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해를 옷 입은 한 여자 3 (계 12:5-6)

nam씨 2023. 11. 18. 20:15

해를 옷 입은 한 여자 3 (계 12:5-6)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오늘도 "해를 옷 입은 한 여자"라는 제목으로 이 시간에는 '교회를 향하신 특별은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번 교회의 영광과 사탄의 시험에 이어 오늘은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교회는 사단에게 끊임없는 시험을 당하고 있지만 교회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향하신 특별은총은 무엇입니까?


1. 성도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심입니다.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했습니다. 여기 여자의 해산은 앞서 언급한 대로 교회가 믿음으로 낳는 언약의 자손들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사탄의 그 방해 가운데서도 성도들을 돌보며 거듭나게 해산하는 수고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여기 여자가 아들을 낳는다 했는데 성경은 교회를 여자로 비유합니다. 갈4:26-28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점에서 성도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이 낳음은 칼빈의 교리와 같이 성화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중생의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화 역시 중생과 같이 새 생명의 활동으로 계속하여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영적 어린이에 머물지 말고 더 온전한 가운데로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특별은총은 악의 세력을 깨뜨릴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5절에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했습니다. 시편 2편의 기록에 이 철장 권세는 문자적으로는 다윗에게 준 것이요, 예표적으로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런 권세를 가질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권세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계2:26-27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장차라고 했는데 이 낱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는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종말을 말하지만, 신령한 관점에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 견고히 서는 때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믿음에 견고히 설 때 모든 악을 산산조각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2:26의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이 철장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김이란 예수님의 승리의 복음에 선다는 말이요,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요6:28-29). 즉 예수 믿어 승리의 복음에 굳게 설 때 악의 세력들을 부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이런 권세와 능력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받으려고 하지 말고 받았다고 믿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특별은총은 승리와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5절에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했습니다. 여기 아이는 예수님일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아기입니까? 여기 아이는 예수 안에서 함께 승천한 우리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졌다는 진리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골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했고, 엡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주소는 천국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승리의 우편에 계신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역시 승리자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양육을 받아 성도들이 그 복음을 믿으니 비로소 하늘의 승리와 권세와 영광을 누리더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부자 되면 아들도 부자가 되듯이 예수님의 승리로 우리는 아무 한 일도 없이 권세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잘 이해하고 믿음으로 자기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알 듯 말 듯 알쏭달쏭 확신에 서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누릴 수 없고 악의 세력 역시 이길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의 특별은총은 연단의 손길과 교회를 통한 양육입니다.
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본 절의 표현이 난해합니다. 일반적인 관념으로 양육이란 아이가 받는 것이지 산모가 받는 것이 아닌데 왜 아이는 올라가고 여자가 양육을 받을까요?
그러나 교회가 곧 성도이고 성도가 곧 교회라는 점에서 그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양육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양육을 받는다는 것이란 말입니다. 즉 새 생명으로 거듭난 영혼은 하늘에 속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또한 지상에 속해 있기에 양육 즉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럼 믿음의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연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으로 신앙훈련을 받던 장소입니다. 그 훈련이란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모세를 통해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배웠음에도 불순종할 때는 하나님의 가차 없는 채찍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므로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어야 하고 믿을 뿐 아니라 순종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삶에서 광야의 연단을 졸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러면서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6절)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훈련이 여자 즉 교회 즉 성도들이 받는 광야의 연단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연단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말씀을 배운 대로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하여 값비싼 수험료라도 내게 하십니다.
그런데 광야 배경 외에도 예수님의 제자 훈련의 배경이 나타납니다. 여자가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양육 받는다고 했는데 1260일이 바로 3년 반 즉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가리킵니다. 그 기간에 제자들이 무엇을 배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배워야 합니다. 그냥 신앙고백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왕이란 말입니다. 즉 내 주장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절대 주권적 신앙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참고로 1260일에 대한 이해인데 대개 박해를 지칭할 때는 마흔 두 달이라는 표현을 써서 그 박해가 간헐적임을(2절) 보여줍니다. 1260일은 예언이라든지 즉 그 양육이 섬세하고 지속적일 때 그 표현을 쓰고(3절), 한 때 두 때 반 때는 3년 반으로 그리스도 공생애적 사역을 암시하거나 강조할 때 쓰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1260일 동안의 양육을 받았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뜻할까요? 즉 옛날 그리스도의 공생애적인 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기관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양육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내신 지상에 가장 귀한 은사입니다.
그래서 엡4:11-13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했는데 예비처가 어디일까요? 혹자는 여기 예비처를 페트라성으로 보나 페트라에 많은 성도들이 운집할 수도 없거니와 병기의 발달로 물리적 피난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시 누가 그렇게 주장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가 우리의 피난처요 산성이라고 해야 할 텐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여기 양육하기 위해 예비된 예비처란 정확히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종합하면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처럼, 공생애의 제자들의 훈련처럼 지금도 성도를 연단으로 혹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과 은사로서 양육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야 말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 중의 은사입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버릴 수 없듯 교회를 무시하거나 버리면 그 믿음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교회 즉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회의 양육을 잘 받아 더욱 새롭게 거듭나고 믿음과 순종으로 승리와 권세와 영광을 더욱 온전히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