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자연 질서 준수, 성적 순결에 대한 규례들(신22:1-30)
1. 이웃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1-4)
이스라엘은 주로 가축들을 방목(放牧)을 했기 때문에 양들이 무리를 이탈하여 길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삼상 9:3). 이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못 본 체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이 말은 이웃의 곤경이나 손해를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길 잃다'(나다호)는 말은 본래 '미혹되다'는 뜻으로, 외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주체하지 못해 발생하는 방황을 말한다. 성경은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할 것을 명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성도들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이 곧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약 4:17). 길 잃은 양을 찾아서 돌려주라고 한 명령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모세 법전은 이처럼 적극적인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까지도 성문법(成文法)으로 명시하고 있다.
만일 잃은 양의 주인을 알지 못할 때에는 그들을 집으로 끌고 가서, 보관하였다가 그 주인을 찾게되면 그때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이 말은 가축의 주인을 모를 때에라도 가능한 원주인에게 돌려 줄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습득자는 대중이 모여드는 공공 장소에서 그 물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너 차례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그 결과 원주인이 나타났을 경우, 그에게 습득물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백방으로 노력해도 결국 원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원칙상 습득자가 그 물건을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난한 자에게 주었다. 여기서 '나귀'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대표하고, '의복'은 생명이 없는 모든 물건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것들은 '이웃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귀나 소는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며 수레를 끌고 기타 농사일에 사용되는 모든 가축을 대표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 적 용 >
1. 하나님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본문의 예는 그 정신과 원리가 잘 나타나있는 규례이다.
2.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죄를 짓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선을 행할 줄 알면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고 한다.
3. 하나님은 이웃들이 서로의 생명과 그 밖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관심을 갖고 서로 도우며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만일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2. 자연 질서 준수에 대한 규례들(5-12)
<사례 1> 남녀의 의복을 바꾸어 입지 말라(5).
남녀가 의도적으로 의복을 바꿔 입는 일은 남녀를 구분하여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혹자는 주장하기를, 이처럼 남녀가 의복을 바꿔 입는 풍습은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는 없던 것으로 후대 가나안 인들의 풍습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한다(Spencer). 여기에서 말하는 의복(켈리)은 '준비하다'는 뜻의 '카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준비된 어떤 것'을 의미하며 이 말은 단순히 옷뿐만 아니라 각종 장신구(accessory)나 기구, 그릇 따위 등의 모든 기물을 일컫는 단어이다. 또한 '가증하다'에 해당하는 '토에바'는 특히 우상 숭배 행위와 관련하여 몹시 혐오스러운 것, 구역질나는 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서(7:26;18:9), 하나님께서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우상숭배만큼이나 싫어하고 역겨워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적 용>
1. 하나님께서는 남녀가 창조 원칙을 따라서 경건하고 구별되게 살기를 원하신다.
2. 무엇에든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리를 바꾸거나 거스리는 일은 악한 일이다.
<사례 2> 어미 새와 알을 동시에 취하지 말라.(6-7)
이것은 새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새를 지으신 것은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새에 대하여 잔인하게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으니, 곧, 이와 같은 법규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덕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자연계를 정복하고 주관할 수 있는 특권이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 할지라도(창 1:28),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근거하여 자연계를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출 23:19; 레 22:18). 그러므로 본 규례를 통하여 우리는 다음 두 가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거해 살아가는 인간은 그 은혜를 또한 자연계에 돌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인해 동물계에 형성되어 있는 어미와 자식간의 사랑 어린 애정 관계는 신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연계에 대한 자비를 베풀 때에 부모 공경을 할 때에 주시겠다고 하셨던 축복인 장수의 축복(5:16;출20:12)을 약속하셨다. 자연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곧바로 인간의 복지와 연결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계를 잘 돌볼 때에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들을 자비롭게 대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연계에 대하여 사랑과 애정으로 대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계에 대하여 자비롭게 대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비롭게 대해 주신다.
2.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거나 자연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와 같이 자연을 잘 돌보아야 한다.
<사례 3> 집을 건축할 때의 유의사항(8-).
팔레스타인의 가옥은 대개 지붕이 슬라브 형식으로 평평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지붕은 종종 휴식이나 취침, 또는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삼하 11:2; 느 8:16; 행 10:9). 따라서 자칫 실수할 경우에는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지붕에 난간을 설치하라고 지시하셨다. 결국 이 규례는 자신의 사소한 부주의나 태만, 또는 실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을 말한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난간의 높이는 대략 1m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매우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는 매사에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귀중히 여기시며, 우리가 부주의하여 남의 생명에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피의 대가를 우리에게서 찾으신다.
