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예수님을 따를까 (마 8:18-27)
핵심주제: 믿음이 없어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를 예수님은 제자와 성도로 부르셔서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는 경배하며 예수님을 따라간다.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우리를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믿고 담대하게 예배하는 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2천년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의심과 두려움이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하지 않고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시대의 성도에게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18절-22절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헌신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23절-27절은 갈릴리 호수/바다의 폭풍 앞에 두려워하던 제자들의 마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한 이야기입니다.
이 일은 이후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되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하는 일까지 가게 합니다.
성령님께서 들려주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제자인 우리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할 지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영광스럽게 된 인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돌보고 있습니다. 고난을 두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 갑시다. 성령께서 새로운 깨달음과 힘을 주시기 소원합니다.
1. 물질과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을 넘어 예수님을 믿고 따릅시다. (18-22절)
물질과 인간관계의 고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릅시다.
무리들이 왜 예수님을 둘러쌌습니다(18절). 말씀을 가르치고, 병을 고치니까 좋아 하며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인기를 얻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저 편으로 떠나가라.”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에 헌신된 제자들로 따라 오기 원했습니다.
1) 물질의 염려를 넘어서
참 제자는 물질적인 고난이 있지만 주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이 배를 타시는 것은 23절입니다. 배 타러 가는 길에 두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12 제자 뿐 만이 아니라, 무리들 가운데 조금 더 헌신된 다른 사람을 여기서 제자라고 합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겠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잘 아는 서기관이었습니다. 21절에 “그 제자들 중에 다른 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까, 이 사람 서기관도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였습니다. 그 때 관습은 자기가 원하는 선생으로 랍비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불러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스스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느 곳으로 떠나든지 제자로서 따르겠다는 결심을 말했습니다.” “그래 훌륭하다. 나를 따르라.”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네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나는 인자다 (그 사람의 아들이다). 땅에 여우들은 자기가 살 굴들이 있다. 새들도 아래 천막 치는 곳이 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안정된 잠자리가 없다.”예수님은 그 서기관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가르치고 또 기적을 행하니까, 사람들도 많이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면 편하게 살면서 지혜도 배울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가난과 고난의 길입니다.
그래서 그 서기관은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불렀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인자”라고 소개하십니다. 인자는 “그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보다 큰 뜻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그 사람의 아들”이라 부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인자라고 부릅니다. 다니엘서 7:13, 14서 “인자와 같은 사람”에서 온 말입니다. 다니엘서 7:13, 14를 보겠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 (하나님 아버지를 말합니다)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를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인자, 그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또 이 땅에 구름을 타고 영광중에 오실 분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인자에 대해 새롭게 가르쳤습니다. 인자는 그 영광을 받기 전에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 워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리라”(마태복음 17:22).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이 영광 받을 인자라 하면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가?”제자들도 사람들도 이 인자라는 말에 많이 혼돈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분이지만, 우리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과 함께 가지도록하기 위해서입니다. 낮아지신 그리스도는 가난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9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부유한 분이지만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다.” 부자들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구원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신성에 참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그리스도의 가난함과 고난을 같이 겪습니다. 그 서기관이 참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안정된 생활이 없더라도,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길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 서기관은 제자의 길이 물질의 고난의 길임을 바로 알고 따라야 합니다. 마귀에 눌린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죄인들이 회개할 때 까지 인내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골 1:24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우리 모든 성도도 “인자의 길”을 따르는 제자입니다. 인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할 내세의 영광을 생각하며 이 땅에서는 고난 받고 수고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은 예수님이 스스로 가난해 진 것을 본받아, 성도들 중에 가난한 성도를 물질로서 구제하라고 권합니다. 성도에게 나누어 주는 만큼 나의 것이 없어져서 교회와 성도를 세우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고후 8:14절은 말합니다. 이렇게 주신 것을 나누는 것은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가난하고 힘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 넉넉한 것으로 다른 성도를 보충해 주는 것은 나중에, 다른 성도들이 넉넉한 것으로 우리를 보충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구제하고 헌금하는 그 만큼 가난해 집니다.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힘이 있는 성도는 다른 성도를 위해 시간을 쓰면서 자기 시간이 없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위해 죽으셨고 제자들은 있을 집이 없이 다녔지만, 우리들은 그 만큼 고생하지 않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져야 할 고난을 감당합시다.
