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받기 위해 대하7장11-16, 약5:13-18
하나님의 큰사랑을 받은 다윗왕은 그의 생전의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드리고 싶은 소원이었습니다. 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성전 짓는 일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의 손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지를 수 없고,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성전 건축을 완공한 솔로몬 왕이 성대하게 낙성식을 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소와 양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이 직분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으며 찬송을 드리려고 만들었던 다윗왕의 악기를 동원하여 영원히 감사할 일을 들어 찬송을 하였습니다. 7일 동안의 낙성식은 성대하였습니다. 그 때 온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성전과 궁궐을 건축하는데 형통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범했을 지라도 성전에 나와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용서할 것이요, 너희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여호와의 눈과 손이 항상 여기 계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약 본문에도 병든 자가 있거든, 고난당하는 자가 있거든 그는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하라 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메마른 땅이 고침을 받고 열매 맺는 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고침 받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살면서 고침을 받고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구약 본문 대하7:13에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라고 했습니다. 때로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뭄과 기근, 지진과 대기오염, 생태계 파괴와 지구의 온난화 현상, 전쟁, 구제역, 전염병, 이상 기후 등으로 인한 어려움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부도, 경제적 손실, 질병, 갑작스런 사고 등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신약 본문 약5:13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했습니다. 여기 고난의 헬라어 ‘카코파데이’는 한 개인이 당하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때문에 받아야 할 어려움을 말합니다. 애매하게, 억울하게 당하는 고난입니다. 의로운 믿음의 길을 걷는데서 오는 고난이요, 십자가의 길을 걷는 데서 오는 고난이요, 주와 복음을 위한 고난입니다. 이때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원망이나 불평이 아닙니다. 한숨과 후회가 아닙니다. 맹세를 통해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이 바로 이때에 해야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지혜를 받습니다. 이 고난의 때에 어떻게 하면 든든하게 설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것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케스도’는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 기도할 것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처했을 때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 원리를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성도에게는 기도의 특권이 있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한번은 아주 유명한 화가의 집에 도둑이 들어와 화가가 아끼는 귀한 작품 한 점을 훔쳐갔습니다. 화가의 친구들이 와서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하며 소동을 벌이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화가는 태연하기만 했습니다. 친구들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그 값진 재산을 잃고도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 수 있나?” 화가가 대답했습니다. “이보게들, 내 그림을 도둑맞은 것 때문에 이렇게 마음을 써주어서 고맙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참 재산이 아니야. 나의 진짜 재산은 내 머릿속에 있다네. 앞으로 더 좋은 그림을 그릴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림이야 내 이름으로 발행한 수표 한 장에 불과한 거야.” 친구들 보기에는 그 그림이 더없이 귀한 재산이지만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한 장 더 그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남들이 쩔쩔매는 시간에도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담대한 믿음의 성도는 사탄이 고난으로 공격하고 우리의 몸을 아프고 병들게 하였어도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영적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담대함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원인이 죄일 때 회개 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구약 본문 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본다면 이 땅에 임한 재앙의 원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건해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악을 흉내 내며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드러내놓고 죄를 짓는 것만 악이 아닙니다. 예배생활을 소홀히 하고,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 모두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시편 기자의 말처럼 악인의 꾀를 쫒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하며, 오만한 무리와 어울리지 않아야 합니다.(시1편). 자기 가정을 떠나 외도나 불륜, 음란문화에 빠져 사는 어리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약5:16-18 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했습니다.
여기 ‘죄를 서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를 드릴 때 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 3년 6개월 비가 내리지 않았던 재앙의 원인은 당시 아합과 이세벨이 나라에 우상을 끌어드려 온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편에 서서 외로운 싸움을 싸웠습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 850명을 척결하고 나 다음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의 결과로 비가 내려 매 마른 땅을 고쳐 열매 맺는 땅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 때 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아메리카 기아나의 숲 속에는 ‘모라’라는 거대한 식물이 자란다고 합니다. 모라의 꼭대기에는 새들이 와서 쉬었다 가곤했는데 언젠가 그 자리에서 야생의 무화과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지역의 무화과 열매를 쪼아 먹었던 새가 나무 위에서 배설한 씨가 자란 것입니다. 모라의 진액이 무화과나무가 자라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들은 자꾸만 여러 가지 식물의 씨를 날라다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급능력이 없어진 모라는 지쳐서 힘이 빠지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악한 길을 행하면 우리는 모라처럼 영적인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그것이 반복되어지고 많아지면 결국 영적으로 지치고 영적으로 병들고 영적인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죄악에 깊이 빠지게 되면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게 되어 징계가 오고 그래도 고집스럽게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렘 2:19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악입니다. 또 여호와를 버리지는 않았으나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 길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으나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경외라는 말은 기뻐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두려워해야 악한 길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잠 16:6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며 두려워해야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다가 영생의 후사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할 때 고침을 받습니다.
구약 본문 대하7:15에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하셨습니다. 14절에 ‘내 얼굴을 구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적 모습이 없는 영이십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귀, 하나님의 등, 하나님의 얼굴 등을 이야기하면서 외모적인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이해하고 만나기 위한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교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호칭해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한 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악한 자의 길에 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를 잃어버린 채 인간의 욕망의 노예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생활을 합니다. 이 같은 악한 길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말합니다(롬 01:18).
스스로 겸비(謙卑)해야 합니다. 겸비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나의 무력감을 고백하면서 주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자세를 말합니다. 감상적인 겸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진정한 겸비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세에서만 나타납니다.
신약 본문에서 병든 자를 위해 합심 기도할 것을 말하면서 약5:15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했습니다. 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신실한 신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특히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 의인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하십니다. 의인이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유의 역사에 의인이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성도가 됩시다. 성도들의 간구에 응답하여 고치시는 일과 질병의 치유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술과 도박과 게으름으로 병든 덴마크를 일으킨 ‘구룬투비’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덴마크는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구룬투비가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치르는데 목사고시의 설교제목이 ‘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였습니다. 시험관들은 건방지다는 이유로 그를 떨어뜨렸고 멀리 떨어진 섬으로 발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교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섰지만 목사고시에 낙방을 하고 조그마한 섬에 유배당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는 신경쇠약에 걸려 잠도 못 자고 나중엔 헛소리까지 해가며 폐인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신과 덴마크를 도우실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가 간절히 통회 자복하며 눈물로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신경쇠약, 불면증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덴마크 사랑을 외쳤습니다. 청년들이 변하였습니다. 나라가 변하였습니다. 일류국가가 되었습니다. 구룬투비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구룬투비 목사님의 삼 애 운동에 불을 붙여주셔서 덴마크는 부흥했고 세계 일류국가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간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교회와 나라를 살립니다. 우리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함으로 고침을 받고,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고침 받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살면서 고침을 받고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원인이 죄일 때 회개 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할 때 고침을 받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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