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의 뜻: 성령 / 행2장1-13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 二ㆍ四)
오순절에 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 월력(月曆)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지는 다만 둘이라고 어떤 분은 말하였습니다. 하나는 부활절, 또 하나는 오순절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절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복음의 내용이 교회에 주어졌고 오순절에는 성령께서 오심으로 큰 능력이 교회에 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교회에 성령께서 오신 일은 실로 큰 일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공장의 시업(始業)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공장 안에 들어가니까 잘 수리하고 기계를 잘 정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매우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거기 단추와 같은 작은 스위치를 저보고 누르라고 해서 그걸 누르니까 갑자기 소리가 나면서 모든 기계가 돌아가기를 시작했습니다.
스위치를 누를 때 그 기계 속에 동력이 들어간 까닭입니다. 물건을 생산하려고 할 때, 공장의 기계를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마는, 동력이 없이 기계만 가지고는 일을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여러 기관도 있고, 조직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정비가 되었다고 하지마는 교회에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오순절을 기념하는 주일인데 우리가 초대교회에 돌아가서 어떻게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였는가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十四장 十六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내려가서 十六장 七절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예수 임께서 마지막 저녁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四十일 동안 제자들에게 다 나타나신 후에 바로 승천하시기 전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 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텐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명령을 했습니다.
이 약속과 명령대로 제자들을 비롯하여 그들과 같이한 이들은 꼭 순복 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순복 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락방에 계속해서 모였습니다.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는 단순히 간구의 기도만은 아니었던 줄 생각합니다. 과거 그들의 여러 가지 실패한 것과 여러 가지 잘못된 것과 여러 가지 죄도 고백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열흘 째되는 날, 과연 약속대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그 믿음, 주님이 분부한대로 순복하는 그 순복, 죄를 회개하면서 간구 하는 그 기도, 주님의 약속이 꼭 이루시리라고 기다리는 그 마음, 이런 모든 것은 성령을 받는 전제조건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준비가 있은 후에 성령께서 약속하신 대로 임하였습니다. 이런 전제조건은 언제나 변치 않는 줄 압니다. 지금도 참된 믿음이 있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고,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교회에는 성령께서 충만히 임재 하십니다.
사도행전 二장에서 우리가 읽었지마는 성령께서 임재 하실 때에는 두 가지 상징이 같이 따라옵니다. 하나는 급한 바람소리가 들렸고, 또 하나는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나는 바람, 하나는 불, 이 두 가지가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성경을 보아도 이 신약시대에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도 성령께서 임재 한 기록은 있지마는 이런 현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첫 번에 이와 같은 성령이 임한 것은 이런 상징을 통해서 성령의 성품이 어떠한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가 바람을 잠깐 생각해보면, 이 바람이라고 하는 것에는 생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 헬라 말에나 히브리말에는, 바람이라고 하는 말이 영이라는 말, 숨결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원리를 가르치실 때에 바람을 이야기하면서 바람이 불기는 불지마는, 우리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꼭 이러하니라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에스겔 三十七장을 보면 그의 이상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어떤 골짜기에 가니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는 말씀이『네가 이 마른 뼈를 향해서 이렇게 예언을 하여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게 하라.』
바로 이 말씀 가운데 생기라고 하는 말은 숨결 혹은 바람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에스겔이 그와 같이 예언할 때에 사방에서 생기가 그 마른 뼈 속에 붙어 와서 그 사람들이 다시 부활하여, 일어서게 되었는데, 보니까 큰 군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도 곧 성령은 생명이요, 성령이 임하는 곳에 중생이 있고, 성령이 임한 곳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또 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능력의 상징입니다. 비바람이 아무리 부드럽지마는 엄동설한의 찬 눈을 다 녹여 버립니다. 반면에 급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은 바다 물결을 요동케 합니다. 심지어 산을 가르게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였다는 욥기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으로 임하였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그 사람들에게 임하였다고 하는 뜻입니다.
또 불같은 혀가 보였다고 하는 뜻도 역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언제든지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 가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으나 밤에는 그 구름기둥 가운데 불이 보였습니다. 즉 불기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혹은 가멜산상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한 사실도 우리가 기억합니다.
불은 빛을 의미합니다. 불은 순결을 의미합니다. 불은 뜨거운 열을 의미합니다. 그들 위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그들의 마음에 빛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깨끗하여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므로 하나님으로 충만해졌다 고 하는 뜻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므로 그리스도로 충만해졌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므로 진리로 충만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니 생명으로 충만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으로 충만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것입니다.
여러분, 충만 이라는 뜻은 쉽게 말하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하면 그 그릇은 별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빈 그릇이 소리가 많이 납니다. 빈 수레가 소리가 더 많이 납니다. 이 제자들도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기 전에는 쓸데없는 소리가 더러 들렸습니다.
누가 오른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왼편에 앉을 것이냐, 누가 크냐 하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그 심령, 성령이 충만한 그 가정, 성령이 충만한 그 교회는 잡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누가 크냐고 불평하는 소리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어떤 교회서는 싸움하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은혜가 충만치 못해서 그렇습니다. 충만하면 소리가 없습니다.
