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사도행전

눈을 고칩시다 (행 9:17-19)

nam씨 2021. 8. 28. 15:39

눈을 고칩시다 (9:17-19)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이 시간에 “눈을 고칩시다.”라는 제목입니다. 눈이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눈처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전11:7에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그랬습니다. 빛이 아름다운 것도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6:22-23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보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보이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관(觀,볼관)이라고 하는데 관에는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교회관 국가관 경제관 우주관 등등 어떤 것이든 관자가 붙이면 그 세계에 대한 눈이 됩니다. 그러므로 눈이 잘되면 한없는 축복이지만 잘못되면 한없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눈은 봄으로 복되듯 우리 눈으로 남이 볼 수 없는 귀한 것을 본다면 진짜 보배입니다.

 

그 이야기가 본문에 나타납니다. 본문은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눈만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눈이 열렸습니다. 진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벗어야 할 비늘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의 비늘, 공정함을 모르는 편견의 비늘, 바로 앞에 것 밖에는 보지 못하는 근시의 비늘, 더 나은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유치의 비늘, 땅에 것만 보고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하는 비늘도 있습니다.

 

눈을 고치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1. 성경이 보입니다.

 

눈에 비늘을 벗은 사울이 맨 처음 했던 일이 있습니다. 행9:20-22에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서야 성경의 핵심을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배운 온갖 조각 지식이 예수를 만난 다음에 구슬 꿰듯 다 꿰졌습니다. 성경에 박식해도 예수를 모르면 성경을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요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셨고, 고후3:14에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성경을 읽어도 수박 겉핧기입니다.

 

가장 보배는 성경을 보는 눈입니다. 사울이 그걸 몰랐기에 예수 믿는 자를 증오하고 잡아들이고 죽이고 멀리 다메섹에까지 원정 가서 믿는 자를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행 18장을 보면 아볼로는 예수를 알았지만 더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행18:24-28에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기는 사람이었지만 성령세례에 대한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신령한 삶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을 예수로 해석하고, 또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아가서도 열리고 계시록도 열립니다. 성경 66권이 밝히 열립니다.

 

2. 눈을 고치면 자신이 보입니다.

 

딤전1:15에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의인이라 할 만큼 훌륭한 사람입니다. 빌3:4-6에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다음부터 이 모든 것을 해로 알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나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에 얼마나 악하게 행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이 죄인이라 했을 때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한 고백은 아닙니다. 교리적으로는 예수 믿었으니 의인입니다. 성령으로 변화 받았으니 성품도 의롭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과거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감사할 수 있고 그래야 진정으로 뉘우친 자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305장 찬송처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 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찬송할 수 있습니다.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이 감격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걸 알았기에 바울은 더욱 주를 위해 생명 바쳐 살기를 원했습니다.

 

3. 눈을 고치면 은혜가 보입니다.

 

바울의 눈이 고침 받은 또 다른 증거가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자기를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 안에서 보았습니다. 진리 안에서 보았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우리들은 특별한 관계가 없지만 예수 안에서 보면 그 어떤 혈육보다 더 귀한 형제요 자매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지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나는 자녀입니다. 새 사람입니다. 권세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천사가 수종을 드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주신 자기의 새 자화상을 인정하고 확신하며 살아갈 때 기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라고 믿으면 귀한 존재로 살게 됩니다.

 

복음서의 행적과 기적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기록입니다. 우리들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믿음만 가져도 예수님처럼 기도의 성공자가 되고, 바람과 풍랑도 꾸짖어 잠잠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떤 분이 성령 충만을 경험했을 때 천지만물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전에는 보이는 것도 다 슬프고 허무했지만 은혜 받고 보니 누구 한 사람 예쁘지 않는 사람 없고 어떤 무엇하나도 아름답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수 윤복희 씨가 그랬다고 합니다. 은혜 받고 하나님의 사랑의 그 감격을 억누를 수가 없어 집집마다 다니며 ‘윤복희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디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으니 꼭 참여해 주십시오.’ 하면서 안아주고 다녔다고 합니다. 눈이 열리면 은혜가 보입니다. 말씀으로 눈이 열립니다. 여러분은 말씀으로 눈이 열려졌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4. 눈을 고치면 사명이 보입니다.

 

행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이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로 봉사하다. 섬기다는 의미인데 일생 목숨 바쳐 감당해야 할 위로부터 부름 받은 일입니다. 사명은 절대적이고 불변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절대 응해야 하며 우리 생명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독일전란 때 자유를 애호하는 자였다. 나는 이것을 보수하기 위하여 대학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독재자의 탄압 아래서 모든 대학교들도 침묵을 하였다. 나는 다시 신문 편집자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침묵을 하였다. 나는 독일의 자유를 위하여 글을 쓰던 유명한 저술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만은 히틀러의 탄압 아래서도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전에 교회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 나는 교회에 대하여 애정과 탄복을 느끼는 바이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눈이 열린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5. 눈을 고치면 천국이 보입니다.

 

빌1:23-24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육신을 떠나 천국에 가고 싶은 욕망이 더욱 크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천국이 보이지 않으니까 천국 가고 싶지 않지요. 천국이 보이기만 해 보세요. 바울과 같이 됩니다.

 

고후 12장에 나오는 천국 간증은 바울의 간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으면 천국을 가보지 않았지만 천국이 믿어지고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믿음이 다가 아닙니다. 소망도 넘치시기 바랍니다. 천국찬송을 장송곡으로 생각하는데 장송곡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불러야 할 천국찬송입니다. 눈에 비늘이 떨어진 자만이 진정 천국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의 문제점은 보지 못하면서 본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눈 먼 자도 뜨게 하신 만병의 대 의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사울의 눈의 비늘이 떨어진 것처럼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눈에 무지와 편견의 비늘이 떨어지고 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사도 바울처럼 성경이 보이고 자신이 보이고 은혜가 보이고 사명이 보이고 천국이 보이는 가장 눈이 밝은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