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자   왕상18:30 - 40

찬 양 : 183, 184, 190, 197, 185.

 

할렐루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오늘도 이 시간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이 빠르다고 하지만 새해가 되니까 정말로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1월이 되는가 했더니 벌써 오늘이 9일입니다.

 

세월은 이렇게 빠르게 다가와서 또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가는 세월을 잡지 못하고 흘러가는 냇물을 막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조록 우리교회 성도들은 금년한해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절호의 찬스라고 믿고 열심히 힘쓰고 애써서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 하나님게서는 반드시 그런 우리교회 성도들을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아 멘!>

열심히 사모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혜도 풍성하게 주시며 또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자손 천대까지 내려 주실줄로 믿습니다.<아 멘>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아 멘!>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아 멘!>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 하나님은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며(9:29),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시며(16:27),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6:7), 사모하는 대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07:9)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의 제7대왕 아합왕의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모든 제물을 사른 내용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불은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것입니다. 또 기독교의 역사도 불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불의 역사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불이 직접 하늘에서 떨어져서 역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떨어져 모든 제물을 살랐습니다.

성전에서 제단에 번제를 드릴 때도 하나님의 불이 역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잘못하여 제단에서 불이 나와서 두 사람을 태워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세례요한은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3:11)고 말씀하였고,

예수님도 마지막 승천 하시기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4-5)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오순절에 120명의 신도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2,000년 기독교의 역사를 통하여 무시로 내렸고 역사 하여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이 성령의 불이 이 제단에, 여러분들의 심령마다 뜨겁게 역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성경을 보면 불과 함께 나타나서, 불같이 일하다가, 불 수레 타고 승천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혼란기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일으킨 선지자입니다. 3년 반 동안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않게 하기도 하였고, 또 기도하여 비가 내리게도 하였고, 갈멜산에서는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바알과 아세라 신의 추종자들 850명을 죽이기도 하였으며, 마지막 승천할 때에는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유유히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와 같은 기적의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 위에서 기도의 대결을 벌렸던 내용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엘리야가 한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1) 이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이(하나님) 하나님 됨을 알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어리석고 악한 백성들이 악한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의 회유와 강압에 못 이겨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하고 아합왕을 비롯하여 나라 안의 모든 위정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 엘리야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됨을 알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제가 이래 뵈도 하나님이 많은 사람 중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백성들이 나를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하나님이 뽑아 세워주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아 멘>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3) 제가 행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한 것임을 이 백성들로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종이며,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이 세 가지의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무슨 기도라도 하나님은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야의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많은 교인들이 적당주의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 아기들의 재롱이 귀엽고 천진난만하여도 그 재롱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롱은 아기들이 떨어야 귀엽습니다. 커다란 아이들이나 어른이 재롱을 부린다면 귀엽기는커녕 징그럽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신앙도 언제까지 어린아이와 같이 재롱이나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나와서도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지 않고 명상이나 하고 아니면 졸기나 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수양이나 하고 명상에 잠기는 곳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시간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나왔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뽑아주신 것을 알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즐겨 행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응답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엘리야가 이스라엘 나라에 나타나 역사한 것은 나라가 부패하고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유일신으로 섬기면서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아합왕은 나라는 다스리지 않고 이세벨 왕후의 치마폭에 가려서 향락에만 도취되었고, 국민들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도박과 한탕주의와, 음란과, 도적질로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잡히는 대로 죽임을 당하고 성전은 우상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대가, 사람들이, 또한 교회가, 혼돈하고 흑암이 그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불로 나타나 역사 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예배하는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영혼 속에 육체 속에 혼돈과 흑암과 무질서와 죄악이 있다면 여호와의 불로 소멸되어 정결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피곤하십니까? 현대 사회의 큰 질병은 바로 피곤과 긴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불을 받으면 이런 피곤과 긴장이 모두 사라집니다. <아 멘>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같은 시대 속에서, 같은 시간을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보다 10, 100배의 업적을 남기면서 살고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술이나 먹으면서 허송세월 하는 사람도 있고 일하기 실어서 얻어먹으며 노숙으로 소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난 199711월에 발생한 IMF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퇴출되어 일자리를 잃고 방황을 하는 실업자가 10만 명을 넘었는데 요즘도 서울이나 대도시에는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일하기 싫어서 그렇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무료 급식소에 가서 밥 얻어먹고 또 아프면 무료 진료소에 가서 진료 받고 가끔씩은 교회나 종교단체에서 불러다가 잔치도 해 주고 위로도 해주니까 그 생활에 길들여져서 그렇게 지낸답니다. 그래서 노숙도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들이면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늘 은혜가 충만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서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저녁예배는 아예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만 일삼는 교인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성령의 불이 없기 때문입니다. M. Luhter, Jhan. Wesley, 존 칼뱅, 무디, 빌리그래함, 로버트슐러, 피터 왜그너, 같은 사람들이 모두가 성령의 불이 있었기에 남보다 열 배, 백배의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습니다.

OH, my God. Now here I Stand! <오 나의 하나님,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모세가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령의 불을 받고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고,

사도행전의 사도들도 오순절 날에 성령의 불을 받고서 비로소 나가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도 이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냥불 만치 또 어떤 사람은 반딧불 만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불을 끄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등불의 심지도 마저 끄지 않으신다고(12:20)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불을 붙잡고 기도하여 키워야 합니다. 엘리야의 불이 될 때까지 그 불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작은 성냥불 하나가 온 산을 태우고 재산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습니다.

 

 

1. 엘리야 시대는 성령의 불이 꺼진 시대였습니다.

 

(1) 여호와의 제단에 거룩한 불이 없었습니다.

 

우상이 판을 치면 하나님의 불은 떠나갑니다. 우리들의 심령 속에도 하나님 외에 세상 것들이 차 있으면 성령의 불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항상 비어 있어야 합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2) 제사장들 속에도 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아합왕에 잡혀서 모두가 죽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변절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3) 또 백성들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형편을 가슴아파하는 사람도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불을 사모하고 성령의 불을 받아서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의 이 강산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마다 성령의 불이 충만해야 합니다.