또 여러분 기억하세요. 어떤 그릇에 무엇이 충만하면 다른 것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을 물리학상으로 불가입성의 원리라고 하지요. 동일한 공간에, 동일한 시간에 두 물체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무엇이 가득할 때에는 그것이 좀 나오면 들어갈 수 있지마는 가득하면 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가운데 충만하면 세상의 잡념이나 여러 가지로 불결한 생각이나 교만이나 허영심이나 이런 것들이 들어갈 수 없는 줄 압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가 충만하지 못하므로 종종 잡념이 들어가고 허영심이 들어가고 정욕이 들어가고 불결한 생각이 침노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은혜가 충만하면 잡념이 못 들어갑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또 보세요. 무엇이 충만하면 넘쳐서 흐릅니다. 컵에 물이 가득하면 물이 넘칩니다. 이 때에 제자들과 一二0명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니 이와 같은 충만한 은혜가 넘쳐흘렀습니다.
우선 입으로 넘쳐흘렀습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가 가득 하니 자연히 입을 벌리게 될 때에 그리스도를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니 자연히 그리스도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우리가 읽은 대로 오순절에 특별한 한 가지 이적이 더 따랐는데 그것은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각각 자기 지방 말들을 다 합니다. 이 때에 성령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 지방 사람들의 말, 즉 외국 방언을 말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참 이상한 이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마는 사실 깊이 생각하면 그다지 큰 이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각각 그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는 줄 압니다. 그러치 않아요? 가령 성령께서 우리 한국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한국말로 지도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미국사람한테 말할 때에도 한국말로 하겠습니까? 영어로 하는 줄 압니다.
중국 사람한테 말할 때에는 중국말로 성령께서 지도하는 줄 압니다. 요컨대 여기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말하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진리로 말씀하셨지마는 언제든지 알아듣게 말씀했습니다.
전에 평양에서 어떤 시골 목사가 가서 서경회를 한 번 해달라는 부탁을 하니까 그 목사가 조금 있다가 대답하는 말이『그 교회에 내 설교를 알아들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나요?』하고 물어 보더랍니다.
설교는 어려운 술어를 쓰면서 하는 것이 혹 자기 지식의 자랑이 될는지는 모르지마는 남이 알아듣지 못하면 암만 깊은 설교를 해도 쓸데없는 줄 압니다. 성령께서는 다른 이들이 알아듣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개인으로 전파할 경우에도 그 사람이 알아듣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압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충만하니 자연히 사랑이 넘쳐서 유무상통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령이 손으로 넘쳤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니 자연히 그 하나님의 사랑이 손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미쳐서 유무 상통하는 생활을 함으로써 그 때의 교인들 가운데는 베고픈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혹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도 주머니 끈은 풀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때 주머니 끈이 다 풀렸습니다. 사랑이 충만하고 넘쳐서 베고픈 사람이 없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은 성령의 은혜가 충만해서, 우리 교회 가운데 배고픈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 온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사랑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이것이 넘쳐서 이 땅에 베고픈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될 때가, 속히 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힘써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성령의 사랑이 충만할 뿐 아니라 성령의 다른 열매도 넘쳐흘렀습니다.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모든 열매도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二장 마지막에 이들의 생활 모습을 이런 말로 기록하였습니다.『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모든 은혜가 넘칠 때에 이와 같은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이런 말씀으로 소개했습니다.『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예수 님께서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의 경험을 이런 말로 기록해서 지금까지 남겼습니다.『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의 마음 가운데는 아무리 침묵할래 야 침묵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불붙는 무엇이 있어서, 답답할 뿐 아니라 그 불이 골수에 사무쳐서 잠잠 할래 야 잠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마음속에는 이 하나님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휫휠드(Whitefield)라고 하는 분은 기도할 때에 늘 이런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주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한 웨슬레 같은 이는 청년들에게 흔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청년들이여 네 영혼이 하나님의 불로 항상 불타게 하여라.』우리의 심령 속에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해서 이 민족을 구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람의 불길이 붙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이 사랑의 불길을 던지러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네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본래 은혜를 받았었는데 그 불이 꺼지는 것 같아서 다시 불 일 듯 일으키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혹은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일할 때에 물론 지식이 필요하고 기술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이 하나님의 불길이 그 심령 속에 붙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남녀전도회가 있고 학생회가 있고, 청년회가 있고, 평신도 회가 있지마는 이런 단체만 조직한다고 무슨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체 가운데, 단체를 지도하는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불이 붙을 때에만 그 단체, 그 기관이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오순절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구할 것은 이 성령의 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불입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불이 우리 교회에 임하고 나아가서 온 교회에 임하고 이와 같은 불이 三천리를 요원의 불과 같이 붙어서 모든 부정과 불의와 부패를 불살라 버리고 이 땅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고 정의와 질서와 화평이 이룩되기 위하여,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한경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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