요, 어리석은 자입니다. 덜 중요한 것에 목숨을 걸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잃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영국이 전 세계의 모든 바다를 지배한 해상의 왕이던 시절에 일어났던 얘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무역선 하나가 영국 해협에 거의 다 와서 그 해협 근처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파선한 무역선의 구조요청을 받은 영국은 당장 구조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너무 높아서 구조선이 그 조난당한 큰 배에 가까이 접근을 못했습니다. 별수 없이 로프를 던지며 배에 탄 사람들에게 그 구조선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무역선에 탄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그 구조선을 향하여 헤엄을 쳤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로프를 붙잡고 구조선까지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무역선에 탄 사람들 중에는 배에서는 뛰어내렸지만 구조선까지 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수영을 못하거나 미처 그 로프를 못 잡아서 죽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금괴 때문이었습니다. 그 배는 아프리카에서 오던 배로서 많은 양의 금괴들이 배에 실려 있었는데, 사람들은 배와 함께 가라앉을 금이 너무 아까워서 배에서 뛰어내릴 때 자신의 허리에다 금을 가득 찼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금괴의 무게 때문에 모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16:26)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은총의 복을 주셨는데, 너무 소중한 것들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1.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가치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야곱의 장자 르우벤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해산을 앞둔 산모가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몰라 조바심을 하는 것, 아들을 여럿 둔 부모가 장남에 대한 관심은 차남, 삼남 등 다른 아들에 비해 남다른 관심을 두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형제들 간에도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 장남은 장남 노릇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동생들 역시 장남에게 장남 노릇해주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장남과 차남에 관한 일은 성경에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남은 기력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혼을 하고 꿈과 기대와 정력이 왕성할 때 낳은 첫 아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뒤에 난 아들보다 뛰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49:3에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자에게는 특권이 있고 책임이 따릅니다. 장자는 형제들의 머리가 되고, 아버지가 없을 때는 아버지를 대신했습니다. 21:15-17에 보면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장자에게는 유산을 두 배나 주라고 했습니다. 또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축복을 빌 때 장자에게 비는 축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이삭이 죽기 전에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빌어 주려는 것을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이 알고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약점을 알고 속여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에서가 뒤 늦게 그 사실을 알고 울며 아버지에게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 뿐 이니이까? 야곱에게 빈 장자의 축복을 나에게도 빌어 주소서.’라고 간청할 때 아버지는 하나뿐이라고 하시며, 야곱에게 복을 다 빌어 부었기 때문에 너에게는 빌 복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장자권이 얼마나 중한지를 알고 있었던 야곱은 장자권에 별 관심이 없는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시장할 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 권을 사게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주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계3: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하셨고,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가치를 바로 아는 사람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굳게 잡아 지키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사람은 능력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능력은 적을지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지키는 충성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 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레나 마리아는 1968년 스웨덴에서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두 팔이 없고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짧은 다리였지만, 그녀의 부모는 레나를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굳게 믿고 정상아와 똑같이 양육하기로 결심하고 양육했습니다. 그녀는 두 팔이 없는 가운데 오른발로 설거지, 운전, 악수, 수영, 십자수, 피아노 연주, 성가대 지휘 등 오른발 하나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장애인 올림픽에는 스웨덴 대표 선수로 참여하여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또 스톡홀롬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한 후, 본격적인 가스펠 싱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상인인 비올라 연주가인 비욘 크랑빌과 결혼을 하여 스웨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아직도 남아있는 적은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가치를 알고 지키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구약 본문 대상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루우벤이 장자권을 상실한 이유는 아버지의 첩 서모 빌하와 간통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창49:3-4에도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탁월해도 정욕대로 살면 복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 되지 말라"(5:5-7) 했습니다. 히브리서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장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뻐할 일이 아니고 장자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복이 약속 된 신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복을 받기에 합당한 성도답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교훈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아무리 좋은 신앙적 배경을 가진 조상과 부모를 둔 가정에서 태어났고, 또 아무리큰 은사와 권능과 권세와 직분을 받았어도 자기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복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신앙, 불순종, 탐욕, 정욕, 혈기, 교만을 회개하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중요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믿음의 삶이 있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려한 영적 배경을 지녔더라도 오늘 믿음의 삶이 없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출신과 영적 배경이 초라할지라도 오늘 내 삶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좇는 삶이라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것입니다. 한 청년이 친구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나갔습니다. 친구는 장로님의 아들로 독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믿음이 좋은 친구의 인도를 따라 그는 서서히 믿음을 갖게 되었고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믿음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는 그의 가정에서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좋은 믿음의 유산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 나의 믿음입니다. 비록 믿음이 좋은 부모가 계신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신이 믿음에 바로 서서 산다면 아브라함처럼 내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믿음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 요셉은 11번째 아들이지만 그가 장자의 명분을 찾지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이 됩시다.
3.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끝까지 잘 지켜 이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 하시면서 이기는 자가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칭찬의 내용에서 주신 복을 잘 지키는 비결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8절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남달리 놀라운 큰 믿음을 가졌거나 놀라운 은사를 받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봐도 본래 신분이나 지위가 변변치 못하여 사회적으로도 별 볼일 없는 아주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박해를 받으면서도 말씀을 지키며,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충성하였기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가진 것이 부족하다 해도 주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면서 충성하는 자가 될 때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8절에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했습니다. 성도는 늘 깨어 기도하면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박해가 올 때도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않아야 이기는 자가 됩니다. 우리가 아는 초대교회의 순교사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겨울에 로마의 군인들이 크리스천 젊은이들을 붙잡아 두껍게 얼은 얼음구덩이를 파게 해서 옷을 벗기고 거기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온 몸이 얼고 굳어갈 때 "누구든지 예수를 부인하겠다고 손을 들면 얼음 구덩이에서 꺼내줄 것이며 생명을 보장해 주겠다." 고 회유했습니다. 모든 젊은이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신앙을 포기하기보다는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죽음을 이겨낼 용기가 없어져 마침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로마의 한 군인의 눈에 하늘에서 천사들이 면류관을 들고 내려오다가 한 천사가 면류관을 든 채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놀란 이 군인은 손을 든 젊은이에게 달려가 손을 들고 있는 젊은이를 꺼내고 자신이 옷을 벗고 그 얼음 구덩이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이 젊은이 대신 예수를 믿겠습니다."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인내로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10절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할 때, 사람들의 미움과 배척을 받기도 하고, 직장을 잃기도 하고, 물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목숨을 내 놓아야 할 경우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12절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성전 기둥처럼 되기도 하고, 새 이름을 받기도 하고,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끝까지 잘 지켜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가진 것을 굳게 잡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가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가치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끝까지 잘 지켜 이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아멘.
<2024. 05. 30.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감사하는 자로 삽시다. 대상29:11-19, 골3:15-17

