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때 지녀야할 신앙 마24:32-51, 살전5:1-11
어떤 사람이 암 판정을 받게 될 때 암의 병기를 일반적으로 1기- 4기로 분류해서 초기에 발견한 사람은 비교적 쉽게 치료에 임하게 되지만 병세가 깊어질수록 치료하기가 어렵고 4기 즉 말기가 되면 몸에 전이가 되어 치료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흔히 종말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 종말의 시대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종말의 시대 혹은 말세라고 하였습니다. 종말의 시대도 암의 병기처럼 초기 종말의 때는 예수께서 부활승천이후 초대교회의 어간을 말하고, 중기 종말의 때는 중세기에서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말기 종말의 때는 20세기부터 주님 오시는 날까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현대를 가리켜 말세지말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지금은 분명히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증명하듯 곧 다가 올 재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지구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고, 그 징조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언급을 하고 있는데, 하나, 하나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 재해, 타락해 가는 도덕 상태, 사람들의 부패해 가는 마음 상태 등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 구약과 신약의 곳곳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말의 때에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며 두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의 때 지녀야할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종말의 때 지녀야할 신앙은,
1.깨어 근신하는 신앙입니다.
깨어 근신하는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에 비추어 시대의 흐름을 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시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게 되어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예상치 못한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주님의 오심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과 시는 하나님 외에는 알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서 본문 마24:42-44에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2-44절)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세 가지 예를 들어 깨어 있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첫째,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37-39절). 물로 심판하시기 120년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물로 심판 받을 것에 대해 경고하시고 깨어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사람들은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고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므로 홍수가 나서 모두 멸망을 당하여도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 노아와 그의 가족 즉, 깨어 있던 믿음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집주인과 도적의 비유입니다(43절). 도적이 언제 올지 안다면 집주인이 깨어 있어 그 도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도적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잠든 사이 아무 것도 모른 채 도적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깨어 있지 않으면 주님의 재림을 도적처럼 맞게 되어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두 종의 비유입니다(45-51절). 주인이 두 종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고 먼 길을 갔을 때 충성된 종은 주인이 있건, 없건, 보고 있든, 보고 있지 않든 상관없이 충실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여 주인이 왔을 때 칭찬받고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게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악한 종은 외식하는 자로 주인이 보는 앞에서는 잘하였지만 주인이 먼 길을 떠났을 때 더디 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셨는데 갑자기 주인이 오는 바람에 모든 것이 드러나 주인의 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깨어 근신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살전5:6-8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했습니다. 여기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하라’고 하는 말씀은 영적으로 잠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술 먹은 사람이 술에 취하여 잠에 빠져들듯이 세속에 깊이 빠져 시대도 판단치 못하고 세상 연락과 욕심에 사로잡혀 살아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깨어 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데에 정신을 차려 살피고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신하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거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 예배와 성경 공부, 봉사와 전도의 일을 하며 훈련과 통제를 엄격히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 깨어 근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갑자기 홍수 심판을 받거나 도적처럼 주님을 맞지 않고 충성된 종의 모습으로 살다가 재림의 주님을 맞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말씀 중심의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있을 일들 가운데 마24:11에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라 하셨고, 23-24에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말씀 중심의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거짓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바른 믿음에서 떠나 미혹의 길로 가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을 바로 알고 말씀에 순종하여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3:10에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한다면 말씀을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믿어야 하고, 믿기에 순종하여 지킬 수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촬스 피니는 28세에 변호사가 된 수재였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서가에 꽂아 두었습니다. 서가에 성경이 있다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느 날 몸이 아파서 누워 있다가 성경을 읽고 싶어서 읽다가 진리에 깊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법관, 앞길이 창창한 정치 지망생의 길을 포기하고 목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 후 뉴욕의 유명한 브로드웨이 태버나클 교회를 창립하였고, 오버린 대학의 제2대 총장으로 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을 겸손한 사람으로,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미움의 사람을 사랑의 사람으로, 불평의 사람을 감사의 사람으로, 거짓된 사람을 진실한 사람으로, 불안으로 근심하며 사는 사람을 평강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한 바른 믿음이 귀한 믿음입니다.
서신서 본문 살전5:7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깊은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점점 죄악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깊은 잠, 욕심의 깊은 잠, 쾌락의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밤이 깊었다는 것은 새벽이 곧 다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잠을 자지 말고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밤이 지나 새벽이 오듯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하면서 군인들이 무장하는 무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심경은 흉배라고 하기도 하는데, 군인들이 적의 활이나 창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심경을 붙였습니다. 주로 심장에 있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빈 가죽이나, 주조한 놋쇠로서 가슴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투구는 머리를 보호해 주는 중요한 군장(軍裝)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움하는 군인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머리에 상처를 입게 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소극적으로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믿음도 식어지고, 극도의 이기주의로 사랑도 식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노아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흥청대며 세속주의, 쾌락주의자들이 되어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살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악한 풍조를 이기는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믿음이라"고 했습니다.(요일5:4) 우리 모두 말씀 중심의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성경 맨 마지막 부분인 계22: 에 보면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성도 간에 인사를 하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 하며 살았습니다.
행복한 부부의 관계는 남편이 퇴근 하여 올 것을 대비하여 음식을 준비 하고,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남편이 출장을 나갔거나 외국에 파견을 나갔을 때 수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서로 보고 싶어 하며 사모하여 기다리게 됩니다. 성경은 주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비유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신랑과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의 신랑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언제나 도울 수 있는 능력 있는 남편이요, 언제나 따스한 사랑으로 친구처럼 대해 주시는 신랑이요, 마음에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주는 신랑이요, 모든 원수들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신랑이요, 허탄한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비록 힘들더라도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의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는 신랑이요, 참된 가치를 위해 살도록 독려하며, 장차 나의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는 신랑이요, 하늘 아버지 집에 영원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준비 시키는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신랑이십니다.
이런 최고의 신랑을 두고도 자신의 만족을 찾기 위해 다른 남편을 찾는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그런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랑으로 맞고도 못 미더워서 주님도 믿고 무당도 믿고, 다른 신도 믿는 것은 주님이 제일 싫어하시는데 그런 영적 간음을 행합니다. 욕심이 많아서 돈에 욕심을 부리고, 명예, 권세욕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세상에 연락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좁은 길, 좁은 문을 마다하고 세상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쉽게 달려가는 넓은 문, 넓은 길을 좋아라 하고 달려갑니다. 이런 신자는 주님이 신부로 받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신자라는 의식도 없이 살아갑니다.
이런 신자들은 종말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망각하고 현실에 취하고 탐닉하며 살아갑니다. 창세기에 보면 타락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할 때 두 천사는 롯과 함께 심판에 대해 경고를 합니다. 롯의 사위 될 사람은 농담으로 여기다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 받을 때 모두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종말이란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준비 하지도 않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 보다 다른 남자를 더 사랑 합니다. 사랑 하지 않으니 사모하여 기다릴 리가 만무합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사오니 아예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며 세상에 취해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앙을 가지고 살다가 기쁨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종말의 때 지녀야할 신앙”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종말의 때 지녀야할 신앙은,
◒.깨어 근신하는 신앙입니다.
◒.말씀 중심의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신앙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아멘.
'신약 > 마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룩함에 이르는 길 (마 8:1-4) (0) | 2022.02.26 |
---|---|
감사의 차원 마26:26-29 (0) | 2021.11.13 |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까(마 8:18-27) (0) | 2021.05.15 |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 마24:42-51, 엡5:15-21 (0) | 2020.08.28 |
성공적 인생의 비밀 (마 4:1-11) (0) | 2020.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