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흰 보좌의 심판 (계 20:11-15)
<성경 본문>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다양한 견해들> 여기에 대한 견해를 보면 ‘크다는 건 그 권세의 웅장함을, 희다는 것은 하나님 영광의 임재를 의미하며 심판자는 성자이시다. 백색은 성결을 상징하듯 심판은 성결을 배경으로 하고 심판자는 성부이시다. 최종심판권은 성자에게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대를 우주 어느 곳엔가 만들어 놓으실 것이다.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 흰색으로, 심판자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흰색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충만한 빛을 묘사한 것이다. 크고 흰 보좌는 계시록에 30번 이상 나오는 보좌와 구별되며 하늘이나 땅이 아니라 공중에 있다. 모두 파괴된 후 태양계를 가릴 만큼 큰 보좌를 목도하게 될 것이고 보좌 위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이 앉아 계신다. 현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심판자와 그 앞에 심판받을 인류만 남을 것이다. 심판의 대상은 불신자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대상에서 철저히 제외된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을 제외한 동서고금의 전 인류가 심판받을 것이다. 크다는 건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피조물에 미치고 희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울 것을 말하는데 심판자는 성자이시다.’ 등이 있습니다. ☞ 복음으로 보면 ‘이 심판대가 우리 마음에도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크고 흰 보좌의 심판> “크고 흰 보좌의 심판대”(계20:11) = “하나님의 심판대”(고후5:10) = “그리스도의 심판대”(롬14:10) '대 심판’이나 ‘최후의 심판’으로도 칭한다. 악인의 부활 후 역사의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 <마음의 심판대의 필요성> 계20:4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양심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 함 온전케 하시는 은혜의 심판도 있음 = 마12:20에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1. 믿음의 심판대 -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2. 성결의 심판대 - “흰 보좌와” 3. 공의로운 심판대 - 12절 “큰 자나 작은 자나" 4. 진리의 심판대 -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5. 생명의 심판대 - “곧 생명책이라" 6. 행실의 심판대 - 12-13절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7. 구원의 심판대 - 14절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8. 영원한 심판대 - 14-15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의로운 불길 만들기> 1. 성경을 가까이(렘23:29). 2. 하나님을 경외(행2:3-4). 3. 사랑으로 장성(아8:6-7). |
<크고 흰 보좌의 심판>
성경에서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대”(고후5:10)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롬14:10)라고 하는데, 흔히 ‘대 심판’이나 ‘최후의 심판’으로도 칭합니다. 이 심판은 악인의 부활 후 역사의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으로, 라고도 하는데, 천사들이 심판의 수종자가 되고, 심판의 대상은 사탄을 비롯한 악한 천사들과 아담 이래 온 인류로서, 심판의 근거는 행위록과 생명록으로 그 행위에 따라 상선벌악이 달라지지만, 영벌과 영생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유무로 구분될 것이고, 따라서 불신자와 악인에게는 영벌을 그리스도를 믿는 의인에게는 영생과 상급을 확정하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런 심판대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계20:4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한 말씀에서 보듯, 악을 용납하지 않고 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크고 흰 보좌와 같은 역할을 하려면 말씀과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옛 창조에 속한 것이나 진리적이지 않거나 생명적이지 않는 것은 모두 심판하여 처리되어야 합니다. 마12: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시는 그 온전케 하시는 은혜의 심판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크고 흰 보좌’의 심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남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심판대는 어떤 심판대입니까?
1. 믿음의 심판대입니다.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위엄이 있고 엄정한 심판대라는 의미입니다. 그 앞에 불신과 죄악을 비롯한 옛 창조에 속한 것은 두려워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물의 큰 틀인 땅과 하늘마저 피하여 온데간데도 없을 정도입니다(20:11). 그런데 ‘크다’가 구속사와 관련이 있듯, 이 심판대는 믿음이 판결의 기초가 됩니다. 막16:14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던 것처럼, 마음의 심판대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 없는 것은 용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성결의 심판대입니다.
