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두 증인 1 (계 11:3)

nam씨 2023. 7. 22. 16:21

두 증인 1 (계 11:3)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 시간에 “두 증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계 11장의 두 증인에 대한 환상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했습니다.


두 증인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분은 10:8에 나오듯 하늘의 음성, 그러니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런 배경까지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은 곧 위로부터 입혀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즉 눅24:49에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셨고, 그 말씀대로 행2:2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이렇게 위로부터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어떤 분이실까요?

 

1. 성령은 증거의 영이십니다.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율법에서 둘이나 셋은 증인의 수입니다. 신17:6에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한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둘이나 셋이어야 합니다.


마18:16에도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눅10:1에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그러므로 두 증인은 성령께서 증거의 영이신 것을 나타내줍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성경을 떠나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떠난 것은 그 어떤 말일지라도 성령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성령과 거짓 영을 분별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증거의 영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따르는 표적으로 확실히 전하게 하시며, 각인의 마음에도 확신을 주십니다. 이 확신을 성령의 인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냥 증인 아닙니다. “나의 두 증인”입니다. 여기 특별히 “나의”라는 소유격이 붙은 것은 왜일까요?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9문을 보면 하나님의 신성에는 삼위가 계시고 삼위는 비록 각 위의 고유한 품성은 구별되시지만 참되시고 영원하신 한 하나님이시며 본질이 같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특징은 나오시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셨지만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고 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성령론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지만 때론 아버지의 영이라, 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러므로 “나의 두 증인”이란 성령을 암시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2. 성령은 권능의 영이십니다.


권세를 주리니” 이 말씀을 성령에 적용한다면 권세 있는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습니다. 행1:8에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가장 귀한 권능은 죄인을 효과적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권세입니다. [요리문답 30문]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령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31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우리를 설복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과 죄인의 구원과 완성에 이르기까지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신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우리 믿음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성령으로만이 진정한 천국의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은 회개의 영이십니다.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옷은 행실의 상징이며 굵은 베옷은 슬픔과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요나의 경고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욘3:5).


그런데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굵은 베옷을 입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성령께서 죄인에게 회개의 영을 불어넣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롬8:26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칼빈은 성령이 우리의 연약을 도우신다는 말씀을 “기도할 힘이 없는 자를 저절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그를 일깨워 노력하게 하시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즉 기도할 힘이 없는 성도에게 기도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일깨우시고, 간절한 하나님의 소원을 불어넣어 주시며(빌2:13), 기도를 힘쓸 수 있는 감동과 용기를 주셔서 연약한 성도가 기도를 힘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은 기도하기를 힘쓰는 성도를 도우시는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특히 회개의 영을 주셔서 성도로 하여금 참 믿음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우리 사람은 먹고 입고 살고 이런 의식주가 관심이지만 성령께서는 우리의 회개가 더 큰 관심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참 신앙으로 나아갈 때 육신의 문제는 다 더하여 해결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서 육신의 열매 맺는데 주력하지 말고 성령의 열매 맺는데 주력하시기 바랍니다.


4. 성령은 우리의 삶을 지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같은 기간인데도 어디서는 마흔 두 달, 어디서는 천이백육십 일, 이걸 년으로 따지면 삼년 반이라고 할까요? 모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상징하는데 각각 의미하는 관점이 다릅니다.


먼저 42달은 참 신자가 되기 전 육신의 속한 때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달은 어둡고 자꾸만 변하고 그 이미지의 특성 등을 종합할 때 세속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육신적인 삶이 42달 후에는 끝난다는 것은 3년 반 동안의 성령의 믿음 주시는 활동 때문입니다.

 

다음에 1260일은 기간은 42달과 같지만 매일매일 보다 섬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260일은 오늘이라고 불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양육의 은총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매일이에요. 날짜란 해를 중심으로 한 숫자요, 해는 은혜의 상징이란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해가 떠서 이루어지듯 매일매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시제는 항상 오늘입니다. 그래서 고후6:2에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은혜 받고 사는 데는 어제했으니까 오늘은 쉬고, 내일 열심히 할 계획이니까 오늘은 쉬고 그것이 아닙니다. 항상 오늘에 충실해야 합니다. 회개도 그렇고 믿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히3:12-13에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매일매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매사의 구체적인 삶에서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며 양육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현재 이 시간을 귀히 여기면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우리를 가르치시는 스승은 숨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심을 믿으시면 우리에게 역사하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귀한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위로부터 임하는 영입니다. 성령은 증거의 영입니다. 권능의 영입니다. 회개의 영입니다. 매일매일 양육하시는 지도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을 귀히 여기고 성령을 인정하며 늘 경외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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