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기다리라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다니엘 12장 1~13)

 

6월에는 기다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기다린다는 것은 일상에서의 인내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일로 소망하는 천국 문에 들어가는 그날영생복락이 시작되는 그 날을 기다리라는 의미에서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달 동안 말씀 읽고 기도 하실 때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게 주어진 부활 영생의 소망이 날마다 커지고확실해져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곧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날들이 되도록 간절히 소망 하십시오.

 

말씀을 사모함으로 예배를 준비하셔서 한 달 동안 우리 모두의 마음에 기다림의 소망이 충만하게 채워져서 모든 근심 걱정이 물러가고모든 성도가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회복되어 심령 천국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복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 후 130년 쯤 지나서 남 유다는 바벨론 제국의 공격을 받습니다. 3차례에 걸친 침공에 의해 결국 멸망 당했습니다다니엘은 바벨론의 1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갔는데 아마도 10세 전후의 어린이 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끌고간 바벨론 제국이 멸망당하고 바사(페르시아제국이 새롭게 세워지는 격동기를 지났지만 끝까지 살아 남았고오히려 다리오 왕(메대사람고레스왕의 외삼촌이자 장인고레스가 메대를 바사에 합병 후 상징적으로 장인을 왕위에 앉힘다리오가 2년 통치 후 고레스가 왕위에 올라 포로 귀환 명령함)때는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좀 더 넓게 보기 위해서 조금 정리를 해 드리면다니엘서에는 7장부터 네 가지 환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7장에는 네 짐승(사자표범열뿔 짐승환상”, 8장에는 숫 양과 숫 염소 환상”, 9장에는 일흔 이레 환상”, 그리고 10~12절에는 다니엘이 바사왕 고레스 3년에 힛데겔 강가에서 본 환상이 있습니다.

 

이 네가지 환상에 대해서는 참 많은 억측과 오해가 있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그 만큼 환상은 쉽게 해석하고 단정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수 많은 이단들이 이 환상이 이렇다저렇다 하면서 자신들의 말만 정답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제가 시간이 되고 때가 되면 요한계시록로마서고린도 전후서와 같이 다니엘서를 꼭 한번 강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본 네 번째 환상(힛데겔 강가에서 본 환상, 10~12장의 마지막 부분이며 종말의 때에 관한 내용입니다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마지막 때의 모습이 담긴 1~4절을 읽어 드립니다.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 때에” 라고 한 시점은 2절에서 보듯이 죽은 자가 깨어나 영생을 받기도 하고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한 다는 것을 볼 때 최후의 심판 날이 분명합니다그 때에 민족을 호위하는 미가엘이 나타난다고 합니다유다서에는 미가엘을 천사장으로 기록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민족을 호위한다고 했는데여기서 민족은 이스라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열방(All Nation)을 말합니다미가엘 천사장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사탄의 무리를 대적하는데 선봉에 설 것이고 모든 민족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개국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큰 환란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이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언하신 내용(마 24:21,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과 일치합니다.

 

1절에듣도 보도 못하던 환난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이것 역시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라는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일치 합니다.

 

이렇듯 다니엘의 환상은 성경의 다른 예언특히 요한계시록의 말씀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그 때가 몇 년 몇 월 몇 일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거나미가엘은 이 시대를 예언하는 자기(이단들의 우두머리자신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거나환란은 무슨 상징을 가진다는 등 이런 미혹의 말에 휩쓸리지 않으셔야 합니다.

 

말세에 이를수록 거짓 선지자와 자칭 그리스도라고 일컫는 자들이 무수히 등장할 겁니다예수님이 직접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우리가 걱정하고 점검해 가야 할 것은 내가 정말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 받을 자0인가를 생각하며내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날마다 확증하며 살아가데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지난 번 요한 복음 15장 말씀을 기억해 보시면우리가 무엇을 해야 생명책에 기록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날마다 서고오직 예수 이름을 앞세워 하루를 살고오직 성령이 말하시는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애쓰고 수고하면 구원은 틀림 없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질 것입니다서고살고순종하면 구원에 이릅니다.

