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거하는 신앙 요15:7-10, 딤후 3:13-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에서 근처에 떨어진 포탄으로 말미암아 심한 화상을 입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곧 본토의 재향군인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치료 끝에 다행히 병사는 완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은 흉측할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는 기독교인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 상담하였습니다. 의사는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당신의 얼굴을 이전의 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혹시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진이 있어야 그대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의 옛 얼굴은 굉장히 못생겼거든요." 여기까지 말하던 병사는 그 순간 진료실 벽에 걸려 있는 워너 솔맨(W. Sallman)의 그리스도(Head of Christ) 성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선생님, 저 사람의 얼굴처럼 만들어 주시겠어요?" 의사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윽고 병사는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되었고 감사드리기 위해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제 제 얼굴은 저 사람의 모습과 똑같아요.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군가요?" "예, 저 그림 속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아, 그래요? 저도 그 분이 훌륭하신 분이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 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자 의사는 성경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분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외모가 예수님을 닮는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예수님에 대해 지식을 가진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통해 주님을 바로 알고 믿어 그 안에 거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안에 거하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여기의 '거하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나테' 는 지속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형의 말씀입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예수 안에 거하기를 계속하여 힘쓰라는 것입니다.
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생명적 관계입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도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생명이 있습니다. 성도는 평안할 때나, 큰 시련을 만날 때나, 형통할 때나,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강조하는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환경을 초월해서 참 평안을 누리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아무리 강한 대적을 만나도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면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고, 강하고 담대해 집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불신앙을 버리고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서울대법대 권오승 교수의 간증입니다. 권 교수가 아내의 전도를 받고 마음은 없지만 사랑에 이끌리어 교회에 다니는데 목사의 설교가 지성인의 귀에 어찌나 비현실적이든지 교회만 가면 시험만 잔뜩 들어 설교 가지고 아내와 다투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뜻하지 않는 무슨 일로 수련회 교육의 한 부분을 맡게 되었는데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모르는 것은 패스하기로 양해를 구하고 맡기로 했는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각 팀장이 자신이 은혜를 받은 경험을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만 거부하고 살아온 자로서 은혜거리가 없었기에 다급한 김에 생전 처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 모레 간증 시간 전까지 은혜를 주십시오. 은혜 받은 것이 있어야 간증하지요.” 그래도 은혜거리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명색이 명문대 교수가 굴욕 당하기 싫었습니다.
당일 새벽 기도회 때까지도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눈만 감고 있는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분명하고 확실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아들아, 지금까지 내가 너를 지켜준 게 다 은혜가 아니더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무런 은혜가 없다니…." 천둥 같기도 하고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음성 뒤로 자기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 '그래 그땐 참 다행이었지, 그 땐 아슬아슬했고, 운이 좋았지! 아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였구나! 하나님은 정말 나를 처음부터 사랑하셨구나! 나는 이미 하나님의 터치를 받은 사람이었구나!‘ 생각나면서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평생 그렇게 오래 울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있으면 맺는 열매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열매를 맺으라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주님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온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가 되고, 영혼을 건지고, 사랑으로 섬기며 살면서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가 주님 안에 거하여 살게 되면 누군가가 기쁨을 얻게 되고, 그의 언행을 통해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되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 확고히 거하는 자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본문 15:7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 하셨고, 서신서 본문 딤후4:14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했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외할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생명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성도가 성경을 가까이 하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여 살게 되면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복을 받는 자가 됩니다. 서신서 본문에 몇 가지 복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본문 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했습니다. 성경 곳곳에 기록목적이 나옵니다. 요 20:31에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했고, 요일 5:13에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했습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셨는지에 대해, 십자가와 부활이 믿는 자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합니다. 본문 17절에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여기의 '온전케 하며' 의 헬라어 '아르티오스' 는 '완전히 적합한' 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죄를 책망하고,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줌으로 온전한 자로 세워줍니다.
뉴잉글랜드의 선장이 이끄는 배 한 척이 인도로 가는 도중에 말레이시아 상인을 태우게 되었습니다. 이 상인은 부자였는데, 어느 날 선장에게 성경을 한 권 달라고 말합니다. 선장은 상인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놀라 물었습니다. "무엇에 쓰려고 성경을 달라고 합니까? 당신은 영어를 읽지 못하잖아요?"
그 상인은 그래도 성경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나는 거래하기를 원하는 영국인이나 또는 당신 나라 사람들을 만날 때, 이 성경을 그가 다니는 길에 놓아두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볼 겁니다. 만일 그가 이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읽으면, 그가 나를 속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성경을 아무런 관심 없이 대하면서 함부로 집어 던지거나 또는 성경에 대해 불경스러운 말을 하면 그는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니 더 이상 그와 거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인은 상대방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인간됨을 알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셋째, 선한 일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본문 17절에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본문의 원어 뜻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행함이 없는 지식이나 믿음은 헛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되면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선을 행함으로 이웃에게, 교회와 사회에 유익을 끼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선행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16세기 구라파 교회가 암흑과 타락 속에 있었던 이유는 성경을 평신도 성도들이 읽는 것을 금지하였고, 사제들도 가지고 있던 성경도 읽기 위함보다는 보석으로 장식한 장식품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 마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여 지킬 때, 말씀을 통해 주신 약속 대로 복을 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에 거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본문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요약 하여 ‘하나님을 사랑 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 하라.’고 하셨습니다. 더 간략히 요약하면 ‘사랑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 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방언, 예언, 산을 옮기는 큰 믿음, 구제,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희생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유익이 없다고 했고, 성도에게 항상 지녀야 할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더 이상 믿음도 필요 없고, 소망도 필요 없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사랑은 영원이 지속 됩니다.
우리의 속죄도, 구원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일만 달란트의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빗을 탕감 받은 자와 같습니다. 사랑에 빗 진자들입니다. 호세아서 11:4에 보면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니면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생물학자 배스티언(S. L. Bastian)은 작은 나뭇가지나 덤불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류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 곳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해서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어느 순간 어미 거미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미 거미가 어떻게 새끼들의 동요를 금방 알아채는지 주의를 기울여 살펴 본 결과, 이 거미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새끼들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서 경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각 새끼 거미에게는 가는 비단 줄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이것이 어미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데,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들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로 새끼들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보호하러 달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섬김과 희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 하시어 생명까지 희생 하시며 몸과 피와 물을 다 쏟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요13:34) 요일 4:16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과 함께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믿노라 하면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외면한다면 그는 제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 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세상은 점점 더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더 사랑하며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안에 거하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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