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주시는 은총 창3:8-15, 히2:14-18
하나님께서 여러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직접 찾아와 주시기도 하시며, 천사를 통해, 양심을 통해, 꿈을 통해, 사람을 보내시어, 자연 만물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도 하십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우주항공국의 연구원이며 메릴랜드대학교의 천문학교수인 김모 박사가 한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그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셨습니까? '김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고 미국에 유학을 와서 계속 같은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랫동안 하늘의 별들을 자세히 연구하면 할수록 제 마음속에 이처럼 정교한 우주가 절대로 우연히 생길 수가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수학자요, 물리학자요, 생물학자요, 화학자요, 광물학자요, 엔지니어가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생겨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성경을 접할 기회가 생겼는데 성경을 펴자마자 첫줄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러면 그렇지.제가 혼자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과 창세기 첫 문장이 맞아떨어진다는 대답을 얻었습니다. 다음주일에 저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이후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학문을 편견 없이 정직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사실상 과학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작은 한 부분을 연구하는 활동입니다. 생물을 연구하면 생물학자요, 곤충을 연구하면 곤충학자입니다. 하나님과 학문은 절대로 상반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의사들 중에 많은 분들이 예수 믿는데, 그들이 신비한 인간의 육체와 생명을 자세히 연구해서 알면 알수록 창조의 신비를 더 쉽게, 더 확고하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 주시는 은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주심은,
1.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죄인을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주기도 합니다. 일 때문에 찾아가 만나기도 하고, 교제를 나누기 위해 만나기도 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등 등 찾아 만나게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와 만나 주시기도 하시고, 사단도 목적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합니다. 에덴동산에도 사단이 방문하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잘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훼방을 합니다. 사단은 미혹하기 쉬운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게 하고, 하와를 통해 아담까지 시험에 들게 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3장 사이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창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창조와 함께 사단과 사단의 미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사단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할 만큼 큰 영향력으로 인간을 미혹하고, 위협하며, 죄 가운데로 이끕니다.
본문에서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특징은 숨어 다니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사람을 피하고, 경찰을 피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두려움을 가지고 동산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숨어있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자를 찾아오심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실패한 자를 찾아오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대했던 사람이 실패하면 등을 돌립니다. 비난하고, 멀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들에게 가까이 찾아오셔서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니다.
*범죄 한 죄인을 찾아오십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면서도 죄가 들어나 정죄를 받게 되면 모두 싫어합니다. 감옥에 갔다 왔다면 사람들이 전과자로 낙인을 찍어 그 사람을 상종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하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들이기 때문에 가까이하셨습니다. 죄인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신약 본문 히2:14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셨으며,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지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죄인과 병든 자들을 위해 오셨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택하여 부르시고 가르치고 훈련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가르침과 훈련을 받고, 수많은 이적을 보았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주님을 버리고 도망치며,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고, 주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낙심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 간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그들을 찾아 와 만나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실패한 자들을 찾아와 만나 주심으로 다시금 새 힘을 얻어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때보다 마음에 새겨야할 절기가 바로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우리 모두 죄인을 찾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사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려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찾아오심은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미혹을 받아 범죄 함으로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라는 것을 안고 태어납니다. 이 죄가 모든 불행의 뿌리입니다. 사망의 뿌리, 저주의 뿌리가 되어 질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마음을 파괴 하고, 가정을 파괴 하고, 환경을 파괴 시키고, 결국 심판과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죄인인 우리는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부모도, 어떤 의인도, 돈이나 공로로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1:21에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요 1:29)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2:24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대신해서 죄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갈 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고 하였습니다. 저주의 나무에 달리시고, 저주의 가시체로 태형을 받으시고, 저주의 가시관을 쓰시고, 저주의 대못과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죄 사함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하나님과 화목의 길을 터 놓으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고, 에덴의 축복과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이방인에게도 열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피 흘림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죄 사함 받을 길도,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길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를 담당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의 피만이 이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물로도, 불로도, 아무리 좋은 세제로도, 수양과 고행으로도 우리의 죄를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울어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됩니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로만 됩니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보상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공의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 할 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죄에서 해방 되어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미혹으로 죄에 빠진 인간은 실패의 존재입니다.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하셨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과 존귀와 지배권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을 당하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지위를 잃어버렸습니다. 범죄 한 인간은 사단의 노예, 죄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과 사단의 종이 아니라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이 되고,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아무도 정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죄에서 해방 된 자답게 자유 함을 누리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늘 백성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3.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아담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3:21) 그의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신 것입니다.
신약 본문 히2:16에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또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세상에서 고난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시므로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며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고후 1:3~5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방면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거처할 방 한 칸 정하지 못해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집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아십니다.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을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피난민의 심정을 아십니다.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가난한 노동자의 심정을 아십니다. 40일을 금식 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기에 시험 당하는 자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가는 곳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핍박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핍박 받는 자들의 심정을 아십니다. 친히 가르친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배신당한 사람들의 쓰라린 심정을 아십니다. 유대인들의 고함소리에 못 이겨 빌라도가 내린 억울한 재판으로 흠과 티가 없는 주님이 흉악한 죄수가 되어 십자가의 극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심정과 그 고통을 아십니다. 이러하신 예수님은 어떤 형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처지를 아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위로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나,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이라야 나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신 분이기에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도 다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비천하고 가난한 자라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고,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도우시면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존귀하게 되고,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의인이 되고, 아무리 절망에 빠진 자라도 소망이 넘치는 자가 되고, 아무리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형편없는 자라도 온전케 되며, 죽을병에 걸린 자라도 치유되는 은혜를 받게 되고, 지옥 자식이 변하여 하늘 백성이 됩니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833년의 일이었습니다. 영국의 다윈은 자기의 이론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상태를 찾아 나섰습니다. 남양군도에 간 다윈은 아주 미개한 식인종의 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거의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원시적이었습니다. 다윈은 이러한 인종은 결코 개화되거나 발전될 수 없는 부류의 인종이라고 확신하며, 이들이야말로 자기의 진화론의 이론을 뒷받침 할 수 있다고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34년이 지난 후, 다윈은 다시 예전의 그 남양군도의 섬을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다윈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다윈의 눈에, 섬 여기저기에 교회들이 서 있고, 학교가 있고, 짐승 같았던 야만의 식인종들이 이제는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30여 년 전의 식인종들이 이제는 옷을 입고 다니며 모여서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윈에게는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패톤이라는 선교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그 섬에서 일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큰 감명을 받은 다윈은 패톤 선교사를 보낸 영국의 런던 선교회에 거액의 헌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 곳에는 반드시 새 생명, 새 인생, 새 날과 새 행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가리켜 복음(福音)이라고 합니다. 복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이 소망하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 도우시러 오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가까이 하는 대강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대강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찾아 주시는 은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주심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죄인을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찾아주시는 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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