 

2절에서 그 때에 자는 자(죽은자)들이 일어나(부활영생에 들어가고또한 수치와 부끄러움(영벌)에 당할 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영생과 영벌의 대조는 언제 들어도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3절에서 지혜 있는자(지혜되신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 자)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죽도록 헌신하고 충성을 다한 자)는 영원토록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이 역시 어떤 자가 생명책에 기록될 자이며 누가 하늘의 상급을 받을 자인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4절에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라고 했는데이 말씀 역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라고 일치 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봉함하라고 했고사도 요한은 인봉하지 말라는 대조적인 기록을 했습니다이러한 차이는 무려 600여년의 시차를 두고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이 완전히 공개되기 전과 후너무나도 다른 상황에서 말씀을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1~4절까지 다니엘이 본 환상은 그 때에” 일어날 일들입니다이미 예수님의 오심죽으심부활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내용이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종말과 심판의 날이 무섭고 두렵기는 하지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굳게 믿고 오히려 소망 중에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월 달의 말씀 주제가 기디라라” 이잖아요무엇을 기다립니까그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겁니다. ‘영생의 그날을 기다리는 겁니다그 때는 영벌에 처해질 자는 두려워하겠지만 영생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기쁜 잔치의 날입니다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의 목표는 오직 다니엘이 환상으로 본 그 때그 날에 맞춰져야 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계 7:10)라는 찬양처럼 하나님만 경외하고예수님만 굳게 믿고성령님과 항상 동행을 요청하며 고단한 하루 하루를 묵묵히 지내다 보면 어느 새 그 때그 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6월 한달은 기다림의 소망을 품는 달입니다지치고 고단하고 상처 받고 스트레스 쌓인 심신이 위로 받는 달이기를 바랍니다무엇으로 위로 받을 까요고단한 내 삶의 수고와 헌신이 충분히 보상 받는 그날이 속히 온다는 소망으로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내 인생이 영생의 나라로 인도함 받고 있다는 믿음 가운데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그 날과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 되고기다리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기다리는 것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닫고오직 그 때를 향하여하나님 나라를 향하여믿음의 길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다니엘이 본 환상이 나오는 본문 5~9절을 읽어 드립니다. “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쪽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쪽 언덕에 섰더니 6.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쪽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더라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8.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9.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다니엘은 두 사람과 세마포 옷을 입은 자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세 마포 옷을 입은 자는 10장에서도 나오는데 이는 성육신 하기 전의 성자라고 추측이 되며두 사람으로 나온 존재는 천상에 존재하는 천사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두 사람중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에게 이 놀라운 일의 끝이 너느 때까지냐 하더라” 물었습니다. “어느 때 까지냐” 이런 어감은 반말로 들리고우리 나라 사람의 감정으로는 아니 천사가 성자에게 반말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번역상 그렇게 된 것이고우리말인 한글 문화에서나 존칭이 엄격하지 외국어는 그렇지 않습니다특히 이 주고 받는 언어가 천상의 언어 였을테니 반말 아닌가?”라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해프닝이죠.

 

이 놀라운 일일 어느 때 까지냐라는 물음에서 이 놀라운 일은 무엇일까요이 일은 짧게 신구약 중간기 시대에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인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군주의 핍박을 지칭한다고 해석합니다왜냐하면 뒤에 나오는 대답이 명시된 기간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세마포 옷을 입은 자가 영원히 살아계시는 자를 향하여 좌우 손을 들어 맹세하며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대답하였습니다.

 

