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벧전1:13-25 사55:1-5,
한번은 큰 비가 내려 물이 넘쳐서 철로에 있는 철교가 무너졌습니다. 어떤 시골 노인이 지나다가 보는데 갑자기 멀리서부터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바로 기차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차의 모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칼로 허벅지를 베고 흰 와이셔츠를 찢어서 붉은 피로 물들이고 높은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면서 한 편으로는 붉은 피의 옷을 흔들어댔습니다. 그 목적은 기관사가 붉은 색을 보고 기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 기차 위의 승객들은 어떤 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어떤 이는 신문을 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음식을 먹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조금만 더 가서 목적지에 이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획을 구상했지만, 조금 더 가면 두려운 죽음을 만나게 될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 노인의 손은 여전히 흔들고 있었고 다리의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으며 외치는 소리는 점점 낮아졌습니다. 바로 이 위기일발의 때에 기관사는 갑자기 붉은 피의 옷을 보고 즉시 브레이크를 밟고 기차를 세웠습니다. 그 노인은 이미 많은 피를 흘려 낭자한 피위에 쓰러졌지만 기차 안의 사람들은 아직 왜 기차가 멈췄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기차에서 내린 후에야 철교가 무너진 것을 알고서 정신을 차렸고 이 노인이 자기 몸을 희생해 피를 흘려 죽음으로 그들을 구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함께 묘를 세우고 이 노인을 잘 안장했고 또한 돌비 하나를 세웠는데, 그 위에는 “그가 우리를 위해 죽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여기 기차 위의 사람들은 우리 모두를 포함한 인생들의 모습이고, 노인은 우리 위해 십자가 희생으로 피 흘려 돌아가신 주 예수님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약 본문 딤전1:18-19에서 우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했습니다.
오늘 한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송년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약 본문 사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했습니다.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젖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은혜의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지 못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바벨론의 신을 이기지 못한 하나님을 무능한 신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은 이 무지한 백성들에게 불순종 때문에 심판으로 임한 멸망임을 깨닫도록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말씀을 선포 하게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것들을 의지한다면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헛된 일을 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자들'과 '돈 없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셨는데, 목마른 자에게는 '물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목마른 자들'은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에 놓여 있는 구원의 은총을 맛보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돈 없는 자들에게는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즉 이방인이든 야만인이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 '포도주와 젖'은 영적인 의미의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를 사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구원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하여 먼저 부르신 그의 백성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사 55:2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했습니다. 사람들이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헛수고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참 진리가 아닌 것이면 진정한 양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식 아닌 것은 세상의 물질이나 영화나 육체의 쾌락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적인 것에 집착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 썩어질 짐승의 형상과 우상을 숭배하는데 모든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쏟게 되는 헛수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좋은 것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잡았지만 결국 잡고 보면 그것으로 만족도 없고 구원과 영생을 줄 수 없음을 곧 알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순종하면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 같이 그 영혼이 만족함을 얻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성도들이 받게 되는 영적 축복이 이 세상의 어떠한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된 기쁨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값없이 은혜를 베푸는 자로 살게 됩니다. 오베르랑 목사님은 프랑스의 유명한 설교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 눈 덮인 알프스 산에 등산을 갔다가 발을 잘못 디디어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래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점차 의식을 회복하게 되어 보니 어느 집 방안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베르랑 목사님은 눈 덮인 계곡에서 떨어졌으나 얼어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그는 자기를 살려준 그 집주인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목숨을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며 이곳의 주소는 어떻게 됩니까? 돌아가서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 때 농부는 웃으면서 “저도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저의 이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다면 저도 저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사람의 이름과 그 주소를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섬기는 자들을 하나님은 높여 주십니다. 우리 모두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값없이 베푸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신약 본문 벧전1:13에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입니다. 왕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초청된 자들이 오지 않습니다. 이유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밭을 사고 소도사고 장가들고 일이 바빠 못 오겠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시려 초청하지만 바빠서 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도 바쁜 것은 아닙니까? 사업 때문에 바쁘고, 혼인잔치에 가느라 바빠서 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무리 은혜가 준비되어 있어도 하나님께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쁠수록 예배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해야 합니다. 바쁘기에 더 기도해야 하고, 바쁘기에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면 어떤 복을 주십니까? 여기 2절 하반 절에 보니까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치시며 구하는 자에게 마태복음에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누가복음 11장에서는 좋은 것 대신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온갖 신령한 은혜를 깨달아 알게 하고, 받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거듭나 새 사람이 되게 하며, 말씀을 깨달아 알고 믿게 하며, 치유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합니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가끔 죄에 대한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오. 젊은 날 예수를 믿기 시작해서 주일 한 번 어겨본 적이 없고, 헌금에 인색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그냥 지나쳐본 적도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가지고 살아가는 죄인인지를 보여주셨어요. 그때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오. 나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아파서 오랫동안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오.” 죄가 우리 안에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빛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죄악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구약 본문에도 은혜 받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 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널리 용서하시리라."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은혜 받기 위하여 한 가지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정결할 때에,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우리마음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것 주시려 해도 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렘5:25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했습니다. 사 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여호와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심도 아님이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피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아니하게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죄를 깨닫는 대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시 66:18에도 "내가 내 마음의 죄악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했습니다. 이 '품는다.'는 말은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죄를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결하게 얼마나 깨끗하게 회개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의 은혜를 받게 되고, 죄 사함 받은 확신에서 오는 참 평안과 신령한 기쁨과 하늘 소망으로 넘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죄를 회개하고 버려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은혜 충만한 성도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3.은혜 받은 자들에게는 합당한 삶이 따르게 됩니다.