<사례 4> 혼잡하게 하는 것의 금지(9-11)
하나님께서는 한 밭에 두 종자를 함께 뿌리는 것이나. 소와 나귀를 함께 겨리 하는 일이나, 양털과 베실을 섞어서 짠 옷을 입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둘 다 얻기 위하여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둘 모두가 혼잡케 되어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상태가 순수하게 유지되길 원하신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으로 적용하면, 성별(聖別)된 공동체 이스라엘만이 가지고 있는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생활 속에서 원형(原型)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되, 이방의 이교(異敎)적 풍습과 타협하여 그 신앙의 순수성이 혼합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레 19:19). 혹자는 이러한 풍습은 고대 가나안인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것이라 한다(Lange). 또한 소와 나귀는 보폭과 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을 한 멍에에 묶는다면 상당한 부조화를 초래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신자가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고전 7:14-16).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유지하시기를 원하신다.
2. 신자는 불신자와 함께 결혼하거나 귀신을 섬기는 이방인과 타협하여 같이 일을 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
<사례 5> 겉옷에 술을 만들라.(12)
히브리인들의 겉옷은 대개 통으로 되어있고, 그 앞뒷면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귀)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네 모서리(귀)에 '술'(fringes)을 달도록 지시하셨다. 이처럼 겉옷 네 귀에 술을 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그 앞에서 거룩하게 살 것을 다짐하는 일종의 의식(儀式) 행위였다. 왜냐하면 겉옷에 다는 '술'은 한 눈에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임을 나타내 주며, 또한 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민 15:38-40). 한편 후대 유대인들은 8가닥의 실을 5개의 매듭으로 묶어 이 술을 만들었는데, 이는 13이라는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각 문자마다 고유 숫자(number)를 갖고 있는 히브리어에 있어서, 이 '술'을 뜻하는 '치치트'는 그 합계 수치가 600이다. 그러므로 '술'의 모양과 '술'이란 문자가 지닌 상징적 숫자를 합한 수는 모세 율법의 총 조항수인 613과 일치한다. 이것은 분명 그 옷 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맞춘 것임에 틀림없다. 훗날 바리새인들은 이와 같은 '술 의식'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옷 술을 크게 만들어 달고 다님으로 예수의 책망을 면치 못했다(마23:5).
< 적 용 >
* 하나님께서는 의복의 제작에 있어서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한 표시를 달라고 함으로서, 매사에 여호와를 경외할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원하신다.
3. 성적 순결에 관한 규례들(13-30)
<사례 1> 처녀의 순결 확인에 대한 규례(13-21)
이 조항 역시 정절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는 두 경우를 모두 금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남편이 정숙하고 무죄한 여자를 부당하게 모함하는 경우요, 다른 하나는 처녀가 몸을 더렵혀놓고 처녀인 것처럼 꾸며대는 경우이다. 또한 이것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들을 보살피는 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남편이 고의적으로 자기 아내에게 누명을 씌워 이혼하려는 거짓 핑계를 댄다는 것은 야만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호색 적인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싫어하여 갖은 수단을 다해 아내를 제거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 불 경건하고 포악한 남편들의 중상모략으로부터 여자의 정직성을 보호하는 일은 꼭 필요했다. 반면에 이 규정은 정직한 남편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를 속인 창녀를 억지로 품고 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순진한 마음의 사람들이 그런 악명을 묵묵히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훌륭한 예방책이 한 가지 주어져 있는데, 그것은 한 여자가 남편의 비난을 받을 경우 그녀의 부모들은 그녀를 용서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증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경우에는 남편은 아내가 남에게 더러워진 만큼 그녀를 자기 집에 억지로 데리고 살지 않아도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처녀의 표란 신혼 첫 날 밤에 사용한 이부자리로 장차 순결의 증거로 삼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그들은 이것을 순결하고 정숙한 처녀를 변호하기 위해 증인들 앞에 증거물로 들춰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 부모들의 말만을 증거로 내세우게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많은 재량권을 허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것을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은 당시 잘 알려진 습관이었기 때문이다(칼빈).