주여! 내 가슴에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교회에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에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기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불, 여호와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충만히 받아서 이 시대에 엘리야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2. 그러면 여호와의 불은 언제 임합니까?

 

(1) 엘리야가 갈멜산에 제단을 쌓았을 때에 그 제단 위에 불이 임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불은 반드시 제단에 내립니다.<아 멘!>

우리들은 하나님께 항상 예배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아 멘!>

제단이 메마르면 성령의 불이 꺼집니다.

여러분의 주일성수 제단, 가정 제단, 심령 제단, 감사의 제단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불이 내리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2) 기도할 때 불이 내렸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왕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적입니다. 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엘리야가 기도할 때 불이 내리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맞아죽든지 찢겨죽을 판입니다.

본문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간절히 기도하니까 불이 내렸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이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할 때 불이 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3) 훼파된 여호와의 제단을 수리하고 온전한 제물을 드릴 때 불이 내렸습니다.

 

본문 30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여러분들의 심령의 제단, 믿음의 제단이 파괴되지 않았습니까? 수리하고 온전한 제물을 드리세요. 그러면 여호와의 불이 반드시 임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불이 내린 후의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1)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 한사람의 불의 역사가 온 민족을 구원하고 영적 각성을 일으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사람이 엘리야와 같이 불의 역사가 일어날 때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 줄 믿습니다.<아 멘!>

영국의 존 웨슬리 목사님이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에 부패하고 타락한 영국 사회가 변화가 되었고 바로 감리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문제입니다. 나 한사람이 성령 받지 못하고 은혜가 없으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2) 3년 반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고 그쳤던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축복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응답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은혜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성도 여러분!!

응답이 없습니까? 축복의 단비가 그쳤습니까? 회개하여 여호와의 성령 불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59:1-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성령의 성령의 불길 성령 불이야

온 천하 세계만방에 퍼치자 성령의 불길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 어떤 이들은 부모님 때에, 또 어떤 이들은 할아버지 때에, 또 어떤 이들은 자기 당대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 백성이 되었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구원의 기쁨을 지금 잃어버렸습니다. 이제라도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잃어버린 은혜를 다시 찾아서 회복해야 합니다.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제단에 온전한 제물을 드리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의 불로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뚝 우뚝 세움을 받아 악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붙들려 귀하게 쓰임 받는 일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가 잘 믿던 못 믿던 우리들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시여 구하옵나니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나의 하는 일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리고 불로 응답해 주옵소서.

성령의 불, 은혜의 불, 생명의 불, 변화의 불, 기적의 불을

이 시간에 충만하게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불을 내려 응답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회복의 은혜를 받고 왕상 19:1-18, 요 21:15-22

로버트 로빈슨(Robert Robinson)은 8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는 14살 때에 런던으로 가서 이발 기술을 배웠지만 그곳에서 못된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급기야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17세 되던 해 그 당시의 유명한 조지 휫필드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지 못하였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를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찬송가의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가 그가 쓴 시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도 점차 식어갔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방황하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시집을 읽다가 그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런 훌륭한 시를 읽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여인이 펼쳐 놓고 읽고 있던 시는 자기가 지은 ‘복의 근원 강림하사’이었습니다.

현재 그가 가진 신앙과 동떨어진 시라 생각되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지만 여인은 끈질기게 그 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믿음이 동요될 때마다 이 시를 통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었다고 간증하면서 그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체념한 그는 그녀가 읽어주는 시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를 들으며 그는 첫 믿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정식교육을 받아 유명한 케임브리지대학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찬송가 28장의 가사는 250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복이 많아 뜨거운 신앙이 식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여 우리의 식어진 신앙을 다시 불붙여 주시려 지금도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로빈슨 목사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한 때 뜨거운 믿음으로 사역을 감당했던 사역자들도 때로 깊은 신앙의 침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받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신앙의 침체를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구약 본문 왕상19:4에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했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앗세라 거짓 선지자 850명을 상대로 제단에 불이 떨어지는 표적을 통해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백성들 앞에 밝혀 모두 척결한 후의 일입니다. 이세벨 왕비는 이 소식을 듣고 반드시 복수하여 엘리야를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에 찬 말을 듣고 낙망하여 한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한 엘리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BC 9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일정한 주거가 없이 광야에 기거하면서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다녔습니다(왕하1:8). 그는 신앙과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으로 아합왕의 잘못을 거침없이 담대히 책망했고, 그 당시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던 바알과 앗세라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척결에도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용기의 사람, 신앙심이 깊은 사람, 정의감과 애국심이 강한 사람 등 등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엘리야의 활동에 관한 기사는 구약 열왕기상 17장에서 21장 사이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의 활동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행한 능력과 기적들입니다. 기근의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 때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통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이 그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왕상17:8-16)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주께 기도하여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상17:17-24) 백성들의 죄에 대한 징계로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가 그의 간절한 기도로 가물었던 땅에 비가 오게 되었습니다.(왕상 18장)

