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감사 <시편 50편14~23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필연적으로 하며 사는 것이 있다면 아마 감사도 그 안에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사의 조건을 힘입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감사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그런 감사에는 적어도 몇 가지의 감사의 종류내지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가령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가르쳐 주신 스승에게 감사하고, 살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일과 사건들을 도와주고 힘이 되어 준 이웃들에게도 감사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감사는 객관적으로 볼 때 지극히 자기중심 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감사는 자기 개인의 이해관계에 직접 간접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내게 유익이 되지 않거나 손해가 오고 고통이 다가올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감사가 곧 세상적인 감사, 일반인들이 하고 사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에게 유익될 뿐 아니라 손해와 고통이 될 때에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지켜야겠다고 맘먹고 또 다짐해 보아도 그럼에도 좀처럼 잘 안 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감사의 계절이 오면 성도님들은 때로는 갈등을 갖기도 하고, 감사할 것이 있었느니 없었느니 자기 양심 속에서, 마음속에서 따져 보기도하고, 그러다가 좀 심한 사람은 신앙의 딜레마에 빠져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감사는 어떤 감사인지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감사를 막고 있는 장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감사를 막는 가장 큰 조건 불평과 원망
19~21절을 함께 읽습니다.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으신 본문의 구조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14절에서도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끝 23절에서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중간에 이상한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부정적인 말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무슨 얘기 입니까? 감사를 방해 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으신 19~21절에서는 불평과 원망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를 잘 말씀해 주십니다.
“입을 악에게 내어준다, 혀로 거짓을 꾸민다. 부모 형제를 비방하고, 그래도 참으시는 하나님을 심지어 하나님 알기를 자기와 같은 존재로 끌어내리는” 엄청난 일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이 회복을 찾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은 가슴 아픈 사건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21장 4~6절에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길이 험하고 고달프고 괴로웠습니다. 충분한 음식과 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원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더더욱 곧바로 가야 할 길을 에돔의 방해로 돌아가야 하는 고달픈 일을 당하고 나니 그들은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은 심판을 가져오게 하고 만 것입니다.
광야에는 원래 불 뱀이 많이 서식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하나님이 막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막았던 손길을 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광야에 사는 불 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어서 많이 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마귀의 궤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사건은 민수기 11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악한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매 하나님이 불을 보내어서 그들의 진을 사른 적이 있습니다. 가나안 정탐 후 그들의 악행으로 10명의 정탐꾼은 재앙으로 죽었으며, 그들의 말만 듣고 밤새 통곡하고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회진해 멸함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심판이요 하나님의 진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해서 정탐해 보니 북쪽 헤르몬 산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주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였기에 그들과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들어가 차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평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버림 받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와 심판을 재촉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시저가 큰 잔치를 마련해 놓고 많은 귀족들과 친구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잔칫날 날씨가 아주 좋지 못한 날씨였습니다. 시저는 기분이 몹시 상해 화를 내다가 엉뚱한 명령을 부하들에게 내렸습니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하들은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쏜 화살은 되돌아와서 그들 머리에 떨어져 많은 중상자가 생겼을 뿐이었습니다.
어떠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원망과 불평을 하기 쉽습니다.
하늘을, 타인을,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원망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와 박히는 화살'에 불과한 것입니다. 원망을 감사로 바꿀 때, 마른 가지에서 장미꽃이 피듯 영혼에 물기가 오르고 그것이 삶의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우리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고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인간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음에 변화를 받지 않고는 원망과 불평의 세계에서 떠날 수가 없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심판을 당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살 때가 많은 것입니다.
