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과 미래의 영광 학 2:1-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9)

 

성도에게는 과거의 영광도 아름다웠지만 미래의 영광이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조지 후리드릭 헨델의 메시야' 는 성탄절에만 듣는 아름다운 찬양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 들어도 위대한 음악인 것을 우리는 다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합창의 가사 가운데 하나가 위대한 학개서 26-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영광으로 충만케 하리라 주의 영광 나타나리라, 주의 영광이 나타나면서 특별히 성전에 충만케 임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책망하시는 하나님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2:3)

 

이스라엘 백성들이 15년 전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 을 한 이후에 성전의 주추 돌만 놓고는 돌아서서 자기 집의 주춧돌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섭섭하셨습니다.

성정에서 주춧돌만 놓고 그 후 15년 동안 연기 또 연기를 하며 성전 짓는 일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을 짓고서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이 잘된다고 좋아하고 자식이 잘된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들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 기쁨으로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가운데 인간이기 때문에 낙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집니다.

자기도 알지 목하는 사이에 상대적인 빈곤 감을 느끼게 될 때가 그때입니다.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전의 성전은 굉장한데 지금의 성전을 보니까 보잘것없다는 말입니다.

 

사기가 떨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뭣을 좀 하는 줄 알았는데 했다는 게 이것뿐인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는 유무 상통했고 매일 모이기를 힘쓰고 예찬을 나누고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증가되고 연합하는 일과 기쁨과 찬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목회자들이 초대 교회를 연구하다 보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뭘 했나. 하나님 앞에서 초대 교회의 모습은 전혀 없고 책망 받을 일밖에 없구나. 아무개 교회는 그렇게 잘 모이고 기쁨이 충만하고 찬양이 넘친다고 하는데 매일 분열하고 어려움만 당하지 않는가' 스스로 자기 빈곤을 느끼며 감정 처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는 이해를 하면서 감정적으로는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데 이것은 이미 학개 선지자가 지적을 한바 입니다.

학개선지자가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책망의 말씀을 받게 되니 남은 자들, 하나님의 종들이 부들부들 떨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설 면목이 없구나 여태까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한 줄 알았는데 한 것이 없구나. 이전의 성전 지은 것을 보니 지금은 보잘것이 없구나 이렇게 인간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리고 보니 의기가 소침해집니다.

사람이 칭찬을 받게 되면 으쓱 해지고 용기를 갖게 되는데 가끔씩 쥐어 박히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그렇지만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2.위로하시는 하나님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많은 교육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잘못한 경우에 꾸중을 하거나 야단을 치는 것보다는 격려하고 충고하므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교육적인 방법을 채택하시는지 얼마나 심리학을 잘 알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못난 자식을 보고 이놈아 너는 왜 그렇게 못났니 네 형좀 봐라 네 형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지 않느냐 이렇게 책망만 하면 그 아이는 의기가 소침해져서 공부를 못할 뿐아니라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아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개야 하시며 뒤로 물러가지 말고 스스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강하라 강하라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용기를 가지라고 해서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데가 있어야 강할 수 있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치러 가는 학생도 충분히 공부를 해서 실력이 있어야 시험지 앞에서도 강하고 자신이 있습니다.

노트 한 번 읽어보지 못한 학생은 시험 시간이 무섭습니다.

믿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그냥 강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약자처럼 되지 말고 강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하는 것은 목소리가 굵고 결심이 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강하라는 말은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면 나약한 것같고 다 쓰러져 가는 것같고 풀잎과도 같이 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적은 일을 가지고 사우고 우물쭈물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큰 믿음을 상실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적은 일에 큰 믿음을 잃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다가올 영광을 바라야 됩니다.

 

3.미래의 영광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를 흔들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6) 하나님이 흔드시는 것이 정치적인 진동인지 경제적인 진동인지 혹은 영적인 진동인지 큰 진동입니다.

파사는 망했고 헬라는 흥했고 또 헬라는 망했고 로마는 흥했고 또 로마는 망하고 이렇게 역사는 진동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만국이 진동한다' 는 말은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건강 지혜 자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는다고 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8)

무서운 말씀입니다.

