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구원자 예수님 (계 1:12-13)

nam씨 2022. 8. 13. 20:06

구원자 예수님 (계 1:12-13)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 시간에 “구원자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계시록의 말씀에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적 발명품인 클로로프롬이라는 마취제를 발명한 사람은 에덴바라 대학의 심프슨 경입니다. 위대한 교수 심프슨 경에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발견한 것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훌륭한 발견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심프슨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기를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과연 명답 중의 명답입니다.
 

인생의 최고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나와 관련하여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복음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나에게 주님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계신가? 특별히 나의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심과 관련하여 어떤 분이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구원의 은총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교회를 통해 사역을 계속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2-13절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했습니다. 여기 촛대는 교회를, 일곱은 완전을, 금은 신성 혹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금촛대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에클레시아 신령한 참 교회를 가리키며 일곱이니 온전하고 참됨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금촛대 사이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은 교회 중에 함께 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에서 먼저 교회를 인정하고 계시는 모습을 봅니다. 촛대가 보통 촛대가 아닙니다. 일곱 금촛대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세우신 신령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무시하지 말고 교회 떠나지 말고 신앙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떠난 양은 우리를 떠난 양과 같아 이리에게 잡혀먹힐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양육하심을 떠난 사람 치고 바른 믿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부활 승천하시고 영광의 보좌에 계신 우리 주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인자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에 오셔서 일하셨던 인자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지금도 그 일을 위임 맡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엡4:11-12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여기 주시할 것은 "온전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이 온전케 하시는 사역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인의 수효 많음에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양육하셔야 합니다.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교회에 진리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딤전3:15). 하나님께서 교회를 선지자와 사도의 터 위에 세우셨다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의 터에 세웠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보존하고 전파하고 비진리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18:20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고, 엡1:23에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속죄의 모습입니다.
 

13절에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출28:4, 8, 레16:4 등을 보면 이 모습은 대제사장의 옷차림입니다. 그런데 왜 대제사장의 상징으로 에봇이나 흉패나 관 등 여러 모습이 있는데 그 중에 발에 끌리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나의 죄를 덮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옷이 발에 끌렸던 것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의 장소에서 부정의 상징인 인간의 발이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찬송하는 스랍 천사들 역시 두 날개로 발을 가렸습니다.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께서 자기 발을 덮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부정하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나타낸 것입니다. 특히 대제사장은 매년 7월 10일 대속죄일에 어린양의 피로서 백성의 죄를 덮는 일을 합니다. 죄가 있어도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끌리는 옷을 입은 대제사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속죄의 확신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왜 예수를 믿으면서도 구원의 진정함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속죄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공로를 모르니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양심의 가책으로 심령의 고통은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답답합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어둡습니다. 압박감을 느낍니다. 사탄이 역사합니다. 율법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사망이 왕노릇합니다. 보혈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을 뿐 아니라 이 시간에도 우리의 잘못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요일2:1에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아버지, 저 자녀가 방금 지은 저 죄도 제가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입니다." 하시면서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영원한 속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양심의 자유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전함을 이루었든 안 이루었든 상관없이 먼저 보혈을 믿음으로 진정한 하나님과 진정한 화평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잘못했을 때 회개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해결이 되었지만 하나님과 관계는 있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뉘우침과 죄송함을 가짐은 물론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화해와 보상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죄와 회개는 다릅니다. 정죄는 마귀가 주는 것이고 회개는 성령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되 정죄는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러나 기본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보혈의 공로는 우리를 영원히 속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의 추함을 바라보지 마시고 보혈의 공로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하며 진정한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다스려 주시고 계십니다.

 

다시 13절에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 모습은 왕의 모습입니다(단10:5-6). 그런데 왕의 모습을 면류관을 썼거나 홀을 쥐고 있거나 옥좌에 앉아 있거나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묘사할 수 있음에도 가슴에 금띠를 띤 형태로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슴은 마음의 위치로서 조직신학에서 보면 마음은 신앙이 깃드는 하나님의 좌소이면서 죄의 좌소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죄가 서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금은 불변의 상징으로 믿음이나 신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단순한 금이 아니고 금의 띠입니다. 띠는 자세나 통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가슴에 금띠를 띠셨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죄와 자아와 세상과 육신과 원수 사단과 세상의 무엇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 그런 일이 있을까요?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를 높이고 그 앞에 순복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왕으로 높이시기 바랍니다. 늘 경외하고 찬송하세요. 이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다스려 주지 않습니다. 왕이 지나갈 때 백성들은 자리에 비켜서 엎드리며 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실세가 아닙니다.
 

5공의 실세 전두환 소장의 착석 자세가 사진으로 난 것이 공개되었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사진에는 합참의장이나 육군 총장 쯤되는 사람 앞에 수십 명의 스타들이 의자에 직각으로 착석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팔을 의자에 걸치고 허리를 45도로 걸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전두환 소장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별 네개 단 스타지만 실세는 나야 나'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실세인 줄 알면 큰 일납니다. 예수님이 실세입니다. 예배할 때도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셨고 어머니와 같습니다. 교회의 다스림에도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벧전5:5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로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킵니다. 진실로 주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높여지는 곳에 다스림이 있고 구원의 즐거움이 있는 진정한 구원의 실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진정한 구주 인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십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의 구원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기관을 떠나지 말고 속죄의 확신과 왕이신 예수를 높이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구원의 실재를 경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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