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사람 히브리서 6장 13-20절
찬 송 : 88장. 188장. 362장. 429장.
기독교는 입만 열면 복달라고 조르는 기복종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만 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복을 이야기 합니다. 고등종교는 물론이거니와 샤머니즘이나 미신도 복을 말합니다.
복이란 편하고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혼도, 육신도, 환경도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복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주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저주를 구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복은 어느 한가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도 복을 받고, 육신도 복을 받고, 환경도 복을 받는 통전적 복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 3서 2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도 환경도 육신도 잘 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복을 원하고 기대하지만 뜻하는 대로 복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저주 받기를 원하겠습니까? 누가 복을 마다하겠습니까? 다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잘 살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가 몸부림치고, 앙탈을 부리고 보챈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을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과 그 복이 어떤 복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확실한 복.
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명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라고 했고, 14절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 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하나님보다 더 큰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기의 이름을 걸고 복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복이라면 틀림없는 복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숱한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약속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을 바꾸고 태도를 바꿉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창세기 12장, 14장, 15장, 18장, 22장, 24장에 반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대로 그의 후손이 복을 받았고, 지금도 그들이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확실한 하나님, 틀림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 역시 반드시 틀림없이 이루어 주십니다.
누가복음 1장 45절을 보면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으면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실 줄 믿고 기다립시다.
둘째, 풍성한 복.
14절을 보면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같은 말이나 단어를 세 번 반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표현할 때 쓰는 어법이었습니다.
이사야 6장 2~3절을 보면 천사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세 번 반복해 하나님의 거룩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개 두 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 번 반복해 연속적으로 복주고 번성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복 주셔도 감사하고 한번만 번성케 해 주셔도 놀라운 일인데 두 번씩 거듭 주신다는 것은 넉넉하게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세계는 부족한 세계입니다만 하나님의 세계는 풍요의 세계입니다. 신명기 7장 13절을 보면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라고 했고, 에베소서 2장 4절을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모든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석유 자원도 언젠가는 바닥이 날 것이기 때문에 대체연료인 핵에너지나 태양열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빙하가 녹아내려 바다 수면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구가 물에 잠겨 들고 있습니다.
무절제한 지하수 개발로 지하수가 메말라 언젠가는 물 떨어진 지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기상 변동으로 일조량이 줄고 태풍, 홍수, 혹서, 혹한 등으로 농사가 안 돼 식량 위기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모자라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태양열이 식듯 사람들의 사랑이 점차 식어갑니다. 그 결과 도처에서 전쟁과 살상, 시기와 분쟁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제 모든 것이 모자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넉넉하고 풍성합니다. 신명기 28장은 복 받는 비결과 저주 받는 비결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키고 행하면”이라고 했고, 6절에는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8장 15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행하지 아니하면”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16~) 들어와도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19~)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약속을 지키면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 변치 않는 복.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라고 했고, 18절에서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변한다고 하면 그것은 순금이 아닙니다. 녹쓴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하루나 이틀 행복한 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체내에 마약 성분이 있는 동안은 환상적 기분에 빠져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경련이 일어나고 발작을 하게 됩니다.
50대 초반의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의 교회 집사였고 본인은 교회만 출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술 마시고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져 교회에 나옵니다.
성령의 힘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술김에 교회에 나옵니다. 술 깨면 교회에 안 나옵니다. 술 취하면 교회에 나오고 찬송을 부릅니다. 술김에 부르는 그의 애창곡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입니다. 그리고 술 취해야 기도를 잘합니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목사더러 술 마시러 가자며 졸라댑니다.
술이나 마약기운은 사람을 병들게 할 뿐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 것들 역시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만족도 없습니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던 기정진(奇正鎭)이 남긴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처세유위귀(處世柔爲貴) - 세상을 사는데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며
• 급지상사완(急地常思緩) - 급한 곳에 이를 때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라.
• 안시불망위(安時不忘危) - 편안할 때 위태로웠던 일들을 잊지 말라.
인생이란 위기도 있고 평안할 때도 있습니다. 급한 일도 있고 느린 일도 있습니다.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때마다 필요한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변함없이 복을 주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을 보면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일마다 때마다 복과 평강을 주실 수 있습니다.
시편 2편 12절에서 시인은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고, 시편 84편 12절에는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는 사람들….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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