은과 금이 네것인 줄 아느냐 네가 바치지 아니하면 은도 내거시다. 내가 성전 하나 못 지을 줄 아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을 오늘밤에라고 뺏을 수 있느니라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다가올 영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의 집에 영광이 가득 차 있었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집에 영광이 더 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은과 금을 바쳐서 영광이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곳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터이니, 믿음을 가지고 살터이니 이전의 영광보다 앞으로의 영광이 더 클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 곳에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영적인 축복입니다.

몸에 병든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삐뚤어져 있을 때 혹은 필요 없는 부스럼이 생길 때 몸에 병이 듭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에도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영과 육의 평강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건강, 영혼의 건강, 마음의 평안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식구 가운데도 다 기쁨이 넘치는데 혼자 괴로와 하고 짜증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평강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의 평강이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물인 양을 미리 준비하신 이레' 와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었던 살렘' 이 변하여 예루살렘이 됩니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 대신 바칠 양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평강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평강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준비해 주셔야 평강이 옵니다.

예루살렘의 평강이 오늘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산업 위에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 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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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9)

 

성도에게는 과거의 영광도 아름다웠지만 미래의 영광이 더 아름다워야 합니다.

조지 후리드릭 헨델의 메시야' 는 성탄절에만 듣는 아름다운 찬양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 들어도 위대한 음악인 것을 우리는 다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합창의 가사 가운데 하나가 위대한 학개서 26-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영광으로 충만케 하리라 주의 영광 나타나리라, 주의 영광이 나타나면서 특별히 성전에 충만케 임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책망하시는 하나님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2:3)

 

이스라엘 백성들이 15년 전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한 을 한 이후에 성전의 주추 돌만 놓고는 돌아서서 자기 집의 주춧돌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섭섭하셨습니다.

성정에서 주춧돌만 놓고 그 후 15년 동안 연기 또 연기를 하며 성전 짓는 일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 집을 짓고서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사업이 잘된다고 좋아하고 자식이 잘된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들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 기쁨으로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가운데 인간이기 때문에 낙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집니다.

자기도 알지 목하는 사이에 상대적인 빈곤 감을 느끼게 될 때가 그때입니다.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전의 성전은 굉장한데 지금의 성전을 보니까 보잘것없다는 말입니다.

 

사기가 떨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뭣을 좀 하는 줄 알았는데 했다는 게 이것뿐인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는 유무 상통했고 매일 모이기를 힘쓰고 예찬을 나누고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증가되고 연합하는 일과 기쁨과 찬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목회자들이 초대 교회를 연구하다 보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뭘 했나. 하나님 앞에서 초대 교회의 모습은 전혀 없고 책망 받을 일밖에 없구나. 아무개 교회는 그렇게 잘 모이고 기쁨이 충만하고 찬양이 넘친다고 하는데 매일 분열하고 어려움만 당하지 않는가' 스스로 자기 빈곤을 느끼며 감정 처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는 이해를 하면서 감정적으로는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데 이것은 이미 학개 선지자가 지적을 한바 입니다.

학개선지자가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책망의 말씀을 받게 되니 남은 자들, 하나님의 종들이 부들부들 떨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설 면목이 없구나 여태까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한 줄 알았는데 한 것이 없구나. 이전의 성전 지은 것을 보니 지금은 보잘것이 없구나 이렇게 인간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리고 보니 의기가 소침해집니다.

사람이 칭찬을 받게 되면 으쓱 해지고 용기를 갖게 되는데 가끔씩 쥐어 박히면 사기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그렇지만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2.위로하시는 하나님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4)

 

많은 교육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 잘못한 경우에 꾸중을 하거나 야단을 치는 것보다는 격려하고 충고하므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교육적인 방법을 채택하시는지 얼마나 심리학을 잘 알고 계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못난 자식을 보고 이놈아 너는 왜 그렇게 못났니 네 형좀 봐라 네 형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지 않느냐 이렇게 책망만 하면 그 아이는 의기가 소침해져서 공부를 못할 뿐아니라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아주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개야 하시며 뒤로 물러가지 말고 스스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강하라 강하라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용기를 가지라고 해서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데가 있어야 강할 수 있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치러 가는 학생도 충분히 공부를 해서 실력이 있어야 시험지 앞에서도 강하고 자신이 있습니다.

노트 한 번 읽어보지 못한 학생은 시험 시간이 무섭습니다.

