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기도하라 약5:13
1. 고난의 신비
왜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할까요?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1] 고난은 하나님께서 오는 것이기 때문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신비>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최소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 이사야 45장 7절 말씀을 볼까요?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이 세상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인간에게 발생되는 <평안>도, <환난>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일어납니다. 심지어 <욥>이 당한 모든 고난 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누구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욥1:20-21> 이 엄청난 환난과 고난 앞에서 욥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욥>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역시 고난 중에 반드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욥만큼 깨끗하고 정결하고 정의롭고 신앙적인 삶을 살았으면서도 욥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면, 우리처럼 죄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을 때는 더더욱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그 <해결점> 역시 하나님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기도가 고난의 상황을 변화시켜 주기 때문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기도>를 통하여 고난이 신비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축복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축복이 될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 고난의 상황을 변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12시만 되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와 앉았다가 2,3분이 지나면 곧장 일어나서 나갔습니다. 관리집사님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어르신, 왜 정오 때마다 교회에 오십니까?> <기도하러 오지요. 뭐 별거 있나요?> <기도하러 오셨으면 좀 기도좀 하시지, 왜 2분도 안 돼서 나오십니까?> <허허, 난 기도를 오래 못해요. 기도할 줄도 모르고요. 난 다만 “예수님, 저예요, 저란 말입니다.” 하고 가지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몸에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병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어둡고, 암울하고, 투덜거리고, 불평들이 많았는데, 이 할아버지가 온 뒤부터는 희한하게 병실의 분위기가 기쁨과 웃음으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할아버지가 오고 난 다음부터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간호사가 와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무슨 비결이 있어서 할아버지 때문에 이 병실이 이렇게 바뀐 거예요?> <그럼, 비결이 있지.> <무슨 비결인데요?> <12시만 되면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 있어.> <누군데요? 누가 와요?> <그분은 12시만 되면 나를 찾아오셔서 빙긋이 웃으면서 말씀하시지. “여보게 날세, 나 예수일세.” 하고 말씀만 하고 가시지.>
예수님이 그 병실에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면, 모든 분위기와 상황이 바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고난이 신비가 되는 것은 기도 때문입니다. 고난을 그대로 붙잡고 있으면 고난으로 끝날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고난이 신비가 됩니다. 내가 예상하지도 못하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할 결과를 가져오는 신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라의 <쓴물>이 모세의 기도로 <단물>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신비입니까? ▶ 그렇다면 고난 중에 기도는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실까요?
2. 기도가 변화시켜 주는 축복
1) 고난의 중 기도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준다
우리에게 <고난>, <어려움>, <문제>가 발생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입니다. 멈추는 일입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고난이 발생하면, 일단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고난은 <일시정지>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즉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없는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가장 일차적인 이유가 바로, 우리의 잘못과 불순종과 우리의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편 67절 말씀을 볼까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시편의 기자는 고난이 언제 왔다고 말합니까? 내가 그릇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릇행하다/샤가그>는 말은 <죄를 범하다, 길을 잃다, 타락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때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왜 고난을 주시겠습니까? 그릇된 길, 잘못된 길, 타락한 길에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길을 어떻게 막았습니까?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세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욘1:4> 하나님은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켜서 요나가 다시스로 가고 있는 그 배를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막았습니까?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1:2> 이 명령을 받은 요나가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폭풍으로 그 길을 막은 것입니다.
호세아 2장 6절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2:6> 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길을 <가시>로 막으며, <담>을 쌓아서 막습니까? 우상과 음행과 불순종의 길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든 길을 <가시밭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길을 가다가, 계속 가시밭길이 나오면,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인생을 가시밭길이 되게 하시는 것은 가던 길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담>에 막히면 돌아나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앞뒤, 사방, 좌우로 길이 막히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왜 가던 길을 비로소 멈추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까? 누가복음 15장 16-17절 말씀을 볼까요?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슬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16-16,20
만약 이 탕자에게 계속 길이 잘 열렸다면, 그는 영원히 아버지를 떠나서 세상 속에서 멸망했을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더 이상 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 길을 막은 것입니다. 험한 가시밭길이 되게 하신 것이지요.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를 치는 종이 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로소 이런 고난 앞에서 자신의 길을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삶에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 봐야 합니다. 부모가 잘못을 저절렀는데, 우리 자녀에게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잘못했는데, 우리 부모에게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가 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 고난을 당할 때 왜 기도해야 합니까? 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다시 순종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20>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이에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욘1:15하> <담>이 무너지고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가시밭길>이 꽃길로 바뀝니다. <폭풍>이 잠잠해지고 순풍이 붑니다.