오늘은 맥추감사주일 입니다. “맥추”라는 말은 보리를 추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1년 중에 제일 먼저 추수한 것이 보리이고, 가장 늦게 추수하는 것을 벼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에게 보리를 추수 하고 맥추절을, 벼를 추수하고 수장절을 지키 라고 이런 절기를 정해 주셨습니다. 이런 감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들을 기억 하고 감사하라고 주신 절기입니다.

지금은 농경시대가 아니지만 비록 농작물의 추수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주신 모든 것들로 인해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가르치는 절기입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로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가 감사하는 자로 살면,

 

◎감사 하는 자에게 큰 유익이 따르게 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감사하라는 말이 거듭해서 나옵니다. 15절에 ‘너희는 또한 감사 하는 자가 되라.’했고, 16절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 하고’했으며, 17절에 ‘그를(예수님)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주님의 명령이요, 주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가 감사하는 자가 되면 많은 유익이 따르게 됩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감사 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감사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거역할 수 없는 책임과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을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와 이곳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감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하시고 때로 질병으로, 때로 불 뱀으로 징계의 매를 드셨습니다. 성도는 모든 일에 불평과 원망을 버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다음에 자신의 삶을 풍성케 만듭니다. 성도가 감사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자기중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잘 되면 자기가 잘 해서, 노력을 많이 해서, 자기가 똑똑해서 잘 되었다 생각하고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큰일을 이루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자가 되었다 해도 결국 초라하게 되고 비참한 모습이 되고 맙니다. 1976년에 71세로 세상을 떠난 하워드 휴즈는 소년 시절부터 자기 인생의 목표를 담대하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의 생의 목표는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 둘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비행사가 되는 것, 셋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제작자가 되는 것, 넷째, 세계에서 제일가는 골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소원대로 큰 부자가 되었고, 비행 광이 되었으며, 영화 제작자가 되었습니다. 프로로 운동할 시간이 없었을 뿐 골프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그가 한 일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자가 되고자 일생의 소원을 불태웠지만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는 자의 결국은 초라하고 비참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터를 주시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감사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윗은 구약 본문 14절에서 “그러나 나는 누구며 내 백성은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이렇게 자원하여 드릴 힘이 있겠나이까?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니 우리가 주의 것에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음을 알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분도, 물질을 주시고 건강을 주신 분도, 가정을 주신 분도, 지금까지 살아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 욥의 고백도 일시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보다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시켜 주신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자기들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했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자는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면 자신에게도 유익이 없고, 그런 자와 함께 있으면 같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마치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보고를 하며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자 대부분의 백성들이 통곡하며 같이 원망하는 자들이 되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광야에서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사람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믿음이 약한 자라도 믿음이 좋은 사람과 교제를 나누게 되면 그 사람의 믿음을 본받게 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자와 함께 있으면 그의 선한 것을 본받게 됩니다. 구약 본문에 다윗의 감사와 헌신을 본받아 온 백성이 함께 감사하고 헌신했습니다. 우리도 감사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의 삶을 풍성케 하며,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 하는 자가 되려면 내 안에 감사할 만한 여건을 갖춰야 합니다.

내 안에 감사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환경이 좋아도, 모든 여건이 다 구비 되어 있어도 감사 하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부족한 것투성이요, 환경이 나빠도 내 안에 감사할 여건을 갖추게 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감사할 만한 여건이란,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에 감사하였습니다. 11절에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했고, 13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다윗의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 그 이름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에는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김과 위엄도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재물이 주는 부도, 지위가 주는 존귀도, 모든 사람들을 크게 하고 강하게 하고 하는 것도, 존귀에 처하게 하는 것도, 비천하게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 왕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 사실을 수 없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릴 때 양을 치다 곰이나 사자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적장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 이긴 것도,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사울 왕의 칼날에서 건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인 것을 체험하고 알았습니다.

