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설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19-29)
오늘은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라고 할 수 있는 부활절입니다. 부활 영광의 첫 열매를 맺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 00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인생 가운데 부활 영생의 소망이 충만하여, 예수님처럼 순종하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예수님처럼 복음 전하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시다가, 부르시는 그 날에 여러분도 부활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시는 영생면류관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당한시기 전에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예언의 말씀을 남기셨고, 말씀하시던 그대로 부활 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완벽하게 깨트리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에게 부활 영생의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순종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죽음으로 얻어낸 고귀한 희생의 결과물이 ‘부활 영생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지만, 살아나시기 전에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실 수 있었습니다. 죽어야 살아난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우리 인간의 운명은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는 히브리서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유한한 삶이 주어져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끝 지점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입니다. 죽음 뒤에는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예수님이 만민 앞에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죽음 이후에 어디로 가게 되는지에 대해 반드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판단의 결과는, ‘영생(영원한 생명)’이냐, ‘영벌(영원한 형벌)’이나 둘 중 하나로 나눠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영생(천국)으로, 어떤 이는 영벌(지옥)에 처해 진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항상 무섭고 떨립니다. 때로는 기분 나쁜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어느 유명인이든지, 아니면 제가 아는 가까운 지인들 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셨을 때, 분명히 고인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돌아가셨는데도, “천국에서는 고통 없이 평안히 사실거야, 좋은 데로 가셨으니 걱정 하지 마, 착하게 사셨으니 평안하게 지내실 거야, 천국에서 조금만 기다려요 저도 곧 만나러 갈게요…….” 이런 말들을 할 때, 너무나도,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만약에 이런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① 법 없이도 살만하다고 주변에서 칭송 받을 만큼 진짜로 착한 일 많이 한 사람,
② 남에게 한 번도 피해 끼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이웃을 정성으로 섬기고
도와주며 살아간 사람,
③ 많은 돈으로 구제 사업을 해서 배고프고 병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
과 용기를 준 사람,
④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부러워할만한 유명
한 스타의 인생을 살아간 사람,
⑤ 뭇 역사가들의 칭송을 받을 만하게 인류발전을 위해 혁혁한 업적을 세운 사람,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간 것처럼 보이는 이런 사람들도 예외 없이 다 죽었고,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결과까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너무나 좋아 보이는 객관적인 사실이 있음에도, 이 모든 행위와 평가들은 영생을 얻는 판결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는 기준이 아닙니다. 유명하다, 권세를 누렸다, 부자였다, 착하게 살았다, 좋은 일 많이 했다, 등등 이런 인간의 눈에 보이는 행위들에 대한 평가로는, 어느 누구도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 이후로 가장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로 불렸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철저한 무신론자 옜습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비틀즈’, 그 멤버의 리더 격인 ‘존 레논’도 무신론자(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함)였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이건희 삼성회장은 원불교 주관으로 장례를 치렀고, 49재를 천년고찰 이라는 절에서 치렀습니다. 애플의 창시자 고, ‘스티브 잡스’도 불교 신자였습니다. 아바타와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모건 프리먼’도 무신론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알고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유명 인사들 중에 무신론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무종교의 비율이 49%, 적극적인 무신론자는 약 6% 정도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의 국민이 죽음이후의 심판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인물들을 설명 드린 것은,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기독교인이냐, 반기독교이냐, 이분법으로 나누기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심판의 시간을 예고하시고, 우리가 그 심판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 기회의 시간이 바로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들입니다. 우리 인간이 한번 반이라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음 이후의 심판에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시간이 곧 부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을 통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성경 몇 구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독생자의 이름)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 “내(그리스도 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곧 아버지가 계신 하나님의 나라)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아멘.
너무나 명확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고,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유일한 자격조건이 됩니다. 오직 부활 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분명한 진리임을 믿기 때문에 오늘 부활절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 믿음을 지켜가기 위해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그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판단 받을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했고, 27절에는,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모든 심판의 권한(권세)이 아들이신 예수님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죽음 이후의 영생, 영벌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권한은 오직 예수님만의 특권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거부와 혐오의 말이 되겠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됩니다.
심판자이신 예수님에게 실로 엄청난 권세가 있습니다. 21절을 읽어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멘.