이처럼 담대하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가진 뛰어난 신앙을 가지고 범죄 한 아합왕을 책망하고, 기적을 행하고, 바알우상의 전을 무너뜨리던 엘리야가 본문의 말씀을 보면 탈진과 무력감과 상실감에 빠져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 당시 아합왕의 왕후는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인 이세벨이었습니다. 이세벨은 그가 섬기던 바알 신의 선지자들을 엘리야가 다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 는 통첩을 했고 그 통첩을 받은 엘리야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을 치다가 로뎀 나무 밑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 요21:15에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나를 따르라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선뜻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그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따르면서 주께서 죄를 용서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며,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봤고, 자기도 능력을 행했었습니다. 주께서 훌륭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시고, 칭찬을 들었던 그였습니다. 한 때 자신은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른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제 베드로에게서 신앙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열심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따르기도 하고, 열심히 사역도 하다가 엘리야처럼,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처럼 때로 주님을 거부하고 자주 실수 하고, 첫 사랑을 잊고,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낙심 가운데 처하기도 합니다. 그 때 우리에게는 주님과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한때는 많은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비밀로 해야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던 암호인사가 있었는데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숲속에 들어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암호인사는 `당신은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신앙을 버리지 않고 숲속 교회당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하는 말을 대신한 것입니다. 이 암호인사에서 우리는 귀중한 신앙생활의 비결을 배웁니다. 우리들도 `당신의 풀밭은 여전히 푸릅니까?`하는 질문을 언제나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야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박해와 환란 보다 우리의 신앙을 와해시키는 것은 생활의 풍요함에서 오는 신앙생활의 나태함과 세상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의 침체를 벗어나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침체 중에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늘 감싸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왕상19:5-7에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생활 하다 어려움 당할 때 홀로 두거나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아픔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시어 같이 아파하시고, 함께 고난을 당하십니다.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위로 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성도가 신앙의 침체를 만나고, 낙심하게 되는 요인을 보면, *나만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물으실 때, 본문 왕상 19:10에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홀로 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독한 것입니다. 55세 된 남편이 성인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미망인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채 고통 하다가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혼자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나는 그이 곁으로 가고 싶다. 그이가 나를 기다린다." 는 요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딸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시집식구들이, 가까운 이웃동네에는 친정집이, 여기 저기 친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이해하고 돕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는 혼자다. 나는 홀로 남았다" 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로웠고, 고독했고, 우울했고, 그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도들 곁에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만 외롭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바알을 숭배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자 7,000명이 남아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생명의 위협 때문입니다. 왕상19:10 하반 절에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고, 14절 끝에서도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까봐 겁내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19:4를 보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산 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이세벨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손에 죽고 싶습니다. 저를 데려가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실패, 이별, 고통, 명예를 잃는 것, 원한, 억울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입니다. 그것은 생의 종지부이며 마침표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담하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종착역이고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출발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면 죽음 앞에서도 담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신앙 침체에 빠져 낙심하여 다시 옛 직업으로 돌아 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께서 찾아와 주셔서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서로 믿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일이요, 또 하나 가장 불행한 일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불행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요 괴로운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책인 동시에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믿음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이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을 가리켜 믿음의 사도요 사랑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를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잃어버린 신앙과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시간에도 예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사랑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소망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지금도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가 신앙의 침체를 만날 때에도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중보하고 계시는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성령께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심을 믿고 다시 침체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회복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엘리야가 영적인 면에서 위대한 일들을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엘리야는 영적인 면에서 탈진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입력하는 것보다 출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다보면 몇 년에 한번 씩 밧데리를 교환해야 합니다. 밧데리 안에 있는 전기가 다 방전이 되면 시동을 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운전자들은 흔히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점프 선을 이용해서 다른 자동차의 밧데리와 자신의 자동차 밧데리를 연결하여 충전 시키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점프 선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는 일은 등한히 하면서 열심히 영적인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인 고갈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고갈 될 때 침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졌던 엘리야가 천사의 어루만짐과 천사를 통해 예비한 물과 떡을 먹고서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침체에서 회복이 되었습니다. 8절에 보면 엘리야는 힘을 내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갑니다. 여기 호렙산은 모세가 양을 치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요, 부르심을 받은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산, 하나님의 산(8절)의 다른 이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영적인 유익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유익이 되고 정신적으로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라고 하셨다. 엘리야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람, 지진, 불이 엄청난 위력으로 차례로 지나갔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드럽고 조용하게 세미한 소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괴로워하고, 때로 잘 못 갈 때도 잠잠히 지켜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여전히 조용하게 머물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고,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마친 후 영광스럽게도 불 병거를 타고 승천하는 영광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역시 다시 찾아와 만나 주신 예수님 때문에 지금 새 사람으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베드로는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믿음과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 하셨습니다.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믿어 주고 당부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주시마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말씀처럼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과 믿고 따르던 무리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여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주와 복음을 전하다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죽임 당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죽기까지 충성했고, 승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받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훌륭한 신앙인이라도 신앙의 침체를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침체 중에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이 늘 감싸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회복되어야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아멘.


믿음의 간구와 역사        왕상18:30-41, 7:1-10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가 부흥이 되어 교회를 짓기 위해 야산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야산을 구입하고 보니 산을 깎아 성전을 짓는데 먼저 흙을 버리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게 될 것이고, 많은 중장비를 동원하는데 예산이 너무나 많이 들어갈 것으로 판단되어 온 성도들의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당장 성전을 지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한 집사님이 "믿으면 산이 옮겨진다고 했는데 우리 기도합시다!"하고 제안을 하여 온 교우들이 처음엔 반신반의 하면서 서로 모여서 산을 옮겨져서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우리가 대책이 없이 기도만으로 산이 옮겨질까 의심도 하고 기약 없는 기도라고 생각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난 후, 한 중년의 신사가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자기는 모 회사의 사장인데 이번에 늪지대를 싸게 매입을 했는데 늪지대를 메우고 복토하여야 하므로 저산의 흙을 팔라고 간청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말을 듣고 "글쎄요"라고 무심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가격을 더 달라고 하는 줄로 생각하고 사장은 급한 심정으로 처음보다 배로 값을 치르겠다고 하여 결국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회사에서 동원한 중장비로 산을 말끔히 없애서 늪지대를 복토하게 되었고 교회는 기도로 간청한 것처럼 산이 없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흙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아주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간구는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게 됩니다. 오늘 두 본문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의 간구와 역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도구로 쓰십니다.