다윗 왕은 권세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너무 어려 부모도 기대하지 않았고, 선지자 사무엘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어린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고, 박해하던 사울 왕이 죽은 후에도 왕이 되려고 나서지 않고 하나님이 세워주실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다윗 왕은 재물도 하나님의 손에서 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까닭에 금 3,000달란트와 은 7,000달란트를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소유개념과 그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거하여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된 그 큰사랑이 은혜라고 했고,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가 곧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믿음으로 받고, 사랑으로 풍성해지며, 소망으로 결실한다고 말합니다. 성도에게 꼭 있어야 될 것이 믿음, 사랑, 소망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내가 사랑함으로 은혜가 풍성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은혜를 날마다 고백하고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다면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온통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찬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도 은혜이고, 저것도 은혜로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살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는 은혜를 깨닫게 되면 천하 모든 것이 다 은혜가 됩니다. 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에게 주어진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박해도 많이 당하고, 고난도 많이 당하고,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야 했고, 매로 맞고 돌로 맞으며, 옥에 갇히면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자랑할 만도 한데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한 모습으로 고백 하며 주님을 높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믿음생활 하면서도 은혜 받지 못하면 감사도 못하고 드리는 것도 인색하게 드리게 되고, 드리는 기쁨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한 사업가가 IMF때 회사가 부도나서 기도원에 숨어 지내다가 찬송가 317장을 부르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없건만, 나 주 위해 드린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3절) 주 예수께 받은 은혜가 한없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구나!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요, 재물이 있을 때는 깨닫지 못해 바치지 못하다가 망하고 나서 지금에야 깨달으니 바치고 싶어도 이젠 드릴 것이 없구나! 은혜를 모르고 망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데 대하여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면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고 하나님께 바친 것만 남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대상29:9에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성도가 이처럼 은혜를 받고 드리고 헌신함으로 예수 믿는 즐거움을 얻어야 됩니다. 은혜 받으면 기도 시간이 즐겁고, 예배를 드림이 즐겁고, 성경 읽고 묵상하는 것이 즐겁고, 봉사하고 헌신 하는 것이 즐겁고, 주님 생각만 해도 즐겁게 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주님을 힘입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했습니다. 이 시대의 풍조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적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대신 우상 앞에 감사하는 자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리라고 예언한 말씀대로 세월이 갈수록 우상 문화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성도라도 늘 주님 닮기를 소망하면서 매 순간 주님이 공급 하시는 힘을 의지해야 악한 세상 풍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지만 예수를 힘입으면 나도 힘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이기고, 죄악을 이기며, 사단의 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나는 쓸모가 없지만 예수를 힘입으면 쓸모 있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만 의지하는 신앙, 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 신앙, 매 순간 주님을 힘입는 성도가 되어 감사하는 자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로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 하는 자에게 큰 유익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삶이 풍성해 지며,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감사 하는 자가 되려면 내 안에 감사할 만한 여건을 갖춰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 늘 충만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 신앙, 매 순간 주님을 힘입는 신앙입니다. 아멘. <2023. 06. 29. 호현낙선>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역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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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역사서는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를 말합니다. 그 중에서 상권, 하권으로 나뉘어 있는 책이 6권인데, 사무엘 상·, 열왕기상·, 역대상·하입니다. 분량도 많고, 이야기 거리도 많은 책입니다. 여섯 권이지만 실상은 중복되는 내용입니다.

