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의 삶(요일3장1-3)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 신자들이 믿는 믿음의 최종적인 목표는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생활에 적용할 때 하나님과 만나는 신비한 체험들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하바드 대학원의 원목으로 있었던 켈리 먼로(Kelly Monroe) 목사님이 편집한 「하바드 천재들의 하나님 이야기」에 보면 하바드 의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마이클 양(Michael Yang)의 글에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 당대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제한을 두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그의 임상경험을 통하여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러한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참 좋은 것이라고 해도 여전히 거울로 보는 것같이 제한적이고 희미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 나라에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믿음의 창문을 통하여 그 안의 세계를 들여다 볼 때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흥분이 생기고 큰 기대감이 생기며 우리 일상생활에 큰 활력과 기쁨을 주게 됩니다. 저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믿음의 창문을 통하여 이 세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하게 되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 수밖에 없고, 동시에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 본문을 통하여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이 본문과 이 설교의 주제입니다.
요한1서는 삼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 책입니다. 요한1서는 요한복음의 속편으로 요한복음에서 묘사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구원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1서를 읽을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속적으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의 삶의 특성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하는 본문은 특히 우리 신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므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아, 어떤 사람이 되었으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이며, 이 미래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과거 : 하나님의 사랑(3:1)
사도 요한은 구원을 얻은 사람의 삶의 성격(character)이 어떠해야 하느냐를 설명하면서 과거에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먼저 지적하고 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요1서3:1)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때의 상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2-3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을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이러한 상태에 있었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을 보여주셨습니까?
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사도 요한이 쓴 이 편지에도 여러 번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말씀이 요한1서 4:9-10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보내어 주신 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아시지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사도 요한은 이 사랑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사랑과 그 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말하면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사랑"(ՐՏՔՁՐՇՍ ՁՃՁՐՇՍ)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어떤 나라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것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이 어느 나라의 사랑인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은 사도 요한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놀랍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NIV 성경은 감탄문으로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How great is the lov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을까요? 요한은 그 이유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독생자를 보내어 주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원래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것이 우리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현재 : 하나님의 자녀(요1서3:1-2)
그리고 이 사랑은 단순히 과거 역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에도 동일에게 적용됩니다. 과거에 이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지금 현재에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도 요한은 요한1서 3:1-2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
이것은 장차 얻게 될 무엇이 아니라 현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현재적인 축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받는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요한은 이 본문에서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이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만난 경험이 없으면 하나님의 자녀와 그 자녀 됨이 누리는 은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점은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가족들의 주소록을 새벽마다 읽고 기도하면서 참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만남을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믿음이 드러나야 할 순간에 믿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질병이 들었을 때, 결혼문제가 있을 때, 결혼 이후에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할 때마다, 어떤 희생과 책임을 요구받을 때 믿음은 자취를 감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면서 "이 분들이 이론적으로 성경공부를 통하여 알았던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만나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정적인 만남의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한1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생을 확신하고 경험케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3. 미래 : 재림의 소망(요1서3:2)
이제 요한은 우리가 받은 현재적인 축복에 이어 우리가 미래에 받게 될 축복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1서3:2)
우리가 장래에 어떤 상태로 변화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 때에는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처음에 오셨을 때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지만, 두 번째 오실 때에는 심판의 주로 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재림 교리는 신약전체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켜 "우리의 산 소망"(벧전1:3)이라고 불렀고,
바울은 "복된 소망"(딛2:3)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이 그를 볼 것"(계1:7)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교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사는 역사의 종착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재림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관입니다.
화란의 유명한 신학자 홀베르다(B. Holwerda)는 역사는 오직 하나의 역사만 있을 뿐이라고 하였고, 그 역사는 구원역사를 가리키는데 그 역사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는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이므로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복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날이 반드시 역사 가운데 임하게 될 줄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은 이 소망에 대하여 아주 흥미 있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이 말씀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주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을 줄을 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머리와 지체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의 상태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보면서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까?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을 대면하며 교제할 수 있었습니까? 예! 그때에는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어기고 죄를 범함으로 상태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었고,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상태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교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요 소망입니다. 지금은 믿음의 창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보고 있지만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주님처럼 변화되어 주님이 계신 그대로, 주님의 존재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4. 재림의 소망을 가진 삶 : 깨끗하게 사는 삶(요1서3:3)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는 일은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활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칫 이러한 재림의 사상은 현재 이 세상의 생활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 교회 안에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재림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경향을 가지거나, 이로 인하여 잘못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이 미래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현재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깨끗하게 단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재림교리와 함께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1서3:3)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재림으로 인하여 주님과 같이 있게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단장합니다.
여러분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주님과 같은 상태에서 영원히 그와 교제하게 되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의 삶을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본문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하는 의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 7:1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자."
이러한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볼 때 이 의미는 신자의 윤리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재림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거룩한 윤리적인 생활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깨끗하게 한다"(֠ՃՍՉՆՙ)라는 동사는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그의 삶을 깨끗하게 단장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을 확신하는 방법이요, 또한 그 생명을 경험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함께 연구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과거에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던 자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될 수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결과 우리는 지금 현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권을 누리고, 그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미래적인 축복인데 주님이 재림하시면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며 교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주님과 재림과 함께 주님의 존재모습 그대로 보게 될 소망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처럼 깨끗하고 거룩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될 이 나라를 소망가운데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세상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재림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살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세상에서 자신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단장하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설교의 결론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문학을 가르쳤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로 알려진 C. 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라는 책에서 끊임없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자와 이 세상의 삶과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을 인용함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현대인이 생각하듯이 일종의 도피주의나 희망적인 생각의 형태가 아니요 기독교인이 가진 소망 가운데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이 세상을 위해 큰 일을 한 기독교인들은 다가올 세상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회심시켰던 사도들, 중세시대를 건설한 위대한 사람들, 노예제도를 폐지한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모두 세상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세상에 대하여 그다지 생각하지 않게 된 이후로 기독교인들은 그 일에서 효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현세에서 지극히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를 목표로 삼으십시오. 그리하면 이 세상을 덤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목표로 삼는다면 두 가지 모두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있는 돈과 명예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재림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게 될 완전한 하나님 나라입니까?
(우리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독생자를 보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주님과 같이 변화되어 영원히 교제하게 되는 소망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깨끗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 시대정신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어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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