 

오늘 구약 본문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당시의 이교도인 바알 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400, 도합850명과 갈멜 산에서 "참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줌으로서 거짓된 우상을 섬기던 850명을 쳐 물리고 대승리를 가져온 후 하나님께 기도하여 3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이 열리면서 메말랐던 땅위에 큰비가 내리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길르앗 디셉 사람 엘리야는 북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B.C. 9세기경)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7대 왕인 아합은 극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였던 간교한 왕비 이세벨은 나라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끌어드려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대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게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나라에 3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재앙을 내려 온 나라가 기근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가운데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숨어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지만 엘리야는 악한 통치자와 맞서 직언으로 잘못을 책망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왕에게 임할 심판이나,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했을 때 아합의 잘못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이러한 직언 때문에 아합의 미움을 받고 박해도 받았지만, 아합 왕은 스스로 겸비하여 자신의 죄악으로 인한 저주를 피하려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박해 중에서도 기이한 이적으로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동원하여 먹을 것을 제공하시고, 사르밧 과부를 통해 기적적으로 먹을 것을 공급 하셨으며, 천사를 통해 위로 하시고, 떡과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가 끝까지 사명을 마치게 하신 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림을 받게 하실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 역시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백부장은 정복 군 로마의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유대 장로들은 본문 눅7:4-5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라고 그가 한 일에 대해 칭찬했습니다.

 

백부장이 병든 하인을 위해 주님의 도움을 청했을 때 주님은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다 생각하여 수고스럽게 가시지 않아도 여기서 말씀만 하시면 자기의 종이 고침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그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큰 믿음의 사람을 만나시면 기뻐하시고 칭찬 하십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도 항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살면서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됩시다.

 

2.믿음의 간구는 하늘 문이 열리게 하는 통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늘이 열렸다는 말씀이 몇 차례 나오는데 그 말씀을 보면 1)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자에게 하늘 문이 열립니다.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했습니다. 2)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 하늘 문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했습니다. 여기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좋은 것으로 드리는 십일조, 인색함이 없이 기쁨으로 드리는 십일조, 일부가 아닌 소득의 1/10을 드리는 분명한 십일조, 믿음과 감사로 드리는 십일조를 말합니다. 3)성령이 충만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7:55-56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했습니다. 4)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10:9-11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역시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응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왕상18:37-38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했습니다. 왕상18:42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5절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했습니다.

 

신약 본문 눅7: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간구는 하늘의 문을 열어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어느 사모님의 간증입니다. 그 사모님의 이름은 윤석정 사모님인데, 22세 때 결혼을 했습니다. 신랑이 폐병3기 환자였는데 죽으면 총각귀신이 된다고 해서 그 부모님들이 신랑을 건강하다 속여서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결혼을 한 후 3개월 만에 남편이 병으로 죽었는데 그 사모님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한참동안 시체 곁에서 자신의 신세가 너무 비참해서 울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죽은 남편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 사모님은 기도하면서 남편을 40세 까지만 살려주세요.” 하고 밤새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50세만 되어도 노인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모님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큰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뜨고 보니 죽은 남편이 살아서 숨을 쉬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사모님의 남편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영등포구 독산동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목사님 나이가 40세가 되니까 폐병이 재발되어 27년을 더 사시다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때 사모님은 목사님과 21녀를 낳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 중에 있었는데 목사님이 소천하시니 한편으로는 감사도 하지만 그래도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자녀들을 키울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슬펐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염치 불구하고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주셨는데 나의 남편의 생명도 10년만 더 연장시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은 다시 사모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13년을 연장시켜 주셔서 교회를 크게 건축한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 가셨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은 자도 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간구하여 응답을 받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믿음의 사람은 항상 겸손히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엘리야는 외로운 싸움을 싸우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만 남았노라고 하며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왕상20:10)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짓 선지자 850명을 척결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다 처리하게 했을까요?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죄를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제를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 단호히 끊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왕상18:1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한 말씀을 믿고 그는 엎드려 기도하기를 일곱 번이나 징조가 보일 때까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환이 일곱 번째 가서 바다에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일어나고 있다 보고하니 왕에게 비오기 전에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는 손바닥만 한 구름의 징조를 보면서 응답을 확신한 것입니다.

 

우리도 응답 받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로 기도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 할 때 응답하시고 이루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도 문제를 믿음으로 예수님께 아뢰고, 겸손히 주님의 은총을 구했을 때 그 시로 주님의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하인이 건강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개월만 비가 오지 않아도 논밭이 갈라지고, 식수가 없다고 난리인데 3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의 사람 엘리야는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면서 그의 귀에는 큰 비의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11:1-2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했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작은 징조 가운데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 빈민촌에서 가난하게 살던 마르다 베리 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빈민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가난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공장 지대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며 늘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 저 아이들을 위해서 조그만 학교를 세워주고 싶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기도하는데 당시 미국 제일의 부자로 알려진 헨리 포드가 생각났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자꾸 베리에게 헨리 포드를 찾아가 보라고 권고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베리는 이를 기도의 응답이요, 성령의 권고로 받아들이고 헨리 포드의 사무실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 제목하며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헨리 포드는 지갑 속에서 1 달러 한 장을 꺼내 베리에게 주며 사무실에서 내 보냈습니다. 완전히 거지 취급당하고, 거절당한 것입니다.

 

마르다 베리 여사는 다시 골방에 들어가 1 달러를 손에 들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선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도하고 있는 중에 헨리 포드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기도의 응답이요, 성령의 권고로 받아들이고 헨리 포드를 찾아갔는데, 저에게 1 달러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1 달러(1200)를 가지고 어찌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 때 그녀의 마음에 꽃씨를 사서 심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꽃씨를 사들고 와서 정성껏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꽃이 피어나자 그 꽃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7년이나 반복하는 동안 꽃밭은 점점 넓어져 갔고, 수입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드디어 부지런히 꽃을 팔아 모은 돈으로 조그만 막사를 지어 빈민을 위한 학교를 열었습니다. 학교를 개교하는 그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자리에 베리는 헨리 포드를 초청했습니다. 그녀는 개교식장에서 이 막사가 세워지게 된 배경과 이 막사는 빈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운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소상하게 설명했습니다. 끝으로 당신이 제게 주신 1 달러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노라!"고 포드에게 감사를 올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헨리 포드는 그 자리에서 즉각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학교가 LA 근교에 지금도 자리 잡고 있는 베리 스쿨입니다.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케 되기를 바란다고 기도하며 믿음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믿음의 간구와 역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1.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도구로 쓰십니다.