 

사무엘 상권은 사사 사무엘과 사울왕의 이야기 이고, 사무엘하는 다윗 왕의 이야기 인데, 이 두 권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하는 책이 역대상입니다. 열왕기상·하는 솔로몬 왕의 이야기와, 그 이후에 남과 북으로 나뉜 왕들의 이야기 인데, 이 두 권을 다시 한 번 다루는 책이 역대하입니다. 다만 역대하에는 북쪽 이스라엘 왕들은 나오지 않고, 남쪽 유다 왕국의 왕들만 나옵니다. 정리가 좀 되시나요. 역대상은 사무엘 상·하 두 권을 하나로, 역대하는 열왕기상·하의 두 권을 하나로 묶은 책이라고 정리 하시면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역대상은 레위기와 더불어 성경에서 읽기 힘든 책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역대상 1-9장까지 계속 족보이야기가 나오면서 읽기도 힘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에 여기 부분 읽으면 혀가 꼬여서 잘 발음도 안 되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읽기 힘든 부분 중에 마치 한 줄기 시원한 단비와도 같은 구절이 있으니,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짧고 굵은 기도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진 보석 같은 기도문입니다. 찬양으로도 나온 이 구절은 기도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사랑 받는 구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월에 우리 교회에 주신 암송 구절이니, 외우고, 찬양으로 불러도 보시고, 깊이 묵상 하는 가운데, 각자가 원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는 기도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야베스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합니다. 그가 유다 지파에 속해있고, 5절에 나오는 드고아(성경지명으로 나팔 소리라는 뜻, 유다 광야에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남으로 약 15km 베들레헴의 남으로 약 10km의 위치에 있는 해발 1,000m 에 가까운 고지이다. 예언자 아모스의 고향으로 알려진 도시)를 세운 아스훌의 자손 일 것이라는 추측이 그나마 족보상으로 나타난 야베스의 이력입니다.

 

