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보여드릴 믿음(3) 창17:1-10, 약2:20-24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면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IT, 건축, 토목, 원전기술, 조선기술, 세계인을 열광 시키는 문화 등 다방면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결점도 많습니다. 어떤 분은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세 가지를 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 한국 사람들은 급하고 다혈질이며 "싸움"을 잘한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 가격을 깎다가 수시로 흥분해서 싸우는 민족은 아마 이 지구상에 한국 민족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속이기"를 잘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잘 속이고 장삿속이 밝기로 유명한 사람으로 유대인을 꼽습니다. 그런데 그 유대인을 속일 줄 아는 사람이 중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국 사람이 유대인보다 한 단수가 높습니다. 그런데 그 중국인을 속일 줄 아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이 잘하는 것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상 한국만큼 단기간 내에 선교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이면을 살펴보면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은 예수도 잘 믿지만 싸움도 잘 하고 거짓말도 잘 하더라" 는 평가가 나오는 현실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싸움이 사라져야 하고, 거짓과 속임도 사라져야 마땅한데 우리의 현실은 복음에 합당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따로, 행함 따로 잘 못된 신앙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 보여드릴 믿음’이란 제목으로 이미 두 차래에 걸쳐 말씀을 나누었고, 오늘은 세 번째로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주님은 온전한 믿음을 보여드리는 성도되기를 원하십니다.
구약 본문 창17:1에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는 전능한 능력으로 내가 약속한 것을 완전하게 이행하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나를 믿는 너의 믿음은 어떠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너도 나처럼 전능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속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전능을 요구하시진 않습니다. 전혀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자로 사는 자는 세상에 없고, 어느 누구도 불가능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 보면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는 말씀은 삶의 방법을 포함한 명령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사는 것, 그것이 완전입니다. 그가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여 떠난 것, 100세나 되어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 모습이 믿음으로 사는 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믿음 생활 잘 하다가도 세상을 바라보고, 힘 있어 보이는 사람을 바라보고, 돈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고 사는 삶을 살게 되면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항상 문제투성이이며, 위태한 일을 만나고, 항상 흔들리고 항상 불안합니다. 바르고 온전한 생활이 불가능하고 넘어져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제안을 받아드려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사람이 두려워 자신의 아내를 자기의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다가 아내를 빼앗길 번 한 일들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을 때 그의 믿음이 온전치 못함을 못마땅해 하시면서 13년이란 오랜 세월을 침묵하고 계시다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과 크게 싸우는 자기 교회 집사님을 발견하고 싸움을 말리며 말했습니다. "집사님! 고정하세요!" 그랬더니 "목사님! 저는 이번에는 집사 떼어놓았어요."하고 계속 싸우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직분을 자기 편의대로 붙였다 떼었다 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면 그의 영적 신분은 변한 것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영적 신분이 변했으면 그의 삶의 모습도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못한 삶을 살 때 주님은 슬퍼하시고 나무라십니다.
성도가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얼굴빛 아래서 살면, 위로를 받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경건할 수가 있습니다. 바르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까,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나를 신뢰하고 날 쳐다보고 살아!” 그런 말씀입니다.
신명기 18:13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 하라.”하셨고, 신약 성경 에베소서 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했습니다. 골로새서 1:28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했습니다. 야고보서 1:4 에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온전한 믿음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진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약 본문 약 2:19-20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귀신들은 예수님을 귀신같이 잘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몰랐지만, 귀신들린 사람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한눈에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귀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귀신들은 믿음의 존재는 아닌 것입니다.
신앙 가운데는 몇 가지 잘못된 신앙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다시 말하면 율법대로 살아야 구원받고, 자기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을 생각은 하지 않고 율법대로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했고,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그 행위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하나는 반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고, 율법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는 것이 중요하고 행함에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이단이고 아주 잘못된 신앙입니다. 주님은 마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패기 시키려고 하신 것 아니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목적이 세상에서 잘 되고, 질병을 치유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며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물론 믿음생활 하다 보면 부수적으로 그런 것들이 딸아 올 수는 있으나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과 함께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평소의 행함은 우리 믿음의 실상을 보여주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믿음의 열매가 없으니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해도 실상은 믿음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자들은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주님께 인정받을 수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도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언행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사역하던 때 영국 런던에는 여섯 집마다 한 집씩 술집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자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없을 정도로 런던의 분위기는 험악했었습니다.
그런데 웨슬리가 어떤 지역에서 부흥회를 열면 그 동네의 술집 주인들은 처음에는 좋아하며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집회가 끝난 후 집회에서 회개한 사람들이 외상 술값을 청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술집 주인들은 울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술집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역사는 이처럼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삶이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했습니다. 우리 모두 행함이 따르는 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니다. 약 2:15-16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했습니다. 요일 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그 마음에 사랑이 생겨서 이웃과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수고와 희생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기쁨으로, 자원해서, 넘치게 바칩니다.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죽도록 충성하고 기쁨으로 순종하고 자원해서 순종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5:6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선생들의 꾐에 빠져 할례를 받아야 구원이 있다는 가르침을 따르게 될 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를 받는 일도 구원을 얻는 일이나 의롭다 함을 얻는 일에 아무런 효력을 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만이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주며, 구원의 효력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뿌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존재할 수 없으며 또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계속하여 소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더 큰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손자인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 3세가 어렸을 때, 부모가 중국 선교사로 가 있고 아이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선교사 자녀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그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서 어린 제임스와 형제들은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선교사 부부는 자녀들과 연락을 하지 못한 채 지내야 해서 서로 안타깝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테일러 여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돌보는 것처럼 나도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돌봐 주리라” 제임스의 부모가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충성하고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돌봐주겠다는 음성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그 응답을 받고 확신을 가졌다고 합니다. 몇 년 후에 가족들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만났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는 성도가 됩시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로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온전한 믿음을 보여드리는 성도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을 가진 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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