반드시 한 때두 때 반때 라고 기한을 명시했습니다한 때는 1두 때는 1반 때는 6개월이기 때문에총 3년 6개월마흔 두달이 됩니다이 기간 동안 고통 받으면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진다고 하셨습니다얼마나 극심한 핍박이 가해 질 것인지 상상조차 안 되는 말씀입니다그런데 이 기간이 꼭 어떤 시점의 역사적 순간을 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에서는 그들(이방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라는 예언이 있고또한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5)는 예언도 있습니다한 때 두 때 반 때즉 3년 6개월마흔 두달 이라는 기간이 종말의 심판 때에도 어김 없이 이런 식의 숫자로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때 두 때 반 때는 이미 지나간(신약 중간기 시대핍박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종말에 임할 핍박의 예언기도 합니다얼마나 핍박이 극심한지는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 라는 말씀을 보면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극한의 고통과 공포가 임할 것임을 경고하는 예언입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장면을 환상속에서 보고 들었지만 다니엘 조차도 도대체 이 기한이 무슨 의미인지언제부터 언제 까지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길이 없어서 직접 질문합니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라고 묻자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라는 대답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니엘은 기한에 대한 속 시원한 해석을 듣지 못했습니다대신에 네가 듣고 본 말(말씀)을 마지막 때까지 봉함(지켜라)하라는 말씀만 들었습니다다니엘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것은 기한에 대해서 실체적으로 알려 주고그 기한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 해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도 수백년 전이기에 다니엘이 종말의 일까지 그 실체를 다 알 수도 없었고 하늘에서는 그러한 내용까지 다니엘에게 세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다니엘의 임무는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원형 그대로 명확하게 기록하고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관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다니엘이 기록하고 보관하던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맞아그렇구나먼 옛날 다니엘이 환상을 보고 기록했다고 한 그 말씀대로 진짜 다 이루어졌어하나님은 진실로 살아계신 분이셔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셔하나님은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신실한 분이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다니넬은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싱하게 이행 했습니다오직 자신의 자리에서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완수하며 하나의 디딤돌 역할을 한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지도자요왕이요선지자요신약의 제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역사의 시간 안에서 디딤돌 하나를 놓게 하시려고 우리 각자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우리가 이 시대의 다니엘입니다우리에게는 다니엘에게 말씀 하신 것처럼기록되어 보관된 말씀들을 끝까지 지켜내고(봉함전달해 주어야 하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면우리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하나는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반드시속히 이루어 진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그리고 하나는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끝까지 기다리며또 기다린다는 확고한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믿음과 소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성령안에서 살아가시면서환상도 보시고음성도 들으시고영광도 목격하시는 많은 체험들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라며내가 만난 구원자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내게 깨달음을 주신 진리의 말씀을 보존하고 전파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이 시대의 다니엘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이 본 환상 마지막 이야기 10~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아멘.

 

10절에는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지혜(예수, 말씀, 진리, 믿음)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라고 했는데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그 날(종말심판)의 때가 이를수록 뚜렷하게 구분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11, 12절에는 또 알 수 없는 숫자가 나옵니다. 11절의 천이백구십일은 3년 7개월이고이는 앞섯 나온 한 때 두 때 반 때(3년 6개월보다 한 달이 많은 숫자입니다대부분 이 기간은 주님 오시기 전에 겪게 될 마지막 대 환난의 시간으로 이해 합니다.

 

대 환란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적 그리스도가 출현하여 11절에서처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가 올 것입니다실제로 B.C 167~164년에 적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말하는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시절에 예루살렘 성전이 훼손되어 파손 되엇고희생 제사를 못 드리도록 없애 버렸고제사장들은 죽임 당하고성전에 돼지 피를 뿌리는 등으로 거룩한 성전이 더럽혀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서 볼 숫자는 12절에 나오는 천삼백삼십오일입니다이 숫자는 11절의 천이백구십일 보다 45일이 많습니다. 3년 반도 견디기 힘든데 45일이나 더해져서 천삼백삼십오일까지 이르러야 복이 있으리라” 했습니다.

 

이 복은 단순한 복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영생에 이르는 복을 말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환난의 시간더해지는 시간에는 극도의 환난과 핍박미혹과 시험이 들이 닥츨 것인데믿는 자들이라면 단단히 각오하고 무조건 끝까지 이기고 승리해야만 천국문에 이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환난의 시간을 알려 준 다니엘은 자신이 기록한 12장의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아멘.