2. 감사하기 위하여 해야 할 필수 조건 예배의 회복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무슨 말씀입니까?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본 절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환란에서 건짐 받고, 고난에서 회복되려면 먼저 감사 예배의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말씀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곧 감사의 예배를 회복하라는 말씀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환란 날에 하나님을 부르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난 다음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건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먼저 감사 제사 즉 감사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세상에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가득합니다. 두 세 사람만 모이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이 중요합니다. 마귀를 내어 쫓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는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지적 선택이라는 신학적용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아니하면 그 누구도 감사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1620년 9월 영국의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 제임스 1세의 국교정책으로 심한 박해를 받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두 달이 넘게 대서양을 항해하는 동안 질병과 굶주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신대륙에 도착하였으나 극심한 추위와 풍토병, 그리고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태반의 사람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교회를 세워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듬해 봄에 농지를 개간하고 옥수수를 심어 가을에 대풍작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제단을 쌓고 또 농사법을 도와준 이웃 인디언들을 초청해 3일간 큰 잔치를 베푼 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기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대화중에서 감사보다 불평을 말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벌써 남의 흉을 보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불평할 것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평할 사건 중에도 감사할 일들을 찾으면 풍성한 감사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할 것 가운데서도 감사할 보화를 찾아서 그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원망과 불평이냐, 감사와 찬송이냐 하는 영적전쟁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지면 낭패를 당하고 전쟁에 이기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감사와 찬송을 하면 생명이 넘쳐나고 원망과 불평만 하면 사망이 넘쳐 나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근본처럼 뿌리내린 불평과 원망을 제거하고 감사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할 방법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감사의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3절로 14절에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1편 3절에도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감사한 말이 나오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술로 먼저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길이 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입술의 열매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제물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96편 8-9절에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6장 20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입술로 감사의 제사를 드릴뿐 아니라 실제로 예물을 가지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우리가 물질로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물질로 우리에게 보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를 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손길을 초청해 오는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병자가 의사를 찾는 것처럼, 배고픈 자가 음식을 찾는 것처럼,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찾는 것이 바로 감사의 길인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초청해 올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항상 영적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전쟁 중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은 불평이요, 원망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확실하게 하나님을 모셔들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보좌를 배설하고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작은 일에서 큰일까지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의 문을 열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이 계실 수 없습니다. 결국 마귀를 받아 들여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얻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그러나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고통과 슬픔을 당하기를 원하면 원망과 불평을 하십시오.
3. 감사는 전인 구원의 밑거름입니다.
23절을 함께 읽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삶 가운데 전인 구원을 보여 주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인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과 은혜를 받는 열쇠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마귀에게 마음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면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 드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을 읽다보면 아주 희한한 전쟁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대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갑자기 외세의 침략을 받은 여호사밧 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20장 12~13절에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호사밧 왕과 온 백성이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때 여호와의 신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여 대하20:15~17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래서 여호사밧은 역대 전쟁사에 없던 희한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나가면서 성가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군사들 앞에 성가대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찬양을 부르면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기사는 역대하 20장 20~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인 것입니다. 그들이 노래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미한 결과 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약속을 따라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회복한 그들에게 삶을 통한 구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한 여종이 귀신에 들려 점을 치는데 매일 그들을 따라 다니면서 괴롭혔기 때문에 바울이 ‘이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고 말해 여종에게서 귀신을 몰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종의 주인이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원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관원들은 로마인인 바울과 실라를 재판도 하기 전에 그들의 옷을 벗기고 무지하게 매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쇠고랑을 채워서 빌립보 감옥 깊숙한 곳에 투옥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실라는 원망하고 불평할 조건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26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하나님이 보내신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을 다시 한 번 크게 읽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들의 찬송을 통해 자유와 해방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깊음 속에서 부르는 찬송이 그들의 삶에 전인구원의 능력이 나타나고 말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찬송하면 그 묶임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과 환경이 고통과 괴로움으로 묶였을 때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전인구원의 기쁨을 가져다주십니다.
영적인 진동, 우리의 생활에 진동을 일으켜서 흑암의 세력을 쫓아내고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능력이 바로 찬송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간수가 와 보니 옥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친줄 안 간수는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자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말리자 간수는 그들에게 나아와 “선생들이여 내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장 31절)고 답변했습니다. 그 말에 간수와 그 식구들이 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자유와 해방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도 열어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항상 원망, 불평, 탄식하는 것만 보면 불신자들이 어떻게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눈물을 흘리고 주께 영광을 돌리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마음에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은 우리의 원수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감사와 찬송은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는 놀라운 역사가 되며 복음 증거의 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감사 그것은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예배를 회복하여 찬양의 고백을 드릴 때 기적의 응답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살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 일을 힘껏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하는 자로 살면 시67:1-7, 요6:8-13 (0) | 2018.11.16 |
---|---|
감사를 아는 성도 시편111편1-10 (0) | 2018.11.09 |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 시73장23-28 (0) | 2018.09.14 |
존귀한 성도 (시 16:1-4) (0) | 2018.06.02 |
행복한 가정 (시 128:1-6) (0) | 201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