 

2.믿음의 간구는 하늘 문이 열리게 하는 통로입니다.

 

3.믿음의 사람은 항상 겸손히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아멘.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 왕상2:1-12, 딤후2:1-13

어느 교회에 출석하던 자매 한 분이 장사 차 멀리 갔다가 그만 출산 때가 되어서 그 곳에서 해산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잘 믿는 분으로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스스로 깨달은 다음에는 같이 갔던 자기 남편을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 오래지 아니해서 주님 계신 데로 갈 터인데 나를 위해서 조금도 염려하지마세요. 내가 십일조를 드리던 것이 어디 있는데 그것을 교회에 가져다 드리고 또 여신도 회비를 내가 어디에 마련해 둔 것이 있는데 그것도 꼭 여신도회에 가져다주세요."

그 부인에게는 어린애가 일곱이 있었습니다. 여섯이 딸이고 하나가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일곱 살 된 아들이 있었는데 이아들을 잘 길러서 다음에 목사가 되게 해달라는 유언을 하고 고이 잠자듯 세상을 떠났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사망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자녀에 대한 소망도 불신앙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말씀은 임종을 앞둔 다윗이 뒤를 이어 왕이 될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당부한 말씀입니다. 신약 본문은 바울이 옥중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한 내용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다윗의 유언은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당부입니다.

대장부란 어떤 모습일까요? 키가 크고 몸집이 크고 힘이 있다고 대장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장부란 먼저, 생각이 바르고 큰 사람입니다. 잠23:7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생각이 그 사람됨을 결정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의 수필가 로프 웰드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 우는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도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바르고 큰 사람이 큰 인물입니다. 다윗이 나라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면서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원 하면서 솔로몬이 생각이 바르고 큰 대장부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우리도 대장부가 되려면 바르고 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땅 평수를 늘리는 것 보다 귀합니다. 다음에, 마음이 겸손하고 넓은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 큰 인물이 되지 못한 것은 대장부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이 교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사울은 자기 사위 다윗이 골리앗 장수를 죽인 다음에 여인들이 자기와 다윗을 비교하는 노래를 듣고 시기와 질투심이 불타면서 그만 악신에게 사로잡혀 사위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겸손하고 넓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온유 겸손한 넓은 마음을 갖기를 힘써야 합니다. 빌2:5-7 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했습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여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318명으로 5개국 연합군을 쳤습니다. 모세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노구의 몸 가지고 지팡이 하나로 바로 왕 앞에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믿음 가지고 여리고를 돌았습니다. 마침내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찾지 했습니다. 갈렙은 비록 나이는 85세였지만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아직 강대한 적들이 남아 있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말했습니다. 다윗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찾는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도 낙심치 않았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온갖 박해를 무릅쓰고 주님이 주신 세계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군들은 다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루터도, 칼빈도, 웨슬레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우리 모두 생각이 바르고 큰 사람, 마음이 겸손하고 넓은 사람,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이루는 대장부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성도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시고, 쓰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무엇보다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대장부의 모습은 먼저, 진리를 따르는데 대장부가 되어야합니다. 구약 본문 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신약 본문 9절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했습니다. 신앙의 생명은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가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요14:6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따르려면 결단의 순간들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죽음의 위협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럴 때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과 다니엘,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라면 죽음도 불사하고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신의 지위나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따르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했습니다. 그가 자기를 여러 번 죽이려 했던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삼상14:6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바울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전하다가 수많은 장애물과 고난과 생명의 위기를 당할 때에도 복음을 위해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다음에, 은혜 속에 강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딤후 2:1에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했습니다. 디모데는 당시 에베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였으나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영적으로 연약한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자주 위장병으로 시달리기도 했습니다(딤전5:23). 성격적으로도 소심한 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영적인 충만함이라고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한 자라도 주님 안에서 공급 받는 은혜 속에 강한 자가 되면 능히 모든 일을 감당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섬기며 목회 사역을 감당하는 일은 언제나 애환의 교차요 연속입니다. 이것을 잘 조정하지 못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사역을 계속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단은 교회 지도자들을 흔들어 넘어뜨리려는 책략을 계속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은혜 속에 강하게 되면 어떤 시련도, 시험도, 환경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에 열두 살 된 흑인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들아,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그러나 이 말씀을 꼭 기억 하거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세 가지 보석이 있단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소년은 눈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1년 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고아가 되어 할머니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소년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어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인종차별과 가난과 병마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게 배운 '믿음' '소망' '사랑'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195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정치학자 랠프 번치박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산 어머니의 유언은 절망에 처한 소년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언약을 믿고 바라보는데 대장부가 되어야합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과 선민의 약속입니다. 약속은 소중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에게도 신의를 잃게 됩니다. 사람은 약속을 잘 이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식언 하지 않는 분입니다. 반드시 언약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구약 본문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 언약을 믿는데 대장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믿으면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복음 전하는 사명을 위해 충성하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본문 2절에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당부합니다. 성도는 언약대로 될 것을 믿는데 힘써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리를 따르는데, 은혜 속에 강하게 되는 일에, 언약을 믿고 바라보는 일에 믿음의 대장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담대한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부친 다윗과 같은 고난과 연단의 과정이 없었습니다. 부친이 심어 놓은 믿음의 열매를 따먹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왕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릴 때 번창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말기에는 하나님 말씀으로 금한 이방인과 통혼하여 많은 처첩을 두었고, 결국 그들이 섬기는 온갖 이방 신들을 나라에 끌어들여 우상 천지를 만들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대에 나라가 둘로 나누어져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귀와 영화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고, 은혜를 떠나게 되면 그가 전도서에 기록한 것처럼 헛되고 헛된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성도의 참 복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죄와 싸우고, 대적하는 세력과 싸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믿음의 길,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약 본문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을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본문 3-4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는 자기 생활에 매이지 않고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함이라”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도, 좋은 군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자가 좋은 군사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아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십자가였습니다.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고민하시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외치며 매 맞고 감옥에 갇히며 어떤 고난이 닥쳐도 기쁘게 감당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생명을 살리는 길로 때로 외롭고, 힘들고, 외면당해도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참예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고난에는 위대한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 고난은 영광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진실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훼방하는 모든 것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마음도, 생각도, 바라고 원하는 것도 세상과 다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동참하는 삶을 살 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 때에 성공적인 무역업자 한 사람이 중요한 대사직을 임명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커다란 명예를 베푼 여왕에게 감사했지만 이 직무를 면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자기가 외국에 나가면 자기의 사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외국에 나가 나의 일을 돌보시오. 내가 그대의 일을 돌보리다. 그래서 그분은 대사직을 수락하고 외국에 몇 년 동안 나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왕은 약속한 대로 그의 사업을 아주 잘 돌봐 준 것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성도들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게 되면 나머지 일들은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고난의 발자취를 따르는 담대한 대장부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정리.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1.다윗의 유언은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당부입니다. 대장부란 먼저, 생각이 바르고 큰 사람이요, 다음에, 마음이 겸손하고 넓은 사람이요,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여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2.성도는 믿음의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대장부의 모습은

