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대접재앙 서론 6 (계 15:5-6)

nam씨 2024. 9. 7. 19:16

대접재앙 서론 6 (계 15:5-6)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 시간은 “대접재앙 서론” 6번째 시간으로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바로 우리가 회개하여 새 사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5:7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일도 좋지만 회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즉 내가 죽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는 저주와 슬픔 밖엔 없지만 예수 안에는 무궁한 생명과 은혜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랑에서 더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17. 장벽이 사라지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5절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이 일 후에”란 앞의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즉 우리가 십자가 사랑을 말했던 그 본문을 가리킵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온전히 마음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에서는 십자가 사랑 앞에서 나의 변화였는데 여기서는 내가 변하자 하나님께서 주실 하늘의 은혜를 예시한 것입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 은혜입니다.  여기 증거의 장막이란 성막에 대한 다른 호칭입니다(출25:16, 38:21, 민1:50, 행7:44).


그런데 증거의 장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막 안에는 증거궤 즉 법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궤를 증거궤라 한 이유는 법궤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잠재워 줄 증거물인 만나와 싹난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의 돌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상징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증거의 장막이 열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나는 사라지고 예수가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예수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증거의 장막이 열렸다는 것은 지성소가 열렸다. 휘장이 갈라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막15:37-38에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했고, 히10:20에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미 열린 문인데 왜 본문에서는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그 답을 말하자면 이건 개인적인 체험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주님이 죽으심으로 휘장이 갈라져 하나 되었지만,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우리 마음의 휘장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마음의 휘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자아라는 교만과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의 죄들입니다. 이 휘장은 내가 죽음으로만 사라질 수 있는 휘장입니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는데도 왜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십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나”라고 하는 마음의 휘장이 너무나 두껍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고 예수만 나타나면 하나님과의 장벽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 열리는 증거의 장막이 열리는 비밀입니다.

 

18.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더 큰 은사가 임합니다.


6절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여기 성전은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그 동안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거나 제단에서 나왔지 지성소에서 나온 적이 없는데 이제는 지성소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제 지성소와 관련된 영적 수준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그냥 나오지 않고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일곱 재앙은 일곱 대접재앙을 말합니다. 대접이란 고난의 쓴잔을 말하며 일곱은 완전수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재앙이라고 한 것은 우리 안의 악의 세력이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우리 속의 도적질하는 아간과 우리 안의 부패한 가나안 칠족과 다윗에 도전했던 이방세력 같은 자아와 세상들을 처리하시는 강력한 은혜가 임합니다. 진정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만 그럴까요?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타났듯 우리를 통하여 회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3.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행실에서 거룩해집니다.


다시 6절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성전에서 나온 일곱 천사의 복장이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습니다. 즉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래 천사는 제사장도 아니고 왕도 아니어서 세마포를 입는 신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사장처럼 세마포를 입고 예수님처럼 가슴의 금띠를 띠었음은(계1:13) 이것은 대접 재앙으로 성도에게 입혀질 은혜가 무엇인가를 예시한 것입니다.

 

먼저 세마포는 계19:8을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사랑으로 온전한 행실의 성도로 만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4.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영적권세가 나타납니다.


다시 6절 하반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가슴의 금띠는 왕의 모습입니다. 왕은 능력과 권세의 상징입니다. 가슴의 금띠이므로 먼저 자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고, 나를 다스릴 뿐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환경과 마귀를 다스립니다.

 

세마포와 가슴의 금띠를 합해서 생각하면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윗이나 솔로몬이 왕 같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왕 같은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기도 했고, 벧전2:9을 보면 신약의 우리 성도의 신분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 앞에 원수의 세력들이 물러갔듯이 성령의 영적 권세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가 가장 큰 능력입니다. 그 이전에는 모두 어린 아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사랑 자체도 능력이거니와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답은 내가 사라지고 예수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나타나서는 죄과 저주와 슬픔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라지고 예수가 나타날 때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의 그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벧전1:13에서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십자가 사랑 안에서 더욱 새로워져서 아버지께서 주시는 더욱 온전한 은혜 속에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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