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2장14-26절
왼발로 노트를 누루며, 왼손으로 써야하는 시, 인고의 고통으로만이 낳는 아이처럼 온몸이 부서질 듯한 아픔으로 한편의 시를 태어나게 하는 지체장애자 손명희씨의 11번째 시집‘그 하나님이'에 실려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 믿음은”
믿음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믿음이라
믿음은
보이는 표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증거라
-1988.12.30-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바클레이’ 박사가 어느 흑인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한 부인이 일어나 간증을 하는데“신앙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신앙으로부터 받은 안위가 참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하여 간증하고 있었다. 이에 바클레이 박사는“참 좋습니다”라고 말한 후“그런데 실행하는 면에서는 어떻습니까?, 부인은 남편을 위해 보다 좋은 음식을 준비하게 되었는지요? 가정에서 친절하고 어진 분이 되었는지요?”하고 물었다. 바로 그때 바클레이 박사의 뒤에서“목사님, 묻는 것 좀 그만 두어 주세요, 그는 제 아내입니다”라고 간절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클레이 박사는 그 소리가 그 교회 전도사님의 소리임을 알고 끝내었습니다, 전도사님이 그렇게 말한 것은 그 전도사의 아내는 말과 행동이 실제로는 달랐던 때문이었다. 말로는 그렇지만 실제 그것은 생활화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분들이 성도들 가운데는 많이 있다. 말은 청산유수와 같이 잘하지만 실제 생활화 되지 못해서 도리어 교회에, 가정에, 직장에서, 불신자들에게까지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생활화 되는 것, 참된 신앙은 생활화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예배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넘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인간관계는 믿음의 관계이고 믿음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사실 믿음이 없이는 물 한 잔, 밥 한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아프면 약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의사에게 내 몸을 믿고 맡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은행에다가 소중한 돈을 맡길 수도 없다.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고, 이웃과 이웃, 친구와 친구, 스승과 제자, 나라와 백성, 이 모든 관계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말도 믿을 수 없으면 그 의미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믿음은 신뢰요, 확신입니다, 그래서 추종하는 하는 것이 확신이고 실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1. 믿음이란 무엇입니가?(믿음의 정의)
믿음이라 함은 히브리 말로‘에문’인데 이 말은 ‘아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 말은‘참, 진실, 확신, 과연 그러하다는 응답, 안정, 견고’등을 의미합니다. 신약의 헬라말로‘피스티스’인데 ‘신실, 충실, 안정, 견고’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믿는 마음, 신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소망, 사랑과 함께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믿음은 능력의 원천이며(막9:23),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믿음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도 신뢰, 믿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고, 믿음이 없는 곳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서양속담에 보면 두려움이 집에 찾아와서 노크를 하는데 믿음이 대답하기를“지금 여기는 아무도 없다”라고 대답하여 두려움을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믿음은 인생의 힘이다”고 말했습니다.
G.맥도날드는
“완전한 믿음은 공포를 절대적으로 벗어나게 한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 생활에 활력소가 되므로 가정에도 믿음이 필요하고, 사회에도 서로의 믿음을 통해서 평화를 누릴 수 있고, 교회도 각자의 믿음을 통해서 성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국에 잠시 연구차 머물고 있던 대학교수가 책이 필요해서 영국 어느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도서관에는 출입증명서가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대학교수에게만은 도서관 출입이 제한 없이 허용되어 있다는 규정을 들은 그 교수는 사무원에게 자기를 소개하고 출입을 요청했습니다.“나는 대학교 교수입니다”직원이“당신이 대학교수라는 증명서가 있습니까?”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현재 아무대학 교수입니다”
“증명서는 아니더라도 당신이 대학교수임을 밝힐만한 무슨 증빙서류라도 가진 것이 없습니까?”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엄연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그러자 사무원은 그 말만 듣고서 처음보는 이 한국인에게 출입증명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즉석에서 믿어주는 그 사람이 무척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서로가 말 한마디로 믿어 주는 사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것을 제일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인간 상호간에 최소한의 믿음이 없다면 이 땅에는 평화가 파괴되고 싸움과 다툼만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믿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간다면 이 사회는 맑고 밝은 정의로운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란 우리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초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 까요?.