먼저, 진리를 따르는데 대장부가 되어야하고, 다음에, 은혜 속에 강해야 하며, 그리고, 언약을 믿고 바라보는데 대장부가 되어야합니다.

3.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하는 담대한 대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자 왕상 827-30

 

< 기도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

 

어떤 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가 될 수 있어도

사실상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있다고 믿으면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도 살아있다면 기도하는 삶이 있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살아 계신 아버지로 진실로 믿고 기도해보십시오.

인생은 구하는 대로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생은 자질과 능력보다 "얼마나 열심히 구하느냐?"에 따라 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성공비결입니다.

그러한 기도자가 많이 나타날 때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도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의 일부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4가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를 하면서 기도합니다.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왕상8:27)."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5백년 숙원사업이던 성전건축을 이룬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의 자랑하는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성전은 건축했지만 이 성전에서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얼마나 겸손한 모습입니까? 이런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그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달라!"고 하지 말고 먼저 마음의 겸손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겸손한 마음은 구하지 않고 그냥 눈앞의 축복부터 구합니다.

참 유치합니다. 그런 유치함을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실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소리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억압받고 있는 자기들을 구원해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5일만에 그들은 소리쳤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아라!"

"메시야라면서 왜 우리들 기대한 대로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도 이런 우격다짐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기도하다가 안 들어준다고 하나님 앞에서 "실망했네!"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제일 곤란한 태도는 자기 기대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자기 기대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고, 기대대로 안되면 "실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기 기대대로 자녀가 되지 않는다고 "실망했다!"고 하면 됩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자기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럴 줄 몰랐네!" 하면 됩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대대로 해 주기를 바라고, 내 교우들이 내 기대대로 해 주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런 경우의 기대는 순수한 기대가 아니라 '변형된 지배욕'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놓고 "실망했네!"라는 말을 참 조심해야 합니다.

실망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면 혹시 나의 마음이 높아진 것은 아닌가 살피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다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분이 진리를 찾으러 인도로 가다 비바람을 피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목이 타서 물을 찾다가 바가지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 마셨는데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보니까 그 바가지는 다름 아닌 사람의 해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구토가 나면서 어제 먹은 것과 마신 것을 다 토해내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분은 "인간사가 다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어떤 상황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열정이 대단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다."

좋은 열정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자기를 먼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변화되지 못한 분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할 때, 주변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아도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 저를 변화시킬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은 성전 건축이라는 대 역사를 이루고도 머리를 조아려 기도합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종이 주모를 바람 같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8:28)"

 

그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종의 자세를 가지고 철저히 순종하는 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없이 주어지는 것들은 다 불행의 씨앗일 뿐입니다.

 

우리는 말씀 많이 듣습니다. 왜 듣습니까? 순종하며 살라고 듣는 것입니다.

"! 말씀 좋다"하고 끝나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지"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주일, 매일새벽, 수요일과 금요일 합해서 총 11번 말씀을 듣습니다.

훌륭한 일이지만 "나는 11번 말씀을 듣는 교인이야!"라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하루에 4장씩 읽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 많이 읽기 때문에 훌륭한 성도야!"라고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랑할만한 것이지 말씀 많이 듣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나 오늘 밥을 4시간이나 먹었어!"라고 자랑하면 되겠습니까?

밥을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고, 게다가 좋은 반찬을 먹으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밥 먹고 얻은 에너지를 좋은 데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많이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씀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정으로 가고, 직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전혀 없이 말씀만 듣고 끝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도피'가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사랑을 배워 세상에서 사랑 받는 행동을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힘들다고 교회에 와서 좋은 말씀 듣기만 하고 끝나면 되겠습니까?

 

중세 유럽의 헨리 3세가 가장 부러워했던 삶이 바로 수도사들의 삶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삶을 동경해 그는 수도원 입회신청을 했습니다.

그때 수도원장이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왕이 "!"하고 다짐하니까 수도원장이 바로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맡겨진 백성들을 잘 다스려주십시오."

 

아마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명령을 지금도 계속 내리실 것입니다.

