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향해 가나요? 65:17-25, 3:10-16
착각은 자유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아줌마 - 화장하면 다른 사람 눈에 예뻐 보이는 줄 안다. *연애하는 남녀 - 결혼만 하면 깨가 쏟아질 줄 안다. *시어머니 - 아들이 결혼하고도 부인보다 엄마를 먼저 챙기는 줄 안다. *장인 장모 - 사위들은 처 가집 재산에 관심 없는 줄 안다. *남자들 - 못생긴 여자는 꼬시기 쉬운 줄 안다. *여자들 - 남자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면 관심 있어 따라 오는 줄 안다. *부모들 - 자식들이 나이 들면 효도할 줄 안다. *아가씨들 - 지들은 절대 아줌마가 안 될 줄 안다. *꼬마들 - 울고 떼쓰면 다 되는 줄 안다. *남편 - 살림하는 여자들은 집에서 노는 줄 안다. *교인들 - 교회만 다니면 다 천당 가는 줄 안다. 예수 오래만 믿으면 다 믿음이 좋은 줄 안다. 자기 믿음이 기독교 믿음의 기준인 줄 안다.
성도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는 속도나 열심 보다 방향입니다. 착각으로 인해 방향이 잘 못 되면 속도가 빠를수록, 열심을 내면 낼수록 더욱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무엇을 향해 가나요?”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사역자 하나씩 말하라 하면 구약에는 모세’, 신약에는 바울이라고 말해도 별로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세상의 소망을 향해 가던 그들이 돌이켜 주님을 바라보고 천성을 향해 가는 자들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였지만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고,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으로 이끄는 어려운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 역시 집안의 좋은 배경과 학문의 배경, 대제사장의 신임 등 세상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조건을 갖추고 야심이 많은 자였으나 자신이 앞장서서 박해하던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만난 이 후 세상 것을 배설물처럼 다 버리고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자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면서 이제는 도리어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천성을 바라보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단지 세상에서 잘되고 형통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면 세상 다른 기복 종교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주님의 돌보시는 은혜로 잘되고 형통하는 복이 따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세상 것이 되면 믿음의 방향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믿음의 실패자가 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을 택했다가 낭패를 보았습니다. 아내도 천사의 경고에도 세상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간이나 사울 왕은 세상 것에 치심 하다가 멸망의 길로 빠졌습니다. 발람도 세상 탐욕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미혹하는 발락을 따르다가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때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도 은 삼십에 스승을 파는 배도의 길을 갔습니다. 한 때 바울의 동역 자였던 데마도 세상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참 성도는 바른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되어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로 인해 더욱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고 더욱 주님의 영광을 올리게 되는데 목적을 둡니다. 1871년 봄 몬트릴 제네럴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과 대학생 한사람이 최종시험을 앞에 두고 합격할는지 알 수 없어 근심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의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잘할 것인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바르게 살 것인지 하는 고민을 안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가 토마스 칼라일이 쓴 책을 읽다가 책의 한 구절이 그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우리의 주된 일은 멀리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이 구절을 읽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버리고 당면과제를 해결키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열심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죤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운 분이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윌리암 오슬로(William Oslo)경입니다. 우리도 잠간 있다가 없어질 세상 것에 치심 하다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데 목표를 두고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비유를 많이 말씀 하셨는데, 그 가운데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은 사느니라.”(13:44)하셨고,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13:45-46)고 하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가는 자들은 바로 이 천국의 비밀을 발견한 자들입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곳을 위해 투자할 만한 가치를 알고 그 곳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고, 헌신하며, 희생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이사야가 본문에서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 언급합니다. 본문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했습니다. 세계 곳곳에는 아름다운 비경들이 있어 보는 이들은 감탄하며 황홀감에 빠지게 됩니다.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경이로운 모습을 보면 주님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얼마나 아름다우면 과거의 것들이 더 이상 기억조차 되지 않은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참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들도 가득 차게 될 것이고, 더 이상 구원받은 피조물들이 타락하는 일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하늘에 있는 영원한 낙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기쁨과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본문 18-25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해야할 이유입니다. 18-19절에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했습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한 고통이 없는 곳입니다. 이러한 주의 백성들을 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주의 백성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사람들의 우는 소리와 부르짓는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는 곳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이 땅에서 죄로 말미암아 당하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더 이상 당하지 않는 곳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곳은 충만한 생명이 주어지는 곳입니다.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재난이 없는 곳으로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져 인간과 자연이,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조화되어 더 이상 해함도 상함도 없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 갈 자와 들어가지 못할 자에 대해 말합니다. 65:1-7에서는 불순종한 자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 사람들의 멸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자들(11)이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14),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15), 하나님의 복된 자손들(23)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섬기는 백성이 되어져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 모두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복을 받는 성도가 됩시다.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가 장차 들어 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모습과 상급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우편 강도처럼 겨우 턱걸이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불 가운데서 화마를 간신히 모면해 살아남은 사람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의 비유에서처럼 상급으로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사람,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상급과 면류관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하나님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 간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신앙은 남다른 충성과 진실과 성실, 희생, 경건, 성결과 인내 등이 탁월한 모습으로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른 자들입니다. 신약 본문에서 그런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을 경주로 비유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상 받을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자입니다. 본문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했는데, 이 말씀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좇아가노라의 헬라어 '디오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입니다. 이는 매우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했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난 이후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무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이런 고난이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본문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푯대가 되시는 예수님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윤형방황(輪刑彷徨)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아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목적지를 가운데다 놓고 그 주위로만 빙글빙글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상급은커녕 탈락자가 되고 맙니다. 성도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인내로 끝까지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가장 큰 상급은 무엇보다 성삼위 하나님을 만나 뵙는 것일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상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무엇을 향해 가나요?”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멘.
<2025. 01. 23.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장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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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기다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오늘은 이사야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눔니다오늘 본문은 징계를 받고 있는 남유다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 하시는 내용이며크게 세 가지 주제로,

 

첫째하나님이 기다려 주시며 응답을 약속하시는 내용과,

둘째되어질 일을 계시해 주시며 신앙 회복을 예언 하시는 내용과,

셋째다시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는 예언 내용입니다.

 

징계는 받았지만 진심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기다려 주시고회복시켜 주시고다시 함께 하여 주신다는 이 내용은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이미 많이 접해본 우리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의 은혜의 스토리입니다.

 

이런 과정으로 전개되는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우리 모두는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제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잘못을 잘못으로 깨닫지 못하고 진짜 숨겨진 나의 잘못은 무엇입니까잘못을 잘못으로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악하고 거짓된 마음들은 무엇입니까잘못하고도 오히려 다른 잘못을 더 쌓아가면서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가증스러운 것들은 또 무엇입니까?”

 

알려 주시고깨닫게 하시고나의 모든 죄악과 불의와 거짓과 불순종을 낱낱이 드러내 주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끓어 엎드려 가슴을 치며 참회의 자리로 날마다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나의 잘못을 받아들이려는 심정으로 오늘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런 마음으로 들으시라고 하는 것이냐면오늘 말씀의 대상인 남유다가 징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잘못을 혼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우리도 여기에 맞추어서 내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마음에서 출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들으시면 성령이 주시는 은혜가 역사할 줄 믿습니다.

 

먼저 본분 18-19절을 읽어 드립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아멘.

 

이 말씀에 앞선 이야기는 남 유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세의 공격에 맞서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이야기(1~7)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의 법을 따르지 않고금방이라도 터진 둑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남 유다의 죄악들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라고 시작합니다앞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보시면다른 나라 군대를 의지하려고 더 이상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고하나님의 말씀을 업신 여기고 허망한 것만을 쫓아 다니는 어리석은 남 유다 백성들 임에도,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는여호와께서는 기다리신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18절에 왜 그러나라고 시작했는지 아셨을 겁니다지금 남 유다 나라와 백성은 멸망 일보 직전이며 큰 징계의 매를 맞고 있는 상황입니다참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악해지면 악해 질수록 자기에게 도움을 주고 살 길을 열어 주려는 어떠한 권면도 듣지 않고 더욱 악을 행하려고 합니다.

 

쫄딱 망한 후에야 가슴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남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하나님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혼내고 선지자를 계속 보내서 돌아오라돌이키라고 호소와 권면을 했지만 남 유다는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이쯤 되면 망하는 것이 맞습니다망해야 정상입니다그래서 나중에는 실제로 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직은 망하지는 않은 지금 상태에서 여전히 기다려 주고 계시다고 말씀 합니다하나님의 기다리심이 무엇을 의미 합니까한 손에는 긍휼과 자비와 회복의 은혜를 들고 계시고한 손에는 채찍과 형벌과 심판과 멸망을 들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며다른 한 편으로는 끝까지 인정하지 아니하고깨닫지 아니하고돌이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철저한 공의를 행사하시는 것을 결코 멈추시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는 것은 회복과 멸망의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습니다어찌 되었든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시고 은혜로우신 사랑의 하나님 이신 것은 틀림 없습니다.