신약 본문 벧전 1:17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언제인가는 우리의 본향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그 본향을 생각하고 잠시 세상에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늘 백성답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한번은 영국의 부호가 카나리아를 한 마리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 관도 씌워 주면서 18년 동안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새장 문이 열려 카나리아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부호는 매우 슬퍼하면서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고 사방에 수소문 하였습니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서 카나리아를 아프리카 키네아 지방에서 발견하여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카나리아는 고향을 찾아 4800㎞를 날아간 것입니다.
무려 18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고향을 찾아갔을까? 그것은 풀 수 없는 미스터리입니다. 부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카나리아를 완전히 해방시켜 고향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18년이 지난 카니리아는 세월이 자신을 얽어매어도 자신의 진정한 본향을 향한 가치는 누구도 철장에 가두어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 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 본문에서 몇 가지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말씀합니다. (벧전 1:13) 여기 근신이라는 말은 내포 (nhvfw) 라고 하는데 이 혼탁한 세상에서 '술 취하지 않다., 정신 차리고 있다, 근신 하다, 침착하다'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의 배후에 있는 사상은 술 취함의 반대인 맑은 정신, 올바른 판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성도의 영적, 정신적 무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바른 신앙인의 영적자세가 흐려진다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 것을 분별하기 어려워 미혹에 빠지기 쉬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사욕을 본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4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욕이란 곧 세대의 풍조라는 말과도 동일한 의미입니다. 롬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하나님과는 대조되는 세상의 악한 육적인 세태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갈 5:19-21에 육체의 일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라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대개 신앙생활의 과정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을 보면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목표를 잘못 세웠거나, 눈앞의 욕망에 가려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나그네는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의 영광입니다. 그날에 있을 영광과 은혜를 바라보고 지금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유혹은 곧 세상에서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 소유하고 이루고 성공하려는 욕망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 있는 잭슨빌에서 세미나를 인도하고 나서 바다낚시를 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그 목사님은 큰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날치 고기떼들이 바다 위를 쩜푸하며 서로 더 높이 더 멀리 날려고 경쟁을 하는 광경이 장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하늘에서 갈매기 떼들이 날아와서 뛰어오르는 날치들을 낚아채어 잡아먹는 것입니다. 한 친구 목사님이 유심히 보더니 잡아먹히는 날치가 따로 있고, 잡아먹히지 않는 날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폼 잡고 나는 날치는 모조리 잡아먹히더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과욕을 부리는 날치가 잡아먹히는 것 같이 인생길에도 사욕에 빠지는 그리스도인이 중도에 탈락하는 비운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때의 그 사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서 말씀합니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에 사욕이라고 번역된 헬라어(에피뒤미아)는 엄히 통제하지 않으면 사람을 죄 가운데로 빠지게 하는 천한 욕망으로, 도덕적 퇴폐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벧전 1:15-16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내적인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무결함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 들이 그분과 마찬가지로 거룩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라 말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 하나님의 본질임을 생각할 때, 거룩을 추구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뜻, 그분의 모습과 어긋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분의 뜻과 모습을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아들이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했고,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했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받은 성도답게 근신하여 사욕을 본삼지 말고 거룩한 성도로 삽시다.
오늘 한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송년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은혜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은혜 받은 자들에게는 합당한 삶이 따르게 됩니다. 아멘.
'신약 > 베드로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로운 구원 벧전 1 : 10 - 13 (0) | 2021.09.25 |
---|---|
산 소망을 가진 나그네/벧전 1:1-9 (0) | 2021.09.18 |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 벧전4:7-11 마26:36-46, (0) | 2017.03.31 |
짧은 인생과 영원한 천국 베드로전서 1장 23-25절 (0) | 2016.10.25 |
무엇을 맡길 것인가 (벧전 5장7-9) (0) | 2016.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