 

마지막 환난이 어떠할지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는 마지막을 기다리라” 라고 시작하는 이 문장이 어느 정도로 단단히 각오하라고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해상 전투 영화에서 구축함이 잠수함을 탐색하면 폭뢰를 바다에 투하 하거가 어뢰를 발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그러면 잠수함에서는 폭뢰가 터지거나 혹은 어뢰에 맞기 전에 충격에 대비하라고 하면서 몸을 낮추고 잠수함 내에 있는 쇠붙이는 무엇이든지 꽉 붙잡는 장면이 나옵니다어뢰에 제대로 한 대만 맞아도 잠수함은 산산조각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 장면에서 이런 엄청난 충격파를 대비하라는 것과 너는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교차되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물론 비교가 안 되는 상상이겠지만아마도 죽을 만큼 견디기 힘들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할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 대 환난 일겁니다육체적정신적으로 가루와 같이 파괴되는 극심한 고통의 시간일 것이라고 저도 상상만 할 뿐입니다.

 

인자 같은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다니엘에게 여러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시고직접 음성을 들려 주시면서너는 죽는 날까지 이 말씀을 기록하고보관하고전달하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라고 하셨고최종적으로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마지막 임무를 주셨습니다.

 

이 임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신 임무입니다이 임무를 죽도록 충성하며 끝까지 완수한다면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아네가 마지막을 기다리는 동안 너는 평안히 쉬게 될거야환난을 끝까지 이기고 기다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네 몫(영생 복랑을 누리는 생명의 면류관과 해 같이 빛나는 상급)을 누리게 될 거야” 라는 이 마지막 말씀으로 다니엘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자처럼 큰 기쁨가운데 하나님께 영광돌려 찬송을 했을 겁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격적인 결말입니다나도 제발 직접 말씀으로 듣고 싶고얻고 싶은 부러운 결말입니다다니엘에게 말씀 하신 마지막 12절은 온 인류에게 주시는 기다림의 소망을 주시는 강력한 은혜의 메시지입니다우리가 한 달 동안 이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몸 안의 세포에 녹아 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단하다고 힘들 지라도단 하루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무려 1290일 씩이나 받고 견뎌야 하는 대 환난이 온다고 할 지라도추가로 45일이 더해져 충격적인 고통이 추가 된다고 할 지라도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다리라 그리하면 네가 너를 평안으로 쉬게하고 네 몫을 누리게 할 것임이라는 이 절대적인 약속의 말씀이 나에게 주신 일평생 소망의 말씀으로 역사하여 내가 있는 자리에서내가 믿는 믿음으로내게 주신 사명 감당하며비가오나 눈이 오나바람이 부나파도가 치나한결 같은 마음으로 마지막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우리에게 저희들의 연약한 마음 속에기다리라평안으로 쉬게 하리라네 몫을 누리리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저희들의 인생의 시간을 붙들어 주셔서오직 약속의 말씀과 믿음을 앞세워 기다림을 온전히 이루어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구약 > 다니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만 높이며 삽시다. 단5:13-29  (0) 2018.01.06
영생의 별이 되는 사람 단12:1-3, 요5:39-47  (0) 2017.07.21


주님만 높이며 삽시다. 5:13-29, 3:22-30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노벨상 감이고 대 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 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네."

 

천국 보화는 낮은 곳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발명도 독창은 없습니다. 전 인류의 공동 발명인 것입니다. 인류가 발견하고 발명하고 경험한 모든 것의 그 위에다 그것을 토대로 해서 조그마한 발견 하나를 더하는 것이 발명입니다. 노예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왕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왕을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노예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강도나 살인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성자도 없습니다. 성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살인자나 강도도 없습니다. 거지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부자도 없고, 부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거지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죄 투성이 이고,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새 해 첫 주일을 맞아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만 높이며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교만한 자는 자기를 높이며 살다가 패망합니다.

 

암은 아직도 제일 무서운 병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아마 두 가지 일 것입니다. 그 하나는 자각 증세가 너무 늦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만약 암이 감기처럼 걸리는 그날부터 증세가 나타난다면 치료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에 발견하고 나면 때가 너무 늦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암세포는 주변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으면서 자기 혼자만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 전체의 건강을 무너뜨리고 생명을 무너뜨립니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교만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 심지어 상식까지 갉아먹어 버린다.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이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취함 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이다. 그래서 교만을 영혼의 암이라 말한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영혼의 암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교만한 줄 모릅니다. 교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금방 아는데 자신은 모릅니다. 자신은 힘들지 않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합니다.