 

18절을 중간까지 읽어 드립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아멘.

 

아멘이 저절로 나오는 구절 아닙니까은혜 베풀어 주시고긍휼히 여겨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가 그토록 많은 잘못과 실수와 죄악에 빠져 있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언제 까지 참고 기다려 주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불쌍히 여겨 주시는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우리 모두는 긍휼히 여겨 주시면서 오늘도 기다려주고고 계시는 하나님의 보호 하래 있음에 항상 감사하고항상 참회 하며항상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시선생각언행을 하나님을 향하여 조금이라도 돌이키려는 자세를 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이런 마음 중심이 잡혀 가는지 하나님은 우리의 언행을 세심하게 살피고 계십니다.

 

18절 후반부를 읽어 드립니다.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아멘.

 

대저라는 단어는 앞뒤 인과관계를 이어주는 말로 기다리시는 분이시기때문에)” 라는 원인이 발생해서, “분명하게의심 없이확실하게”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연결해 주는 단어입니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는 결과가 확실하게(분명하게의심 없이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오늘 설교의 제목입니다여기서 복은 무엇일까요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자체가 복입니다기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단 하나의 기대는 우리(자녀백성)가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 받은 자가 되는 방법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과 시선을 돌리고그 분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 하며즉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결단을 시원하게 올려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고다시 동행 할 수 있고다시 거룩한 임재 안에 머물며 평안과 소망의 삶을 살아가면서 땅에 복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복 받는 것이 성공이나 물질이나 문제의 해결 일 수 있겠지만그것들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부차적인 산물임을 아셔야 합니다정말로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복있는 사람복 받은 사람의 개념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생 마지막까지 알지 못한다면돌이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대통령이 되든, 1조 부자가 되든암이 치료되어 20년을 더 살든자녀가 최고의 학교를 합격했든회사의 사장으로 승진 했든 그런 것들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부러워 할만한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을지라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아가면서 얻은 결과물들은 공의를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하나님은 오직 기다려주심과 긍휼 베풀어 주심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19절은 돌이키는 자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는 것이것이 돌이키려는 자들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부르짖고 응답을 받는 자들은 다시는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통곡은 애통이나 슬픔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울고 싶은 상황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픈 상황이 생기지 않는 경우는 하나님 품 안에 있을 때와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하나님은 부르짖는 자들을 품 안에 안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풍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짖고 응답 받은 자들(돌이킨 자들)은 더 이상 근심 걱정염려할 일이 다 사라져서 항상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출발점이 무엇이었나요징계 받는 상황입니다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이 있더라도 기다려 주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그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 해 주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으며 은혜를 기다리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이러한 말씀을 오늘 처음 들어본 분은 없을 겁니다돌이키라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는 말씀은 수도 없이 들어오셨을 겁니다이번 만큼은 오늘 여러분의 귀에 들려진 이 말씀 대로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언행심사를 낱낱이 살펴 보시며다시 하나님 품 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시고부르짖으며 돌이킬 때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진정한 하늘의 복을 받은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계시를 통한 신앙 회복의 말씀으로 20~21절을 읽어 드립니다.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아멘.

 

20절에 스승이라는 단어는 어떤 영어 성경(ESV, NASB, NRSV)에서는 대문자 단수로(your Teacher)썼는데이것은 스승이 곧 하나님 이심을 나타낸다는 의미이고또 다른 영어 성경(KJV, NKJV, NIV)에서는 소문자 복수형(your teachers)으로 썼는데이것은 여러 명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스승이 누구이든지 하나님이 직접혹은 간접으로 말씀으로 교훈 하신다는 의미는 동일합니다.

 

이 계시 예언은 총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20절 마지막에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다른 곳으로 돌린 시선이 다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둘째, 21절 마지막에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다른 길로 가고 있던 발걸음을 붙잡아 주셔서 다시 올바른 길로 걷게 해 하십니다.

셋째, 22절 마지막에 더럽고 불결한 것을 던지며 나가라 하리라,” 귀신을 쫓아내고 죄악을 끊어내서 다시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게 해 주십니다.

 

이 세가지는 전부 믿음의 회복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이러한 회복의 약속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 하면서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고바른 길로 나아가고더러운 것을 버리면서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여 가시는 영원한 우리의 주인이며 스승이신 한 분만을 따라가며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말씀은 회복된(돌이킨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내용으로 23~26절을 읽어 드립니다.

 

“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25.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아멘.

 

징계 받고 책망 받는 내용을 읽으면 듣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이나 부담이 갑니다그런데 이런 복 주시는 말씀을 읽으면 그냥 읽기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집니다잘 될 것이라는 말들은 언제 들어도 귀가 즐거운 법입니다.

 

그런데 복을 주시려는 이 말씀은 회복된 자들에게돌이킨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내가 이 복의 말씀의 주인공이 되려면잘못을 철저히 인정하고 회개하고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해 더러은 죄악들을 끊어내고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자로 부르짖으며 살아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노력없는 성과는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참된 회개와 믿음의 회복 없이는 어떠한 복도 누리지 못합니다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내려 주시는 원칙이자 복 받는 원리입니다.

 

저는 이 풍성한 복 주심의 말씀 중에서 26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감동으로 울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여 징계를 받는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자녀들이 겪고 있는 빈곤과 황폐함의 상처들을 어루 만져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러한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 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분노하시며 미워하시지만 연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한 없는 자비하심으로 측은하게 여겨 주십니다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26절 마지막에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우리가 드디어 징계를 벗어나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햇빛이 일곱 배가 밝아진다는 것은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을 만큼 온전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를 징계당하게 만들었던 온갖 죄와 더러움과 불결함과 불순종과 불의함과 거짓들은 다 물러가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아래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그 날이 오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충만한 빛 가운데서 영원토록 살아가도록다시 믿음의 자리로 속히 돌아 오도록 오늘도 내일도 기다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주시고 계시고그러한 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도 복이 있다는 오늘 말씀이 6월 한달 동안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계속 생각이 되고묵상이 되고기도가 되는 말씀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책에 나오는 문장 한 구절을 말씀드립니다괴테는 파우스트라는 그의 인생의 역작을 썼는데 이 책의 천상의 서곡’ 부분에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라는 문장을 쓰기 위해 무려 60년 이라는 시간을 할애 했습니다그가 그토록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엇을까요?

 

그 고민에 대한 대답은 연구가나 철학자들에게 맡겨도 됩니다저는 괴테가 말한 부분을 신앙과 연결해서우리가 하나님을 지향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한 넘어짐의 순간은 끊임 없이 반복된다는 의미로 생각해 봤습니다.

 

인생에 부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신앙에 시험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영생과 소망을 기다리는 동안 지쳐 쓰러지는 사람이 한 둘이겠습니까우리가 하나님을 지향하며 사는 한이러한 걸림돌(파우스트가 말한 방황처럼)은 무수히 많은 고난과 시련과 유혹이 돌발적으로 등장할 겁니다.

 

지금까지도 힘들었지만 아직 더 큰 방황꺼리가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임마누엘로 오신 겁니다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회복을 약속 하셨습니다풍성한 복 주심도 선포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우리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됩니다그러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고다시 걸어갈 수 있고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기다리는 자의 삶의 자리로 당당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의 마음에 기다려 주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회복하여 주신다는 약속이 믿음으로 역사하기를 바랍니다복 내려 주시는 말씀들이 긍휼의 은혜로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비록 눈물을 흘리더라도 씨를 뿌리는 일을 멈추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오직 순종오직 소망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품으로 전진해 나아가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축원하고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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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저희들의 잘못과 죄악들을 참되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기다려 주시고복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때까지 부르짖으며순종하며기도하며 살아가게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강하고 담대하려면 41:8-16, 고후12:7-10
팡세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요, 수학과 물리학자이며, 종교사상가인 파스칼은 사람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은 괴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엄청난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자녀로 삼으실 때에는 모든 은총을 주시기로 이미 작정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우시니 우리가 사는 동안 강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누구나 강하고 담대한 신앙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살아가기에 녹녹치 않은 곳입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환난과 시련이 많은 곳입니다. 재난과 질고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낙심과 좌절 가운데 빠져 어찌할 줄 모르고 두려움 가운데 염려하고 근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한 성도로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두 본문의 말씀을 통해 강하고 담대하려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려면,