믿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그냥 강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약자처럼 되지 말고 강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하는 것은 목소리가 굵고 결심이 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강하라는 말은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면 나약한 것같고 다 쓰러져 가는 것같고 풀잎과도 같이 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적은 일을 가지고 사우고 우물쭈물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큰 믿음을 상실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적은 일에 큰 믿음을 잃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다가올 영광을 바라야 됩니다.

 

3.미래의 영광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를 흔들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6) 하나님이 흔드시는 것이 정치적인 진동인지 경제적인 진동인지 혹은 영적인 진동인지 큰 진동입니다.

파사는 망했고 헬라는 흥했고 또 헬라는 망했고 로마는 흥했고 또 로마는 망하고 이렇게 역사는 진동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만국이 진동한다' 는 말은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건강 지혜 자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는다고 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8)

무서운 말씀입니다.

은과 금이 네것인 줄 아느냐 네가 바치지 아니하면 은도 내거시다. 내가 성전 하나 못 지을 줄 아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을 오늘밤에라고 뺏을 수 있느니라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다가올 영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2:9) '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의 집에 영광이 가득 차 있었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집에 영광이 더 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은과 금을 바쳐서 영광이 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곳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터이니, 믿음을 가지고 살터이니 이전의 영광보다 앞으로의 영광이 더 클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 곳에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영적인 축복입니다.

몸에 병든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삐뚤어져 있을 때 혹은 필요 없는 부스럼이 생길 때 몸에 병이 듭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에도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영과 육의 평강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건강, 영혼의 건강, 마음의 평안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식구 가운데도 다 기쁨이 넘치는데 혼자 괴로와 하고 짜증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평강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의 평강이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물인 양을 미리 준비하신 이레' 와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었던 살렘' 이 변하여 예루살렘이 됩니다.

물론 이것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 대신 바칠 양은 아브라함이 준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평강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평강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이 준비해 주셔야 평강이 옵니다.

예루살렘의 평강이 오늘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산업 위에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9: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 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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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재건의 명령/1:1-11

 

바벨론에 포로로 갔던 유대인들에게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예언자들을 조롱하고 멸시하였고,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사실 유대 백성들은 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B.C 537) 때에 시작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시작되자마자 중단된 상태에서 영적인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성전 재건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보내 그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성전 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때가 B.C 520년 바사 제3대 왕 다리오 히스타스레스의 통치시기였습니다. 본문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 그 해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성전 재건의 의미

학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당시 최고의 통치자는 스룹바벨 총독이었고, 성전에서는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지위 높은 자들이요, 그들은 또한 선량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재건을 상징하는 성전 재건을 촉구하였습니다.

(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당시의 유대인들은 포로 생활에서 떠나오자마자 제사를 위한 제단을 만들었고, 1년도 안가서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3:10). 그 때에는 그 일에 열심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사 왕궁의 일시적인 금지령으로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 힘에 굴복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 그들이 철수한 후에도 성전을 다시 지을 생각을 않고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손실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은 초신자들에게는 그 일이 너무 어렵습니다. 먼저 우리의 집을 짓고, 그 다음에 교회 일과 교회 건축을 의논하자. 생활이 안정되고 형편이 나아진 다음에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자"하며 성전을 짓기 않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일할 좋은 때가 오리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오늘날의 교회당 건축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 구속사의 전개를 위한 통로로 하나님의 특별히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 그들이 만든 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Temple)을 중심으로 생활하였습니다. 당시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하나 뿐이었고, 오늘날 신약과 같은 의미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아니면 예배나 제사나 구속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삶의 지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 그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낼 때, 하나님은 그 성전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영광이며, 영원한 번영의 약속이었습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은 민족의 부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개는 중단된 하나님 성전의 재건을 촉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성전 재건이 의미하는 바는 성전 건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신앙을 올바로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느냐 하는 의미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가 교회의 모습을 바로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못하느냐에 더 큰 비중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신본주의적(神本主義的)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한 것입니다.

