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는 큰 무리 (계 7:9-1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누굴까요? 여기에 대한 학설을 보면 “이제까지 예수 믿어 구원 받은 모든 자들, 전 삼년 반 동안 전도 받아 올라온 사람들, 세례 받은 자로서 순교자들, 전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 온갖 언어를 사용하는 범세계적인 무리들.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뽑힌 의롭고 거룩한 구원 받는 자들. 마지막 때 144,000의 전도자들이 전도해서 이뤄낸 성과로 말세에 대거 구원을 받을 자들” 등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비슷한 답도 보이지만 정확히 꼬집어 설명한 답은 보이지 않네요. 창13:16에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결국 티끌을 셀 수 없듯이 셀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셀 수 없는 무리의 배경입니다. 여기 큰 무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모든 시대의 셀 수 없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입니다.
10절에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한 말씀처럼 하나님과 예수님을 주로 믿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정체성은 144,000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릅니다. 144,000을 유대인 전도자로 본다면 이 큰 무리는 그 전도의 결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앞에서 말했듯 144,000이 신구약의 인침 받은 모든 성도라고 본다면,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는 동일한 무리들이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즉 십사만 사천은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성령의 인침을 받은 면을 강조했다면, 이 무리들은 환난의 연단을 통해 변화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 증거로 “각 나라, 족속, 백성, 방언, 셀 수 없는 큰 무리 등”은 바벨탑의 결과를 연상시키는 용어로 세상에서의 구원을 암시하며, 다른 힌트인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1절) 역시 큰 환난이란 구속과 관련된 연단으로 죄인들이 연단 받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새 사람 되는 것을 시사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환난 속에서 부르짖다가 모세의 인도로 구원 받은 자들이 되고,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연단 받고 성숙한 믿음으로 귀환하여 모든 연단 받는 성도의 예표가 된 것처럼 환난은 모든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구원의 방식입니다(롬5:3-4). 그러므로 144,000과 셀 수 없는 무리는 강조하는 관점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1. 패역한 세상에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9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와” 이 표현은 계시록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데 이 말씀의 배경은 창 11장의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흩으실 때 각 족속, 각 나라, 각 민족, 각 백성, 각 언어 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벨탑을 세상으로 볼 때 각 족속은 옛 사람, 방언은 불신의 입술, 백성은 육신의 생각들, 나라는 자아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외쳤습니다. 이런 혼미하고 다양한 우리의 영적상태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2. 구속의 은총을 받은 자들입니다.
9절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은 경배와 긍휼과 은혜와 사랑과 거룩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어린 양 앞은 특별히 구원의 자리임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흰옷”은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의의 옷입니다. 사61:10에 보면 속옷은 구원의 옷이요, 겉옷은 공의의 옷으로 칭의와 성화까지 포함하는 옷입니다.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종려나무는 그늘과 쉼(출15:27), 번성과 축복(시92:12), 승리와 기쁨(요12:13) 등을 상징하며 왕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할 때 쓰였습니다. 이처럼 왕되신 예수를 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승리하신 예수 안에서 죄와 사망과 저주와 악과 원수에게서 승리자입니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성막에서 제사장들은 서서 봉사했습니다. 이처럼 항상 예배하는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그들이 대속주이신 어린 양 앞에 섰던 것처럼 구원의 진리에 진리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흰옷 입은 그 은혜를 믿은 결과입니다.
3. 구속의 은총을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10절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일종의 간증 형식을 띠고 있는 구절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이라는 말씀에는 그 분의 주되심과 통치 그리고 구속의 은총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신인합일 때문에 고행하며 시간 보내지 마세요. 성도는 예수 믿어 중생하면서 이미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이룬 존재임을 알고 늘 감사하면 실재를 경험하게 됩니다(롬8:30).
4. 불같은 연단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13-14절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본문의 큰 환난은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환난에서 나왔고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씻는 등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환난의 시각과도 같습니다(약1:2-4, 벧전1:5-6). 환난은 연단을 연단은 성도의 믿음을 훈련시켜 그 결과 온전하게 합니다. 큰 환난이라 한 것처럼 구속사와 관계가 있는 연단으로 환난 가운데서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흰 옷 입은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계십니다.
모든 천사들의 화답과 경배 (계 7:11-12)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하더라
이 천사들은 누굴까요? 셀 수 없이 많은 흰옷 입은 무리들의 찬양에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아 큰 환난 중에 있는 무리들의 구원을 위한 사역을 도왔던 천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올린 이 영광은 그들이 구원의 사역을 도왔던 천사들이라는 점과 또한 그들이 돌린 7가지 이상의 조목처럼 그들이 받은 능력과 섬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역자의 필수 구비사항이기도 합니다.