1.자신의 약함과 허물을 인정함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이나 약점을 드러내기 보다는 감추려고 합니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도 좀처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려들지 않는데, 자신의 무능과 실수라 할지라도 끝까지 변명하며 아니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의 약한 모습과 허물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기도 하기에 누가 자기의 약점을 알고 드러내면 원수처럼 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연약한 존재요, 사람마다 많은 약점들을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4:14에서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고, 78:39에는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라고 했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사45:9에서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라고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젊었을 때, 광산에서 전도사의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흐는 광부 한 사람이 물건을 포장했던 천으로 셔츠를 만들어 입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셔츠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그것은 원래 포장한 물건에 쓰여 있던 글씨였습니다. 거기에는 부서지기 쉬우니 주의해서 다룰 것이라는 글입니다. 이 때 고흐는 광부가 입었던 그 옷의 글씨를 보고 마음에 큰 깨달음과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서지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구나!’ 하는 깨달음 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강한 것처럼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무능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약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14절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렁이는 뿔도, 날카로운 이도, 강한 힘도, 지혜도,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독도 없는 연약한 미물입니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드러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9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빌 클링턴은 경제정책으로 성공을 거둔 전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나 성적 스캔들로 인해 그의 명성은 회복되기 힘들 정도로 얼룩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잡지에 빌 클링턴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첫머리가 "빌 클링턴이 회개하다."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당시 클링턴 정부에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정책 자문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이벨스 목사는 클링턴 대통령에게 제안합니다. 미국 각 주의 목사대표 4천명이 모이는 기도회에서 스캔들을 공개하고 회개하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그때 클린턴은 승낙하고 목사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과거에 용서라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로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입으로 내 자신의 죄를 주님께 고백함으로 나는 아침마다 감싸는 그분을 느낍니다. 주님께 내 약함을, 내 죄를 고백함으로 그분이 나를 사랑하고 용서하심을 느낍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정치적인 쇼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클링턴의 회개를 듣고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클링턴과 가족이 겪었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싸매어 다시 한 번 큰 지도자로 삼아달라고 모두가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함과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다윗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할 때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남다른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약함과 허물을 인정하고 드러냄으로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했습니다. 야곱을 나의 택한자라고,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시며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말씀 하신 대로 야곱이 위태한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심지  혹은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견고하다.’는 말은 버티다’ ‘의지하다’ ‘유지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사람을 평강 중에서도 평강으로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는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잘되고 형통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만 높이는 자가 되고, 욥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 시험을 만나도 변함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약함 때문에 더욱 주님 의지함으로 강하고 온전해짐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가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면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고,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자들에 대해 약1:6-8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란 흔들리는 마음으로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이 어려움이 없고, 기분이 좋고, 일이 잘 될 때에는 감사하며 신앙이 좋은 것 같다가, 환경이 나빠지고, 일이 잘되지 않을 때에는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절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신앙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걸고 나아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이 신앙의 길에서 마음이 흔들려 견고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나님께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숯과 다이아몬드는 원소기호가 동일한 탄소인 C 입니다. 그런데 같은 탄소 원소에서 하나는 아주 가치 있는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하잘 것 없는 숯 덩어리가 됩니다. 인생도 같은 것이 주어지나 그것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느냐, 숯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던 노아, 에녹, 아브라함, 요셉, 다니엘, , 다윗, 사도들, 바울, 스데반, 빌립 등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믿음의 족적을 남기는 자들이 되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살았던 고라, 다단, 아비람, 사울 왕, 발람 선지자, 가롯 유다, 주님을 따르고자 했던 부자 관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데마 등은 까만 숯덩이 같은 부끄러운 족적을 남겼습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경우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면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구약 본문 14절에 하나님께서 연약한 이스라엘을 도와주셔서 승리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렁이 같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라 고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면 강한 자가 되어 대적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패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렁이 같이 연약한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도와서 승리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견고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시어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약 본문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육체에 가시 사단의 사자로 불릴 만큼 바울에게는 고통을 주는 육체의 질병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많은 은혜 체험을 했고, 남다른 은사를 받아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도중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여러 교회를 세우고, 신약 성경 중 13개 서신을 기록한 것 등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몸에 고통스런 가시로 인해 그는 세 번 간절히 기도하다 받은 응답은 첫째, 그가 교만하게 되지 않고 겸손한 자가 되도록 하려는 주님의 섭리임을 알게 된 것이고, 둘째, 그로인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함으로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자신의 약한 것을 통해 더욱 강한 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고, 셋째, 가시도 주님의 은혜임을 알고 기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 것입니다. (8:28)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여덟 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로 생명을 건졌으나, 고열로 인해 청신경 마비를 가져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후천성 청각장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하여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듣지 못하면 울부짖고 싶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터질듯 한 가슴의 응어리들을 그림에 쏟았습니다. 지금은 내 자신이 귀먹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요. 귀가 들렸다면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고통도 없지 않았지만 폐쇄된 소리의 공간이 있었기에 작업에 몰입하며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김화백이 귀머거리 된 것은 개인적인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그는 고통을 통과하는 중에 자신 안에 하나님이 주신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했으며, 약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천하게 여기는 자들을 택하시어 부자나 학식 있는 자들이 못하는 일을 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망나니 같은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계를 느끼고 좌절할 때에도 기뻐하면서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러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의 말씀을 통해 강하고 담대하려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려면,
.자신의 약함과 허물을 인정함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도우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면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2024. 06. 05.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거룩하다 하고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이사야 8장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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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이후 한달 동안은 거룩을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꼭 부활절을 지나서가 아니라 우리 삶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하나님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그리고 거룩함으로 항상 하나님과 함께(동행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나요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 내신 것 같으신가요아마 저를 포함한 단 한사람도 당당하게 거룩하게 살앗다고 자신하지 못했을 겁니다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거룩하게 살만한 자격과 능력이 없고 또한 그러한 의지조차도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연약한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한 주 동안 잘 사신 분이 계신데 제가 모조리 다 거룩하게 살지 못햇을 것이라고 단정해서 말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십자가 고난의 순종을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스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우고보혜사(지켜 보호 하여 주시는성령님과 동행하는 방법 뿐입니다.

 

우리는 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지닌 연약한 자들이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문제와 상황에 얽매여서 그 뒤에 서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오늘 말씀 속에서 거룩함에 다가가는 하늘의 지혜를 깨닫고 부활신앙의 강한 믿음으로 충만케 되셔서 거룩의 삶을 살아내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제가 부활절 이후의 거룩한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를 말씀 드리면서 굳이 아주 먼 과거 시대(7~800여년 전)를 이야기 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이 이사야 시대의 최대의 적대자였던 앗수르 제국과 같이 우리의 믿음과 거룩을 집어 삼키려는 보이는 적보이지 않는 적들이 득시글 거리는 살벌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이후에는 우리의 믿음이 최고 정점에 이릅니다사탄은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고 점점 거룩해져 가는 것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간교한 술책을 무기로 더 집요하고더 달콤하고더 쎄게 공격할 태세를 갖춥니다공격자들에 대한 경계심과 경각심이 없으면 싸움은 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나의 영혼을 노리고 있음을 느끼시고강하고 담대하게 영적 싸움을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라는 이름 뜻을 가지고 있으며유다 왕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 등 4대에 걸쳐 약 50년 동안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선지자)였습니다그는 특히 궁중에서 활동한 궁중예언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때의 국제 정세는 강대한 제국 앗수르가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 유다 왕국까지 침략해 왔습니다북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 유다는 히스기야왕이 통치한 지 6년째 되는 해 였습니다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유다를 침공하여 히스기야 왕과 싸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전쟁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국가의 중대 위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앗수르와 싸우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요청하라는 예언을 왕과 백성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적어도 이사야 선지자 생존시에는 싸움에서 이겨냈습니다이사야 선지가 없었다면 남 유다도 더 일찍 멸망 당했을 겁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이나군대나힘 있는 주변 국가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 한 분 만을 철저하게 의지하라는 이사야 선자의 강력한 경고이자 권면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내 삶의 환경을 살펴보면서 과연 나는 어떤 문제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언제 어디서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 하나만을 앞세우는가말과 행동에 앞서 성령님의 동행과 보호를 수시로 요청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각자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부활 이후의 믿음 생활은 ‘임마누엘’를 선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본문 9~10절을 읽어 드립니다. “9.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10.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아멘.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거룩함을 유지하지 못하게하는 가장 큰 주범은 자기 자신입니다애초부터 믿음을 기반으로 살아갈 의지가 박약 하거나믿음으로 사는 것에 무관심 하거나일과 사람이 우선이어서 주일 예배 드리러 오는 것 조차도 시간이 빠듯하다면 일상에서 거룩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내 스스로 영적 싸움에서 이겨내려고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 외에 가장 또 다른 주범은 문제와 상황입니다일상이 평탄 할 때는 믿음이든 거룩함이든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그러나 급격하게 나빠지는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고이런 저런 크고 작은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믿음과 거룩함을 지켜가는 것은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 가장 큰 문제와 상황은 도저히 상대 할 수 없는 대 제국 앗수르의 침략이었습니다이런 국가적인 대 위기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믿음으로 이 난관을 돌파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애굽이나아람이나다른 나라들에게 도움을 받아 전쟁을 대비하려 했습니다.