“흰 보좌와” 성경에서 희다는 것은 의로운 색입니다. 딤전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하였듯, 선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양심의 기준입니다. 레19:2에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신 것처럼 불의를 용납하지 않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음에 만족하지 말고, 말씀대로 살지 못함에 대해 한탄하며 십자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는 의로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구약에 재판장의 타락은 사회적 전반적인 타락으로 이어졌듯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3. 공의로운 심판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여기 죽은 자들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신 불신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롬14:10, 고후5:10). 그리고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보좌 앞에 서 있다는 것은 심판이 공의로움을 시사합니다. 우리 마음의 심판대의 기준도 마5:45에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셨듯 공의로워야 합니다.
4. 진리의 심판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여기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그 보좌 앞에 서” 있음에 대한 다른 관점입니다. 마5:19에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말씀을 가감하거나 취향대로 믿음 생활하지 않도록 마음의 심판대가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큰 계명은 물론 작은 계명이라도 버리지 않고 충실하다면 하나님 앞에 큰 자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5. 생명의 심판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때 심판은 두 종류의 펴진 책에 의해 이루어집니다(마23:15). 먼저 심판의 기준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는지의 여부입니다. 여기에 이름이 기록되려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주로 믿어야 합니다. 계3:5에 “이기는 자는 –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의 앞에서 시인하리라” 하신 사데교회처럼 그 믿음의 행위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죽은 자라면 생명책에 기록되기 어렵습니다.
눅10:20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듯, 귀신 추방이 구원의 기준은 아니나 최소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심판대에서도 생명적이지 않는 것은 배격해야 합니다. 요4:34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셨듯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생명적인 것입니다. 죄의 여부를 떠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성령의 흐름과 다른 방향이라면 그것도 생명적이지 않습니다. 느낌으로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뜻이라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지만 아닐 때는 행할수록 힘들고 허탈한 나날이 될 것입니다.
6. 행실의 심판대입니다.
12절에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여기 “책들”이라 했듯 행위록이 복수인 것은 지면이 비좁아서가 아니라 행위의 다양성을 시사한 것입니다(요일1:9). 영생과 영벌은 믿음의 유무에 따라 판결되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상급과 고통의 수준은 행위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심판대에서도 우리의 잘못된 행실이 심판받아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13절에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 말씀은 심판을 위한 부활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11절에 심판대 앞에서 하늘과 땅이 피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바다도 사망도 음부도 나타나서 죽은 자들을 내어줍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심판대에서도 살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12: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셨듯 은혜의 심판으로 살려야 할 것은 바로 “죽은 행실”(히6:1)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를 들면 믿음 거룩 사랑 소망 열심 기도 찬송 예배 전도 기쁨 겸손 충성 등을 살려내시기 바랍니다. 율법적 양심으로 인해 평안과 기쁨이 죽었다면 피의 복음으로 살려내고(히9:14), 말씀에 모르거나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거나 몸과 마음을 드려 열심히 하지 못한 죽은 행실도(잠21:25) 회개함으로 살려내시기를 바랍니다.
7. 구원의 심판대입니다.
14절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고전15:26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한 말씀이 연상됩니다. 사탄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만이(20:10) 아니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롬5:14에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는데 사망도 음부도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고전15:26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했듯이 이는 상대적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누리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 복락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롬5:17-18).
8. 영원한 심판대입니다.
14-15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눅10:20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듯,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됨이 이처럼 귀중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지옥은 존재하며 영원합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심판대에서도 사탄과 불신앙과 거짓과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불길이 세세무궁토록 타올라야 합니다.
어떻게 의로운 불길 가능할까요?
1. 성경을 가까이하십시오.
렘23:29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눅24:32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성경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흥회와 같은 모임도 뜨거운 믿음을 줍니다. 이처럼 말씀의 감화가 커질 때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되고 일생 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행2:3-4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배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머리 위에도 성령께서 임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성령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갈망하는 자에게 더욱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그런데 죄를 미워하는 불길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불길입니다. 죄를 미워한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3. 사랑으로 장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아8:6-7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불과 같은 심정은 왕자를 출산한 왕후 술람미가 솔로몬에게 완전한 사랑을 요구할 때의 심정입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곧 왕자의 생명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의로운 불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영혼을 사랑함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말씀대로 역사의 종말에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좌정하셔서 우리 신앙 양심을 통해서 심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으로 더욱 충만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로운 불길이 우리의 가슴에서 영원토록 타오르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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