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따른 버림과 회복 (대하34:1-7, 계2:1-7)
"영국 종교 개혁사"의 저자로 유명한 버네트에게는 툼슨이라는 방탕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버네트는 몹시 고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었습니다. "아들아! 무슨 일이 있느냐?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느냐?" 그러자 아들은 얼굴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아버지의 종교개혁사보다 더 중대하고 간절한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제 자신의 개혁이에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의외로구나. 어쨌든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쁘구나." "아버지도 저를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또 웃음거리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또한 남에게 의지하지도 않겠어요. 어차피 자신의 개혁은 자신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결심을 한 톰슨은 자신을 개혁시켜 후에 훌륭한 민사재판 소장이 되어 세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부터 하나님 말씀 안에서 완벽한 복음의 사람으로 개혁되었는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내 자신이 복음으로 개혁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또한 겉모습만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새로운 새 사람으로 변화되고 개혁 되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 주일을 맞아 “말씀을 따른 버림과 회복”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말씀 안에서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 안에서 항상 자신과 주변을 살피며 바른 믿음을 가지기를 힘씁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대하2:1-2에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했습니다. 그는 유다의 17대 왕으로 그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후원해 주신다.'입니다. 그 이름대로 하나님이 후원해 주시면 안 될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아버지는 아몬인데, 아몬은 22세에 왕위에 올라 2년을 다스리다가 24살에 심복의 반역으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가 8살입니다. 8살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음에도 요시야왕은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그리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말씀을 따라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행하여 31년 동안을 유다를 잘 다스리는 왕이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성전을 가까이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이 낡은 것을 안타까이 여기고 제사장 힐기야를 앞세워 성전을 수리하게 했습니다. 힐기야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너무 귀한 보배를 발견하는데, 곧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의 율법 책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보너스의 은혜요 보너스의 은총입니다. 세상에도 보너스가 있듯 우리 하나님께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후 지혜를 구하는 것을 보시고 부귀와 영화를 보너스로 주셨듯이 보너스의 은혜와 은총을 주십니다.
성도는 말씀의 조명을 통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한 성경을 통해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대상 34:19절에 보면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21절)했습니다. 같은 회개라도 그냥 눈물을 흘리는 것과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과는 참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계2:1-7 에베소 교회의 참 모습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좋은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결정적인 과오가 첫 사랑을 잊은 것이라고 지적해 주십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있는 3만 1,173개의 구절 가운데 한 말씀만 붙들어도 우리의 인생은 바뀌어 집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죤 번연은 요6:37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 의해,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에 의해, 세계 선교에 앞장섰던 윌리암 캐리는 "네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신 이사야 54:2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있는 진리 하나가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바른 성도는 말씀을 깨닫고 말씀으로 돌아오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른 회복을 위해서 말씀으로 돌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2.말씀을 따라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잘 못 된 것을 깨달은 사람은 과감하게 잘 못 된 것을 버리고 바로 잡는 것이 참 회개의 모습입니다.
요시야왕은 모든 것을 말씀을 따라 정결하게 정리합니다. 죄를 깨닫고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 죄는 몸의 때와 같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마귀는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에게 체질이 있습니다. 산성 체질이 있고, 알칼리성 체질이 있습니다. 산성 체질은 병균이 활동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니까 병이 잘 걸립니다. 알칼리성 체질은 병균이 들어와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죄를 품고 살면 산성 체질처럼 되어 마귀가 역사하기 좋은 곳이 되고 그 안에 견고한 진을 만들어 온갖 죄 가운데 빠져 살게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버리게 합니다. 회개는 씻어 성결하게 합니다. 우상숭배가 죄라면 그런 모든 것을 정결케 정리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결하면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전이 되어 감히 마귀가 접근하지 못하여 경건한 신앙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요시야는 회개하여 자기 마음이 정결하게 되니 바알들의 단과 우상을 부수고, 이것들을 섬기는 자들을 죽여 그런 자들의 무덤에 뿌렸습니다. 단호한 결단으로 우상 숭배를 철저히 뿌리 뽑은 것입니다. 이처럼 철저한 회개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와 악한 습관들을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심령으로 사는 자들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길로 행한 왕 세 명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왕입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인생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인생의 초점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옳으냐 옳지 않느냐에 따라 삶의 결정이 달라졌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이고, 삶의 방향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정직의 기준이 하나님이었다는 말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었지만 백성이 지지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옳으냐 옳지 않느냐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성전을 사랑하고 가까이 했습니다. 다윗은 성전 짓기를 사모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입니다. 다윗의 길을 간 사람들은 성전을 정결케 하여 모든 백성들을 성전 중심의 삶으로 회복시킨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요시야 왕도 왕이 된지 8년 후 16살이 되었을 때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우상들을 깔끔하게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에 온 백성들도 왕과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바알의 제단들을 헐고, 태양 상들을 찍고,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던 것입니다. 예루살렘만 정결케 한 것이 아니라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우상의 제단과 우상들을 없애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신앙 개혁의 시발점은 우상을 제거하는데서 출발한 것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을 제거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신앙교육을 받아온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주일날 놀지도 못하고 교회에 나가 예배드려야 했던 것을 싫어하던 아들들 이었지만 장성하여서는 모두 변화되어 아버지께 신앙을 제대로 교육시켜 주셔서 감사해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무엇 때문에 감사를 표현하는지 궁금해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첫째 아들은 신앙을 가진 후에 자신의 삶이 더욱 윤택해졌고 하던 사업도 잘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교회에 나가면서 대인관계가 좋아졌고, 유익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 인생이 행복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셋째 아들은 남을 돕고 베푸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아들의 대답을 모두 들은 아버지는 셋째 아들만이 진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윤택한 생활이 사라지면 신앙이 사라질 것이고, 둘째는 인간관계가 상하면 신앙이 사라질 것이지만, 셋째는 받은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변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참 사랑을 바로 알고 구원받은 새 삶을 살면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하지만 정말로 변해야할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과 사랑의 나눔이 신앙의 뿌리라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우리도 결단의 신앙으로 다윗의 길을 따라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성전 중심으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3.내게 회복 되어야 할 요소를 바로 알고 회복시켜야 합니다.
