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구원사역의 주관자 (계 1:4)

nam씨 2022. 7. 9. 14:41

구원사역의 주관자 (계 1:4)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이 시간에는 “구원사역의 주관자”라는 제목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본래 수도사였습니다. 수도사는 속세를 떠나 높은 담벼락 안에서 살기에 죄를 지으려고 해도 지을 수없는 사람입니다. 여자가 없으니 간음죄를 지을 수 없고, 사유재산이 없으니 도적질할 것도 없고, 명예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출세해야 할 필요도 없으니 인간적인 욕망의 노예가 될 리도 없습니다.

 

수도사는 오로지 하나님 앞에 기도와 명상를 하며 사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틴 루터는 수도원에서 죄로 고민했습니다. 그는 죄 때문에 부르짖으며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했습니다. 아무리 회개하고 고행을 해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죄를 자복하는 고해성사를 하루에 스무 번도 더했다고 합니다. 하도 고해성사를 많이 하니까 담당 신부가 너무 귀찮아  "루터야, 죄를 좀 모아 가지고 오너라"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루터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죄로 여겨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수도사들은 복음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속죄의 근거를 어디에 둬야 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루터가 살던 때의 로마에는 스칼라 산타라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 성당에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으실 때 올라가셨다는 계단이 있는데,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뜯어서 그곳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 죄 사함을 받고, 심지어 그렇게 하면서 기도하면 연옥에 있는 죄인도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루터 역시 한 계단씩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계단에 입을 맞추고, 주기도문을 외웠습니다. 하지만 계단을 다 올랐는데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마치 큰 빛을 보는 것처럼 말씀이 그의 마음에 들려왔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즉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의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공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며, 변화 역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 옛사람을 못 박으시고 의롭고 영화롭게 하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그까짓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오른다고 죄 사함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구원이란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고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하셨습니다. 이 깨달음은 그의 신앙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고 종교개혁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죄악 된 세상에서 날마다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어떻게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성결 성화 영화의 은총으로 자라갈 수 있는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고민을 가진 사람이라면 오늘 말씀을 주의 깊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하거나 혹은 꼭 해야 하는 고민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온전한 구원의 은총 가운데 자라갈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본문이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본문의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서술 속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서술은 그냥 존재 자체를 넘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하시고 계시며, 그리고 하실 것인지 그 내용이 깊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주관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 구원을 어떻게 주관하셨습니까?

 

1. 구원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전에도 계시고” 8절에는 “알파”라고 하셨습니다. 알파란 헬라어의 첫 문자를 따온 것으로 처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알파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진행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계속하여 메시아의 계대와 성경의 온갖 사건과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때가 차매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엡1:4-5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롬5:8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구원을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가 예수 믿기 전부터 우리를 위한 신앙 훈련을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우리를 향한 온갖 섭리적인 일들이 바로 하나님 앞으로 부르시고 또 양육시켜 오시고 계셨습니다.

 

즉 너희가 알지 못했을 때도 내가 너희를 위해 예수를 준비했고, 또 너희들을 부르기 위해서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복음의 눈으로 볼 때 읽기만 해도 복이 됩니다. 이처럼 전에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셨던 은혜로운 아버지셨습니다. 이것이 전에도 계시고가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2.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계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살펴보는 “이제도 계시고”의 구속사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향해 열심하시고 계십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은혜는 현재성입니다. 이미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조금도 쉬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많은 성도들이 현재 현실이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훈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섭리적인 환경을 원망하고 탄식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부르짖는 기도가 이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인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철회될 수 없는 온전케 하시려는 강력한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광야의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참 신앙인을 만드시려고 하셨습니다. 온갖 은혜와 연단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경외하며 더 순복하고 더 겸손하고 충성하고 감사하며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꾀를 부리거나 편하려고 하지 말고 온전히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은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장차 더욱 온전케 하여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이” 그리고 8절에 “오메가”라 했습니다. 오메가 역시 헬라어 알파벧의 마지막 문자입니다. 대체로 장차 오실 분은 재림하실 성자 예수님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성부를 장차 오실 분으로 소개한다는 점은 상당히 생소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이라는 소개 속에는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위한 구원사역의 주관자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처럼 장차 우리에게 더욱 온전히 함께 하실 것을 시사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3) 하셨습니다.


아직 심령의 만족이 없다면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셨고, 오시고 계시고, 또 온전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만 아니고 현재의 하나님도 되시고 미래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으로는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8절 하반에 “전능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기소개가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속 사역의 전 과정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사 능히 이루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이방종교와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사9:6에 탄생하실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러 탄생하시는 예수 이름을 이렇게 묘사한 것은 구속의 성취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심을 여호와의 열심히 표현했듯 성화 역시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열심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마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듯 불신자도 회개시켜 중생케 하실 것이며, 불신과 완악함의 이스라엘도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시듯 우리를 성화로서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영적 성숙을 하나님의 전능의 손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모는 실패가 없습니다. 반드시 시작하셨으면 이루실 것입니다. 스스로 말씀대로 살려다가 실망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프로필 하나하나가 우리 경건에 얼마나 중요한 지침을 주는지 감탄스럽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승리의 복음을 끝까지 믿고 늘 감사하면서 생명의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로 나를 주장해 주실 것입니다.

 

마치 출14:13~14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한 말씀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 말고는 필요 없던 것처럼 평소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함이 없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다 이겨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한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계시는 구원의 주관자이십니다. 내가 성취해야 하는 구원인 양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고 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과 그 복음을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 이루신 공로를 믿을 뿐 아니라 이 은총을 주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경배함으로 성령이 온전히 함께 하셔서 더욱 완전한 믿음 가운데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