자연적인 믿음과 초자연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자연적인 믿음이란 인간 스스로 믿는 믿음을 말하며, 초자연적인 믿음이란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을 말합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한 믿음이요 이를 초자연적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음을 통해서 굳건한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고 믿음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그저 맹목적인 것이 아니며 반드시 믿음에 대한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대상은 의심할 수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 아는 것입니다.
옛말에 알아야 면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선 알아야 믿어도 믿는 것이지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복음을 듣고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왜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알아야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믿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면 깨달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게 마련입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게 마련입니다.
3)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단순히 머리로 알고 머리로만 그렇다고 믿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의지혹은 신뢰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2. 그러면 믿음이 왜 필요합니까?
첫째-믿음은 인생의 승리를 보장해 줍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이와같이 믿음은 인생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둘째-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성도는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입니다. 불순종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우리를 넘어 뜨리려는 마귀의 행동을 방어하는
가장 바람직한 무기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믿음은 종교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다섯째-믿음에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살 때 지혜가 필료하면 믿음으로 지혜를 구하면 허락해 주시고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받기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하면 도와주십니다.
여섯째-믿음은 사랑과 소망으로 연합하면 가치가 있 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사랑은 거짓에 불과하나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할 때 비로서 온전한 사랑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믿음을 생각할 때 과연 나의 믿음이 진실된 것인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일까? 다시하번 깊이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니시는 곳마다 많은 병자를 고치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축복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특히 기적을 행하시는 그 과정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마가복음7:26절에 나오는‘수로보니게’여인은 인내하는 믿음을 통해서 병고치는 응답을 받았으며, 백부장은 겸허한 복종의 믿음을 통하여 예수를 만나고 응답을 받아 병을 고쳤으며, 소경은 간절한 믿음으로 자신의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말씀에 기록한 모든 사건과 은총과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5:15절에“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육신의 병도 고침받아서 영육간에 건강과 장수의 축복도 받을 수가 있습니가. 믿음의 기도를 드리다가 응답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어떤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까?
1) 죽은 믿음과 산 믿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13장에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로 믿음의 종류를 말씀하시기를, 돌짝밭과 같은 믿음, 가시떨기 같은 믿음, 좋은 땅에 떨어진 믿음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믿음은 후에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어찌보면 다 같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죽은 믿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는 삶의 방향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나며 그 결과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17:20절에“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겨자씨는 생명력이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똑같이 교회생활 하면서 똑같은 시간에 설교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어도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하여 발전하고 성장하지만,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발전이 없고 언제나 정지상태이며 때로는 뒷걸음질 치기도 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는 힘이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믿읍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살아 있는 믿음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이며 사상가로 1915년에 “쟝,크리스토프”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로망롤랑’은“그대는 믿지 않고는 살지 못하리라 각자가 믿고 있는 거다 기도하라--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경건히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믿음이 부족하다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2) 의심하는 믿음과 확신하는 믿음이 있다.
마가복음9장22절에 병든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그랬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의심하는 믿음입니다. 미지근한 믿음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도“할 수 있거든”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23절에는“내가 믿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처음 그의 믿음은 “할 수 있거든”하는 의심의 믿음이 였다면 이제는 그의 믿음이 높이 성장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마음 속으로“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며 고백한 대로 이루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작은 믿음과 큰 믿음이 있습니다.
작은 믿음이란 매사에 염려하는 믿음이요, 무서워하는 믿음이요,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 믿음이요, 연약한 믿음이요, 의심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큰 믿음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처럼 소원대로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퀠른’에 있는 한 감방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비록 그것이 빛나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비록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없다해도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감각적인 생활에 깊이 젖어있어서,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 내가 만지는 것을 중요시 합니다. 우리는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든는 감각적인 것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왜?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하여 애써야 합니까?