오늘 구약 본문에 교만한 사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4-5장에 두 왕이 등장합니다. 느부갓네살 왕과 손자인 벨사살 왕입니다. 4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여 무너졌다가 겸손해져서 다시 회복된 왕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몇 번이나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했던 사람으로 꿈을 통하여 계속 교만하면 하나님이 나무를 베어버리듯이 무너뜨리시겠다고 하는 경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교만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4:30) 하나님은 교만한 느부갓네살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정신 이상자가 되어 자기가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들에서 살면서 풀을 뜯어먹으며 7년 동안이나 짐승처럼 살면서 겸손해진 후에야 교만이 치료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시리라.” (4:37)

다니엘서 5장 본문에 나오는 벨사살 왕 역시 교만하여 무너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벨사살 왕이 귀족 천명을 불러서 호화스런 잔치를 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사용하는 그릇에 술을 부어서 모인 무리들에게 마시면서 각종 우상들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을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왕궁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썼습니다. 그 순간에 벨사살은 두려움과 공포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교만에 대해서 22-24절에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셨나이다.”

다니엘은 그 글을 읽고 해석해 줍니다. 25-28절에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메네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에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우바르신(우는 접속사)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인생을 끝 장 내시겠다 하시며, 교만한 자의 나라를 완전히 무너뜨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알고 꿈에라도 교만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2.겸손한 성도는 주님만 높이며 삽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로부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 평가 받았던 사람입니다.(11:11, 7:28) 무엇보다 요한은 구약 성경에 그의 삶과 사역이 예언되었던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40:3-4) 말라기 선지자는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주를 위해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을 예언했습니다.(4:5) 또한 세례 요한의 출생은 특별할 것이었습니다.(1:3-25, 57-80) 자식이 없이 나이가 많았던 사가랴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가 그의 출생을 예고했습니다. 믿지 못했던 사가랴는 이후 말을 하지 못하다가 천사의 말대로 엘리사벳이 아이를 잉태한 후 해산하여 사가랴가 그 이름을 서판에 요한이라 기록했을 때 그의 입이 다시 열렸습니다. 사가랴는 성령 충만함으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통해 펼쳐질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사역을 예언합니다. 주의 손이 이 아이와 함께 하였고 이 사실에 대해 보고 들은 사람들은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1:66)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었던 요한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 전하며 그 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3:1-3, 1:6)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끼쳐 당시 많은 백성들이 심중에 혹 그가 메시야로 오실 그리스도신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3:15, 1:19-20)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왔고, 예수님도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3:13) 오늘 본문 말씀은 세례 요한의 사역 막바지에 일어난 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증거를 받으셨던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향력은 짧은 시간 급속도로 확대되어졌습니다. 요한은 여전히 세례를 베풀고 있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되어졌습니다. 이 때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은 세례의 원조요, 닉네임이 세례 요한이라고 불릴 정도인데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속이 상하여 말했을 것입니다.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

이와 같은 비교의식, 경쟁의식이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게 되고, 인간관계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이것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비교의식은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인간을 하나님과 비교하게 만들었습니다. 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다.” 또한 비교의식은 인류 첫 번째 살인의 원인이었습니다. (4:1-8)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거부하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고 가인은 시기로 아벨을 들에서 쳐 죽이게 됩니다. 이후 비교의식은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근본원인이 됩니다.

출애급 당시 비교의식으로 인해 미리암은 한 때 문둥병이 걸리게 되었고, 고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의 관계는 비교의식이 어떻게 서로의 삶을 파괴하나 생생한 예가 됩니다.(삼상18:6-9) 나아가 비교의식은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아무리 신앙이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교의식은 극복하기가 힘든 일인데, 놀랍게도 세례 요한은 이것을 넘어서서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 했고, “신랑을 위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다.” (29) 했으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0) 했습니다. 요한의 이 고백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본받고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더욱 위대해지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된다면 우리 자신의 삶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세례 요한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을 높이면서 충성스럽게 사명 감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2: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했습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세례 요한처럼 오직 하나님만 높이며 사명을 감당하는 겸손한 인물입니다.