이런 경우에 중상모략한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처벌이 따르고 있다. 첫째는 거짓으로 고소한 사람에게 매를 때리는 것이요(40대 까지 때릴 수 있었다), 둘째는 장인에게 은을 벌금으로 바치는 것이며, 셋째는 평생 그 여자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평생 버리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처녀들을 보호하시는 것은 젊은 여자들로 하여금 더욱 더 정조를 잘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불행하게 여자를 포악한 남편의 지배 아래서 평생 살도록 한 것은 나쁘지 않느냐고 반대한다면, 이렇게 된 것은 그녀를 풀어 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록 남자들이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가장 오랜 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공정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려는 남편의 꾀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칼빈). 당시 성적(性的) 범죄가 이처럼 엄중하게 취급된 까닭은 가나안 족속들의 성도덕이 매우 문란했기 때문이다(레 18:1-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방의 문란한 성 풍속에 물들지 않도록 이같이 엄한 규례를 세우셨던 것이다. 특히 '돌 처형 법'을 한 까닭은 그들로 하여금 경각심과 공동체의 연대 의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레 20:17; 민 15:35,36; 13:10; 17:5). 하나님께서는 남녀간의 혼인 및 부부간의 순결을 중요시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순결을 요구하셨다.
<사례 2> 유부녀와의 통간(22)
하나님께서 간통에 대해서 사형을 내리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성결케 하게 하신 언약인 만큼, 이것을 더럽히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부부간의 믿음이란 너무도 신성한 것이어서 이것에 대한 침해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남자의 품에서 그의 생명과 다름없는, 아니 그의 반쪽인 아내를 낚아채는 일은 무지하고 포악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간음 자를 우는 말에 비교하고 있는데(렘 5:8), 이는 그런 색정의 지배를 받는 남자는 짐승과 같은 상태로 타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이유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만일 어떤 남자가 창녀와 관계함으로써 자기 아내와의 신의를 파괴하는 것은 사형 죄가 아니지만, 어떤 남자가 비록 독신일지라도 남의 아내와 간통할 경우에는 그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남편이 크게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불명예가 그 자손에게까지 미치며, 적자 대신에 불의의 자식이 들어서는가 하면, 상속이 타인에게 넘어가 사생아가 불법적으로 가족의 이름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율법이 있기 전부터 이방인들은 이것 때문에 간통을 엄하게 처벌했다. 유다와 다말의 기사를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창 38:14). 뿐만 아니라 간통의 처벌은 이방인 세계에서 시행되는 보편적인 법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삼가고 있는 일들을 행한다는 것은 더 없이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법정에서는 부부간의 불성실이 동일하게 처벌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쌍방이 모두 서로에게 얽매어 있는 만큼, 쌍방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따라서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전 7:4-5)"는 바울의 선언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효력을 발휘한다(칼빈).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택함 받은 거룩한 공동체였기 때문에 열방과는 구별되는 순수성, 즉 순결성을 보존해야 했다. 따라서 만일 이스라엘 중에 이러한 공동체의 순결성을 깨뜨리는 자가 있다면, 이스라엘 사회는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해서 가차없이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공동체의 순결성을 계속 유지시켜야 했다.
<사례 3> 약혼한 여자가 성폭행 당했을 때의 규례(23-27)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처녀가 약혼하면 결혼한 여자와 동일하게 간주되었다(20:7). 따라서 약혼하기 전에 행한 불미스러운 일(28,29절)보다 약혼 이후의 범죄가 더 큰 중벌로 다스려졌다(Keil). 남녀가 둘 다 자의적(自意的)으로 간음 행위를 한 경우에는 둘 다 처벌을 받았다. 공동 번역은 이것이 '자의적인 행위'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를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라고 번역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충분히 요청할 수 있는 상황 중에서도 여자가 침묵하였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행위에 대하여 소극적이나마 승낙한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녀는 이미 약혼한 여자이면서도 혼인의 순결을 스스로 저버렸으니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레 20:20). 약혼한 여자를 범하는 것은 십계명 중 제 7계명(간음죄, 5:18; 출 20:14)과 10계명(이웃의 아내를 탐한 죄, 5:21; 출 20:17)을 동시에 어긴 행위이니 만큼 가중 처벌되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순결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자 또한 그들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殿)이기 때문이다(고전3:16,17). 그러므로 성경은 "음행을 피하라...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고 엄히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강간을 당할 수도 있었다. '들'은 여자가 아무리 소리쳐도 듣고서 달려와 구원해 줄 사람이 없는 장소이다. 따라서 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혹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서 여자가 강간당한 것은 자의(自意)가 아니라 순전히 타의(他意)에 의한 강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규례는 모든 법의 적용에 있어서 단순히 나타난 결과만을 갖고서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게 된 동기까지 십분 고려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 즉 본 절은 여자가 들에서 강간을 당한 경우, 그것이 불가항력적 상황이었는지를 조사하여, 사실로 판명되면 연약한 여자의 한계를 인정해 주는 것이 근본 법 정신임을 보여준다. 비단 들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여자의 한계 상 강제적으로 강간을 당했을 경우, 그 처녀에게는 책임을 물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처럼 모세 율법은 모든 범죄의 단호한 척결과 인간 생명의 존중이라는 두 목적이 서로 상치(相馳)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다.