요시야가 우상을 척결하고 하나님을 바로 경외 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제사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대상 35장에 보면 제사장들이 말씀을 따라 섬기게 하고, 성대한 유월절 절기를 지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계2:1-7 에베소 교회를 개척 설립한 것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2차 전도여행 시 초석을 놓았고, 3차 전도여행 때 무려 2년 6개월 동안이나 오래 머물면서 이 교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매일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쳤고, 정성을 다해서 교회를 키웠습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를 당하자 사도 요한이 그 뒤를 이어 이 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이 에베소를 전진 기지로 삼아서 주변 여러 교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 에베소에서 모셨습니다. 뿐 만 아니라 밧모 섬에서 유배를 당하고 풀려난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여기서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에베소 교회는 당시 아시아 지역의 지도적 교회로 든든히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교회로 잘 성장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계2:2-3에 그 칭찬의 내용은 첫째, 주님을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주님을 위해 땀 흘려 열심히 애쓰며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점을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 고난 가운데서도 잘 참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박해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극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박해를 잘 견디고 참아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점을 아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셋째, 바른 신앙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이비 이단들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위협했습니다. 또한 세상 풍조가 거세게 밀려들어왔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의 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이런 도전 속에서도 올바른 신앙을 잘 고수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점을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알고, 내가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주님이 다 아십니다. 남편이 하는 것을 아내가 모를 지라도, 다른 사람이 몰라도,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지라도 주님은 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회인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책망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계2: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했습니다. 남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모법적인 교회일지라도 주님 보시기에 첫 사랑을 잊은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재벌 2세들이 지위를 놓고, 재산권을 놓고 다투고 원수처럼 되어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어린 시절에는 형제애가 두터웠을 것입니다. 동생이 밖에 맞고 들어오면 달려가서 왜 내 동생 때렸느냐고 하면서 같이 대들고 싸웁니다. 형은 동생 편을 들고, 동생은 형의 편을 들면서 서로 위하며 사이좋게 지낸 그 사랑 어디 가고, 지위 때문에, 재물 때문에 첫 사랑 다 잊고 원수가 되어 사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애인이 군대에 갔습니다. 입대하기 전에는 "당신 없이 못살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입대할 때는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다릴께요."라고 했습니다. 입대하자마자 편지에 "당신이 보고파서 미치겠어요."라고 썼습니다. 이등병 시절에 "당신만을 사랑해요. 전 당신의 여자예요"라고 말합니다. 일등병이 됐습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편지가 늦어 미안해요. 어떤 남자가 만나제요" 상병이 됐습니다. "미안해요. 부모님 강압에 못 이겨 선을 봤어요." 병장이 됐습니다. "잊어 주세요. 결혼하게 됐어요." 전역할 때쯤 됐습니다. "글쎄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있겠죠...."
첫 사랑이 변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고 구원의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는 감동, 그 감사, 그 감격 이것이 '처음 사랑'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고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감수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할 때에 너무나도 감사여 감격이 복받쳐옵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 와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경공부하고, 예배에 출석하고, 열심히 목사님 설교도 듣습니다. 목사님이 단 위에서 설교하는 모습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천사같이 보입니다. 저렇게도 훌륭한 장로님도 계시구나, 저렇게 훌륭한 권사님, 집사님이 계셨구나 하며 감사 했는데, 어느 순간 봉사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하면서 자신이 커 보이고 교만의 마음이 생깁니다. 감사, 감격도 사라지고, 집사도, 권사도, 장로도, 목사도 우습게 보입니다. 첫 사랑을 잊은 것입니다. 초심을 잃은 것입니다. 이것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돌아 보아 첫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 합니다. 말씀을 따른 버림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성도가 되려면,
1.말씀 안에서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2.말씀을 따라 버릴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3.내게 회복 되어야 할 요소를 바로 알고 회복시켜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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