그런데 9절 하반부에서 보면,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수고로이’(, 뻬오체브)라는 단어의 원형은 산고’(, 오체브)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출산의 고통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불행한 재난, 가문의 몰락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슬픔’,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그를 출생했고, 야베스도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9절 전반부에서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라고 했습니다. ‘귀중한’(,니크빠드, honorable)이라는 말은 수동태 형으로, 존경을 받다, 부요하게 되다, 영예를 얻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야베스는 인격적으로도, 재물로도, 직위로도 아주 뛰어난 인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출생과 성장 과정은 비참하였고, 물려받은 재산이 하나도 없는 소망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는 역경을 이겨내고 다른 형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과거의 어둡고 지워 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이 있습니다. 남에게는 절대 알려주기 싫은 불행한 일들도 있습니다. 칼로 베이고 불에 데인 듯한 쓰라린 마음의 상처들이 많이 있습니다. 큰 낭패를 겪은 실패들 도 많고, 미워하고 증오하는 원수 같은 어떤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부와 명성을 이루었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야베스가 겪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불행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대한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그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 냈습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남다르게 똑똑하고 독한 사람이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 합니다. 그가 존귀하게 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비결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고,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범사에 형통한 은혜를 주셔서 가문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어디에서도 존경 받는 존귀한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 역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다시 한 번 강조 하지만, 여러분과 우리 자녀들의 인생이 시온의 대로를 걷듯이 열리고, 풀려지기를 기대한다면 진실한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기도에 전심을 다하는 사람이 마지막 날에 큰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사람 야베스는 어떻게 기도했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10, 단 한 절입니다. 1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아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간단한 기도문입니다. 언뜻 보면 특별한 내용이 없이 평범한 기도문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이 기도문에는 우리가 기도하여야 하는 방법과 내용, 그리고 결과에 대해 선명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야베스의 기도 방법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침묵기도, 묵상기도, 읊조리는 기도 등이 다 포함 됩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고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아뢰었다라고 할 때 아뢰다’(, 와이크라)가 부르짖다, 크게 소리 지르다, 호소하다 라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 기도 입문 시절에는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소리치며, 심지어는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그 소리에 기도가 방해되어 집중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확 불을 당기 시려면 소리치며 기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미친 듯이 울부짖는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심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밤 새 천사와 씨름 하는 야곱과 같이 끈질기게 매달리는 기도, 야베스와 같이 자신의 처지와 환경과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기도는 하나님이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 역전을 이루시기 원하신다면 로또 구입 하지마시고, 일확천금을 누리는 허황된 망상부터 버리십시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바라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는 기도의 방법을 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도입 하신 다면, 우리도 야베스와 같이 존귀한 자, ‘부유한 자, ‘영광을 얻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올 해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데 열심을 내실 거면, 이왕 기도하시는 거,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간절하게 부르짖는 가운데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자주 만나시고 깊이 경험하시기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야베스의 기도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처음 기도에 입문 하신 분이시거나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는 분은 5분 이상 기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자유롭게 활동 할 때는 짧아 보이는데, 막상 기도하려고 눈을 감고 있으면 10분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몇 마디 하면 기도할 내용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초보자들은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지 못합니다. 그냥, “평안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잘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일반적인 내용 몇 마디 밖에 하지 못합니다. 이런 기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여야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10절을 한 번 보십시오. 이 짧은 기도문에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지경(지역)을 넓혀 주옵소서. 주의 손으로 도와주옵소서. 환난을 벗어나게 하옵소서.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기도문도 사실 별로 구체적이지 않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 기도문에는 두 가지 중요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이라는 대목인데, 개역한글 번역에서는 원컨대 주께서 내게라고 했습니다. 옛날 번역이 찬양 가사로 기억 되어서 더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원컨대라는 단어는 감탄사(, )참으로, 진실로, 결단코, 정녕히, 단정코라는 뜻으로 번역이 됩니다. 이 단어 하나 속에는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원합니다라는 소원과 함께, “원하시지 않으면,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의미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기도가 간절히 이루어지기를 구했지만, 자신의 기도 내용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루어지 않는 것이 더 옳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기도자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기도가 이루어지면 나의 하나님, 좋은 하나님이요,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의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가장 먼저 드린 구체적인 기도가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자체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제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구하오니, 하나님만 내 곁에 계시고, 제가 하나님 곁에 늘 가까이 거할 수 있는 복을 내려 주옵소서이렇게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복나와 내 가족이 복 받기 원하신다면, 우리가 드려야 하는 가장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당연하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야베스는 기도를 막연하게 드린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렸으며,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정되기를 바랐고, 또한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내용을 우리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기도 하실 때 이런 내용으로 기도 하심으로, 우리의 지경(활동 범위)이 넓어지고, 주의 손으로 도움을 받으며 모든 환난과 근심을 벗어나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야베스의 기도의 결과는 즉각적인 응답이었습니다.