바로 죽은 자를 다시 달라지는 부활의 권세가 우리 예수님에게 주어졌습니다. 막강한 이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이 부활절 예배에 나아오신 00교회 모든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24, 25절입니다. 나에게 이 말씀을 주시려고 오늘 이 자리에 나아오게 하셨구나. 나의 인생에 가장 큰 기회를 주시는 부활 영생과 소망의 말씀임을 굳게 믿으시고 다 함께 읽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다시 살리시는 권세 중의 권세를 지니신 심판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이 놀라우신 소망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이 말씀이 여러분의 깊이 잠들어 있는 영적 빈곤의 잠을 흔들어 깨우고, 연약한 믿음의 재 각성이 일어나도록 성령의 강력한 일하심으로 역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4, 25절 이 말씀을 오늘 설교 이후에 그냥 덮어 두지 마시고, 4월 한 달 내내 읽고 또 읽고 깊이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담아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제 권면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행하는 분들에게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 하면서도 늘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불안합니다. 부담감이 너무 큽니다. 무섭고 떨립니다. 그럼에도, 뒤 돌아서면 주님을 바라보고, 음성을 듣는 일에 소홀합니다. 일이 우선이고, 내 시간이 항상 우선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뿐입니다. 현실은 그 길을 따라가지 않고, 그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그 생명이 최고의 가치가 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성령을 받은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육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전반부에는 육신의 일과 성령의 일을 잘 대비해 놓았습니다. 먼저 육신에 속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8.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결국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신이 아닌, 영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계속해서 로마서 8장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아멘. (롬 8:9-11) 아멘.
앞서 예수님에게는 다시 살리시는 권세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 안에 영, 곧 성령이 있어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게 됩니다. 우리 안에 영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도 아닐 뿐더러, 다시 살아나지도 못합니다. 이 말씀을 조금만 넓게 보면, 우리가 죽은 후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곧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곧 성령님과 동일한 본체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몸 안에 성령이 있는지 없는지를 단 번에 판별해 내십니다. 마치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처럼, 벌거벗은 것 같이 하나도 숨길 수 없이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 16절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심판대 앞에 서서 내 스스로,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나를 증언해 주실 때, 심판자이신 예수님은 그 사실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지금 당장 죽으면 천국 갈 자신 있습니까?” 물으면, 늘 망설여지고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한 틈을 공격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구원 받지 못했음을 계속 의심하게 만들고, 성령과 동행하지 못하게 방해하여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살도록 부추기고, 자꾸 죄를 들추어내어서 믿음을 연약하게 만듭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육신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더 바쁘게 만들고, 더 즐기게 만들고, 더 나태하게 만들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방해하고 계속 죄를 즐기게 만듭니다. 심판의 날이 정말 가까이 왔음에도 애써 외면하게 만듭니다. 급기야 인생의 마지막 죽음에 까지 삶을 허비하게 만들고, 사탄은 우리를 가차 없이 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멀어지게 만들어서 부활 영생의 소망을 빼앗아 가는 것이 사탄의 궁극적인 전략 전술입니다.
여러분 절대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선택 받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의 나라가 예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지난날의 망각을, 나태함을, 육신에 생각에 빠져 있음을, 죄에서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음을, 단번에 깨트리시는 말씀을 선포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멘,
사망에서 생명으로 완벽하게 옮겨진 존재가 바로 나이고, 그것이 나의 정체성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자가 누구냐, 바로 나입니다. 내가 바로 부활의 주인공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은 자기 자신의 영혼에게 이렇게 선포 하십시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거룩한 성령의 사람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게 될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다!” 아멘. 아멘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허락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적인 이 사실은, 변하지도 않고, 변경되지도 않고, 철회 되지도 않습니다. 영원히 나의 인생가운데 살아 역사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이 모든 소망을 다 빼앗기고, 까맣게 잊어 버렸다면, 다시 찾고, 반드시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 회복의 날이 오늘 부활절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던 대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심령에 부활로, 영생으로, 소망으로, 충만하게 임하신 줄로 믿습니다. 다시 우리를 붙드시고 영생의 나라로 동행하시고, 인도해 가실 줄 믿습니다.
부활 영광을 받으시고, 영생의 소망을 주시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찾아오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경배로 맞이하시고, 다시는 소망 없는 자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서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 하지 마십시오. 부활 영생의 소망만이 우리 인생의 최대 성공의 길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 모두를 다시 믿음의 자리로 불러 주고 계십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은 앞으로 남은 각자의 인생 가운데, 오직 예수, 오직 부활, 오직 영생을 소망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당당하게 걸어가시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시고, 다시 살아나리라는 아들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품어 주셔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그 날까지 오직 부활 영생 소망의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활 영생의 소망으로 우리를 다시 회복 시켜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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