말씀 듣는 것, 기도하는 것 중요하지만, 그렇게 힘을 얻어 세상으로 가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듣는 곳은 교회일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사는 곳은 세상이어야 합니다.

그곳에 들어가 말씀을 붙들고 가정을 일으키고, 직장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말씀 붙들고 살면서 그 안에 같이 부대끼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3.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솔로몬의 봉헌 기도를 보면 "이 전을 향하여'라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8:29)."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너무 사랑하셔서 주야로 교회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교회를 향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교회를 향해 있으면

교회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서 영적인 스파크(불꽃)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성전에 자주 나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제 주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나오시고, 혼자서도 찾아와 기도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사모한다는 말은 교회에 나의 최선의 힘을 보탠다는 말입니다.

성도 한 사람이 헌신해서 우리의 역량이 조금씩 발전해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교회에 내가 필요한 부분을 알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교인들이 "내가 조금이라도 교회의 어려운 부분을 맡겠다"고 나서면

저도 참 기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고 그 기도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교회를 주님처럼 지극히 사랑하고 꾸준히, 묵묵히 봉사의 손길을 펴보십시오.

가끔 보면 교회에서 너무 쉽게 시험 들고 교회를 멀리하는데 참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어느 날 갑자기 화려하게 나타나서 교회 일을 혼자 다 할 것처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또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왜 사라졌을까요? 대개 보면 처음부터 요구가 참 많고, 이유도 사소한 것이 참 많습니다.

 

바람처럼 나타나는 것은 좋지만 바람처럼 나타나 선생이 되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누가 당신을 선생으로 임명했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공동체의 생리입니다.

그래서 묵묵히 봉사하는 귀머거리 3, 벙어리 3, 장님 3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담임목사로 부임한 경우에도 그런 겸양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이 어렵기에 자기 장점을 살려 소신껏 목회하려면 직접 개척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람처럼 나타나서 선생님 역할을 하려면 갈등의 씨앗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갈등 중에 상처를 입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면서 "누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심한 분은 "교회가 어떻다"고 말합니다. 그런 모습은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또한 어떤 분은 "교회가 작다. 교육관이 없다. 사랑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이유를 대고,

심지어는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가 느려서.."라고 이유를 대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생활을 한다면 어찌 하나님이 그 기도를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회가 부족한 모습이라면 내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부족한 것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며 채우려 할 때 그것이 공동체를 살릴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로 많은 분들이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을 꼽습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참 좋은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스펄전 목사님은 그를 교회 지하실의 작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방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할머니들이 바로 비결입니다. 저분들이 교회와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주십니다.

저분들은 오직 교회를 위해서만 기도하는데, 그 기도 때문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새벽기도를 나오지 못해도 어떤 형태로든 교회를 위해서 힘써 기도해주십시오.

교회의 부족함을 애틋함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이 드리는 기도를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4.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기도제목입니다. 본문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8:30)."

 

이 말씀에서 솔로몬은 '축복하여 주소서!" 하지 않고 '사하여 주소서!"라고 합니다.

'축복을 얻는 것'보다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다음에 이루어져야 진정한 축복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없는 상태에서의 성공과 번성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격자입니다.

또 하나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깎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족보 망가지는 줄 아는 사람도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관계를 할 때에도 이 두 가지 말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신앙인입니다.

또 하나는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회개의 깊이가 깊을수록 은혜의 높이는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분은 다른 사람의 죄를 쳐다볼 겨를이 없습니다. 자기 죄가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저 사람 때문에!"라고 다른 사람의 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내가 부족해서"라고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변명할 것도 없고, 팔자 소관으로 돌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면 한 가지만 잘 하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왜 회개가 중요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해야 행복합니다. 사실상 행복은 마음이 청결한 만큼 주어집니다.

번민이 많고 마음이 자주 무너지는 이유는 청결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죄사함을 통해 마음을 청결하게 가꾸면 그의 기도도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 기도가 시작될 때 큰 일이 시작됩니다 >

오늘 우리는 어떤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것을 활용해야지요.

기도는 오래 할 필요도 없고, 잘 할 필요도 없지만 꼭 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는 사람은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무릎꿇는 사람은 어떤 환경을 만나도 당당하게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분은 참 적습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축복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큰 일을 하려고 하실 때마다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진실한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큰 일은 시작되고 있다고 믿으시고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서 큰 축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역경을 이기는 힘 왕상19:9-18,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창 밖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 도로의 지반이 내려 앉아 플로리다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꺼져 들어가는 웅덩이 속으로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잔디밭이 함몰되어 갔습니다. 그 다음은 아파트가 무너질 차례입니다. 이러한 함몰 웅덩이는 가뭄으로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을 잃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딛고 있는 땅 조차 안전한지 의심스러울 만큼 갑자기 모든 것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도 씽크 홀 이라고 불리는 갑자기 지반이 함몰되는 사건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비슷한 현상입니다. 아마 우리들의 내면이 고갈되어 영적인 침체가 왔을 때, 피곤으로 무감각한 느낌을 받을 때,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목표에 대한 쓰디쓴 환멸감 등을 느낄 때 내부는 갑자기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내면의 상태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는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을 받은 놀라운 능력의 선지자로 불신앙의 세력과 담대하게 맞서 싸운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입니다. 그런 그가 육신적 고갈과 영적 탈진상태가 되어 한 나무 아래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환난을 만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자칫 영적 침체의 위기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고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역경을 이기는 힘”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들에게는 신앙 때문에 만나는 역경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는 엘리야가 당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크게 이기고 그들을 척결한 다음 그가 기도하므로 3년 반 동안이나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한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장에 와서는 엘리야의 모습이 완전히 반대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전날 갈멜산에서 되어 진 일을 뒤늦게 알게 된 이세벨 왕후는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는 보복을 하겠다는 말을 들은 엘리야는 이세벨 왕후를 두려워하여 할 수 없이 남쪽 유다나라로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담대하고 당당하던 엘리야가 그렇게 약해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유능한 하나님의 일꾼도 영적인 침체에 빠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엘리야가 지쳐서 쓰러진 것으로 그대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붙잡아 일으키시고 그에게 새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새로운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 여러 가지 환경과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지치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해도 낙심하지 말 것은 엘리야를 지켜주신 하나님이 오늘의 우리도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약 본문의 내용도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당하는 여러 가지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넉넉히 이기노라고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당시 왕을 비롯한 많은 백성들이 불신앙으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또 신앙으로 사는 자들을 박해했기 때문에 신앙으로 살기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당시 불신앙의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불신앙의 세상 가운데 살면서 많은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을 때, 당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이 7천이 있었던 것을 알고 계신 것처럼(왕상 19:18) 하나님은 지금도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물질의 시험 앞에서 아간처럼 무릎 꿇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정욕의 시험 앞에서 무릎 꿇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정욕으로 인하여 시험에 든 다윗을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여 말씀 하십니다.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삼하 12:8-9) 또한 하나님은 불의를 행하기를 요청하는 시험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엘리야처럼, 바울의 일행처럼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고난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당할 때, 주와 몸 된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에매하게 고난당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그 상을 절대 잊지 않으시고 보상해 주시는 분입니다.