 

10절 하반절에,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열심을 내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하고,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면 반드시 응답하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베스와 같이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으며, 구체적으로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면 신속한 응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는 응답 하시지 않을까? 정말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시는 것일까? 기도가 내게 무슨 유익이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과 불신과 원망이 기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당장의 응답이 없으므로 인내하지 못하고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멈추면 영원히 하나님은 무응답으로 침묵하실 것입니다.

 

최근에 여러분에게 기도 응답이 없으시다면 내가 진심으로 기도 하지 않았 구나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끓고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에 매달리십시오. 정말 진심은 통하는 일이 일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이 기쁨의 소식이, 올 한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기도 제목 위에 강력한 성령의 응답하심으로 역사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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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처지와 환경에 낙심하여 기도를 게을리 했던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야베스와 같이, 간절히 부르짖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기도의 제목들을 아뢰고, 기쁨의 응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의 시간을 지켜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귀중한 사람 (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시간에 귀중한 성도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사람은 자기 자신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만족을 위해 세상의 온갖 것을 취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만족은 물거품과 같고, 도리어 끝없는 허무주의에 빠져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예가 바로 미국의 여배우였던 마릴린 먼로입니다. 알려진 대로 만인의 연인이요, 수많은 남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마릴린 먼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수백 통의 팬레터도 매일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 닫는 해수욕장과 같다.”는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최소한 부모가 나를 귀히 여긴다는 것을 잠시라고 생각했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육신적인 행복의 조건이란 조금도 갖지 못한 한 불행한 사람이 하나님께 가장 사랑 받고 귀중한 사람이 된 사람이 나타납니다야베스입니다. 세상 말로 표현하면 운이 없고 팔자가 세고 날 때부터 불운을 타고난 지독하게 복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하였고, 날 때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성장하면서도 계속적인 환란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했더니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지역을 넓히시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고 복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런 야베스를 가리켜 귀중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한 자가 될까요?


1. 존귀의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이처럼 수고로이 낳아야 합니다. 성경에 수로고이 낳는다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 안에서 구원 받고 복 받은 존귀한 자라는 그 복음에 견고히 서서 행하며 싸워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갈4: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이 말씀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에서 떠나 잘못된 율법사상으로 돌아갔을 때 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진리의 복음에 서게 하는 것이 해산의 수고와 같았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예수 앞에 나아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예수 앞에 나와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고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힘이 듭니까? 자기 육신과 환경만 바라보고 예수 안의 새 자화상과 승리와 복락을 망각합니다. 진리에 선다해도 여호수아처럼 그 진리 가지고 싸워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모릅니다.


복음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그 진리를 고집하고 그 안에 서서 감사할 뿐 아니라 현실의 악과 환경을 물리치며 그 구원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승리적 복음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귀합니다.


그래서 골2:6-7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 믿음으로 현실과 싸워 믿음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를 정복하고 아이성을 정복하고 아모리 다섯 왕을 사로잡고 가나안 북방 남방을 모두 정복하고 가나안의 31왕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자기 믿음을 완성할 것을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전진은 믿음의 행진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져도 진리에 믿음에 서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거룩을 쟁취하고 승리를 쟁취하고 부요를 쟁취하고 건강을 쟁취하고 자유를 쟁취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사람 만들기가 해산하는 수고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 되면 그는 참으로 존귀한 자입니다.


2.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했는데 야베스가 모든 형제보다 더 존귀한 자였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쓰이는 존귀한 자에 대한 용례를 보면 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왕족이나 귀족처럼 권력과 재력을 겸비한 뛰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혹은 뛰어난 제사장이나 아주 훌륭한 율법학자에게도 붙여졌고 메시아의 영광을 묘사하는데도 쓰였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무엇을 가리킵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행1:8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랬습니다. 권능은 권세와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일지라도 세상이 악해서 성령의 능력 없이 참 성도가 될 수 없고 맡기신 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각하지 못해서 그러지 지금 모두가 얼마나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있는지 모릅니다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악도 어떤 대적도 물리치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갈망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물질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 존귀하지만 성령 충만 받은 성도가 더욱 존귀합니다. 성령 충만한 한 사람이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그래서 바울은 말만하고 교만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 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백부장 고넬료와 같이 겸손히 늘 기도하고 사랑하고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전승에 의하면 고넬료는 자기 가정과 부하들을 복음화시키고 그들과 함께 로마 복음화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얼마나 존귀하고 귀한 사람입니까?


