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재앙 서론 5 (계 15:4)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 시간은 “대접재앙 서론” 5번째 시간으로 ‘십자가 사랑’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30년간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서 생애를 바친 데이벳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을 아실 것입니다. 리빙스턴은 독신을 꿈꾸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가족들에 의해 생기는 걱정거리가 없다면, 선교사업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메리 모페트를 만나게 되자, 그는 그녀에게 구혼을 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하였습니다. 리빙스턴은 메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애정을 나에게보다 주 예수님께 더욱 깊이 쏟으십시오. 우리들 서로가 아무리 깊은 사랑을 느끼더라도 항상 예수님을 모두의 친구와 안내자로 생각합시다."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님을 제일로 삼고 그들 일생을 아프리카 불모지에서 섬기는 삶으로 바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체험하느냐에 따라 그 삶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아직도 세상 애굽적인 것이 있다면 온전히 은혜의 바다에 수장시키고 씻음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또 어떤 일이 있나요? 13. 하나님이 두려워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4절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때문에 죄를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죄 함부로 지었지만 그러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방인으로 살 때 무엇이 가장 두려웠습니까? 창20:11을 보면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라고 한 것처럼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것,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기에 죄를 함부로 짓고 때로는 인명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남쪽 섬마을에서 집단강간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신앙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치안이 문란한 데다가 신앙까지 없으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을 두렵게 경외함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코람데오의 삶인데, 코람데오란 라틴어로서 ‘코람’은 ‘~의 앞에서’, ‘데오’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존전의식 속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범죄하는 것은 이 존전의식이 없어서입니다. 칼빈의 삶의 원리가 바로 하나님 존전의식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솔직합니다. 진실합니다. 단순합니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도 솔직하고 단순합니다. 설교하는 것도 아니고 기도에 무슨 수식어가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니까 수식어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영광만 위해서 살게 됩니다. “영화롭게 하지 아니 하오리이까” 과거에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신앙생활도 내가 은혜 받고 행복하고 형통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나는 맨 꼬래비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누가 생각이 납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날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자기가 먹겠지만, 가족을 사랑하면 가족 생각에 먹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내 인생의 1순위가 됩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유명한 천로역정의 저자 죤 번연(John Bunyun)이 신앙 때문에 베드포드 감옥에 사형수로 갇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죤 번연은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더 두려웠던 것은 여러 사람이 자기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복음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까봐 그것이 더욱 걱정스웠습니다. 그래서 죤 번연은 천국 같은 날이 오든지 지옥 같은 날이 오든지 주 예수께서 자기를 굳게 붙잡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마침내 죽음 앞에서도 위로를 받고 담대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번연은 자기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리고 예수의 복음을 더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홍해바다에 수장시켜야 할 것은 세상 죄만이 아니고 우리 자신들도 거기 수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갈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했습니다. 아주 제대로 매장까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15.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게 됩니다.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님만 거룩하시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전에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구별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우선이었습니다. 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세상일이 제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먼저 구별해 놓지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몫밖에는 모릅니다. 그러나 큰 애들은 어른들 몫을 먼저 구별해놓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제일로 삼고 살아갑니다. 마22:37-3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셨습니다. 16. 세상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만 사랑하게 됩니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주의 의로우신 일이란 앞으로 전개될 일곱 대접재앙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자대로만 본다면 대접재앙으로 다 죽고 무슨 만국이 와서 경배합니까? 그러므로 복음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말했듯 만국은 문자적으로는 모든 나라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우리 각인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나라이고 그래서 우리 마음의 경영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만국이므로 우리 마음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다른 관심에 쏟았지만 이제는 온전히 마음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함과 같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의 은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히 수장시키시기 바랍니다. 즉 세례는 한 번 받지만 그 세례의 의미는 온전히 적용될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전에는 하나님 두려운 줄 몰랐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두려워 죄지을 수 없고, 전에는 내 영광만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 영광만 위해서 살고, 전에는 내가 먼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그리고 전에는 세상에 마음 두고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 몸과 마음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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