 

이렇듯 보통 사람들의 성정은 매우 급한 일이 생기면 주변 사람이나 다른 무엇(,요행)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이것이 연약함입니다하지만 부활신앙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돌발적인 문제와 상황을 만날 수록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훈련이 철저하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민족들아라고 침략자들을 부르면서, “너희 제국의 무리들아너희가 함성을 지르든(전쟁선포)허리를 동이든(침략준비완료)허리 띠를 띠든(실제 침략)하든 해 볼 테면 해 봐라끝내 패망하리라(3)계획 해봐라 이루지 못하리라말을 해 보아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담대하게 선포합니다무서워서 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 제국을 조롱하는 이사야의 배짱이 대단합니다.

 

이사야는 힘도 없으면서 괜히 허언을 쏟아내거나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한 번 해보자는 응원가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요청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실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입니다무모하리만큼 그렇게 승리를 장담하는 이유가 10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아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이미 이겼다고 승리를 선포해도 괜찮습니다우리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엄청난 위협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낱 지푸라기와 같습니다하나님이 싸우시도록 맡기면 됩니다.

 

우리가 문제와 상황을 보고 겁이 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맡기는 것이 안 되기 때문에맡기는 것에 대한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맡기면 이긴다는 승리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급한 나머지 자꾸 내가 하려고남의 힘을 빌려 어떻게 해 보려고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겁니다.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가 멸망할 때도 하나님에게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줏대 없이 이나라 저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다가 비참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문제와 상황을 물리쳐 주시고 적들을 패망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 하셨는데도 내가 하려다가 넘어지고또 내가 하려다가 빼앗기고끝까지 내가 하려다가 돈 잃고 건강 잃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혼자 낙심과 절망 속에서 생각하기를 조금만 더 했으면 될 뻔 했는데누군가 조금만 더 도와 주었으면 분명히 됐을텐데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요청하지 않아서 멸망 당했다는 진짜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 없는 자가 아니라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불신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문제와 상황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본 대응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문제입니까?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목사가 책임져야 하고말씀으로 가르치고 훈련시켰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 여전히 내가 할 거야내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라고 되도 않는 열심을 내려고 한다면 누구 탓 할 것도 없이 각자가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서 열방의 악한 무리들를 향하여 너희들은 패망할거야이루지 못할 거야시행되지 못할거야라는 담대한 선포를 하면서봐라 싸움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시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군대가 아니라옆 나라의 도움이 아니라저 무섭게 생긴 어마어마한 무리들은 하나님의 싸우심으로 인해 지푸라기 같이 흩어질거야 라는 믿음의 전쟁거룩함의 전쟁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이 진짜 싸움의 실력입니다이사야는 거룩한 믿음의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준 것입니다우리도 이렇게 싸우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사야처럼 선포하는 방식으로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들은 죄와 불의와 거짓과 음란과 타협과 우상숭배와 불순종과 외식과 교만입니다우리는 오직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그래서 우리의 전쟁은 성령충만하느냐못하느냐가 승패를 좌우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담대히 이렇게 선포 하십시오. “사탄아귀신아마귀야 나를 공격해도 소용 없다너는 이미 패배한 존재이다어디 나를 괴롭게 해 봐라 시행되지 못할 것이다나를 유혹해 봐라 이루지 못할 것이다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만을 믿는다네가 믿는 것은 무엇이냐더러운 거짓의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신 이름으로 명하노니내 마음과 생각에서말과 행동에서내 삶의 영역과내 전 인생 가운데서내 가족에게서 영원토록 떠나가라, 명하노니 다시는 오지마라” 아멘

 

부활절 이후에 우리가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느냐또다시 연약하고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으로 갈대와 같이 흔들리며 불안하게 살아가느냐는 오직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얼마나 담대하게 선포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승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워서 임마누엘의 영광과 은혜 아래 보호받으며 항상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날들로 살아가시고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거룩하게 지켜 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부활 이후의 믿음 생활은 ‘거룩’을 선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어지는 11~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1.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12.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아멘.

 

사람들도 아무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듯 하다가경조사가 벌어지는 자리에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더구나 죽고사는 급박한 전쟁을 앞두고 한 마음으로 일치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더구나 전쟁 같은 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이게 옳다저게 옳다 하면서 대혼란을 불러 일으킵니다.

 

앗수르의 위협이 드세지자 유다의 신하들은 당시 아하스 왕에게, “앗수르 편에 서서 화친을 맺어야 합니다아닙니다 북 이스라엘과 함께 동맹해서 맛서야 합니다둘 다 아닙니다 어느 편에 서지도 말고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중구난방의 이야기들을 쏟아냈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여호와의 강한 손(권능권세)이 깨우쳐 알려 주셨다고 하면서 임박한 전쟁 가운데 내부의 혼란에 일체 참여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이사야는 서로 자기 주장을 하면서 상대방을 반역자라고 공격하는 그런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살길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샤야가 말한 이 살길이 당시에도 살길이었고지금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도 유일한 살길입니다특히믿음으로거룩으로 살아가야 하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이사야가 말한 유일한 살길은 13절입니다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아멘.

 

만군의 여호와라는 호칭에서 이미 여호와 하나님만이 만군(셀 수 없는 하늘의 군대를 거느리신)의 주인 되심을 선포했습니다우리의 싸움이 아닌 만군의 사령관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싸움의 선봉에 서 주시도록 요청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싸움그것이 사람과 다툼이든지영적 싸움이든지신앙적인 내면의 싸움이든지그 모든 싸움을 할 때 만군의 여호와를 불러야 합니다만군의 여호와를 부르지 않으면만군이 아닌 내 개인 혼자 싸우겠다는 것과 같습니다여러분 중에 혼자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으시면 만군의 여호와를 부르시지 않아도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를 부른 그 다음도 매우 중요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이 거룩한 분이십니다” 라고 선포하는 겁니다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를 향해 쳐 들어오는 포악한 군사들을 다 물리쳐 주세요내 마음을 유혹하는 사탄의 무리들을 물리쳐 주세요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을 바로 잡아 주세요음란함과 방탐함에서 빠져 나오도록 악에서 건져 내 주세요”....

 

만군의 여호와를 불렀으면 이런 식의 무언가 구체적인 싸움의 내용들을 요구해야 할 것 같은데이사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가 거룩하시다는 것을 선포하라고 했습니다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 모든 싸움을 이기는 이유가 될까요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거룩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선포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 하심과살아계심과 역사 하심을 100% 인정한다는 믿음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거룩하신 분이 거룩하지 못한 우리곁에 오시기를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며긍휼과 자비를 간구하는 겸비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선포하는 자들을 구별하여 어떤 해와 악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돌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을 선포한다는 것이 이토록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성경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 이해가 되셨을 겁니다거룩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거룩함으로 긍휼을 구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잘 아셨죠거룩함을 선포하는 것은 함께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려는 우리의 기본적인 믿음의 태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그런데 거룩하다는 것만을 선포하면 끝이 아닙 니다이사야 선지자는 그(여호와)를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자로 삼으라고 했습니다오늘 설교의 제목이 이것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잔혹한 앗수르 군대의 소문만 듣고도 너무나 무서웠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그토록 잔혹한 앗수르 군대를 일거에 진멸(살아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멸하심)하실 수 있는 진짜 무서운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 할 것이 무엇입니까모든 나라모든 군대모든 개인을 일거에 진멸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 사람은 이미 승리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오직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 한 분에게만 의지하고 도움 받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도 사실 신앙훈련을 받아 오면서 이렇게 하여야 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런 급박한 상황이 밀려 올 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하나님만이 두렵고 무서운 분이십니다하나님이 나서서 싸워 주옵소서라고 요청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그렇게 해서 승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이후에 우리의 믿음은 다른 때보다 많이 채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자랑할 만 것도 아니고더더욱 싸울 만한 믿음이 아닙니다다만거룩하신 하나님을 선포하고두렵고 무서워 하는 분에게 의지하는 수준에는 충분히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모두가삶의 일상에서 성령 충만하심으로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선포하셔야 합니다또한 진실로 두려워 하실 분을 두려워 하시고 무서운 분을 무서워 하며 살아가셔야 합니다때마다 일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그리하여 어떤 긴박한 문제와 상황에서도 반드시 이겨 내시고 늘 승리의 기쁨속에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부활 이후의 믿음 생활은 ‘걸림돌’을 선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함께 하심과 거룩함을 선포하는 것에 이어서 이사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반전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본문 마지막 부분인 14~15절을 읽어 드립니다.