본문 17절에 벨사살 왕에게 주는 다니엘의 대답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

다니엘은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재물이라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 까짓 사람이 주는 상급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물은 왕이 취하고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나 주라고 말합니다. 다니엘은 상급과는 관계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세상것 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남달리 뛰어난 지혜를 주셨고, 바벨론의 총리로 높여 주셨습니다.

 

다니엘서 6장을 보면 다니엘의 해석대로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으로 다시 다니엘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이 세우시면 권력과 재물을 얻고 사는 것이고, 아직 젊을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벨사살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세례 요한이나 다니엘이 가졌던 자세를 반듯이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도에게는 재물이나 권력, 사람이 주는 그 어떤 상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조그마한 유혹이나 환난의 바람에도 쉽게 놓아버리는 사명은 아니십니까? 벨사살 왕이 세상의 어떤 것들을 가지고 다니엘을 유혹하지만, 다니엘은 그 까짓 것들을 그렇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의 뜻만을 전하는 사명의 사람임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인물분석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회사가 이들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 컴퓨터에 분석을 의뢰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다.

 

도마는 매사에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안드레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매사에 추진력이 떨어진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 위험한 존재다.

 

세리 출신 마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제자들 중 적격자는 가룟 유다뿐이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 난 제자들이었습니다. 세상적인 판단으로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는 배신자로 낙인찍혔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겸손과 부족함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우리 모두 세례 요한이나 다니엘처럼 겸손히 주님만을 높이며, 맡겨준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새 해 첫 주일을 맞아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만 높이며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를 높이며 살다가 패망합니다.

 

.겸손한 성도는 주님만 높이며 삽니다.

 

.주님을 높이면서 충성스럽게 사명 감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영생의 별이 되는 사람 단12:1-3, 요5:39-47

어느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남의 집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이 하인을 사냥터에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하다 쉬는 사이 하인을 불러 이렇게 조롱하는 말을 했습니다. “너는 예수를 잘 믿는데 왜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일만 당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잘 살고 걱정이 없다며, 그럴 바에야 예수를 믿지 않는 게 더 낫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하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노하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가령 저기에 사슴 두 마리가 있어 총을 쏘았는데,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간다면 주인님은 어느 것에 먼저 달려가시겠습니까?”

“그야 죽은 놈은 내 수중에 든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산 놈부터 쫓아가서 잡아야지.” “옳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실은 주인님께 어려움이나 시험이 없는 것은 주인님의 영혼이 이미 죽어 마귀 것이 되어 버렸으므로 마귀가 내버려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 마귀가 이를 방해하여 자기 것으로 하려고 갖은 계략을 다 쓰니 시험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고 아무런 시험 없이 평안한 삶을 보장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과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예수를 믿는 자는 분명히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고 영원한 영생의 복을 받으며, 주님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이긴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생의 별이 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람은 누구나 종말을 맞게 되며, 영생과 영벌로 갈라집니다.

기독교 교리는 4개의 큰 기둥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창조의 교리, 둘째 타락의 교리, 셋째 구속의 교리, 그리고 넷째 종말의 교리가 그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 4개의 교리위에 그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있는 교리가 바로 종말의 교리일 것입니다. 종말의 교리가 오해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사이비 이단과 극단적 종말론 자들에 의한 거짓된 가르침과 종말의 해프닝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 있을 것이라는 거짓된 가짜 예언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이 종말의 교리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생기는 것입니다.

종말은 파괴적인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종말이 온다는 것은 오히려 심판을 넘어선 역사 완성과 인생 완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적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종말의 징후를 예언하면서도 종말의 시간을 비밀에 감추신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날마다를 종말을 사는 심정으로 준비하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종말의 때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했습니다. 여기서 그 때는 11장 마지막 구절에 의하면 적그리스도의 멸망의 때요, 동시에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때이기도 합니다. 그 때에 개국 이래로 없었던 환난을 그의 백성들이 경험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종말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시면서 마24:21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다른 종말의 특징을 계시를 받아 4절에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통의 발달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그에 따른 지식의 증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통의 발달로 얼마나 빨리 왕래하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정보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켜 클릭 하면 지구촌 구석, 구석의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과 화상 회의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종말의 때를 대비하는 삶에 대해 마24:44에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눅21:34-35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표준역, 세상살이 걱정, 돈 걱정)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 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심판 앞에 서게 되고 영생과 영벌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구약 본문 단12:2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수치를 당할 사람이거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사람입니다. 종말의 심판을 위해 부활되어 주님 앞에 서는 날 인생은 결국 두 가지 로 나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종말을 잘 대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영생을 위해서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영생 얻는 것은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잘 생겼다고, 성공했다고, 착한 일 많이 했다고,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얻는 것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나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다 좋은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이 길에 대해 예수님은 요3:36에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인류는 예수 믿고 영생 얻을 자, 아니면 예수를 거절하고 진노 가운데 멸망할 자, 둘 중의 하나라는 말입니다.

