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 시15:1-5, 히12:14-17
마을을 떠돌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먹음직스럽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기 때문에 자리를 펴자마자 떡은 다 팔렸습니다.
하지만 떡이 잘 팔릴수록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그 마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도 할머니는 다른 동네에서 떡을 팔았습니다. 여느 동네에서와 마찬가지로 떡을 한번 산 사람들은 다시 와서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의 손에 금화(金貨)를 내밀었습니다.
“이 금화만큼 떡을 달라는 거냐?”라며 할머니가 물었을 때 “아닙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화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떡장수 할머니는 원래 떡을 파는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많은 유산과 사업장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정직한 사람을 찾기 위해 금화가 든 떡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할머니는 그 정직한 소년을 후계자로 삼아서 사업체와 많은 유산을 물러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작은 욕심 때문에 큰 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세상 것에 대한 사랑과 욕심 때문에 주님을 바로 경외하지 못하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그르치며, 그 마음이 정직하고 진실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기업의 후사를 찾아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들어갈 자들을 찾으십니다. 구약 본문 시15:1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했고, 신약 본문 히12:14-15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는,
1.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15:4에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은 모두 613가지라고 랍비 ’심라이‘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 15편에 11가지로 요약했고, 미가 선지자는 미6:8에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 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랍비 ‘나흐만 벤’은 모세가 받은 율법 613가지를 다 한가지로 요약했는데 그것은 하박국 2:4의 말씀으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망령된 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가난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세상 권세와 명예를 가졌거나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서약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신뢰하고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66권 성경을 통하여 약속을 다 지키셨는데 나는 몇 마디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팽개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집에 일꾼이 되며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4절에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했고, 신약 본문 히12:16-17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했습니다. 창25장 27-34절에서 에서와 야곱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에서는 장자인데도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망령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축복을 빼앗긴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한 그릇 식물 때문에 자기에게 올 신령한 복을 빼앗기는 망령된 자라는 것입니다. 망령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입니다. ‘경하게 여긴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기 생애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망령된 자는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렘 2:13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망령된 자는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의 생애는 결국은 헛된 수고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진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을 높여 주십니다. 낮은 자를 들어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비천한 자를 존귀하게 만드십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죤 영이라는 흑인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노예였습니다.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녀가 14명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생활은 철저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 가정의 가훈은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 14명 모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자녀 중에서 코넬 대학 교수도 나왔습니다. 간호사, 음악가 등 14명이 모두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잘 경외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웃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요약은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 본문에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의 자격 중에, 그리고 신약 본문에 주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될 자의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15:3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하였습니다. 악은 선과 반대말이 되는데 선은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행은 불신자들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은 독사와 같아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본인은 물론이요 후손에게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시 1:5-6) 자손들까지도 망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사 14:20).
다음에,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시15: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했습니다. 이는 말로 이웃을 해치는 것을 말합니다. 말은 무서운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즉 가까운데 있는 사람으로부터 먼데 있는 자들까지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펄죤(Spurgeon)은 말하기를 "남을 해롭게 말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자는 혀에 마귀가 있고 그 말을 잘 들어 주는 자의 귀에도 마귀가 있다." 고 하였습니다. 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사람을 축복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찬송은 성도들의 입술의 열매라"(히 13:15)고 하였습니다. 말로 이웃을 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주의 집에 거할 자격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자가 되라했습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했습니다. 대인관계와 대신관계는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대인관계를 바르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 역시 사람과의 관계가 좋습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나환자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환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미국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 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 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 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니 나환자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지려면 사람들에 원망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원망 들을만한 일을 했다면 풀어야 합니다. 마 5:23-24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람과 원수 맺지 마십시오. 사람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마십시오. 대인관계는 대신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주를 보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함의 특징은 구별과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스스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인 ‘플리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가라는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서 펀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들은 결코 음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둑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어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깨끗합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누구든지 그렇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의 장막에 거할 자답게 하나님의 은혜로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에 말씀을 주목해 보면 주의 장막에 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러 주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함을 몇 가지로 말씀 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시15:2에 “정직하게 행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했습니다. 정직과 진실은 내 자신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모습 이대로, 죄인이면 죄인인 모습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대로 나와야 합니다. 가장하고 위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내 모습 이대로 진실하게 고백하고 보여 드려야 합니다. 죄인이면서 의인인척, 없으면서 있는 척,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서 회개하는 척, 미워하면서 사랑 하는 척 하는 것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합니다.
하나님 앞에 꾀를 부리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가림이나 위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정직하신 분으로 속지 않는 분입니다.
다음에, 공의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시15:2에 으로 "공의를 실천하며" 했습니다. 주님의 장막에 거할 자는 공의를 일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공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공의와는 질적으로 다르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의는 성경이 말한 공의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바리새인들의 십일조는 인정하셨지만 공의와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공의로운 자는 선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선하고, 생각이 선하고, 행하는 일이 선하고, 보는 눈이 선합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공의를 행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시면서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자와 같이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의를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히 구하고 적극적으로 행하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쓴 뿌리를 제하여야 합니다. 신약 본문 히12:15에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했습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에 있어서 뿌리란 그 나무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열매는 뿌리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쓴 뿌리란 독이 있는 뿌리로 그 나무에서 자라난 열매란 자연히 독이 있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쓴 뿌리는 교인들이나 교회에 괴로움을 줍니다. 그래서 괴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데,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타락시켜 사망으로 이끄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계2장을 보면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쓴 뿌리가 나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타락시켰습니다.
모세 시대 고라당이 쓴 뿌리가 되어 모세를 대적하더니 자신과 가족과 그에게 속한 자들이 무서운 형벌을 받았습니다. 엘리야 시대는 아합과 이세벨이 이스라엘 교회를 망치는 쓴 뿌리 노릇을 하더니 자신과 민족이 큰 재앙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시대는 바벨론 박수 술객들이 쓴 뿌리 역할을 하다가 자신과 민족이 무서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 시대는 유대 종교 성직자들 즉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이 쓴 뿌리 역할을 하다가 자신과 민족이 하나님이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울 시대는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쓴 뿌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성도는 밖에 있는 쓴 뿌리를 경계하고 대적해야 하지만 동시에 내 안에 쓴 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은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잘 잊히는데 내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상처는 여간해서 잘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픈 상처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생이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미래의 소망은 점점 줄어들고 과거의 추억만 쌓여갑니다. 그래서 자꾸만 옛날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데, 좀 즐겁고 유쾌했던 기억만 떠오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주 슬프고 불쾌했던 기억만 떠오릅니다.
어느 목사님은 나이 70이 훨씬 넘어 구순 계모가 세상을 떠나는 임종 자리에 어린 시절 그 계모로부터 학대받은 상처가 떠올라서 무척 괴로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에 전처소생인 자기와 동생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그 계모를 자신이 목사가 되었고, 이제 나이가 70이 훨씬 넘었는데도, 구순 노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마당에도 용서 보다 어린 시절 생모를 잃은 자기 친형제에게 상처를 준 계모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른거리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쓴 뿌리가 되어 뭔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옛날 받았던 상처가 새록새록 떠올라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 ‘쓴 뿌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나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쓴 뿌리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주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성령의 불로 태워서, 말씀의 검으로 도려내서 없애야 좋은 성도,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쓴 뿌리는 자라납니다. 그 쓴 뿌리가 자신과 남을 괴롭히고, 주변에 많은 것들을 더럽게 오염시킵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자신을 잘 단장하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의 영광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잘 단장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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