그러나 염려하지 맙시다. 주님과 함께 일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경제적인 것,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마태복음 6:33).
2) 가족에 대한 염려를 넘어서 (21-22절)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가족에 대해 염려합시다.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 예수님의 말씀이 이상하게 들립니다. 유대인의 관습은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내에 매장합니다. 다른 할례나, 유월절 제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매장 후에 1 주일간 아버지를 위해서 통곡하는 장례의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제자의 아버지가 정말 돌아가셨다면 이 사람은 집에 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를 장사한다.”는 말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제자는 먼저 부모님 돌아가실 때 가지는 잘 모시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먼저 계속 저를 따르십시오. “그리고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내 버려두십시오.”죽은 자를 “내 버려둔다는 말은 마태복음 4:20- 22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고기를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20절) 그리고 다시 야고보와 형제 요한이 그들의 아버지와 함께 배 안에서 그물을 깁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 분을 따랐습니다.”(22절)
그들은 자기 재산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버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내버려 둔다”는 것이 이 뜻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왜 죽은 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할까요?
그리스도 없이 사는 것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 2:15절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합니다. 그리스도 없이 아버지에게 좋은 것 해 드려도, 죽은 삶을 살게 합니다. 아버지를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부모님 부양하는 일은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훈련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를 부양하는 일은 버려두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일을 위해 떠났습니다. 먼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셨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잘 세우니까, 어머니의 부양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의 마리아를 집에서 모셔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잘 세울 때, 교회를 통해 부모님을 섬기는 일도 해결할 방법을 주십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경제적인 것, 부모님 부양하는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목회로 부르셨으면 거기에 순종하면, 차차 주님이 부모님 부양 문제 해결해 주십니다.
모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따르라.”예수님이 부르실 때 부모님과 가족을 도와야 할 책임 때문에 염려가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하실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먼저 순종합니다.
부모님은 “주 안에서”순종해야 합니다. 우선 부모님이 싫어하시더라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부모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는 절대 순종합시다. 그러나 부모님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을 명령할 때는, 부모님을 따르지 말고 그리스도를 따릅시다.
다른 가족과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떠나가서 가족이 행복하게 살수 없습니다. 먼저, 그리고 계속 주님을 따르면서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십시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가족이 돈을 벌고 편하게 해 주면 같이 죽어 갑니다. 그리스도를 먼저 따를 때, 가족 전체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 부모님의 마음 상하게 할까 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있습니까? 이 시간 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십시오.
경제적 고난이 있더라도 가족 관계에 고난이 있더라도 먼저 주님을 따릅시다. “죽은 자들은 저희 죽은 자들로 살게 하라.”이 말씀을 신뢰하면서 가족과의 관계를 염려하지 말고 주님을 따릅시다.
2. 풍파 앞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마음과 풍파를 잔잔하게 하심(23-26절)
12명의 제자들은 물질의 염려, 가족에 대한 염려를 예수 그리스도께 다 맡겨 드리고 예수님만을 따랐습니다. 이번에는 주 예수님께서 배 안으로 들어가시고 제들은 제자들로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23절).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먼저 배 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일부러 예수님이 먼저 배 안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실제로 누가 먼저 들어갔는가 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장서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며 제자로서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에 대해 이 기적을 통해 가르칩니다.
큰 파도가 생겼습니다.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눈앞을 가립니다. 배가 덮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고난을 각오하고, 아버님과 재산도 버리고 따른 제자들입니다. 재난들 당해해로 인해 고난이 생겼습니다.
