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토록 견고한 사람 시90:10-17, 약4:13-17
미국의 연방교도소에서 18년간 복역했던 에드워드 분커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전과자였던 에드워드 분커는, 자서전 『미스터 블루』라는 책을 써서 범죄 문학상의 결선에까지 올라가고 작가로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66세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에드워드 분커는 5세 때 부모가 이혼을 하여 8세 때부터 아동 보호소에서 자랐습니다. 그 후 소년원 수감, 탈옥, 정신병원 수용 등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범죄 조직에 가담하고 마약거래와 무장 강도 혐의로 검거돼 최연소 수형자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거기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 감옥에서, 독방에 수감된 채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는 초조감 속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는 한 사형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사형수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을 거야!’ 그래서 그는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감옥에서 남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으므로, 유명한 고전 작품들은 모조리 섭렵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장편소설 6편과 단편소설 50편을 쓸 수 있었습니다. 41세가 되어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그는 미친 듯이 글만 썼습니다. 그는 글을 쓰지 않으면 자신이 다시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밤낮 없이 글만 썼습니다. 비로소 그의 글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교섭이 들어오고, 그가 각본을 쓴 영화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 『미스터 블루』는 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도, 한 순간도 이제는 내가 헛되게 보내지 않을 거야!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거야!’라고 결심하며, 열심히 산 한 전과자가 소설가로서 성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잠깐 사이에 지나가고 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세월을 잘 활용해서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두 본문을 중심으로 “영원토록 견고한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영원토록 견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무엇이 허무한 것인지 바로 알고 그것에 메이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는 허무하고 하찮은 것에 시간과 정성과 몸과 마음을 다 쏟으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물질과 권세와 명예와 세상 연락입니다.
신약 본문 약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물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감내합니다. 실크로드는 선교사가 개척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만든 길입니다. 중국에서 이스탄불까지 그 먼 거리를 장사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 세계를 넓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모험을 한 것이 아닙니다. 향료와 금과 돈을 위해 했습니다. 그들이 온 세계를 다닌 이유는 딱 한 가지,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모험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삶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밀입국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며칠씩이나 배 바닥에서 어떻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어떨 때는 냉동 칸에까지 들어가서 밀입국을 하려고 합니다. 체포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도, 돈을 위해서라면 이런 모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본문을 기록한 사도 야고보는 분명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들으라’고 강조한 표현이 두 군데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그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 마음에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면서 이런 것들을 위주로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득을 얻고 돈을 버는 것과 세상 것에만 골몰한다면 문제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성도를 향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구약 본문 시90:9-10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했습니다. 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을 썩고, 변하고,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허무한 것들에 치심 하여 산다면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결구 무너지고 주님 앞에 실패한 인생이 될 수박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허탄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려고 계획을 세울 때, 부하들이 하나같이 일어나서 나폴레옹을 막았답니다. "유럽대륙을 다 정복했는데 러시아까지 침공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고 이미 가진 땅도 너무 넓습니다. 그리고 각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성취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일은 단념해 주십시오." 그때 나폴레옹이 말했답니다. "아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성취한다." 그 후 러시아로 침공해 들어갔다가 그는 완전히 실패하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보실 때 허탄한 욕심과 자랑이 많습니다. 우리 모두 허무한 것에 목숨 걸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2.무엇이 견고한 것인지 바로 알아 붙잡아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90:17에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90편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주 짧은 생애입니다.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평생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아침에는 주의 사랑으로 만족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기도하기를 "주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견고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있는 방법,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욕망을 따라 삶의 환경이 개선되고 의학이 발전하여 왔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산업 발전과 더불어 경제가 향상되고 의학이 발전되면서 전반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습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은 1900년 47.3세에서 1999년 77세로 1백년 사이에 30년가량 늘어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98년에는 평균수명 74.4세로 늘어났고, 지금은 수명이 더 길어지고 있어 장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경제가 풍요롭게 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은 120세가 그 한계라고 합니다.
한편으로 이처럼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치매를 비롯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들 때문에 가정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장수가 우리에게 더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처"가 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가 된다는 고백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반석 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잡는 자를 하나님은 견고케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인간은 티끌과 같은 존재로 흙으로 돌아가는 덧없는 존재로 대조하면서 절대적인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값진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12:1-2절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온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전12: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하여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은 너무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므로 자기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한 번도 변치 않으신 불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민23:19,사57:15) 우리 인생들은 절대 안전하고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절대로 의지하고 살면서 영원한 우리의 거처로 삼고 살아가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 성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고 영생의 복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주님을 통해 참 구원의 기쁨과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가장 귀한 목적이 되고, 우선적의로 해야 할 일임을 알고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3.영원토록 견고한 사람은 견고한 것에 올인 합니다.
영원토록 변함없이 한없는 긍휼을 가지고 사랑하고 교제를 나누며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과 교제를 나누고, 그 분의 뜻을 바로 알아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 우선순위를 두고 올인 할 때 가장 행복한 자가 되고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는 성도가 됩시다. 어느 큰 나라의 황제가 평복을 입고 서민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 하였습니다. 하루는 거지처럼 차리고 지하실에서 땀을 흘리며 불을 지피는 화부가 있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왕은 누추한 화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배고프면 빵과 음료를 사다가 함께 먹었습니다. 그는 힘겨운 일이 있을 때마다 화부를 찾아가서 농담도 하고 화부의 일에 대하여 묻기도 하면서 어느덧 정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황제는 자기의 신분을 밝히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여보게, 나는 거지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 나라의 왕이네. 내가 자네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네. 이제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데 관직이나 큰 집, 무엇이나 말해 보게.” 이 말을 들은 화부는 대답하기를 “사실 황제 폐하인줄 알았다면 누추한 곳에 오시고 이야기 나누고 빵을 합께 먹으며 웃고 즐거운 시간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보잘것없는 저에게 폐하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폐하의 우정을 거두시지 않는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화부는 황제의 인자와 긍휼 속에 있듯이 인생은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 속에 있음을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어 우리를 친구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 위해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늘 보좌가 있는 영광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제 하는 일에 올인 하는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서신서 본문 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여기의 '선' 은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옳은 것, 참된 것, 바른 것,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는 태도입니다. 죽음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기쁘게 감당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 3장12절에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유익을 좇는 삶은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베풀며 나누는 삶은 풍성해 집니다. 그럼에도 나누지 못하고 땅에 쌓아두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좀 더 참을 것을, 좀 더 베풀 것을, 좀 더 재미있게 살 것을". 주님이 부르실 때 후회하지 않도록 선한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오늘 밤 12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다면 지금부터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웨슬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라고 뜻 깊은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기에 죽음이 온다 해도 새삼스럽게 다른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죽음의 준비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은 날로 기억이 됩니다. 세상을 떠나면 생일이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죽었는지가 기억됩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남기기 원하십니까? 어떤 모습으로 남기 원하십니까? 죽음을 준비하며 영원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일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코 길지 않은 인생입니다. 부디 허탄한 자랑을 피하고, 허탄한 일에 마음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복된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영원토록 견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무엇이 허무한 것인지 바로 알고 그것에 메이지 않아야 합니다.
2.무엇이 견고한 것인지 바로 알아 붙잡아야 합니다.
3.영원토록 견고한 사람은 견고한 것에 올인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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