 

“14.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아멘.

 

이사야 선지자는하나님과 함께 하기 원하고 거룩함을 선포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성소가 되시고 반석이 되어 주실 것이지만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싫어하고 거룩하심을 더 이상 선포하지 않는다면 걸림돌이 되어 넘어져 부러지게 하시고함정이 되어 빠져 버리게 하시고올무가 되어 걸려 덫에 결려 잡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함께 하심과 거룩함을 선포하면 승리와 영광이요함께 하지 않으면 진노와 멸망 뿐이라는 것입니다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합니다로마서 말씀에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2)라고 했습니다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믿지 않는믿음 없는 행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성소와 반석으로 함께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하나님이 걸림돌과 함정과 올무가 되어 나를 멸망 시키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동일한 마음일텐데하물며 이스라엘처럼 선택받았다고 하는 자들이나이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누가 걸려 넘어지고 싶겠습니까누가 함정에 빠지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실상은 하나님이 성소와 반석이 되기 보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만큼 이 세상은 믿음이 없는 시대입니다아마 이사야가 이 시대의 예언자였다면 작금의 세상과 세태를 바라보며 경악했을 것이고구약 시대 보다 훨씬 더 쎄고 제일 고강도의 무서운 경고를 했을 겁니다.

 

우리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아야 하지만여기에는 오히려 자주 걸려 넘어져야 한다는 신앙의 역설이 있습니다내 욕심내 자랑내 공상내 자존심내 습관내 언행들이 수시로 반석에 걸려 넘어져서 깨지고 부서져야 합니다부딪치고 또 부딪치다 보면 가루가 될 것입니다가루가 될 때쯤의 믿음의 수준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걸림돌에 걸러 넘어지지 않아야 하지만걸림돌에 자주 걸려 넘어져야 한다는 이 역설이 우리 신앙을 성숙으로 이끌어가는데 유효하게 작동 되어야 합니다믿음의 반석과 성소믿음 없음의 걸림돌과 함정과 올무가 우리 인생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은 이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끊임 없는 고민의 시간입니다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우리의 믿음과 거룩함을 유지해 나가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는 결국 걸려 넘어지는 결과가 있었지만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들은 이사야 같은 선지자의 선포가 없다고 하더라도 반석이시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걸려 넘어지지 않는 선명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믿음으로거룩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 선포를 들려 주었습니다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선포하라!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라!하나님의 걸림돌을 선포하라! 부활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오늘 말씀으로 인해 한층 더 믿음과 거룩함을 더욱 진지하게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매일 같이 반석과 성소에 머무르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매일 같이 걸림돌(함정)을 피해서 평안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오직 믿음으로오직 거룩함으로부활 하신 우리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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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우리의 마음과 생각말과 행동을 붙잡아 주셔서 우리에게 은혜로 내려 주신 고귀한 믿음과 거룩함을 끝까지 잘 지켜가도록 성령 충만함으로 보호하여 주옵소서항상 함께하여 주시며 평안과 소망으로 인도하여 주시는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그리스도의 고난 53:7-12, 5:7-12
폭포가운데 세계적인 3대 폭포의 명소로는 북미와 캐나다 접경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남미의 이과수 폭포,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폭과 높이가 웅장하고 대단합니다. 만일 이 폭포들이 물줄기의 폭이 넓지 않고 낙차가 없이 평범하고 고요히 흐른다면 결코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이 바위에 부딪혀 물보라를 이루고 물줄기가 곤두박질쳐 폭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려고 찾아와 그 장대한 광경을 보고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극한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부딪히고, 꺾이고, 떨어지고, 망가진 곳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고통을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고통에서 예외일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하여 고난이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봉사한다 하여 그 대가로 고난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데 왜 그렇게 하실까요? 고통 속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숭고한 목적과 섭리, 은혜가 내재(內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데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1.죄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초하신 고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구약 본문 사53:6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각기 제 길로 갔다는 말은 '사람들이 제각각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외면한 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죄를 범하며 그릇 행하며 살면서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은 큰 죄인 취급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죄가 없다고, 선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는 다 양 같다는 말 가운데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고, 선지자인 이사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가 머물고 있는 성전에 임하셨을 때 그 모습이 너무나 거룩하여서 순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절규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이사야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이제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했는데, 그가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로 일반 사람들 보다 선하게 살았을 것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볼 때 자신의 더러운 죄가 다 드러났기 때문에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발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병자가 병원에 가서도 자신의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면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자신의 병의 원인을 발견하였다면 거기에 맞는 처방을 통해 치료할 수 있고, 건강이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죄에는 수치와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6:23)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죄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으로 죄를 은폐합니다. 돈으로 재판관들을 매수해 죄 없다는 판결을 받아냅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숨길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를 해결할 길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했다고 했고, 6절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했습니다. 여기 그는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당할 수치와 형벌을 예수님으로 하여금 대신하여서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당하신 죄의 대가를 보면 본문 3절에 멸시를 당하셨다고 했고, 4절에서는 슬픔을 당하셨다고 했고, 5절에서는 그가 찔렸다’, ‘그가 상하였다’, ‘그가 징계를 받았다’, ‘그가 채찍에 맞았다고 했으며, 7절에서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워하였다’, 8절에서는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했으며, 9절에서는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다고 했고, 12절에서는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 하셔서 우리 대신해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고초를 당하신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한 말씀처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의로운 분이셨습니다. 11절에 가라사대 ...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 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은 자초하여 하나님의 신분을 버리고 종의 신분, 죄인의 신분으로 낮아져 우리들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온갖 수치와 수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본문 5절에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사랑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신 고난입니다.
분문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아버지의 원하신 일이요, 주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속죄재물이 되심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그리고 대적들에게 체포되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님은 하나님 앞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올리신 것을 말씀 하는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9:6)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창조의 근본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성삼위 하나님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셨으며, 피조 된 모든 세계를 말씀으로 세우기도 하시고 무너뜨리기도 하셨습니다. 각색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목마른 자들에게 생수를 공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히 통곡하며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시기에 대하여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셨지만, 인간들의 죄를 없게 하기 위하여 육체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육체를 입는다는 것은 여러 제약이 따릅니다. 주님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오는 여러 한계를 경험해야 하셨기에 때로 시장하시기도, 피곤을 느끼시기도 하셨으며, 육체가 요구하는 많은 소욕들과 싸워야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온전한 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9:13-14)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흠 없는 제물이 필요하셨는데, 제물이 되려면 인간과 동일한 육체가 필요했고, 흠이 없으려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따르는 십자가의 죽음은 연약한 육신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수난을 앞두시고 번민하셨습니다. 26:39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했는데, 할 수 있으면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이 따르는 십자가는 피하고 싶지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입니다.(2:8) 본문 히5:8-9에도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고난의 길을 순종하여 가셨습니다. 본문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헤롯과 빌라도의 심문이나 백성들의 아우성치는 소리에도 잠잠하셨습니다. 주님은 왕으로, 선지자로,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장래의 영광을 내다보시며 묵묵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도 아버지께 절대 순종의 모습을 배워 주님 발자취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숭고한 목적이 담겨있는 고난입니다.
본문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면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예언하면서 속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속건 제물'이란 범법한 자가 그 범법에 따르는 배상을 해야 하는 '배상 물'을 가리킵니다. 그 배상물 가운데는 수양도 있었습니다( 5:15-16, 6:6).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의 죄에 대한 배상 물이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 결과는 를 보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배상 물이 된 결과 죽었던 죄인들이 살아나는 구원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 날은 길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 희생 후 부활하심으로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영생을 얻게 된 자들의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6:9, 고전 15:20).
구약 본문 10절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손'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숭고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고귀한 목적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약 본문 9절에도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세상에 온 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6:38-40).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수난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하는( 53:11) 사역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수난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숭고한 최고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 죄인을 향한 놀라우신 사랑의 증표요, 실로 많은 죄인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은총의 근거가 되고,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의 밑거름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이 되셨고, 별이 되셨고, 어둠을 이기고 솟아오르는 돋는 해요, ( 1:78) 세상의 빛이요, ( 8:12) 광명한 새벽별이 되셨습니다.( 22:16)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2-3)고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는 숭고한 목적을 알고 감사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초하신 고난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신 고난입니다.
.숭고한 목적이 담겨있는 고난입니다. 아멘.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은혜로운 새출발    사 26:1~7 

