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두 증인 4 (계 11:6)

nam씨 2023. 8. 12. 16:24

두 증인 4 (계 11:6)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속하여 “두 증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을 말씀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럼 각 개인에게 이를 적용하시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2. 엘리야적 사역을 행하십니다.


6절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6절에 엘리야적 사역과 모세적 사역이 나타납니다. 이 구절을 보고 역사의 종말에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날 것이라고들 하지만 여기에 엘리야적인 사역과 모세적인 사역이 나타났을 뿐 그들의 이름이 열거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해도 그들일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마11:14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하신대로 오리라 한 엘리야가 결국은 그 능력과 심령을 가진 세례요한이었던 바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혹자는 마지막 때에 엘리야와 모세와 같은 권능을 가진 종들이 나타나 재림을 대비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시라는 점에서 성령의 사역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즉 여기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죄인을 부르사 구원하시려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여기 성령의 사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치 선지자나 율법의 사역과 같이 메시아를 준비시키는 사역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죄인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사역입니다.

 

그럼 먼저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 엘리야적인 성령의 사역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말고 다른 신이나 세상 그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거나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아합왕 당시 이스라엘은 이세벨의 악정에 의해 여호와냐 바알이냐 둘 사이에 방황했습니다. 이 때 엘리야가 나타나 비오지 않기를 선언하니 3년 6개월이나 비가오지 않았습니다. 아합과 이세벨과 백성들은 농사의 신이라고 믿는 바알에게 구했지만 비를 주지 않았는데 이것은 바알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근은 바알이 가짜일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심령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엘리야의 3년 반이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던 메시야의 공생애와 같은 기간으로 공생애를 예표한 사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의 예수님이 유일하신 우리 구주이심을 알게 하신 것과 같이(요20:30-31)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바로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말고는 다른 구주가 없고, 따라서 예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깊이 느끼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성령께서 죄인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온갖 방법으로 그동안 믿던 모든 것들이 허무함을 깨닫게 하셔서 참된 진리이신 예수를 만나게 하시고 그 참되신 증거로 엘리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늘의 장마비 주셔서 예수님이 참 진리이심을 증거하시고 계십니다. 다른 종교에는 성령은 없고 있다면 다 귀신들입니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믿으면서도 예수 말고도 구원이 있다는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직 꼭지가 덜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교단은 신학적으로도 꼭지가 덜 덜어진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저주 받은 무화과처럼 이파리는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와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아합 왕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000을 남겨 두신 것처럼 그 안에서도 그들을 따르지 않고 온갖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예수만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목회자와 양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엘리야적 사역이란 여러 가지 심령의 기근을 통해 진리를 찾고 예수 앞에 나오는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 모세적 사역을 행하십니다.


6절 하반 절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 역사는 출애굽기에 나타난 모세의 사역을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얻기까지 신령한 의미에서 이 사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고전10:1-4에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중생의 사건에 비유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성경 보는 안목을 열어줍니다. 애굽은 죄악 세상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있었던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와 죄악을 버릴 수밖에 없도록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심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면 첫 번째 재앙은 물이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물은 사상이요, 피는 생명이듯 하나님의 말씀이 전과는 달리 생명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아 구원의 말씀이구나. 예수 믿어야 사는구나.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이 전도할 때 과연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다음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개구리는 수효도 많을 뿐 아니라 반복적인 울음소리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심령에 결심으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야지, 하나님 믿어야지, 예수 믿어야지,,, 이처럼 예수의 복음이 자꾸 마음에 결심하듯 다가옵니다.


다음은 이 재앙인데 이는 피를 말리는 고통을 줍니다. 즉 말씀과 성령이 더 깊이 역사하면 그 말씀대로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이 내 심령에 고통이 됩니다. 그래서 고후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다음은 파리 재앙인데 파리는 윙윙거리면서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바로가 모세 네 듯대로 해라. 그러나 멀리는 가지 말라. 이처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좀 숨을 돌릴 만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다음은 거축이 돌림병인 악질로 고통당하는 재앙입니다. 이젠 파리 정도가 아니라 아주 고열이 나서 몸이 펄펄 끓어오르는 질병입니다. 그래도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처럼 영의 소원은 이처럼 타오르지만 육신의 소욕 역시 강해서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여섯째로 악성종기가 짐승은 물론 사람에게까지 나게 됩니다. 고열 정도가 아닙니다. 열만 나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뼛속까지 찌르는 고통을 줍니다. 이제 그 양심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주지 않는 상태입니다.


과거에는 세상을 좋아하는 것이 즐거움이었지만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그것이 양심의 찌르는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그 심령 상태가 바로 여섯째인 악성종기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일곱째 재앙은 우박재앙입니다. 하늘에서 무거운 우박이 떨어져 들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이 모두 죽는 재앙입니다. 그동안은 고통 정도의 재앙이었지만 이제는 죽는 재앙입니다. 딤전6: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했듯이 내 심령이 죽음을 경험합니다. 세상 사랑이 그렇게 절망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가축과 채소만 죽었지 곡식은 아직 자라지 않는 때이므로 조금은 살만 하니까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덟째 메뚜기 재앙이 예고됩니다.


그러자 바로의 신하들이 왕에게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니 바로왕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으므로 나라가. 그러나 장정들만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라. 그럴 순 없습니다. 모두 가야합니다. 하니까 내 쫓김을 당하여 메뚜기 재앙이 내려집니다.


메뚜기가 온 지면을 덮고 자라나는 산천초목과 곡초를 모두 뜯어 먹었습니다. 애굽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리 봐도 먹을 것이 없고 저리 봐도 희망이 없고 세상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는 과정입니다. 재미도 없습니다. 재미도 없고 기쁨도 없으면 버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데 아직도 세상이 뭔지 붙들고만 있습니다.


그 다음 재앙이 흑암재앙입니다.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땅만 해가 뜨지 애굽 전역은 무려 사흘 동안이나 캄캄해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절망을 느끼는 단계로 하나님 없는 삶은 어둡고 절망적인 삶임을 절감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열 번째 장자 죽음의 재앙입니다. 죽음의 재앙이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은 넘어가고 피 없는 애굽 사람들의 집에 임하여 사람과 가죽의 장자들이 죽는 재앙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와 그 피의 복음을 떠나서는 심령으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최소한 이 정도 수준에 와야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품 안에 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엘리야적 사역과 모세의 사역은 양상만 다르지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냐? 바알이냐? 즉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그 방황하는 길에서 떠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의지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 믿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세상에 붙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말씀과 성령 안에서 은혜를 받아 우리 인생관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세계관이 변하여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참된 믿음 안에 거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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