우리는 믿음에 의하여 구원을 받으며, 믿음을 통해서 의로워지며,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며,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믿음을 통해서 평강과 안식을 얻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 행하는 믿음과 행치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먼저 행치 않은 믿음이란 머리로만 생각하고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을 성경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행동하는 믿음, 행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구원받았음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며 자신도 남에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가는 삶, 사랑으로 행하며, 사랑을 말하고, 훗날에 심판받을 것을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과 행동입니다, 우리의 옛말에 ‘신심직행’(信心直行)이란 말이 있습니다“즉, 믿는 마음만 있으면 바로 집행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믿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실천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내 몸과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충성할 때 주님께서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탐험가 ‘콜럼부스’는 1451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가난한 옷감짜는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탐험의 큰 공적을 세우고 150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콜럼부스의 인기가 너무 좋아지자 시기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하루는“당신이 이번 탐험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꼭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니 그리대견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콜럼부스’는 아무 말없이 듣고 있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달걀을 보고 그 달걀을 집어 들어“여기 어느 분이 달걀을 책상 위에 똑바로 세울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자 이 사람 저 사람 달걀을 세우려고 했으나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부스는 달걀을 들어 한쪽을 깨뜨려서 평평하게 한 다음 책상 위에 세워 보였습니다.”“이렇게 하면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생각해 내고 맨 먼저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생각하고 있고 마음 속에 소원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먼저 그것을 실천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과 마음의 뜻을 받들어서 내가 먼저 좋은 일을 하고 선을 베풀고 착한 일을 하여야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4. 이제는 믿음으로 행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알고 있으면 어디에 씁니까?
알고 있고 믿고 있더라도 실천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제 진 해가 오늘 아침 다시 뜨는 것이나, 이 우주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이 시간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고 있다는 것도, 여러분이 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도 어찌보면 기적적인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을 믿는 종교입니다. 나도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과학이나 다른 모든 것으로 가능하다고 말하나 그런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신앙으로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의 원동력은 오직 행동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아벨이나,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들도 믿음의 행위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보람된 삶을 가져왔습니다. 행동하는 믿음, 살아 있는 움직이는 믿음으로 역사의 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고, 우리의 정신이 하나로 집중될 때 못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옛 성인의 말씀이 있다.
우리의 신앙이 두 마음을 품거나 의심하지 않고 하나로 쓰일 때 그 힘이 강하여 하나님의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산이라도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도 얼마든지 기적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는 기적이나 놀라운 일이 얼어날 것이라고 믿고 행동으로 옮기면 됩니다. 로마의 시인 ‘버질이’“저들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의 뒤를 돌아보면 한 순간 한 수간이 주님의 인도하심이요, 돌보심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며 이 세상뿐아니라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삶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주어진 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짤막한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주의 사명을 다함으로 주님 앞에 영광 돌리고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산다하더라도 믿음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마지막으로 ‘조셉 에디슨’의“믿음의 확신”이라는 시 한편을 소개 하겠습니다.
머리 위엔 넓은 창공.
마냥 푸른 하늘.
그리고 빛나는 별들.
하나님이 태초에 지으셨도다.
날마다 태양은 쉬지 않고 솟아
조물주의 권능 자랑하며
온 세상에
권능의 역사 드러내도다
장엄한 침묵 속에서
무엇이 어두운 지구를 감돌고 있나?
소리없이 빛나는 천체들 속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이성의 귀로 들으면, 모든 것이 기쁜 소리.
영광의 음성들.
별들도 반짝이며 찬양하기를
‘우릴 지으신 그 손 거룩하도다.’
기독교는 운둔의 종교가 아닙니다. 참선과 명상의 종교도 아닙니다. 부지런히 뛰고 일하는 종교이며 할 일이 있는 곳에 나가 성실하게 일하는 행동하는 종교입니다. 영혼이 없으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유익이 없는 것이나, 행동하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예수정신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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