정기남목사설교자료
  
은혜로운 출발
사 26:1~7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가 불려지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한 성읍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벽들과 보루들을 세우시리로다. 2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서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민족이 들어오게 하라. 3 주께서는 마음을 주께 의탁하는 사람을 완전한 화평 속에 지키시리니, 이는 그 사람이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4 너희는 주를 영원히 의뢰하라. 이는 주 여호와 안에 영원한 힘이 있음이라. 5 그는 높은 데 거하는 자들을 끌어내리시며 거만한 성읍을 낮추시어 땅까지 낮추시나니, 곧 흙에까지 끌어내리시는도다. 6 발이 그것을 짓밟으리니, 가난한 자의 발들과 궁핍한 자의 걸음걸이로다. 7 의인의 길이 정직함이여, 지극히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길에 균형을 이루시나이다.”아멘(킹-성경)

2024년 새해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일들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들, 괴로웠던 것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하여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면 이젠 다 있어버리세요, 마음을 새해와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깨어지고 녹슬고 보기 흉한 놋쇠도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서 불순물은 다 타버리고 깨끗한 쇠만 남게 되고, 좋은 새 그릇이 됩니다. 우리가 국가나 개인이나 깨어진 것들이 많았을지라도 모양새가 역겨운 것들이 있었을지라도 그와 같은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깨끗한 정부 깨끗한 그릇으로 새롭게 되기를 기원하며 우리 또한 새마음으로 2004년을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자매가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했다.“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합니다.뭔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작심삼일입니다.그래서 새해가 되었어도 새로운 계획 같은 것을 세우기조차 겁이 납니다” 목사님은 그의 말을 듣더니 창고에 가서 먼지가 뽀얗게 서려있는 낡은 소쿠리를 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자매님! 이유는 묻지 말고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자매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소쿠리에 물을 담아보려고 했다.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는 물이 담기지 않았다.목사님은 결국 빈 소쿠리를 들고 온 그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비록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있던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어도 무언가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새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결단으로 새롭게 시작하시되 주님과 함께 가는 출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26:1-6절 말씀에서 새롭게 활력을 불어 주시는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의 기쁨과 환희의 노래가 여기에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도 새해 첫 시간을 시간부터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이 얼마나 은혜가 되겠는가? 1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성읍이 견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을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들을 지켜 줄 때만이, 내가 너희들의 성이 되어 줄 때만이 너희의 생은 견고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우리의 성을 쌓고 지키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의 불씨는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불행의 불씨가 있는 한 새해를 맞이한 새 아침의 의미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불행의 불씨가 아닌 성령의 불 축복의 불이 여러분의 심령을 태우는 성스러운 역사로 바꿔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믿음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가스난로를 처음에 켰을 때 불꽃이 아주 적습니다. 그러다가 불이 확 살아납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비록 나는 약하나, 믿음의 불꽃만 있다면 믿음생활의 변화는 시간문제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마 17:20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좋으신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신뢰하고 삽니까?

오늘 새해 첫 시간부터 못할 것 없습니다. 겨자씨만큼만 믿음이 있다면 되는 것입니다. 적은 불씨만큼만 있으면 산도 태산도 불태울 수 있는 능력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만 있으면 믿음생활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하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작은 불씨로 나무에 불을 붙입니다. 작은 불꽃하나가 커져서 모닥불처럼 불이 커져서 각가지 음식도 끓여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나같은 사람도 작은 불씨가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가 사는 마을도 이 사회도 우리 민족도 구원시킬 수 있는 능력 힘이 있구나.. 하고 믿음을 가지신다면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도 자손들도 축복의 역사는 불 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새해에 우리들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얼마든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 없다하지 말고 하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쉽게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쉽게 시험에 들어서도 안됩니다. 시편 16:8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하셨으며, 또 시 46:5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온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새벽이 멀지 않는 것과 같이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비록 깜깜한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리시면 됩니다. 아멘.

이 사실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심지(心志)를 곧게 하면 됩니다(3절). 오늘 말씀 4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가 영원히 의뢰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인간 사이에서도 심지가 곧은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믿음의 심지가 곧은 사람을 하나님은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강의 공식(公式)입니다. 그의 삶에 평강이 없는 것은 이 하나님의 공식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빌 4:6~8 말씀에서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하나님의 평강이 기도와 간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평강의 원천(源泉)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 새해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야 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생활을 절대 필요합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우리는 또 한 차례의 믿음의 도약, 믿음의 전진이 필요합니다. 요 8:12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지위(地位)와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어둠 속에 싸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죄와 적당하게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그 얼굴에 그늘이 져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불씨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금방 태산이라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그 사람의 얼굴과 눈을 보면 힘이 있습니다. 소망이 넘쳐납니다. 눈에서 사랑이 넘칩니다. 친절이 넘칩니다. 말을 해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을 합니다.

요 1:1-5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빛을 받아드리고 빛 가운데 사는 자와 어두움 속에 죄악 속에 빠져 있는 자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 이 얼마나 축복인가?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깨닫고 산다는 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다. 진리를 깨닫고 사니 빛 가운데 사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순히 생명의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했습니다. 양은 멀리 볼 수 없는 근시안(近視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앞만 볼 뿐입니다. 그래도 양이 푸른 꼴을 먹고,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그 앞에 무엇이 있는 알 수도 없고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앞에서 인도하는 목자를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내 고집대로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힘들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무엇든지 할여고 드니까 힘든 것입니다. 그대로 믿고 따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쉽습니다. 쉽게 믿으면서 복은 다 받습니다. 아멘.

여러분과 내가 온전히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쉽습니다. 적응을 못하고 있으니까 어렵지 적응만 하면 제일 쉬운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말씀과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 같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의 불씨가 내 안에 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그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이 지역을 불태우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지역은 물론 이 민족은 살길이 열립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해골 때와 같은 이 시대에 여러분이 작은 불씨가 되기만 한다면 이 민족을 순식간에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교회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믿음생활이 불이 붙는 역사 다시 기도의 불이 붙이시를 소원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원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자들의 삶 속에 성령의 불이 붙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4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열망(熱望)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새해 첫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새해에는 세속에 묻혀 살지 말고 깨어서 빛 가운데 행하시되 열심히 주님만을 따라 가십시다. 바울처럼 따라가십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 고 하셨고, 고후5:17 말씀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204년 한 해를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소망을 가지시고 달려가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세요 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잊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간 일들에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하여 열려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오직 예수 영광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   이사야 64:1-12

 

교회력으로 오늘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은 대림절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교회력으로 하면 오늘은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면 어려움도 있었고, 감사할 일과 기쁜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세월의 강물에 흘려보내고 감사와 기쁨으로 새로운 해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사야 64장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담긴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 이스라엘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앗수르가 등장을 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했고, 이어서 바벨론이 등장을 해서 남 유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결국은 멸망 당할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사야서 전반부에는 절망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 중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경외하고 왕들도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악을 행하고, 하나님 보다는 이방 나라들의 힘을 의지하는 왕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남은 자에 대해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는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보셔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노래했으며,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강림을 기대하는 선포를 하면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오니 이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길 원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

 

대림절은 주님께서 오시길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오시길 기다리는 것은 마지막 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지만 다른 면에서는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우리는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듯이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립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당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길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에서 유다에 살아가는 것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이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정복 전쟁을 계속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들 틈에서 힘들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 도와주시길 간구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고백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강림을 간구하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길 간구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간구한 것은

 

이방 나라들이 떨게 하옵소서. 1-2절을 보면

64: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64: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데 하늘을 가르시고 산들이 진동하게 하시고, 불이 섶을 사르며 불미 물을 끓임 같게 하시고 강림하시길 간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화산 폭발과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산이 진동을 하고 불로 모든 것을 사르고 끓는 용암이 분출을 하게 되는데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특별한 현상과 함께 강림하옵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림하시므로 인해서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 떨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실 때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하셔서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강림하심이 두려움이 아니지만 이방 민족들 앞에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면 그들은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두려움으로 임재하십니다. 3절을 보면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 민족들이 두려워 떨 만한 현상으로 임재하시길 간구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두려움을 주시면서 나타나시기에 산들이 주님 앞에서 진동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출애굽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애굽에 내린 재앙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두려운 일들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때 애굽의 바로와 애굽 백성들이 느꼈던 그 두려움이 지금 이 시대의 이방 민족들에게 임하게 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날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계시록에 기록된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즉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강림하실 때 유대인들을 괴롭힌 나라와 민족들이 두려움에 떨게 해 주시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두려운 일들을 보게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두려운 일들을 행하실 것임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이방 나라들과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임해 달라고 하면서 하나님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들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할 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4절을 보면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 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어떤 종교의 신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한 신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애굽에서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에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그 어떤 종교에서도 그 어떤 신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지금까지 어떤 종교에서도 어떤 신도 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즉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진실한 성도들을 위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힘과 주십니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임해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에게는 새 힘을 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힘들고 지쳤을 때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새 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으로 독수리 날개 치며 나아가듯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이방이 두려워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지금 우리가 겪는 이런 모든 상황들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나 회개하오니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사야는 이렇게 간구합니다.