환난의 날 사역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1.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11절 “모든 천사가 - 경배하여 이르되” "모든 천사"라 한 것은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나됨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들의 엎드림이나 찬양은 조금의 혼란이나 불협화음이 없는 한 모습 한 목소리였습니다. 이것은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이 수천 년 동안 다양한 환경과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 보세요. 그 일체성 통일성 복음성 성령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충만과 권능은 환난 날의 사역자들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2.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11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었습니다. 주위에 섰다는 것은 한 마디로 섬김의 자세입니다. 먼저 보좌 주위에 섰듯이 무리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전도를 했습니다(딤전2:4, 막16:15, 고전1:21).
천사들이 장로들 주위에도 섰듯이 천사들이 지상의 복음전도자들을 돕는 자들임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4복음의 상징인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었듯 온전한 예수의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네 생물에 눈동자가 가득했는데 이는 성도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이 4복음의 눈으로 구약이나 계시록을 보면 풀립니다.
3. 나를 감추고 오직 하나님만 나타내야 합니다.
11절 중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천사들이 엎드렸는데 얼굴을 대고 엎드렸습니다. 이는 이사야가 본 환상에도 그랬듯(사6:2) 자기를 감추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려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종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말씀을 전파할 때도 자기 사상이 아닌 오직 성경의 진리를 전파해야 합니다(고전2:1-2, 13)
환난의 날 복음사역자가 갖춰야 할 것은?
1. 절대 믿음입니다.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여기서 천사들이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마칩니다. 처음 아멘은 성도들의 찬양에 대한 화답이요, 두 번째 아멘은 자신들의 찬양에 대한 아멘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알파와 오메가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후1:18-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전여행 시키며 절대 믿음을 훈련시키셨듯(막6:7-10) 하나님과 함께 동역한다는 온전한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절대 찬송해야 합니다.
그 다음 낱말이 “찬송”입니다. 이 역시 구속의 은총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구원의 은혜를 찬양한 것처럼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신 그 은혜를 날마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엡1:3-7). 복음에 서되 그것이 노래가 되고 삶이 되고 메시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면서 전도할 수는 없습니다.
3. 절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세 번째 “영광”을 드렸습니다. 잠시라도 내가 영광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실 수 없습니니다. 칭찬을 듣고 1분 1초라도 가슴이 뛴다면 더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되 큰일을 하실 텐데 기본적인 관계가 잘못되면 쓰실 수 없고 쓰셔도 버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행 16장에 점치는 귀신이 바울을 높일 때 바울은 심히 괴로워했습니다(16-18절, 행14장, 계22:8-9).
4. 절대 지혜로워야 합니다.
네 번째가 “지혜”입니다. 욥4:18에 "하나님은 -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신다 했는데 하나님께 세세토록 지혜를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지혜를 주심을 전제한 말씀입니다(마10:19-20).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강조하신 것이 지혜와 순결입니다(마10:16). 그러므로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약1:5).
5. 절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하나님과 동역할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옳고 위대하고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고후12:9, 롬8:28). 밧모섬의 극한 환경 가운데 요한으로 계시록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서 필자에게도 이런 강해에 매달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6. 절대 귀히 쓰임 받아야 합니다.
“존귀와” 하나님께 존귀를 돌렸음은 존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라는 사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귀히 쓰임 받아야지 불필요한 일에 힘 쓰거나 사탄에게 쓰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께서 지극히 높아지신 결과입니다(행2:33, 엡4:8에). 그러므로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찬양하며 살면 우리에게 놀라운 성령의 은사로 부어주십니다.
7. 절대 능력 받아야 합니다.
또 천사들은 “권능”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시103:20에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진 천사들도 있습니다(벧후2:11). 권능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표적이 따르고(막16:17-18), 우리 몸과 마음을 드린 만큼 은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롬6:16).
8. 절대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여기 "힘"은 위로 받거나 꿈과 비전이 주어질 때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할 때 해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힘을 잃었습니다. 비전을 상실했지만(사40:27-31) 주를 앙망하면 힘을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꿈이 생깁니다(행2:17).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알곡의 꿈, 성령과 발 맞추어 일하는 동역의 꿈,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는 꿈을 비전 삼으시기 바랍니다.
9. 영원히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여기 “세세토록 있을지어다.”의 뜻은 “영원토록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영광을 돌리려면 그와 같은 은사를 예수 안에서 주셨음을 믿고 돌리고 그 다음은 현실에서 나타날 때 또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온갖 은혜와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같은 절대 믿음은 성령에 사로잡힐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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