<사례 4>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가 강간당한 경우(28-29)
여기서는 어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와 함께 통간한 사건에 대한 처리 방법을 말해준다. 그들은 사형하지 않고 서로 결혼하도록 특별한 수속을 밟게 하셨다. 본문은 한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욕보인 경우, 두 사람이 법적 처벌은 받지 아니하였으나, 남자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한다는 규례이다. 즉 남자는 결혼 지불금 조로 은 50세겔을 처가에 지불한 후, 그 처녀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해야 했다. 이때 남자는 그 여자가 부정(不貞)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평생 그녀를 내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규례는 결코 혼전 성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는 당시대의 저급한 성 윤리를 충분히 감안한 상태에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또한 두 남녀를 긍휼히 여겨 적극적으로 그들의 앞날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해 주려는 규례일 뿐이다. 그 해결책이란 곧 죽음이 면제된 두 남녀로 하여금 합법적인 결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둘 다 성적 순결을 지키며 살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다. 여기서 '은 오십 세겔'은 처녀를 범한 남자가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때 처녀의 아버지가 자기 딸을 내주기를 거절하면, 그 남자는 배상금 조로 '은 오십 세겔'을 지불한 후, 결혼은 포기해야 했다(출 22:16,17).
<사례 5> 아비의 후실을 취하지 말라(30)
계모(繼母)와의 성 관계 및 혼인을 금한 규례이다. 이런 근친상간의 범죄는 인간의 모든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동물적인 행위이므로, 이스라엘 중에서 철저히 제거되어야 했다(레 18:6-18; 20:11-21). 한편 성경에 나타난 바 아비의 하체를 드러낸 경우로는 야곱의 아들 르우벤의 경우(창35:22)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경우(삼하16:22)가 있다. 모세는 여기서 계모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 한가지 사실을 들어 지금까지 상세하게 언급했던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기억시켜 주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한 가지 죄만 금한다고 해서 다른 죄는 저질러도 된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 없다. "아버지의 치마를 벗기지 말라"는 표현은 의붓아들이 절제하지 못하고 계모에게 들어 가게되면 아버지에게 욕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 함이 자기 아버지의 수치를 드러낸 죄를 두고 빗대어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창 9:22)(칼빈).
< 적 용 >
1. 하나님께서는 부부의 관계가 순결하게 지켜지길 원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남의 아내를 범하거나 탐하는 것을 금하신다.
3. 오늘과 같이 성도덕이 문란한 세대에 성윤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바른지침이 된다.
사랑, 자연 질서 준수, 성적 순결에 대한 규례들(신22:1-30)
1. 이웃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1-4)
1). 하나님은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2).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3). 하나님은 이웃들이 서로의 생명과 그 밖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관심을 갖고 서로 도우며 살기를 원하신다.
2. 자연 질서 준수에 대한 규례들(5-12)
1) 남녀의 의복을 바꾸어 입지 말라(5).
2) 어미 새와 알을 동시에 취하지 말라.(6-7)
3) 집을 건축할 때의 유의사항(8-).
4) 혼잡하게 하는 것의 금지(9-11)
5) 겉옷에 술을 만들라.(12)
3. 성적 순결에 관한 규례들(13-30)
1) 처녀의 순결 확인에 대한 규례(13-21)
2) 유부녀와의 통간(22)
3) 약혼한 여자가 성폭행 당했을 때의 규례(23-27)
4)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가 강간당한 경우(28-29)
5) 아비의 후실을 취하지 말라(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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