 

대림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우리가 범죄 하였으므로 주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5절을 보면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는 자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선대 하시는데 우리가 지금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은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우리가 이런 고난에 처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는 불행하게도 우리의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되었기에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들과 유다의 왕들과 백성들이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범죄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이 절망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지만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대림절에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 오심을 기다리면서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6절을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 보건데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고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행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왔기에 결과적으로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은 죄악이 바람 같이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소멸되게 하셨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7절을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어려운 상황이 올 때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붙잡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방신에게 가서 묻고, 하나님을 따르기보다는 우상을 따르고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셨고, 우리가 행한 죄악들로 인해서 우리가 소멸 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고 남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기 직전이기에 이사야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아닌 이방의 신들을 의지한 결과 포로가 되어 끌려갈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3. 그러나 여호와여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고난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고 우리의 죄악으로 소멸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라고 고백한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나 여호와, 라고 외치쳤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비록 우리가 죄악으로 소멸 될 위기에 처했지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버지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8절을 보면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다음에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은 바 된 피조물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흙을 만들어냅니다. 진흙이 어떤 모양의 용기가 되는 것은 혹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토기장이 비유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운명과 존재 자체가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는 까닭은 구원을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 스스로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운명을 쥐고 계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구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또한 절대 주권자이시오니 하나님의 자녀 된 이 백성을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빚으신 우리들을 구원해 주옵소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오늘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아버지의 자녀이듯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해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계속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다 주의 백성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9절을 보면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서 소멸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다 주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에게 너무 분노하지 마시고, 우리의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도 마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위기의 상황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거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용서해 주시고, 절망의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간구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위험에 처해 있는데 하나님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라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10-12절까지를 보면

64:10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64:11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64:12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우리가 죄악을 범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백성이고, 주님의 손으로 빚으신 존재이오니 우리가 겪는 이 고난의 상황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면서 지금 이렇게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일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계시지 않고 반드시 우리를 건져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대림절을 맞이해서 우리도 아마 그런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이 이렇게 되고 있는데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십니까? 하나님, 이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건져주시옵소서.

 

대림절 첫째 주일에 우리가 다시 간구할 것은 예수님, 가만히 계시지 마시고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간절함으로 대림절을 보내고 성탄을 준비하시길 축원합니다.

영광 돌리는 삶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 시간에 “영광 돌리는 삶”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는데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요리문답 제1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뿐 아니라 하나님만 생각해도 기뻐서 날마다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했고, 사43:21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엡1:6에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재 자체부터 자유의지를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셔야 했습니다.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로는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은 자유의지를 가진 최고의 피조물이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 영생하면서 그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계획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돌려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고전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긍휼로 죄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롬15:9에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버림받아야 마땅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자기 피로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가 할 일은 감사와 찬양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엡1:5-6에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했습니다.

 

살전5:10에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생명의 은인인데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함은 당연합니다. 가장 큰 죄는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죄입니다.

 

3.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2:46-47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렇게 한 것은 성령 받은 결과입니다.

 

요3:34에도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했고, 사11:2-3에도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했습니다. 악령을 받으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지만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엡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믿고 믿을 뿐 아니라 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도 약속의 말씀에 서서 날마다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롬4:19-22에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와 함께 성경에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믿고 늘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은혜와 복을 누리는 비밀입니다. 시50:23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영광을 돌릴까요?

 

1.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2.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사는 것입니다.

 

빌2:11에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것이 내가 구원 받고 남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가짜인 이슬람교에 빼앗긴 것이 많습니다. 하루 3번씩 기도하는 것 빼앗겼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처럼만 하면 몇 년 안 가서 세계를 복음화할 것입니다. 예수를 자랑하는 것도 잘못합니다. 이들은 대놓고 알라를 외칩니다. 한국에서 그들이 “하나님”이란 이름을 특허 내서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니 어떤 하나님을 부르는지 구분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국교인들을 포섭하기 위한 수법입니다.

 

포교하는 방법도 그들은 어떻게 해야 국가와 세계를 이슬람화하는지 압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라면서 할 일을 안 합니다. 정교분리는 국가는 종교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지 교회가 국가에 무관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는 교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교회는 국가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속화 이슬람화 공산화는 우리에게 큰 시험을 의미하는데 무관심하는 것은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믿음까지 식으면 우리 기독교는 맛 잃은 소금과 같이 사람에게 밟힐 뿐 어디에 쓸 곳이 없습니다. 예수를 주로 삼고 열심히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후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왜정 말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만주로 가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독립군에 자원을 할 때에 그들에게 세 가지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독립군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① 너는 총에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② 너는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③ 너는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① 너는 죽는다 해도 목숨 바쳐 나를 구주로 믿겠느냐? 아멘! ② 너는 삶 속에서 한 순간도 성령이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살겠느냐? 아멘! ③ 너는 내가 시키는 일을 위해 무엇이든지 순종할 마음이 있느냐? 아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라면 다 믿고 다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벧전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5. 성결한 생활,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고전6:18-19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 가지고 죄짓지 않아야 합니다.

 

6. 빛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마5:16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자녀인 우리도 사랑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가 얼마나 복된 존재인지 그 의미를 알면 영원히 찬송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만 살면 성공합니다. 아버지 기쁘신 뜻대로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처럼 사십시다. 그것이 은혜와 복을 받는 최고의 비밀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6:1-13, 4:9-16

아일랜드의 한 청년이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랑하는 약혼녀가 익사하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이 청년은 아픔의 장소를 피하여 캐나다로 갔지만, 그곳에 안주하기도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죽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자기를 향하여 토네이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은 힘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세요. 응답해주세요.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하며 결단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평화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때 떠오른 영감은 뒤에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찬송가 369)라는 유명한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에 전화해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을 때, 중병을 앓던 어머니가 거짓말처럼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조지프 스크리븐입니다. 스크리븐이 울부짖으며 드린 기도는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기도하다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본문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체험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1.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성결한 자가 됩니다.

구약 본문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받은 은혜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당시는 유대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16세에 왕위에 오른 웃시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백성을 다스렸고, 블레셋, 암몬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고, 망대를 세우고 우물을 파서 국가를 번영케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의 지도를 받아가며 선정을 베풀었고,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졌다"(역대하17:15)고 했습니다. 이러한 웃시야 왕은 온 나라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50년 동안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렸습니다. 이런 왕이 죽음으로 국가적으로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반면에 주변의 다른 나라들의 세력은 점점 막강하여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당시 그러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성전에 들어가 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전에도 수없이 성전에 드나들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영광스런 보좌와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들과 찬양하는 소리와 진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말하며 자신의 죄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이 의롭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자 자신의 죄로 인해 너무 추하고,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데서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다가 밝은 빛 가운데 나오면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앞에 서면 속에 감추진 은밀한 죄까지도 다 드러나게 되어 자신이 큰 죄인인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할 때 하나님께서 스랍을 보내어 제단 위에 불집게로 달아오른 숯불을 집어다 이사야의 입술을 데게 합니다. 제단 위에 있는 숯불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받쳐지는 소나, 양이나, 염소, 비둘기 같은 제물을 태우는데 쓰는 것입니다. 이 숯불을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데었을 때, ‘네 죄가 사해졌느니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사야가 죄 사함을 받고 죄의 문제가 해결함을 받아 죄에서 자유 함을 얻어 성결한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데는 피 값이 들어가야 합니다.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이 따르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런 죄에서 해방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죄인의 입장에 서셨고, 죄인과 함께 멸시, 천대, 배신, 수치, 매 맞음과, 가시, 대못, 창에 찔리는 고통을 받으시며 물과 피를 다 쏟아 흘리심으로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성결케 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 백성의 신분을 가지고 살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죄 사함을 받아 의인으로 성결한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비전을 가진 사명자로 살게 됩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이사야에게 다른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는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그 부름에 응답합니다. 이사야처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은혜를 받고, 죄 사함을 받게 되면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만한 그릇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어느 공동체에서든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심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됩니다.