신약 본문 요5:39-40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43절에서는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선민인 유대인 가운데에도 작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예수님 믿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보다 보이는 세상 영광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기에 영생 얻는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마7:13-14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거듭나 새 피조물이 된 자들이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본받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들의 삶에는 변화가 따릅니다. 죄를 버리고 성결하게 삽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자랑하는 자로 삽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귀한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변화가 없는 믿음이라면 오래 믿은 신앙의 연조나, 가지고 있는 직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것으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나이가 많아서 죽게 됐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그 장로님은 죽음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견딜 수 없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급히 목사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30년 동안을 교회에 다녔지만 한 번도 설교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열심히 설교를 듣는 것 같던데요’ ‘아닙니다. 설교가 시작되면 내 사업을 생각했고, 예배 끝나고 할 오후의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설교 말씀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을 쥐어 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게 두렵습니다. 그게 무섭습니다. 그러더랍니다.’


이런 신앙으로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진정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임을 믿고 고백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천국에 가는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천국 문 앞에서 출입을 관장하는 천사에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나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천국에 들어왔습니까?” 천사는 명부를 뒤져본 뒤에 한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우리의 신앙이 뭔가 매우 크게 잘못되었나 보군요. 그렇다면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천사는 그들 역시 명부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종교개혁 역시 잘못되었나 보군요. 그렇다면 천주교인이 들어왔습니까?” 그러나 천사의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렇다면 도대체 천국에 누가 있는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천사가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들이 와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구원은 특정 교파와 교리가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날마다 새로워지는 믿음 가지고 살다가 영생에 참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3.영생에 참여한 자들 중에는 별처럼 빛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구약 본문 단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했습니다. 영생에 참여한 자들 가운데는 십자가의 오른편 강도처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의 긍휼을 의지함으로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자들이 있고, 지혜 있는 자로 살아 궁창의 빛처럼 빛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불신앙이 대세인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의 신앙으로 구원을 받은 노아와 같은 신앙인들도 있고, 에녹처럼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자들도 있고, 아밸, 예수님의 제자들, 스데반처럼 순교한 자들도 있고, 모세나 여호수아, 바울 실라처럼 충성한 자들도 있고,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견고한 신앙으로 불 시험을 이긴 자들도 있고, 누가나 빌레몬, 다비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가진 것으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긴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들은 별과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자들이 받는 영광입니다. 전도자는 순교자에 버금가는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순교는 주를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 때문에 가장 큰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순교는 아니라도 자신을 쳐 복종시켜 전도할 때, 때로는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인간적인 수많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희생하는 것이요, 또한 죽은 영혼을 다시금 살려내어 생명의 자리로 인도 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에 전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을 복음 전도하는 일에 받쳤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가 없는 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개척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여러 번 맞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와 고통을 수없이 경험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는 그가 남긴 가장 마지막 책인데 그는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생각하다가 그는 확신하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의의면류관을 주시리리라."(딤후4:8)고 확신하였습니다.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자기 집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11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그럼 비가 오는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는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눠준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이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시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나이 많은 여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께 이 전도지를 전해드리러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 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나이 많은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하늘의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후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생기발랄한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지만 별것이 아니지만, 전도지 한 장이라도 이웃을 생각하는 그 곳에 하나님의 사랑,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영생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영생의 별이 되는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생의 별이 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말을 맞게 되며, 영생과 영벌로 갈라집니다.

◒.영생을 위해서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영생에 참여한 자들 중에는 별처럼 빛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