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물 인생의 소망 출15:22-27, 눅7:11-17
구약 본문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 길을 가다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다 마라에 이르러 물을 만났지만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으므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한 나무를 물에 던지니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변했습니다.
신약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 때 한 상여 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한 과부가 독자를 잃고 슬피 울며 상여의 행렬을 따를 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상여의 행렬을 멈추고 ‘청년아 일어나라.’말씀 하시매 죽은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게 됩니다. 죽은 자가 살아서 다시 어머니께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포함해서 두 본문에서 나타나는 쓴물과 같은 고통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더 나아가 마음속의 미움, 원한, 절망, 좌절, 열등의식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쓴물 같은 고통을 받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치료해 주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쓴물 인생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인생길에는 많은 쓴물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쓴물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지만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여러 모양의 쓴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죄악의 쓴물이 있습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징계가 따르게 됩니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도 죄로 인해 에덴에서 추방 되고 고통들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사망의 독이 있습니다. 겔18:20에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했고, 롬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했습니다.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했습니다. 고전15:56에는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분노와 시기, 미움과 증오의 쓴물이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드린 자신의 제물이 열납 되지 않고 아우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자 동생을 시기하여 살인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마5:22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요일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미움은 남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미음을 품은 나도 죽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 존 헌튼은 “분을 내는 자는 자살하는 사람이다. 분과 노는 남을 괴롭히기 전에 자기를 죽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박사가 어느 해부학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의사가 그를 비평하고 비난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대항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죽고 말았습니다.
*질병, 죽음, 이별, 실패와 같은 쓴물이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하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병원 갈 일만 많이 생깁니다. 스트레스로, 또 우리가 늘상 대하는 공기, 물, 식재료와 음식물 등이 오염이 많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합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나인 성 과부의 아들처럼 젊은이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하는 쓴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근심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의 쓴물이 있습니다. 잠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고, 잠17:22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요일4:18에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인류의 적이요 무서운 질병입니다. 어려운 환경보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문제입니다. 인간의 정서를 파괴하고 삶의 평안과 힘을 앗아가는 사탄의 도구인 두려움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서 내쫓을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낙심이나 좌절과 절망의 쓴물이 있습니다. 민32:7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했습니다. 낙심에 빠지면 신앙의 실패자가 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자 한사람씩 뽑아 가나안을 정탐한 후 열 두 명 중 두 명을 제외하고 열 명이 불신앙으로 우리는 절대 그 땅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절망적으로 말할 때 많은 백성들을 절망에 빠져 통곡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천성을 향해 갈 때 시험으로 인해, 박해로 인해, 거짓으로 미혹하는 자들로 인해 넘어지거나 낙심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갈6:9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했습니다. 이 같은 등, 등의 쓴물들을 만날 때 나만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쓴물 인생의 소망이 되십니다.
구약 본문에 쓴물로 인해 모세가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그 나무는 문제를 해결하는 나무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나무를 꺾어서 쓴 물에 던졌습니다.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게 되었더라 ... ” 마실 수 없는 쓴물이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예표 하는 나무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3:13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신21:23의 말씀을 인용해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2:24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고 누구도 정죄할 수 없는 의인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두려움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라는 고난의 쓴잔을 마시므로 주님을 믿고 영접한 자들은 죄인이 의인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진노의 대상이 사랑의 대상으로, 영벌에서 영생으로, 쓴물 인생이 단물 인생으로, 원망의 사람이 감사의 사람으로,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분쟁만 일으키던 사람이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남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세워주는 사람으로, 목마른 인생이 목마르지 않는 인생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신약 본문에 나오는 나인 성 과부는 남편도 없이 외아들에게 소망을 두고 살았는데 그 아들마저 죽었으니 쓰디쓴 쓴물을 만나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예수님은 소망을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여인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 소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 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이 일어나 군대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악의 자리에서, 영적으로 잠든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유혹을 받아 넘어진 자리에서, 슬픔과 절망가운데서, 탄식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쓴물로 고통 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단물을 주시기 위해,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참 기쁨과 평안을 주시기 위해,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하셨습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쓴물 인생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3.주님은 쓴물을 단물로, 마라를 엘림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단물로 바뀐 물을 마시고 더 나아가다 엘림에 당도합니다. 구약 본문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2지파를 위한 넉넉한 물샘입니다. 그리고 70인 장로를 위한 장막입니다. 백성 전체를 위한 충분한 물과 나무들이 있는 광야에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집을 분양할 때 모델 하우스를 미리 지어 보여주는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이 누리는 은총의 자리요, 주님을 믿는 자들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나라와 장차 들어 갈 천국을 예표 하는 곳입니다. 주님 만나 다시 살아난 아들을 보고 변화를 통해 감격하고 기뻐하는 어머니가 맛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실패의 삶에서 승리의 삶으로 변화된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의 내용과 걸 맞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본래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그런데 흉년을 피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해 갑니다. 그런데 흉년을 모면하기 위해 그 곳으로 갔지만, 모압 땅에서 만난 것은 쓰디쓴 쓴물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남편 잃고, 두 아들마저 잃고 자기와 두 자부, 이렇게 세 과부들만 남았습니다. 시모인 나오미는 내게 소망이 없으니 친정으로 돌아가 새 삶을 살라고 강권할 때 오르바는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자부 룻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모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고향 사람들이 반갑게 나와 맞이하며 “아니, 나오미 아냐?”라고 말할 때 나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나오미’는 히브리어로 ‘희락’ ‘기쁨’이란 뜻입니다. 자기 신세가 나오미라는 이름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기에 심히 괴로워하며 ‘마라’라고 부르라 했습니다. 마라는 ‘쓰다’, ‘괴로움’, ‘슬픔’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고향에 돌아온 이후 그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마치 아무런 소망이 없던 탕자가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 모든 것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자부 룻이 그 마을의 유지인 보아스를 만나 재혼합니다. 아들을 낳습니다. 나오미는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동네 사람들과 함께 그 아들을 안고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으나 시어머니의 신앙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고 베들레헴에 와서 정성껏 시모를 봉양할 때 보아스와 같은 훌륭한 남편을 만났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었고, 마라가 엘림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은총 안에 거하는 사람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즐거워합니다. 어거스틴은 ‘신국’(City of God)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똑같은 미풍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믿음의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고통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쓴물이 단물이 되고, 마라가 엘림이 되는 은총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쓴물 인생의 소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인생길에는 많은 쓴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쓴물 인생의 소망이 되십니다.
◈.주님은 쓴물을 단물로, 마라를 엘림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멘.
<2025. 01. 06.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구약 >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계명 강해] 제10계명 (출 20:17) (2) | 2024.09.28 |
---|---|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애굽기20:16 (3) | 2024.09.20 |
출 20: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6) | 2024.09.14 |
제7 계명 :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4) (11) | 2024.09.07 |
제8계명 (출 20:15) (0) | 2024.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