성도가 은혜 받지 못하면 사명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사명이 주어져도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명을 회피합니다. 신약 본문인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직면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핍박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권면하는 목적으로 기록된 서신입니다.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성도의 믿음의 사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확고한 믿음에 서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게 되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거나, 시험에 들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고,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님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삽니다. 죤 스토트 (John Stott)는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위대함을 역설하였습니다.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강변에 나가 새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는 새를 통해 주어지는 메시지를 모아 , 우리들의 선생님 (Birds our teachers)”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새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자력 비행의 새와 공기 힘을 이용해서 나는 타력 비행의 새입니다. 자기 힘으로 나는 자력 비행의 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참새, 까치, 지바구니 같은 새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새는 멀리 날지 못하고, 높이 날지도 못하고, 오래 날지도 못합니다. 늘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립니다. 참새가 나는 것을 보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푸드득 한 번 날갯짓으로 옆 나무로 조금씩 옮겨갔다가 다시 푸드득거리며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반면에 공기 힘을 이용해 타력으로 나는 새는 민가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습니다. 하늘의 제왕이라 부르는 독수리,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기러기, 수천 킬로를 비행하는 알바트로스 같은 새들로, 이들은 참새나 까치처럼 피곤한 날갯짓을 하지 않습니다. 날개를 펴고 바람을 타면서 대륙을 횡단합니다. 존 스토트는 새들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과 은혜로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합니다. 은혜 받고 감당하는 사명은 타력으로 즉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 충만이 받고 비전을 가지고 사명 감당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남은 그루터기로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약 본문 사6:11-13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볼 수 있는데,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게 됩니다. 나무가 베어져 이제는 쓸모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나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남은 자’, 혹은 그루터기라는 용어가 종종 나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죄에 휩쓸려 살아갈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그루터기와 같은 소수의 남은 자들이 되어 함께 세상 죄에 휩쓸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그루터기를 남겨 두십니다. 이 그루터기 같은 사람만 있으면 그 단체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루터기를 통해 다시 삽니다. 이런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유다가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 간 사람들은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식을 갖춘 자들은 인제로 등용해 나라에 기여하게 하고, 몸이 건장한 자들은 노예로 부리고, 얼굴이 반반한 여인들은 하녀나 노리게 감으로 삼기위해 포로로 잡아갑니다. 10분의 9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잡혀 가거나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10분의 1로 보잘 것 없는 무리들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더 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고 끝장인 듯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 같은 거룩한 씨를 통해 다시 일으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보잘 것 없는 겨자씨처럼 작아도 그것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 LA 근교에 Berry school이 있습니다. 그 학교를 세운 마르다 베리 여사는 몹시나 가난한 여자였지만, 자기처럼 가난하여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하나 만들어 진정한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요,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녀가 기도 중에 생각이 나서 당시 미국에서 제일 거부로 알려진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를 찾아 가 사정 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세울 돈을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정을 자세히 듣던 헨리는 10전 짜리 다임 하나(우리 돈 80)를 내밀었습니다. 거절 의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 대신 기도하고 한 행동인 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믿고, 그 돈으로 씨앗 한 봉지를 사서 빈 공터에 뿌려 잘 가꾸었습니다. 그것을 추수하여 많은 씨앗을 뿌리고 몇 해를 반복하여 드디어 건물을 하나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헨리 포드를 찾아 가서 자초지종을 말한 후 정식으로 포드를 초청했습니다. 포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 농장에 세워진 학교에 가 그 건물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그 학교를 위하여 100만 불을 기부해 주었다고 합니다. 조그만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 그루터기 같은 자들이 하늘나라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약 본문 히4:9-10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했습니다. 우리도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성결한 자가 됩니다.

.비전을 가진 사명자로 살게 됩니다.

.남은 그루터기가 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멘.

<2023. 09. 27. 호현낙선>

확실한 은혜니라 사55:1-9, 2:1-10

 

1700년대에 죤 뉴톤(John Newton, 1725-1807)이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열 살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어렸을 적 어머니를 너무 일찍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또 너무 엄격한 선생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학교생활을 중도에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배를 타는 생활 속에서 배운 것은 주로 거친 말투와 세상의 나쁜 짓들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열 살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하여 28살 될 때 까지 18년간 배를 타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그는 점점 인생 밑바닥 생활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아쉽게도 이 소년이 철들기도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그를 바르게 지도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가 그렇게 까지 타락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되었던 그의 배는 노예 선으로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죄수처럼 손과 발을 묶은 다음에 수송하여 미국 대륙에 가서 노예로 파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이들 중 죽는 자가 생기면 바다에 던져 상어의 밥이 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23세 되던 해인 174831, 여느 때나 다름없이 노예사냥을 하러 가던 중에 우연히 중세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 받아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던 중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둡고 추한 그의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비쳤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지나온 날들의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가 놀라워 54세 되던 해인 1779년에는 그 유명한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라는 찬송가 가사 Amazing Grace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이렇게 새사람이 된 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오늘 두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확실한 은혜니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확실한 은혜는,

 

1.우리가 구원 받아 하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신약 본문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의 시작이 우리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 자들인데,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해,

 

먼저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을 가진 모습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 교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허물과 죄를 해결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영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는 죄와 허물을 없이 할 수 없음을 아시고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인간들이 죄와 허물을 용서 받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2) 여기 공중의 권세 잡은 자란 사단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는 순간부터 사단의 지배를 당하게 되는데, 사단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막강한 자로, 이 세상 임금이며,(14:30) 이 세상의 신(고후4:4)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단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해 사람들을 사로잡아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만들고, 이 세상 풍속을 좇게 합니다. 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벧전4:3) 죄를 짓고 타락하게 만들어 마침내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구약 본문 4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했는데, 여기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란 왕권의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다윗처럼 사자와 곰이 달려들고, 거인 골리앗, 그리고 더 큰 사울 같은 악한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은혜입니다. 나아가 다윗 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영원한 언약으로, 예수님은 사단을 이기신 분이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건져내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참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권세를 끊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분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3) 인간은 선과 악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사단의 권세 아래 사로잡힌 인간들은 악한 본능에 사로잡혀 온갖 육체의 욕심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5:19-21)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따르지 않고 사단의 지배를 받아 온갖 죄와 악을 저지르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지배 아래 사는 모든 인간은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마지막에는 지옥 불로 들어갈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고, 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고, 온갖 죄와 허물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아 영원한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구원 받아 하늘 백성으로 사는 확실한 은혜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2.목마른 기갈에서 만족을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구약 본문 사55:1-2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시고자 영생수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나 사막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물입니다. 타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오직 시원한 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가끔 광야나 사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삶을 통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타는 목마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나 사막과 같은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릴 시원한 영생수입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가 아무리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우리의 영적 갈급함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받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처럼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족의 비결을 배워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주의 일꾼들을 세우셔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은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며, 새 힘을 공급 하십니다. 계속해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사람들을 초청 하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안에서 은혜를 받고 구원의 믿음에 이르게 되며, 참 만족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5:1-2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했습니다.

 

세상나라는 무상이란 없습니다. 무상 같아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 세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국가부도 사태가 염려될 만큼 빚이 천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 우리들이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세금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의 공로를 믿으면 다 내 것으로 다가옵니다. 이걸 알지 못하고 청춘을 방황으로 보냈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신앙론'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나간 55년을 살아오는 동안, 소년기 이후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18세 되던 해 친구가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설득할 때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떠났다.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를 속박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 이제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참 만족을 누리는 확실한 은혜 안에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 청종하여 주님 영광위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 2절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여기의 '청종'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는 예나 지금이나 확실한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청종하면 영혼이 살아나고, 인생이 변하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뀝니다. 청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도 깨닫게 되며, 확실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살았던 다윗은 확실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미천한 목동의 신분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으로 인해 이스라엘 국가는 복을 받게 되었고, 그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확실한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 안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선물"이라는 책을 쓴 폴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손 수술 외과 의사이자 나병 전문가입니다. 그는 외과 의사이기 전에 헌신적인 의료 선교사입니다. 인도에서 20, 미국에서 30년 동안 오로지 나환자들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그의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여성 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는데, 피가 없어 온몸은 백지장처럼 되어 죽은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여자의 차갑고 눅눅한 팔목을 붙잡고 수혈을 하였는데, 갑자기 맥박이 미미하게 뛰기 시작했고, 두 번째 혈액이 도착해 수혈을 하자 여자의 볼에 수채화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연분홍빛이 감돌다가 점차 퍼져서 볼 전체가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입술도 분홍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빨갛게 변했고 그녀의 몸은 깊은 호흡과 함께 떨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병이 연결되자 눈꺼풀이 가볍게 떨리더니 이윽고 눈을 뜨며 숨을 몰아쉬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놀랍게도 입을 열어 ", 물 좀 주세요. 목이 말라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젊은 여자가 내 생애에 들어온 것은 고작 1시간 정도뿐이었지만, 그 체험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체가 살아나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죽은 가정이 살아나고 죽어가는 사회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삶의 목적이 바뀌게 됩니다. 신약 본문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주님 은혜로 사단의 종에서 해방되었으니, 건강과 신앙과 자녀와 물질과 명예를 주셨으니 이제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고백하며 사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게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편지요,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청종하여 주님 영광위해 사는 확실한 은혜의 사람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확실한 은혜니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확실한 은혜는,

 

.우리가 구원 받아 하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목마른 기갈에서 만족을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청종하여 주님 영광위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2023. 08. 01.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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