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 사 9:6-7,

nam씨 2020. 12. 12. 10:47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 사 9:6-7, 4:35-41

 

사람들은 이름 외에 그를 부르는 호나 다른 별명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름 외에 불리어지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정확하게 예언하면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이름 외에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5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기묘자는 히브리어로 "펠레"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성을 초월한 신기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기묘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탄생부터가 기묘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태어나신 인간이 아니라 성령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동정녀 마리아와 성령님 사이에서 태어난 기묘자이십니다. 물위로 걸으실 수 있는 기묘자이셨습니다. 52어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게 하신 기묘자였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매 잠잠해 지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기묘자 이십니다. 더욱 기묘한 것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기묘한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또 모사라고 했는데, 모사란 히브리어로 요에츠라고 하는데 이는 "유능한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유능한 상담자란 실력을 갖추고 있어 그에게 상담하러 온 사람의 문제를 다 해결시켜 줄 수 있어야 유능하고 좋은 상담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든지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38년이나 중풍 병으로 고통당하던 사람이,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해결의 길이 없었던 12년이나 혈루 병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이, 장정들도 제어할 수 없는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도,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도 모사인신 주님을 만나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이름을 가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기이하고 놀라운 은총이 따르게 되는데, 대강절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는,

 

1.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도 허무하게 33세의 짧은 일기로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들은 그 일로 심히 낙심이 되고, 모든 기대와 소망이 주님의 죽으심을 보면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스스로 선택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죽이고자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도 아니고, 그를 배신한 가룟 유다 때문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유대인들 때문도, 주님께 사형 언도를 내린 빌라도 때문도, 주님의 처형을 집행한 군인들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스스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선택 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주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은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아버지께서 받았노라"(10:17-18)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주님의 죽으심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나 세례 요한의 말대로 세상 죄를 지고 대속하기 위한 죽으심이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온 인류의 죄를 씻는 죽음이 기묘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 예고를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죽은 후 사흘 후에 다시 살 것도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곧 잊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부활은 사망을 이기신 승리요, 4천 년간 마귀가 휘두르는 사망권세를 빼앗아버린 기묘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로 끝나는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모든 믿는 자들이 주님처럼 부활할 것을 친히 가르쳐 주신 기묘한 사건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최고의 확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죽여서 무덤에 장사했으나 지상의 어떤 무덤도 그를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제 삼 일째 되던 날, 살아나리라고 예언하셨던 대로 무덤에서 걸어 나와 영원히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길이요 생명이심을 증명했습니다. 또 그의 하신 모든 말씀이 진리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만은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흉내 낼 수 없는 기묘한 사건입니다. 해리 린멜 박사가 고관인 모스렘교도와 주고받은 말입니다. 해리 린멜 -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음을 믿는다.’ 모스렘 교도 - ‘우리도 그것을 믿는다.’ 해리 린멜 - ‘창조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것을 믿는다.’ 모슬렘 교도 - ‘우리도 그것을 믿는다.’ 해리 린멜 -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것을 믿는다.’ 모슬렘 교도 - ‘우리도 코란경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것을 믿는다.’ 해리 린멜 - ‘한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 것을 믿는다.’ 모슬렘 교도 - ‘우리도 모하메드를 통해서 계시한 것을 믿는다.’ 해리 린멜 - ‘예수님을 믿는 자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다.’ 모슬렘교도 - ‘우리도 모하메드가 그 백성을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다.’ 해리 린멜 -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 모슬렘 교도 - ‘우리는 그 선지자의 죽은 후에 관해서는 모른다.’ 옳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유일한 분입니다. *모하메드도, *공자도 *석가모니도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그 누구도 모두 그 무덤이 있으나 예수님의 무덤 앞에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고 한 천사의 말을 기억하게 됩니다.

 

부활의 주께서 제자들과 믿는 무리들을 만나 주심으로 그들의 잠자던 믿음이 다시 깨어나 확고한 신앙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하늘 소망을 가진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부활신앙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환난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은 평강의 왕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산 샬롬이라고 하는데, 이는 "평강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더하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196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각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서 "마음의 평화는 어디서 오나?"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첫 번째로 등장한 H. M. Rome 박사는 "마음속에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평화를 누릴 수 있다"라는 주제로 연설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등장한 H. W. Jan박사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희망을 가질 때 평화를 누릴 수 있다"라고 연설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나온 C. A. Segvin박사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세미나의 결론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있어야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이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는 것이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결국 평화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은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2:10-14).

 

신약 본문 막 4:39예수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자연도 복종하고, 귀신도 떠나가고, 질병도 떠나가고, 죄도 사 하시면 고, 죽은 자도 살아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에 이사야는 그 분이 하시고자 하시면 못 하실 게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전능하신 분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평안을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범선을 타고 바다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배가 그만 식인종이 사는 섬 해안에 멈추었고 뱃길을 바꿀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었습니다. 배는 물결에 밀러 섬 가까이 다가가고 모두들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선장이 허드슨 테일러에게 다가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배 밑창으로 기도하기 위해 내려가기 전에 선장에게 좋습니다. 저는 기도하지요 그럼 당신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도록 돛을 올리시오그때 선장이 당황스런 얼굴로 아니 바람 한 점 없는데 돛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선원들의 웃음꺼리가 되기 싫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당신이 돛을 올리지 않는다면 나도 기도하지 않겠소! 라고 버티자 하는 수 없이 선장은 돛을 올렸고 선교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에 선원들이 기도하는 허드슨 테일러 배 밑창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님, 아직도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그만 기도하시지요? 배가 이미 섬을 벗어났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고 구하되 준비된 자들에게 응답하십니다. 우리 모두 기묘하시고, 전능하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인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재림의 때에도 심판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분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구약에 1.217, 신약에 318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초림하신 주님은, 예언대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 어떤 세력도 주님의 재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양과 염소를, 오른편에 설자와 왼편에 설자를 분명하게 구별하실 것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으로 갈 사람들을 구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재림 때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이 심판주가 되시니 뭐가 두렵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을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히브리어로 "아바 아드"라고 하는데 이는 "영생의 근본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영생의 근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코미디언 클러워는 자기가 아는 한 부인의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16명의 자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에 불이 났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찾았는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찾아내고 보니 건축공사장을 시커멓게 칠하는 페인트가 들어 있는 통에 빠져 있었습니다. 꺼내고 보니 완전히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겨우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말했습니다. "너를 씻기는 것보다 차라리 한 명 더 낳는 것이 쉽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만 아니라 속까지 죄로 물든 인간일지라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존하시는 분이시기에 영생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은총이요,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기묘하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어려운 때에 늘 깨어 있는 담대한 신앙으로 무장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대강절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놀라운 그 이름을 믿는 자는,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재림의 때에도 심판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