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재앙 서론 2 (계 15:2)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이 시간은 “대접재앙 서론”이라는 제목으로 ‘십자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히12:1-5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간략히 요먁하면 진정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죄를 벗게 되고, 어떤 어려움도 참고 나아갈 수 있으며,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도 싸우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히브리서의 말씀은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 중요한 키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대접재앙의 주제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성부와 성자의 희생적 사랑을 깊이 깨닫는 자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1.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강력한 정화작용이 있습니다.
2절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이 말씀은 유리 바닷가에서 구원 받은 자들이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홍해를 건너 홍해 바닷가에서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던 모세와 그 백성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이 바다는 계4:6의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아니라 불이 섞인 유리 바다입니다. 왜 불이 섞인 바다일까요?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선 먼저 바다라는 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기 바다는 씻음을 상징하는 바다입니다. 고전10:2을 보면 홍해 바다 역시 세례의 상징이었고, 성전 앞에도 바다가 있었습니다. 그 바다는 놋바다로 제사장들이 몸을 씻기 위해 많은 물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씻음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불이 섞인 유리바다였습니다. 유리바다는 앞에서 언급 되었듯 깨끗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여기서 씻으면 씻어지지 않을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리바다만이 아니라 불이 섞여 있었습니다. 물속에 불이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습을 통해서 무언가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런 환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바다는 씻는 곳으로 물로만 씻는 것이 아니라 불로서도 씻으신다는 것입니다. 단7:9-10을 보면 “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계시록 본문이 말한 것은 바로 그 불바다를 말합니다. 그 물과 불이 섞인 그 불바다에서 씻어지지 않을 죄가 없고, 소멸되지 않을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홍해 바다에서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듯 우리의 죄악의 잔재마저도 남아 있지 않도록 온전히 씻어주시고 또 태워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묵상하다가 그 안에서 은혜를 받으면 그 어떤 떨어버리기 어려운 죄도 숨은 죄도 다 처리됩니다. 그러므로 불 섞인 유리바다란 십자가 사랑의 강력한 정화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우리의 육신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이들은 참으로 대단한 자들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까지 다 이긴 자였습니다. 먼저 짐승을 이겼습니다. 이 짐승은 계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킵니다. 짐승이 무엇입니까? 육신을 말합니다.
우리 육신은 짐승과 같이 본능적인 존재요 또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짐승과 같아요. 성군 다윗도 육신을 다스리지 못해서 범죄했습니다. 우리가 육신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데 자기 육신을 이기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육신 하자는 대로 다하면 지옥 갑니다.
그래서 골3:5-8에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이것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통이 오고 수치를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면 다 참을 수 있습니다. 즐거워합니다. 감사합니다.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깊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좀 나쁜 소리 들으면 마음 상하지 십자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마5:11-12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눅 2장을 보면 안나 선지자가 나옵니다. 눅2:36-37절에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과부가 수십 년을 수절하며 하나님 한 분만 신랑 삼고 산다는 것 쉬운 일입니까?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니까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이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이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짐승을 이긴다는 것은 육신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사 그러면 고대 중세 근세로 나누는데 중세 기독교를 오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중세 기독교사라고 하면 (A.D. 600-1500)의 기독교 역사를 말하는데 이 때 교황권의 타락 등 어두운 면이 많았지만 한 편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길 갈망하는 영적운동도 강한 때였습니다. 나쁜 면은 걸러야 하고 좋은 면은 살려야 하는데 이런 면은 지금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3.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세상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여기 “그의 우상”이 나옵니다. 그의 우상이 무엇일까요? 짐승의 우상입니다. 계 13장을 보면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고, 짐승의 우상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계13:11-18)을 말합니다.
짐승의 우상은 다름 아닌 세상과 그 정욕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짐승 같은 육신이 동경하는 것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래서 “그의 우상”은 바로 세상입니다. 우리 육신이 소유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 명예 물질 쾌락,, 이것에서 자유로울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예수님께 왔던 돈 받은 부자 청년, 계명을 완벽하게 지켰다고 자부했지만 너의 모든 소유를 팔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니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물질에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명예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인격에 모욕을 참지 못합니다. 쾌락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권세에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나 무슨 짓을 해서든지 대장만 되려고 합니다. 요삼1:9-10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교회에서 대장 노릇만 하려고 전도자를 대적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방해되는 사람들은 모두 쫓아냈습니다.
바울 서신 보면 별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딤후4:14-15에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딤전1:19-20에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죽어도 고치지 못하는 평생 달고 사는 죄가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으면 고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고멜이 호세아의 사랑을 깨달을 때 호세아의 품안에 온전히 올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4. 십자가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의 근본이 바뀌어집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여기 “그의 이름의 수”란 666을 말합니다. 계 13장에서 666에 대해서 배운 것처럼 히브리적 관념에서 6은 세상이나 사람 짐승 등을 가리키는 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그것을 6일 째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의 수를 이겼다는 것은 세상도 육신도 자기도 다 이겼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666의 의미와 같이 아주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 본능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666도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제불능이라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사랑의 포로가 되면 본질적으로 바뀝니다. 말세의 첫째로 지목 되는 자기사랑죄도 이깁니다.
그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멸망하도록 다른 죄는 개혁해도 이 죄는 개혁하지 못했는데 요시아가 율법책을 보다가 이 죄를 깨닫고 개혁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발견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금송아지와 같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강력한 정화작용이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우리의 육신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면 죄악 세상도, 자기 사랑도, 숨어 있는 멸망할 죄악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까지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하여 참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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