2.하나님은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성도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결코 나 혼자 당하는 것이 안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욥은 사단의 시험으로 인해 큰 고난을 받으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처럼 혹독한 시험을 당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기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엘리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고독한 싸움을 하면서 “나만 홀로 남았다”고 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엘리야 곁에는 알게 모르게 그를 돕는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엘리야와 함께 계셨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 제단에 불을 내리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에게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신 분이 하나님이 셨고,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계속해서 나오도록 기적을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셨고, 엘리야가 행한 기적의 배후에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에 세미한 음성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사역 가운데에도 함께 하셨기에 바울은 고난 중에서도 롬8:31-32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또한 천사가 엘리야를 도왔습니다. 엘리야가 광야로 피하여 죽기를 구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먹을 떡을 주고, 마실 물을 주었습니다. 엘리야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풀어주었습니다. 풍랑 만난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 그 천사들이 우리를 돕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배후에는 숨은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나만 홀로 남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7000 명이나 되는 신실한 신자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드러난 신자만 신자가 아닙니다. 드러난 일군만 일군이 아닙니다. 자신을 전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바르게 살려고 하는 숨은 인물들이 있기에 교회가 든든해지고,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로 돕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한 바울은 환란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정경주 사모는 "하나님이 하셨어요." 라는 그녀의 책에서,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역사와 도우심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당한 삶의 모든 순간은 사람이 행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일들을 이야기하는 내내 "하나님이 하셨어요." 라는 말을 쉬지 않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똑같은 도전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손에 삶을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이 모두 다 하실 것" 이라고 말입니다. 그녀가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 시절의 어느 날, 비행기가 일본 상공 위를 지날 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조종실에서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승객 여러분, 여객기 우편 날개 엔진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승무원과 승객 전원은 비상착륙 준비를 마치고 착석해 안전벨트를 매 주십시오." 평소 그녀의 신앙을 못마땅해 하며 신은 없다고 떠들던 남자 승무원이 달려와 털썩 그녀 앞에 무릎을 꿇으며 애원합니다. "미스 정! 기도해줘요. 미스 정! 부탁이에요. 날 위해 기도해줘요." 그녀는 그와 함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아멘' 소리가 끝나자마자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여객기 우편 날개 엔진의 원인 모를 불이 저절로 꺼졌습니다. 곧 김포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하겠습니다." 승객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남자 승무원인 미스터 김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함께 울었노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도록 마음에 죄의식을 가지게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계속적으로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회의를 느끼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를 고소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넘어가 죄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롬8:33절과 34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송사하지 못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나니". 우리 모두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심을 믿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하님은 성도들이 선한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음식을 먹게 하고, 어루만져 기운을 복돋게 한 다음에 호렙산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 곳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그가 할 일을 가르쳐 주심으로 끝까지 사명을 다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롬8: 37절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넉넉히 이긴다.’ 는 헬라어 동사는 ‘휘페르니코멘’ 입니다. 이 말은 휘페르 ‘무엇 위에' 라는 말과 ‘니코메’ 라는 ‘정복한다.’ 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정복이상의 정복을 얻게 된다.’ 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떤 싸움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아니하고 승리 이상의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있고 정복자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바울은 감옥에서 순교할 것을 내다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엘리야와 함께 하신 하나님, 바울과 함께 하신 사랑의 하나님은 오늘 믿음으로 사는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이기고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생후 20개월에 자동차 사고로 신체의 85%에 3도 화상을 입었던 조엘 소넨버그(Joel Sonnenberg), 그의 몸이 숯덩이처럼 변했지만 부모는 믿음으로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치료받은 후 아이들이 '원숭이' 라고 놀리고, 어른들은 '왜 가면을 쓰고 다녀?' 라고 해도, 조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에 전하면서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시련은 없다." 라고 간증합니다. 무려 50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때 지역축구연맹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손가락 없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 산악자전거를 즐기고, 수영과 스쿠버 다이빙, 수상스키를 즐기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동차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 도트에게 말합니다. "도트씨! 당신은 18년 전에 생기 넘치는 개구쟁이 아들을 시커멓게 불에 그을려 비명을 지르는 숯덩이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의사와 친구와 가족들,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 숯덩이를 자르고 갈고 광택을 내어 눈부신 금강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조엘도 말합니다. "도트씨!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주인이요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를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망과 절망이 또 다른 고통을 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둘러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만든 것입니다. 조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가득한 계획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건강하고 많이 가진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게는 신앙 때문에 만나는 역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성도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하님은 성도들이 선한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역경을 만날 때 두려워 맙시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넉넉히 이기게 하심을 믿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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