3. 생명 바쳐 기도하는 사람이 존귀합니다.


야베스가 누구에게 기도했습니까?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야베스가 생각한 기도이 모델은 야곱이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인 호칭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이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있는데, 그 중에 야곱의 하나님를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새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했을까요?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받았습니다. 그 때 천사를 붙들고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나이다 하면서 환도뼈를 쳐도 놓지 않고 천사와 끝까지 씨름하며 복을 구하다 그 이름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환난과 시련의 사람입니다. 그가 외삼촌의 집에 갈 때 너무나도 절박하여 하나님의 보장을 간구했고 20년이 지난 후에도 평안히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형이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해치러 나온 순간입니다. 이 얼마나 절박한 순간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갑자기 나타난 천사와 밤새 씨름했고 환도뼈가 부러지면서도 놓지 않고 하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이랬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복 주시지 않으면 물러가지 않겠다는 간절한 기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찾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눅18:8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셨습니다. 이 때 비유로 하신 말씀이 억울한 일 만난 과부의 간청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 않는 재판관이지만 하도 간청하니까 더 괴롭힘을 당하기 싫어서 들어줍니다. 바로 그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의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어떤 교사는 매일 4시간씩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합니다. 남북통일도 좋지만 평화협정 맺고 미군철수하여 북한의 뜻대로 되면 비극입니다그래서 날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대통령에게 충심어린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강하고 담대하고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기도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귀중한 존재입니다.


4. 비전을 가진 사람이 귀합니다.


다시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을 보세요. 그의 마음에는 푸른 꿈이 보입니다. 지역을 넓게 해달라 했습니다.

 

이처럼 겨우 나 살 일만 생각하지 말고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나를 통해 교회가 살고 사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나아가 인류에게 공헌할 사람이 될 수 없을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푸른 꿈을 가지고 하겠다는 사람이 일군이지 못하겠다는 사람은 일군이 아닙니다. 최고의 거침돌은 비전 없는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자리만 차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올스톱입니다.

 

5. 자기를 위해서는 소박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10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그리고 야베스의 좀 더 구체적인 간구는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육신을 위한 것은 소박해도 됩니다. 여러분 잘되시기 바랍니다. 높은 사람도 되시고 성공하여 부자도 되세요.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박하게 사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지만 섬김을 위해 가난하게 사심의 본을 보이셨습니다바울도 그랬습니다. 이 진리가 구제 연보의 바탕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경직 목사님이 본을 보였습니다세상에서 다 받아버리면 하나님 앞에 상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존귀한 성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존귀의 복음을 믿고 이 복음에 서서 끝까지 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예배하다 성령 충만과 권능을 받아 예수 증인되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생명 바쳐 기도하며, 아름답고 푸른 꿈을 가지고 충성하되, 자기를 위해서는 늘 소박한 자가 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복의 복의 보너스 (대상 4:9-10)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시간에 복의 복의 보너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가 하루는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무슨 책을 읽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대답하기를 이 책은 너무 나열식이고, 읽기에 지루하고, 구성도 엉망이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책인가 확인을 해 보니 전화번호부 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구약성경 역대상을 읽어보시면 1장부터 9장까지 계속 족보가 나옵니다. 500명이 넘는 생소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성경 본문은 읽어도 별로 은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지루해서 건너뜁니다.

 

 

그런데 4장에 유다지파의 6대손으로 46명의 이름이 계속되다가 중간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야베스인데 야베스만은 나열식이 아니라 그에 대해서 비록 짧지만 비교적 자세한 설명에다가 그가 기도하여 복 받은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지루한 족보를 읽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보너스를 준비해 뒀다가 주시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인기 있는 것은 이 지상의 복일지라도 하나님께 구할 때 이렇게 풍성하게 주시는구나 하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라는 책을 쓴 부르스 윌킨스(Dr. Bruce Wilkinson) 목사는 이 책으로 미국에서 발행되자마자 500만부 이상 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 뿐 아니라 이 기도를 30년이 넘도록 드리고 있는데 놀라운 복이 임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부러우시죠?