 

2. 유대인의 죄

(1: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진 사실에 대하여 질문하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황무하다'( 하레브)는 것은 일반적으로 파괴되어 아무 쓸모 없도록 황폐해진 건축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성전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약탈당하고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동안 철저히 버려진 상태였는데, 귀환이 시작 된지 16년 동안이나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판벽하다'(사판)는 단어는 '...에 지붕을 얹다, 벽판을 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판벽한 집'이란 백향목 판자나 아로새긴 판자로 벽을 두르고 지붕을 덮은 집을 가리키는데, 고급 인테리어를 한 매우 화려한 집을 말합니다. 즉 성전 건축의 시기가 이르다고 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작 자신들의 거처를 꾸미는 데에 온갖 열심과 시간을 쏟아 부으면서도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는 무관했습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성전을 황무케 해 놓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스스로 자기를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생을 어떤 생각과 방법으로 살아왔는지를 마음에 두고 반성해 보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추구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들의 죄는 한마디로 말하면,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섬기고 있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간음하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4:4).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며, 또 그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되찾고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북돋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미국 메사츄세츠 주의 플리머스에는 청교도들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그곳은 특히 그들의 신앙적 삶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착하는 데 있어서 그들에게 최우선적인 과제가 바로 교회, 학교, 병원이었습니다. 그 학교는 오늘의 하버드 대학입니다.

또한 불교나 마호메트교 등 타종교의 사원들도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룹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적 집결체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사당이나 국왕이나 대통령이 사는 관저도 그 국가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아주 잘 지어져 있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건축헌금작정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하되, 아이들까지 동참하며, 또한 최선을 다하여 이 일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 생애 기념비적인 일이 되도록 부탁드립니다.

이번 교역자 수련회에 미시령을 넘어가는 중에 백담사를 등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전에 같던 백담사 건물이 4-5동이 더 들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를 보니 오고 가던 사람들이 기왓장에 자신들의 소원을 적어 넣고 개인은 1만원, 가정은 10만원을 기부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이렇게 돈을 내는 데, 하물며 우리가 사용하는 주차장, 우리가 사용하는 식당, 우리 자녀들이 교육받는 교육관을 짓는 일에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앞으로 지어질 성전의 머릿돌에 타임캡슐을 만들어 건축자 명단 및 헌신자들 또한 에피소드 등을 넣어 약 50년 후에 개봉할 작정입니다.

 

3. 형벌과 권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과 태만 때문에 성전에 대하여 소홀히 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째, 소출이 적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의 땅에 뿌리고 경작했으나 그들의 수입은 매우 적었습니다(6). 이는 하늘에서 이슬을 그쳤고, 구름은 비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0). 이처럼 많이 뿌리고 땀흘려 수고하여도 제대로 수확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둘째, 있는 것 같아도 행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만사가 형통하지 못하며 뒤틀린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 자연의 재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1:10,11)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범죄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총의 표시인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뭄은 하나님의 징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가?' 하고 고민하거나 그것을 괴로워한다면, 또는 늘 바쁘고 정신없이 일에 밀려다니느라고 쫓기는 삶으로 방황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분명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은 잘못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견딜 수 없는 불행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안색이 변할 정도로 그의 괴로움이 더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와 구속의 은혜를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자의 모습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삶에 파생되는 문제가 계속적으로 그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4: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정신없이 살던 젊은이가 쉰이 넘어서 깊이 고뇌하던 중 기독교 진리를 받아 드렸고, 새 삶을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음이 들어온 후 그리스도의 말씀이 영원한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온 삶은 변화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작가 레오 톨스토이입니다.

1920년경 갈 곳이 없는 한 청년이 교회에서 '뼈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신문사에 가서 만화 원고를 가지고 가서 취직을 부탁했으나 모두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시며 그를 격려하였습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교회의 창고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창고에는 쥐가 많았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그 쥐를 아름답게 그리며 꿈을 키웠습니다. 마침내 그는 세계적인 '쥐그림' 인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월트 디즈니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만남은 그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그 인생을 전혀 다른 축복의 차원으로 인도해 냅니다. 우리의 무너진 마음의 성전을 재건함은 곧 축복된 새 삶을 뜻합니다.

 

결 론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성전의 재건은 꼭 우리 교회의 성전을 다시 짓는 것만을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성전 재건의 의미는 보이는 외형적 건물, 내적인 믿음의 성장, 교회의 확장과 함께 바람직한 교회 상을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로 볼 때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개혁주의 신앙관으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을 뜻합니다. 이것은 영적 재건을 뜻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은 영적인 무관심과 나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본주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며, 그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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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재건하라 학1:1-15 01.10.10.