제자들은 소리칩니다. “주님 구원하소서.” 갈릴리 호수의 파도에서 구원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 왔다.”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1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배우기 위해 나왔습니다. 8:1, 5절에서는 문둥병자가 고쳐 달라고 나왔습니다. 백부장이 자기 종의 중풍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9:21-22에서 여인이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 폭풍가운데 부르짖으며 나아 온 제자들을 예수님은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의 병을 치료받는 것이 급합니다. 그래서 폭풍을 먼저 꾸짖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출렁이는 파도의 보다도 중요한 것은 출렁이는 제자들의 마음의 파도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들의 병을 고칩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적기 때문에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옆에 두고도 믿음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멸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어 두려워 하며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기 때문에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자고 있으면 능력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육체적으로 깨어 있는 것에 너무 집착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거기 계시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지킬 것을 그들을 몰랐습니다.
“주님 구원하소서.”잘 말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가 죽겠나이다.”“멸망하고 있습니다.”이 말은 틀렸습니다. 틀렸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함께 계신데 왜 멸망합니까?
모든 두려움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 두려움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게을러집니다. 어려울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러나, 두려움이 지나치면 죄가 됩니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 파도 앞에서, 두려움으로 겁에 질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로 아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바깥의 파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회복해 주기 원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병을 고침받기 바랍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일어나셨습니다. 폭풍과 바다를 꾸짖었습니다.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폭풍과 바다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꾸짖으시니까 큰 고요함으로 변했습니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믿고 경배하라(26, 27절)
1) 믿음을 성장하게 하는 예수님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는 것을 이것을 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서 말했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27절) 이 질문을 제자들이 했지만, 그냥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 지금 우리들도 같은 질문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의 명령으로 갈릴리 호수가 잔잔하게 복종했습니다. 전에, 큰 폭풍이 일어난 것도 그분이 허락하니까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만난 이분이 과연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더욱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시면서도 제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너희 믿음이 작지만 나는 너희를 위해 인자로서 고난을 받는다. 너희에게 성령을 보낼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더 훈련 받아 믿고 담대할 것이다.” 주님의 심정입니다.
형제자매님이 지금, 마음이 떨려서 혼란에 빠졌습니까? 믿음이 작은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주무시는 것 같지만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믿음을 키워 주기 원하십니다. 그 작은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 계속 환난 가운데 던져서 훈련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주무셨던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앞에 두고도 울면서 주님을 찾지 마십시오. 막달라 마리아처럼 되지 마십시오. 무서워 문을 꼭 잠그고 숨었던 제자들처럼 되지 마십시오. 주님은 부활하여 그 크신 능력으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계시록 21:8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합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갑니다. 제자들이 한 때 지옥에 갈 사람과 같은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믿음의 사람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인생의 위기가운데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믿음 안에서 담대함을 얻으십시오.
2)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
시편 106:9는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말랐다.”시편 107:25, 39는 말합니다. 謉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 도다.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 도다.” 이 능력의 구약의 하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던 예수라는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마태복음 14:33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 때 배에 있던 자들이 “그 분께 절하여 말하기를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서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전에 제자들이 탄 배를 바다에 빠뜨리려는 바다를 잔잔케 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땅에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밀려드는 인생의 수많은 파도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목이 곧아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람들의 고집도 꺾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시다. 우리 인생이 아무 문제도 없고 안락하기 때문에 주일에 예배로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물에 빠뜨리는 듯한 위기와 위험들 때문에 교회로 모입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만나 주십니다. 인생의 풍파가운데 예배로 모입니다. “아직 믿음이 없느냐? 아직 두려워하느냐?” 주님의 음성은 꾸짖는 소리가 아닙니다. 애타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입니다. 간절히 부르짖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주일 예배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6일 동안 살아가며 계속 예수님을 만납니다. 주일 예배의 말씀과 찬송과 기도를 생각하며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때로는 우리 예수님께서 주무시는 것 같아도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담대하게 우리의 사명을 다하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그리스도께서는 제자 된 우리들을 많은 위험 가운데 서 훈련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인자”로 불리우 십니다. 하늘의 영광 가운데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분이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먼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릅시다. 사람들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 받아도, 먼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을 따릅시다. 우리 주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폭풍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문제들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주님을 찬양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 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주님께 먼저 감사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의 질병을 치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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