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려면 빌 3장10-16
이민아 목사는 ‘땅에서 하늘처럼’ 이란 책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이어령 전 장관의 딸이기도 한 이민아 목사가 위암 말기 환자로서 투병하면서 자신의 영성고백을 적은 내용입니다. 그녀는 들어가는 글에서 부활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그동안 저의 질병을 여러 번 고쳐주셨기 때문에 또 고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그 치유를 온전히 다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내 몸이 죽는다 해도 저는 예수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죽음은 이미 권세를 잃었고 저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제게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주신 승리가 관념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입니다. 아직 몸이 불편한 가운데 이 책을 펴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암 같은 질병의 선고를 받고 삶이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절망에서 신음하는 사람, 영과 육의 부서짐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분들, 소망을 잃은 분들에게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비록 떠났지만 삶과 죽음을 넘어서 부활 생명에 이른 삶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고 장차 부활에 참예할 것을 믿을 때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에 더 힘쓰게 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려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믿음의 승리자 입니다.
바울 사도는 서신서 본문 빌3:11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했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계신 삼층 천의 하늘나라를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 곳은 속히 그 곳에 이르기를 소망할 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 영광의 부활에 참여하고자 힘을 다하는 사람이었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고난과 희생을 당한다 할지라도 참고 견디겠노라고 고백합니다.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시스타스’(anasistas)로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으로부터 일어나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부활은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부활이 사라지면 신앙도 사라지고 부활이 확실해지면 신앙은 점점 강해지게 됩니다. 천국의 소망도 확실해 집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확고해서 간증이 되고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서 마11:12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실 때에 청중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여기‘침노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비아조"란 말로서, 이 말의 의미는 ‘힘을 사용해서 어떤 것을 차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이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가 마 11:12과 눅 16:16인데, 이 경우 하나님 나라를 "성을 정복하는 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전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에 제한되어 있었으며, 소수의 이방인만이 그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기생 라합, 룻 등). 세례 요한 때까지 이 나라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점령하기 어려운 견고한 성처럼 들어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세례 요한 때부터 점령하기가 쉬운 성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는 자기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그 죄가 용서 받았음을 확인해 주는 세례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때부터 자기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점령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자기의 죄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강한 자는 차지할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누가는 이 구절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침입한다.’는 말이 본문 마 11;12에서 사용된 ‘비아조’란 말입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 이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했고, 주님은 요한이 말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를 지시므로 죄 사함을 얻을 길,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렬하게 구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을 "강제적인 행동으로 묘사하셨을까요?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이라고 하셨고, 그 길은 협착하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쉽고 편안한 넓은 문, 넓은 길을 원합니다. 이 본성을 극복하려면 믿음의 선한 싸움에 힘써야 합니다. 야곱이 얍복 강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며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내용의 기사가 있습니다. (창32:24-32) 그 때에 야곱에게 준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축복을 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결국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사건은 오늘날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강렬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빌3:12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했습니다. 그는 1차, 2차, 3차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제 로마옥중에 갇혔습니다. 그는 일생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전파를 위해 살았던 자로 그 만큼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많이 일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을 아직도 자기는 완성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오직 예수님께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신앙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므로 구원을 받는 하늘 백성이 되었지만 아직 완성 된 게 아닙니다. 천성을 향하여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이미 구원 얻었다.’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의 발걸음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과거는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본문 빌3:13-14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했습니다. 과거 세상에서 이룬 성공이나 영광도, 실패나 상처도 다 잊고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달려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교통사고로 숨진 비운의 다이애나 왕비의 아들입니다.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된 그는 언론의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과거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어머니와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거에 얽매여 울고 있기에는 너무나 인생이 짧습니다.’라는 짧은 응답으로 인터뷰의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본문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했습니다.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의 자기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도와드릴 생각이 나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고랑은 구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쟁기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단다.."고 하셨습니다.
소년은 그 말씀을 마땅히 여겨서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에 목표를 두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프라 나무에 목표를 두고 밭을 갈았더니 비로소 똑바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물질, 명예, 권세 세상 연락 등, 일시적인 것, 유동하는 것,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세상적인 것들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고,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국과 상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려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성도의 싸움은 세상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영에 속한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싸움에는 잠깐의 기쁨과 영광이 따르지만 금세 허무하게 되고, 시든 꽃처럼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소년 시절에 그의 가정교사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왕자께서는 임금이 되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희랍을 통일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겠습니다." "그 뒤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점령할 것입니다." "그 뒤에는?"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겠습니다." "인도 점령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쯤이면 저도 죽겠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자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돌아다니다 죽으나, 지금 죽어버리나 별로 큰 차이가 없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가치 없는 것에 목표를 두는 인생은 가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알렉산더는 어렸을 때의 자기의 목표대로 왕이 되어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인생의 목표였는지... 알렉산더대왕은 그가 죽을 때 유언을 하기를 자신의 장례식 때 자기의 빈 두 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아 백성들에게 인생의 허무를 알게 하도록 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대왕은 나이 33세에 요절을 하였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원숭이에게 물려 감염이 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성도의 싸움은 하늘에 속한 영원한 영광,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얻기 위한 신령한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하신 말씀 중에는 싸워 승리하는 자가 차지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천국은 죄와 세속과 유전과 마귀와 자신과 유혹과 위협과 싸워서 이기는 자들의 소유가 되며, 역동적인 믿음으로 고난과 핍박을 이기는 자들의 것이 됩니다. 주께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주시는 한결 같은 약속은 모두 이기는 자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천국도, 상급도, 칭찬도, 면류관도, 영광도 모두 이기는 자들이 받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 면에서 자주 신앙을 경주자로 비교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5)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딤후 4:7-8)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 사도의 삶은 실재로 경주자와 같은 삶의 자세로 선한 싸움을 싸웠고, 숫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성도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활 신앙으로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비겁함과 두려움에 벌벌 떨던 베드로였지만 부활 신앙을 가지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담대해 져서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3;13)하며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 했습니다. 그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도들과 앞서 간 성도들을 본받아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도록 주님의 권능을 덧입고 이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려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믿음의 승리자 입니다.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천국의 영광스런 부활에 이르려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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