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히 8:1-13)
기독교 신앙의 토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있습니다.('성경'이란 해방 전부터 쓰여진 말이고 '성서'는 해방 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그 차이점은 없습니다.) 이 성서는 두 가지 책, 즉 구약서와 신약서로 되어 있습니다. 유대교나 기독교는 성서를 계약서(언약서, covenant)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신구약성서(The Old Covenant and The New Covenant) 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지으심을 받은 사람 사이에 맺어진 계약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서를 다른 종교에서처럼 경전이라 하지 않고 언약서(계약서)라고 합니다. 영어 성서를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로 표기하게 된 것은 계약(언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베리트"를 라틴어로 "테스타멘툼"으로 번역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구약(The Old Testament)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언약으로 이를 히브리서 오늘 본문에서 "첫 언약", 또는 "옛 언약"이라 부르고 있으며, 신약(The New Testament)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맺어진 언약으로 오늘 본문에서 "둘째 것", "더 좋은 약속(언약)"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언약을 맺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 사건이었습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여기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5,6절)는 말씀에서 "내 언약"은 십계명과 율법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언약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확실히 하기 위해 언약식을 가졌습니다. 먼저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백성에게 언약서를 낭독하여 듣게 합니다. 언약서를 다 듣고 난 백성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며 언약을 하면 모세가 백성에게 짐승의 피를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선포합니다.
"(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6-8)"
이렇게 짐승을 각을 떠서 피를 흘리고 그 피로 언약식을 갖게 한 이유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자는 짐승과 같이 피를 흘리는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상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해 너무나 불성실했으며 남편을 배신하고 간음한 여인처럼 언약을 파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무효화하고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을 예언하게 됩니다.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31-34)"
이 구약의 말씀을 오늘 본문 8절 이하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날이 이르리니'(8절), '그 날 후에'(10절) "새 언약을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 시대, 곧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는 신약 시대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란 메시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양으로 흘리신 피로서 맺어지는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을 말합니다. "새 언약" 즉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생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에 대한 언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서는 예수의 삶 전체가 단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는 자기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새 언약"을 맺기 위한 죽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베푸신 성만찬을 통해 이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14:24)"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기 때문에 온 인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동시에 그 언약에 기록된 모든 조건을 십자가를 통하여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약서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성취된 언약의 은총에 참여하여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다 지켜야만 했었는데 다 지키지 못하므로 그 언약이 파기되었고 그 언약이 무효화되었지만, 신약시대의 인류는 "첫 언약", 즉 "옛 언약"(구약)을 지킬 필요가 없고 다만 "새 언약"을 성취시키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로 인하여 나를 대신하여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에게 요구되는 모든 언약 내용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28-30)"
스위스에서 실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날 관광버스가 손님을 싣고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관광객들은 모두가 지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고개를 막 넘어가려던 순간, 운전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당황한 운전사의 떨리는 자동차에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펼쳐진 다섯 개의 급커브 길이 보였습니다. 버스에 점점 가속이 붙자 눈을 뜬 관광객들은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 채고는 소리를 지르며 이성을 잃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길을 하나 둘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커브길을 통과하였고 모든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이젠 마을길을 지나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 차가 자연히 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멀리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계속 울려 피하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피했지만 아직 한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관광객을 살려야 할지 저 어린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그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예상대로 건너편 언덕에 멈춰 섰습니다. 운전사는 차가 서자마자 그 아이에게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살인자!", "살인자!"라고 하며 운전사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품에 고개를 묻고는 아이를 안은 채 흐느끼며 옆의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순간 어느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만 하세요. 소리 지르지 말아요. 저 아이는 바로 저 운전사의 듣지 못하는 아들이란 말입니다...." 야유를 퍼붓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경적 소리에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어찌 자기 아들인줄 몰랐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새 언약, 즉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언약의 은총 아래 살게 됩니다.(12절) 그런데 첫 언약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다 새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모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언약을 어길 때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려 죄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유효할 수 있도록 선지자들은 부지런히 언약을 상기시키고 가르쳐야만 했었습니다. 이렇게 첫 언약에는 모세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등의 중보자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돌비에 새긴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에 성령을 부으셔서 성령으로 육의 심비(心碑), 즉 마음판에 새기신 것입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3)
그리고 그 언약을 생각나게 하고 가르치시는 분이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직접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새 언약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능히 볼 수 있게 하고 알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요14:17) 그래서 성령으로 마음판에 새겨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들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얼마든지 우리로 하여금 새 언약을 따라 살게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언약을 어길 때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예수의 십자가 피로 새 언약의 은총아래 사는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12절) 이 말씀의 원 뜻은 '죄인에게 그 죄에 대한 것을 책임지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기억지 아니한다' 는 뜻은 '기억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담당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희생양이 되시는 예수에게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게 하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의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새 언약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범죄할 때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 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요 5:14, 갈 4:8,9). 구약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 언약에 따른 제사의식과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나, 새 언약에 속한 신약시대의 성도는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약속하신 성령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되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롬8:2) 구약시대에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높이 매달아 그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치료받아 살 수 있게 된 것과 같이(민 21:9) 새 언약에 속한 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치명적인 영혼의 질병이 치료를 받아 구원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모세의 높이 들려진 놋뱀은 상징적으로 십자가를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구약시대에 높이 들려진 놋뱀은 쳐다보아도 좋고 안 쳐다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쳐다보지 않으면 죽은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십자가는 바라보아도 좋고 안 보아도 좋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 즉 <더 좋은 언약>은 인류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도 좋고 안 맺어도 좋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온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새 언약"의 은총 아래 사느냐 그 은총을 거절하느냐 하는 삶과 죽음이 달려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시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여러분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는 영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믿으시는 성도 여러분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약 > 히브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으로 내려온 하늘, 하늘에 앉은 우리 히 8:5; 엡 1:10 (0) | 2021.05.08 |
---|---|
하늘가는 유일한 길 (히 9:1-28) (0) | 2021.05.08 |
더 좋은 소망 (히 7:1-19) (0) | 2021.04.24 |
복 받은 사람 히브리서 6장 13-20절 (0) | 2021.04.21 |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는것 히 6:9-12 (0) | 2021.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