 

방금 읽은 학개서는 성전건축을 완공케 한 그 비용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이 교회 건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순종과 교회건축은 예수님 자신이 이 성전이 되어 이 땅에서 영원히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되시겠다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평생에 교회건축에 참여해 보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 그러므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의 판단은 그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정립이 되고 또한 판단되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의 교회 관 여하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게 여기는 사람은 큰 신앙의 사람입니다. 教会하게 여기는 신앙은 귀한 신앙인줄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의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바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다 사람들은 교회를 등한시 여겼고 교회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의 뜻은 교회를 건축하는 것인데, 백성들은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무지를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싫어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너희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이기주의자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너희는 축복의 때를 놓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간절한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 4절에 하나님께서, 너희는 황무한 하나님의 전을 보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땅히 성도가 보아야 할 바를 보지 못하고, 마땅히 행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지 않느냐? 하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여러분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습니다. 땅의 것으로 신령한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백성입니다. 비록 여기 살지만 위엣 것의 가치를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하여 사는 일하는 사람입니다.

2) 번째는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뒤로 미루고 자기의 집만 아름답게 꾸미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판벽한 집이라는 것은 벽 위에다 아름다운 무늬목을 붙인 집을 말합니다. 현대인들도 돈이 있는 집은 벽에다 무늬목이나 대리석을 붙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아마 이스라엘의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집을 꾸민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쓰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맛있고 비싼 음식을 대접받으면 잘 먹었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육신의 정욕을 위한 것에 쓰는데 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옷을 해 입는데 몇 십 만원 또는 몇 백 만원도 아까워하자는 않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대상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간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 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나이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아름다운 집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어떻게 평가를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복음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기 딴에는 살아 보려고 하였지만은, 하나님이 보실 때 어리석은 자라고 평가 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다 백성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했지만은 행함은 없었습니다. 저들이 예배는 드렸지만은 그것은 하나의 형식적인 예배일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되지 못했습니다. 목사는 속고 사람은 속일 수 있을는지 모르나 하나님은 중심을 감찰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5절하에 너희는 자기 소위를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즉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나를 반성해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것보다는 세속적인데 더 비중을 두고 살지 않았느냐?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우선하며 살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부터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내적인 것 신령한 것을 추구하여야 하지 않느냐?

먼저도 지적을 했습니다만 생각이 바르지 않고는 행동이 바르지 못합니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는 행동이 바뀔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든 믿음이 없기에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는 저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겸허한 척 합니다.그러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보고 믿음이 없다고 하거나, 믿음이 뭐 그러냐고 한다면 아마 기분이 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고 뭐 믿음이 그 모양이냐고 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여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책망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크도다!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째로 사람은 누구나 공통적인 소원이 있습니다.6절과 9절에 너희가 많이 뿌린다고 했고,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죄가 되지만 건전한 욕구는 사람으로 발전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 웨슬레가 설교를 하는데, 여러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리고 돈을 많이 저축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면서 열심히 설교를 하니까 어떤 부자가 참석하여,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오늘 웨슬레 목사님의 설교는 참 은혜롭습니다.’하면서 아멘을 열심히 외쳤습니다. 그런데 결론을 짓기를 이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설교의 결론을 내리자, 그 부자는 오늘 설교가 잘나가다 마지막 부분에서 죽을 쑤었다고 하드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적게 뿌리고 많이 거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축복으로 알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노력하지 않는데서 거두시지 않으십니다. 5달란트 맡긴 사람에게 5달란트를 찾으십니다. 2달란트 맡긴 사람에게 2달란트를 찾으시기를 원하십니다. 5달란트 받은 사람이 2달란트만을 남긴다면 그 사람은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이 뿌려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많이 뿌리면 수입이 많아야 하는 것이 자연 법칙이며 원리입니다. 그런데 원리원칙이 빗나가고 비 원리와 비원칙이 결과를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바라는 소원과 결과는 상이한 것은 왜 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님을 경험합니다.

# 전에 미국이 우주인을 태우고 인공위성을 발사하게 되었고 미국시민은 물론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모든 사람의 환호 속에서 드디어 발사대를 떠나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고장 확률은 백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로켓이 발사 된지 몇 초도 되지 않아 폭발하는 바람에 로켓과 함께 모든 우주인들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한번은 인공위성이 귀환해야 하는데 고장을 일으켜 우주인들은 영원히 우주의 미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미국인들이 그 상황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하므로 무사히 귀환을 하는 사건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127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라건 데는 여러분의 모든 산업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인정하시는 산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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