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실상은 죽은 자 (계 3:1-6)

nam씨 2022. 10. 19. 15:44

실상은 죽은 자 (계 3:1-6)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였습니다. 사데는 어원상으로는 ‘사르밧’과 같은 이름으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엘리야의 기도로 죽었다가 살았듯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교회 이름이 초대교회이면서 초대교회 신앙과 멀거나, 선교교회라고 지었으나 선교하지 않는 교회와 같습니다.

사데 교회가 죽은 이유는

1. 성령에 무관심했습니다.

사데 교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7은 완전수로서 완전하신 성령 혹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사데 교회에 대한 희망사항으로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2절에 “일깨워” 그랬듯 현실에 안주하며 안일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자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 받은 것과 성령 충만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자는 성령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설프게 안 교리 때문에 중대한 실수 저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데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고원지대에 세워져 있는 도시로서 예루살렘처럼 3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군사적으로 천연요새였습니다. 그 결과 안일과 방심 때문에 적국에게 2번이나 정복 당했듯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군대가 유능한 등산가의 도움을 받아 한 명씩 한 명씩 절벽을 기어 올라가 사데를 점령했듯이 세월이 흘러 경건한 종들이 하나씩 하나씩 부름 받고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동안 사데 교회는 초대교회의 믿음과 순수성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핍박이 복입니다. 성도는 고난 속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2. 부흥의 일군들이 사라졌습니다.

1절의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별은 교회의 사자입니다. 일곱별은 아시아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의미하지만 7이 완전수인 것처럼 하나님이 붙드시는 신령한 종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데에는 부흥의 일군들이 없었습니다. 학자들도 많고 외치는 자도 많지만 생명력이 결여되었다면 영적으로 죽은 교회입니다.

부흥의 일군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시대의 신학사조나 교회의 전통이 그렇게 흘러가 부흥의 일군들을 만들어내지 못했거나 도리어 배척했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신비주의로 몰아버리거나, 말씀이 최고라면서 어이없게 성령을 약화시키는 일도 있습니다. 신비주의를 배척한다고 성령까지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부흥사도 있어야 하고 필요합니다. 교회가 부흥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교회의 문제도 있겠지만 부흥사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들림을 받은 부흥의 일군이 적거나 없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부흥회를 혐오하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2장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에 이르러 말하는데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했는데 '보김'이란 “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완악한 백성들이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니까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사자에 대해 학자들은 제2위이신 그리스도라고 해석합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의 이면에는 부흥사들의 놀라운 활동이 있었습니다. 또 다시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3.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교회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치 재림을 연상시키는 말씀인데(살전5:1-3) 이처럼 사데 교회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의 통계에도 나오지만 재림 신앙은 믿음을 경건하고 온전하게 각성시킵니다.

어떤 감언이설에도 넘어가지 말고 깨어 근신하여 신앙생활하면 현재 성령 충만으로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될 뿐 아니라, 장차 재림의 주님을 맞이하는 가장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 믿어 성령 받았다면 안일하지 말고 근신함으로 더욱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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