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영적으로 죽은 교회 (계 3:14-22)

nam씨 2022. 10. 28. 16:13

영적으로 죽은 교회 (3:14-22)

 

이 시간 영적으로 죽은 교회라는 제목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한 줄도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영적으로 죽은 교회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왜 죽은 교회라 할 수 있을까요?

 

1. 열심이 없었습니다.

15-16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 말씀에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뜨겁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여기 차다는 것은 주님을 아주 모르고 적대감을 가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죽 답답하시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차라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찬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세리와 창기가 그랬듯이 차라리 그런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참 믿음을 가질 확률이 높지 미지근한 사람은 회개는 물론 신앙의 걸림돌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체온이 떨어지면 죽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보세요. 어떤 모습입니까?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셔야 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자만했습니다.

17-18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더 심각한 문제점은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고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굉장히 성공한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아주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지역 특산물로는 안약과 검은색의 모직이 있었습니다. 또 그곳은 금융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도시에 세워진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대단히 부요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지가 400,000평 이상 되고, 본당 이외에 다양한 부속 건물들이 있었고 야외 원형극장도 1,500평 정도, 야외 원형 운동장도 2,000평 이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유적을 보면 현대 대형교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건축 터는 매우 넓고 잘 다듬어진 돌로 건축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입구가 호화로운 아치모양인 것도 그 교회의 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외형적인 것들이 잘못이라기보다 거기에 치중하거나 또 그것이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증거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것에 치중할 때 도리어 교회는 썩는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3. 인간중심이었습니다.

 

19-20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지명의 뜻은 옳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낱말 그대로라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강조되면 하나님은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민주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우리나라 625사변 한국전쟁이 우리에게는 비극이지만 이념적으로는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전 세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한반도에서 격돌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요즘 민주화라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럽든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데모하고 여론을 호도하면 된다는 식으로 민주라는 이름이 퇴색되고 있습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는 주님 중심이어야지 사람 중심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 중심으로 하다보면 주님은 밖에 계시고 그런 심령이나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도 요한계시록의 다른 교회들처럼 마지막 시대에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들의 유형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우리 모두 열심 가지고 자만하지 말고 주님 중심으로 바로 신앙하여 우리 주님께 칭찬 받는 귀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좌에 함께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 권능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교회들이라고 했어요. 예수님이 가졌고 베드로가 가졌고 바울이 가졌던 영적 권능을 갖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기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이길까요?

 

1. 불신앙을 이겨야 합니다.

 

14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나 믿는 것도 아니고 불신앙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성도는 체험이 있든 없든 예수와 함께 하나님 우편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믿고 앉지 못한 자 인식을 버리고 앉은 자라는 말씀에 서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에 서서 우리가 할렐루야 찬양만 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미지근함을 이겨야 합니다.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2장의 초대교회 성도들의 영적 권세와 능력은 열심에서 나왔습니다. 기도에 전무했습니다. 찬송에 전무했습니다.

 

대하16: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그랬습니다. 능력을 경험하려면 일상적 믿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초대교회가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날마다 기도에 전무한 것은 아닙니다. 이건 부흥회와 같은 일시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열심히 있어야 권능과 은사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방언을 예로 든다면 묵상기도나 일상기도만 해서는 평생 가도 방언하지 못합니다. 권능을 받기 위해서는 미지근함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3. 자만을 이겨야 합니다.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자만은 교만의 동급입니다. 잘해도 항상 부족한 것처럼 사모해야 합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4.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그것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먹으며 잔치하십니다. 천국의 잔치인 것입니다.

 

그럼 주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나요? 성경 말씀이 주님의 음성입니다. 내 영혼에서 나는 소리가 주님의 음성입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경고의 음성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혹은 지체나 이웃의 권고입니다. 사람의 소리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삶에서 넘어집니다. 어떤 일을 계기로 넘어지고 실패할 때 자기를 돌아보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종합한다면 예수와 함께 앉았다는 복음의 말씀에 서서 우리 미지근한 믿음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우리들도 자기 보좌의 권능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의 말씀에 서서 불신앙을 이기고 미지근함과 자만과 자기중심을 이기고 초대교회의 믿음을 회복함으로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크신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