 

 

그러나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야베스의 기도를 신약적으로 깊이 분석해 보면 이 기도는 성도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보너스로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너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6:30-33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지상의 보너스를 주십니다. 특히 그의 나라와 그의 의, 하나님 나라가 성령으로 임하기를 갈망하며 그 앞에 바로 살기를 원하여 몸부림치는 자에게 구하지 않은 지상의 것도 넘치게 채워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0:29-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답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마치 역대상을 읽는 자에게 보너스의 힌트를 느끼게 한 것처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보너스라는 말입니다. 역대상의 족보가 하나님 나라가 그 주제라는 점에서 신약과 일맥상통한 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즉 신약의 야베스는 바로 거듭난 우리 성도들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한 대로 야베스의 뜻은 '고통'‘수고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약의 성도의 예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피 흘려 구원하신 자녀요, 피눈물 나는 기도와 전도로 믿게 된 사람 라는 점에서 진정 수로로이 낳은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갈4: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베스의 복의 자격자이며, 예수 안에서 그 복을 이미 주신바 되었기에 이제는 그것을 누리는 것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야베스가 한 기도의 내용에 매료되는데 기도의 내용에 그렇게 매료될 필요가 없습니다. 알고보면 새로운 것 아니고 매일 구했던 것들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확실히 더하여 주시는데 기도의 내용에 매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사실 부르스 윌킨스가 쓴 야베스의 기도가 나온 이후 비로소 용기를 내어 이런 기도 내용으로 드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은 아 이런 기도를 본격적으로 드려도 되긴 되는구나. 이런 기도를 드리고 그렇게 많은 응답을 받았다니 우리도 부르스 윌킨스처럼 구하자. 그러긴 해도 여기에 온전히 올인하기에는 조금은 미심쩍단 말이야.’ 하면서 한 자락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믿음이 깊고 신학적으로 정립이 된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한 자락의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말씀 후에 한 자락의 마음이라면 사탄의 음성이지만, 어떤 말씀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조금은 아닐 때 그 한 자락의 마음이란 아니야. 아니야. 거기엔 더 깊은 뜻이 있어.’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수고한 자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27:57)라고 했고, 산헤드린 공회원 중에서도 존경 받는 의원이요(15:43),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15: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큰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 부자의 묘실에 안장했던 것을 보세요. 부자였습니다. 19: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지고 온지라.” 백 리트라면 30kg에 해당하는데 이건 왕의 장례에나 사용될 만큼의 많은 향품입니다.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직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야베스가 받은 모든 복을 다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럼 당시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 말고도 있을 텐데 그들만 복 받았나요? 그러나 성경은 소수를 모본으로 한 샘플성 메시지가 많다는 점과 마6:33과 마10:29-30의 말씀에 의거할 때 보편화시켜도 될 말씀입니다.

 

 

비록 그들은 박해가 두려워 배후에서 은휘하긴 했지만 날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자기를 단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야베스의 복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요, 또 야베스의 복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면서 예수님의 신부되기에 합당하게 자기를 단장하는데 전력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너스입니다.

 

 

야베스가 무엇이라 기도했습니까?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개역성경에는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 기도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나의 지경을 넓혀 달라. 이 기도는 내 삶의 영향력을 확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녀도 경제도 명예도 권력도 선한 일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주의 손으로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영육 간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두 가지이지만 우리의 모든 삶을 총망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가 죄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혹 건강 때문에 혹은 경제 때문에 구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지나치면 그것이 기복신앙 번영신학 성공신학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어쩌면 자기를 위한 기도이기가 쉬운데 여기에 일생 매달리는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님은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하셨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하셨으므로 이 말씀이 우리가 일생 매달려야 할 당당한 기도제목입니다. 그리고 이 속에 야베스의 복이 보너스로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의 기도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행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신령한 복으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새해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욱 힘쓰십시다. 기도와 전도에 힘써 이 땅에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기를 갈망하십시다. 기도와 전도, 두 가지 다 잘하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우선 기도부터 열심히 하십시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면서 신랑 되신 주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신부단장 열심히 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새해에는 야베스가 구했던 것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것도 책임져 주시는 복의 복을 더하시는 놀라운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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