2) 고난 중 기도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이켜 준다.
여러분은 언제 기도를 하게 됩니까? 즐거울 때 기도합니까, 고난이 올 때 기도합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즐거울 때보다는 고난을 당할 때, 기도를 더 하게 됩니다. 왜 고난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송하라고 말하겠습니까? 즐거운 때는 언제입니까? 일이 잘 풀릴 때, 내 마음대로 잘 될 때, 계획대로 잘 될 때, 승진할 때, 돈도 잘 벌릴 때, 우리는 즐거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때 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까? 찬송합니까? 아마 찬송하는 사람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때 입이 풍선처럼 부풀어서 <자랑>하지요. <우리 아들이 똑똑해서 시험에 합격했다고...> <내가 지혜로서워 결단력이 있어서 그때 주식 잘 샀다고, 집을 잘 샀다고...> <내가 열심히 실적을 많이 쌓아서 승진하게 되었다고...> 대부분 사람의 자랑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 자랑이 나오고, 사람이 교만해지게 되고, 모든 것이 자기 공로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찬송이 나오겠습니까? 찬송이 나온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공로로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은덕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즐거운 일이 발생할 때, 찬송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공로를 돌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실,즐겁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자꾸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꾸 교만해지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일이 안 풀리고, 자꾸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유익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왜냐하면 고난을 당할 때, 더 많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심방을 요청하는 때는 대부분 가정에 어려운 일이 직면했을 때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불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가정의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지요.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라도 멀어진 우리를 가까이 부르십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상>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큰 불행이 오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미리 고난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만큼 하나님을 가까이서 부른 때가 어디 있습니까? 고난은 신비입니다. 기도하면 고난조차도 축복으로 바뀌는 신비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3) 고난 중 기도는 ‘정금으로 연단’시켜 준다.
고난이 항상 <죄>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속마음을 한번 볼까요?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그러니까 어떤 이유로든,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따르게 되는 일은 하나님이 본래부터 기쁘게 여기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고난을 받게 된다면, 거기에는 필연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본심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욥은 고난을 당할 만한 죄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장 자랑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1:8> 하나님이 그토록 자랑했고, 사탄조차 흠 하나 고소할 것이 없었던 욥에게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셨을까요?
이 질문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죄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도 얼마든지 고난의 상황과 역경의 상황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과 고난을 받는 것이 본래 하나님이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그 이유를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들을 훈련하고 연단하여 정금 같은 신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이지요.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성숙의 양분>이 됩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성숙이 옵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으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 고난은 불신과 불평과 원망의 양분이 되어 더욱 신앙이 비뚤어집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 고난은 성숙의 양분이 됩니다.
고난 중에 성숙한 신앙, 누가 떠오릅니까? <요셉>입니다. 시편105편 17-19절 말씀을 볼까요?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습니까? 요셉의 신앙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더 큰 인물로 사용하시려고요. 그래서 결국 요셉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가뭄 때에,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생명을 건지며, 그리고 하나님이 예정하셨던 한 민족과 나라가 거기서 탄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단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좋은 일에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까?
어린아이들의 그림은 주로 빨강, 노랑, 파랑 밝고 환한 색깔만 사용합니다. 주로 색깔의 3원색이지요. 그러나 그림의 대가들은 어둡고 캄캄한 색도 사용합니다. 깊은 어둠과 밝음이 함께 어울리면서 그림의 깊이와 맛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림 앞에서 깊은 명상에 잠깁니다. 도미솔, 도미솔, 기본화음만으로 지은 곡은 어린이 동요입니다. 그러나 음악의 대가들은 화음만이 아닌 불협화음을 사용하여, 수시로 곡의 흐름을 바꾸면서, 사람의 감정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고, 깊은 맛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대가>이시지요. 그래서 도미솔, 도미솔 인생의 기본화음만 넣지 않습니다. 심각한 불협화음도 집어넣지요.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삶이 깊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인생의 대가>이십니다. 그림의 대가들이 빨노파, 빨노파, 3원색만 넣지 않고, 짙고, 어둡고, 캄캄한 색깔을 집어넣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 인생의 씨줄과 날줄에, 짙고 어두운 고통도 섞어 짭니다. 깊은 인생이 되고, 성숙한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신비입니다. 그냥 신비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기도할 때, 그 고난은 신비가 됩니다.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 고난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신비가 될 줄 믿습니다. 혹시 지금 고난 중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어려운 문제 중에 있습니까? 간절한 소망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기도 중에 반드시 신비로 응답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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