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아! 시122:1-9, 눅13:31-35
성경에 ‘예루살렘’이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란 뜻은 “거룩한 성”, “거룩한 토대” “평화의 기초” “평강의 소유”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팔레스타인 남쪽 헤브론에서 북쪽 사마리아와 갈릴리, 동쪽 요단 계곡과 서쪽 지중해 연안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제1의 도시요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셨다고 시편 147:2에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지이며, 신앙의 중심지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상징하며(행 20:28),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도성’인 천국을 상징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계 21:2)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루살렘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처소이고 귀히 여기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바로 이 예루살렘이 오늘날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즉 교회를 위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 교회를 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약속 하셨고, 타락하여 탄식의 대상이 될 때 그 형벌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예루살렘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으로 불러내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은혜를 받게 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자들은 성전의 출입을 기뻐하는 자가 됩니다.
구약 본문 시122:1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것이 기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눔이 기쁘고, 기도하고 성경 공부 하는 것이 기쁘고, 봉사하는 것이 기쁩니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하였던 맥스웰은 집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설거지였습니다. 틈만 나면 설거지가 싫어서 여자 친구의 집으로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그녀 옆에서 설거지를 하였지만 그 설거지는 즐거움과 기쁨의 설거지였습니다. 그에게 여자는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었기에 가장 하기 싫었던 설거지가 기쁨이 된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기쁨으로 하게 되고 감사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는 교회 오는 것에 대한 영적 기쁨이 있어서 심령이 무척 즐겁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기에 교회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영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4절에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 도다.”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성전을 향할 때 그 마음에 은혜를 사모함이 있고,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교회는 초상집이 아니고 잔치집입니다. 교회는 마귀가 역사하는 장터가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축복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날 때도 기뻐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볼 때도 기뻐하고, 또 우리가 각기 맡은 사명에 대해서 충성할 때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 크게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행1:4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한 것은 그곳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의 응답이 잇는 곳이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또 하나님 앞에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그곳에서 신령한 은혜와 구원의 은혜, 치유의 은혜도 주시고 또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주시는 은혜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것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자는 소리를 들을까봐 아예 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일보다 자기 일을 중심에 두고 자기 일을 우선시하며 교회 일을 미루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것을 소홀히 한다든지, 내 일과 교회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자가 되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지고 성전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122:6-9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여호와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평안을 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섬기며 헌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의 평안이 형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평안해야 영혼이 평안하고, 영혼이 평안해야 삶이 평안하게 됨을 믿는 자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교회가 평안하면 모든 것이 은혜롭고 평안하게 됩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는다 했습니다. 분쟁하는 교회는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가 되고 모든 삶에 문제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삶에 평안이 없습니다. 성령을 소멸하고 믿음도 잃고 마음이 강퍅해집니다. 그래서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교회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합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교인들끼리 다투고 시기하고 미워하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집에 기쁨을 나타내며 올라가는 자, 감사로 행하며 성전을 사랑하여 섬기고 헌신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
런던의 켄더베리 교회에 니콜라이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교회를 관리하는 사찰집사가 되어 평생을 예배당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는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시간에 맞춰 교회종탑의 종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도리어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교회에 열심히 하면서 키운 두 아들은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그러나 니콜라이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살까지 종을 치며 교회를 사랑하고 관리하였습니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일어나 옷을 챙겨 입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얼마간 종을 치다 종탑 아래에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감동을 받고 영국 황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 주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성직자들이 죽었으나 영국황실에 묻힌 자가 없는데 종치는 니콜라이집사만이 영국 황실 묘지에 묻혔고 그의 가족들은 귀족으로 대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다면 맡은 일에 충성해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신약 본문 눅13:31-33에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교회를 사랑하여 충성하는 성도로 사시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주님의 탄식의 대상이 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봅니다.
신약 본문 눅13:34-35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이 바르게 살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탐욕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명예, 권세를 탐하며 온갖 죄에 빠져 살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까지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는 그들의 죄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시고 탄식하시며 우셨습니다.(눅19:41) 그들이 장차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지를 미리 내다보시고 안타까워 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스파시아누스제의 아들 티투스는 14군단을 이끌고 A.D. 70년 4월부터 9월말까지 격심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리하여 성전도 성벽도 도시도 다 불타버려 다만 기왓장과 흙덩이만이 뒹굴 뿐이었습니다. 굶어서 쇠약해진 주민은 여자도 어린이도 철저하게 항전하다가 지옥과 같은 피의 개울 속에 다 쓰러져갔습니다. 포위 공격되어 전사한 자가 110만명, 포로가 9만7천명이라 전해집니다. 사해 서안에 있는 마사다 보루에 틀어박혀 항전하던 잔당도 3년 후에는 힘이 빠져 전원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로마 유학파 지식인인 요세푸스라는 고대 사가가 기록한 부분인데, 그는 갈릴리지역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로마군의 포로로 잡히자 죽이기를 아까워한 베스피아누스 로마사령관이 살려주어서 유대고대사를 역사에 남기게 된 것이다. 그리스어(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잘하므로 로마군은 통역관으로 쓰게 됩니다. 그는 전쟁의 현장에서 보고들은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긴 것이 "유대인의 전쟁"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모든 출구가 막혀 성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기근이 점점 더 심해져 가족과식구들이 죽어갔다. 옥상에는 못 먹어서 완전히 탈진한 여자와 간난아이들로 북적거렸고, 길에는 노인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아이들과 어른 그리고 청년들은 못 먹어서 부은 얼굴로 시장거리를 유령처럼 돌아다녔으며, 아무데나, 쓰러져 죽어갔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너무 못 먹어서 자신의 아들을 잡아먹고는 남은 부분을 숨겨 두었다. 강도들이 구운 구수한 냄새를 맡고는 음식을 달라고 협박했다. 나중에 사람의고기라는 것을 알고는 강도들은 기겁을 하고는 그 집을 도망쳐 나왔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멸망 당시의 일부분이다.
도시의 강도들은 칼이 잘드나 시험하기 위해 죽은 시체나 숨이 붙어있는 사람에게 찔러 보았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같은 동족인 강도에게 죽은 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시체가 도시 안에서 썩어 냄새가 진동하자. 처리를 못해 강도들은 성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성안주민들이 금화를 삼키고 탈출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로마군과 강도들은 금을 얻기 위해 산사람의 배를 갈라서 금화를 끄집어냈다. 어떤 때는 하루에 2000명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로마군에 반란 중 죽어서 갇힌 성에서 탈출을 못하고 성 밖으로 운반된 시체는 115,880명, 특히 힘없는 하층민은 죽어서 성 밖으로 던져졌는데 무려 600,000 명이다.
시체를 옮기다가 힘들면 큰집에다가 차곡차곡 쌓은 후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성안의 풀과 소똥도 먹느라고 남아있지 아니했다. 이러한 처참함은 로마군의 동정심을 자아냈다. 나머지 17세 이상은 포로가 되어 이집트의 작업장에서 중노동에 평생 붙들렸다. 그리고 노예로서 선물로 보내지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거나, 검투사가 되어 죽어갔다. 포로를 구분하여 노예로 분류하는 하루 동안에 11,000명이 배고파 죽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주지 않는 로마간수를 저주하며 죽기도 했고, 음식 먹기를 거절하여 죽기도 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전투 중 포로는 97,000명이었다. 도시주민 전체의 총사망자 수는 무려 1백 10만 명이었다. (중략) 이 모습은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주님이 회개를 외치신 것은 바로 이런 심판에 처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주님의 탄식의 대상이 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봅니다. 죄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죄를 버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살다가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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