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비움과 낮아짐의 은혜 빌2:1-11

nam씨 2018. 2. 24. 11:00


비움과 낮아짐의 은혜 2:1-11 20:20-28,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요, 큰 인물인 고당 조만식 선생은 교회의 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산정현교회 장로님이시기도 한 분입니다. 산정현 교회 목사인 주기철 목사님과 사제지간이 되고 주 목사님 교회의 장로로 시무하시던 분으로 조 장로님이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주 목사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조 장로님이 예배시간이 지나도록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늦게 교회에 들어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시오."하고 호령을 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자존심과 인격의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여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장로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예배를 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서서 예배를 드리시는 장로님, 겸손한 신앙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신앙은 예수님을 본받은 겸손한 신앙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주는 큰 인물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형식적인 신앙의 사람이었다면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 목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교회의 큰 파문을 일으키는데 앞장섰을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비움과 낮아짐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비움이 있어야 소중한 채움이 가능합니다.

본문 빌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했습니다. 여기 비우셨다라는 단어는 성경언어로 케노시스(Kenosis)인데, 이 말은 얼굴을 깎았다는 뜻입니다. 얼굴의 가죽을 벗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조각가가 칼이나 정으로 조각할 돌을 깎아내듯이,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깎아내셨다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깎아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비움이라는 말은 스스로 체면을 깎아 내렸다는 뜻이고, 스스로 자기의 명예를 벗어던졌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조각가의 칼이나 정이 조각품을 깎아낼 때, 그 조각품이 겪는 아픔과 같은 아픔과 고통을 예수님께서 친히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의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자기를 비워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육체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할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주님이 자신을 비우심으로 받으신 것은 마땅히 받으실 영광 대신에 인간에게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땅히 받으실 존귀함 대신에 업신여김을 받으셨습니다. 마땅히 받으실 찬양 대신에 비방과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마땅히 높임을 받으셔야 할 예수님께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심으로 예수님께서 얻으시는 것은 비움에 대한 영광이나 칭찬이나 찬양이나 높임이 아니라 고난과 업신여김과 모욕과 멸시 천대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빌립보서 본문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데,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자기 비움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의 보좌를 비우시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그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우리는 그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비우신 것처럼 우리도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본받고 따르는 자들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지 않고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우리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을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끝없는 욕심을 가지고 더 많은 것으로 채우려 합니다. 많이 채우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채우기 위해서 혈안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의로 충만합니다. ‘자기 의라는 것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만족해하며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자신이 열심히 한 것만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자기 의가 무서운 것은 자신이 한 것을 자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큼 하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본받아 욕심과 자기 의와 악한 것들을 버리고 비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과 겸손과 평강과 신령한 복과 사랑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비움은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비움을 연습해야 합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작은 것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려놓음으로 찾아온 기쁨을 알 때에만 더욱 큰 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하늘의 풍요가 있음을 경험할 때에만 더욱 많은 것을 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우면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우면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비우면 예수님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비우고 위로부터 오는 각양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낮아짐은 예수님을 닮은 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겸손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들어내고 자기 스스로 높아져야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낮아지고 섬기면 그것이 위력이 되는 것입니다.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했을 때 예수님은 마20:25-27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집권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기면 커지고 종이 되면 으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더 높아지고, 주면 줄수록 더 많아지고, 죽으면 죽을수록 더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 겸손의 위력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복을 예비하여 주십니다.

 

성경에 겸손한 자들이 받는 복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겸손하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8:12)

*겸손하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22:4)

*겸손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34) *겸손하면 높임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10)

*천국에서도 큰 자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18:4)

*겸손하면 영이 소성케 됩니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57:15)

*겸손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시편 10:17)

*겸손하면 재앙이 물러갑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스스로 겸비함을 보신 지라 여호와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저희가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내가 멸하지 아니하고 대강 구원하여 나의 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지 아니하리라”(역대하 12:7)

*겸손하면 풍부해집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 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편 22:26)

*겸손하면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도다."(시편 147:6)

 

영국 속담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동안 행복하려거든 여행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거든 집을 사라. 일 년 동안 행복하려거든 결혼을 하라. 일평생 행복하려거든 이웃을 섬기라" 했습니다.

섬기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섬기며 사는 곳에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섬기며 살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서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자녀들에게서도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직장에서도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섭섭한 일들도 많고 갈등도 많겠습니까? 섬김을 받으려는 자는 늘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늘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잘 대해 주어도 감사는커녕 왜 그 것밖에 안하느냐고 불평불만입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는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갖는 자입니다. 우리 주님에게 관심을 갖는 자라야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자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심의 대상을 바꾸십시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 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문제가 많습니다. 자기에게만 관심을 갖는 자는 늘 자기만을 섬겨주기 바라고 남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에게 관심을 가진 자는 주님이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신 모습을 본받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섬기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상처 입은 치유자의 저자로 한국교회에 잘 알려진 헨리 나우엔은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분이십니다. 1985년 그는 라르쉬라는 정신지체아들의 한 수양회에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양회는 침묵 수양회였는데 사흘 동안 아무 소리도 안 하고 행동으로만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발도 씻어 주고 밥도 해 주고, 식사도 하면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거절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토론토 근처의 데이 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로 그곳에서 섬기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단 6명의 정신지체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6명의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 교수직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들을 섬기며 살다가 1996921일에 헨리 나우엔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떠나기 직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겸손이 곧 행복이고 섬김이 곧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섬기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3.비움과 낮아짐 없이 위대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서신서 본문 빌2:9-11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순종한 결과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이 없듯이, 비움과 겸손 없이는 높아지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미국에 있는 펜실바니아 대학에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면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에 와서 방을 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온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방을 선택하게 되는데, 계단에서 멀고, 햇빛이 잘 들고, 조용한 방을 원합니다. 그런데 어느 학기에 맨 먼저 온 학생이 좋은 방은 다 제쳐놓고 계단 밑에 있는 여건이 나쁜 방을 원했습니다. 총무처장은 수 십 년 이 자리에 앉아 그 일을 맡아 하면서 지금까지 저마다 좋은 방을 갖겠다고 야단이었는데 이 학생만은 예외였습니다. 이 소식을 총장이 듣고 그 학생의 이름을 수첩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얼마 후에 이 학생은 그 대학의 총장이 되었더랍니다.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사람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게 되고, 그러한 삶이 자신을 천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고 위대하게 만듭니다.

주님을 본받아 종으로 사는 사람은 위대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여호수아, 예레미야, 세례 요한, 사도 바울 모두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청했습니다. 철저히 주인 되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종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이 종의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면 그의 종이 됩니다.

 

*위대한 인격은 주님을 본받는 섬김으로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섬김의 차원이 달랐습니다. -섬김의 높이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심정을 가지고 사람을 섬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길이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이것은 그 인격이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섬김임을 보여줍니다. -섬김은 그 넓이가 제한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라고 했습니다. -섬김의 깊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묻히면서까지 섬기셨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섬김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깊이는 진실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섬길 때 이것이 바로 진실한 섬김인데 예수님은 그러한 인격적 섬김을 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위선과 거짓이 없었습니다.

 

어느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들이 결혼하고 분가해 달라고 해서 아들 며느리를 분가해 주었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분가해서 살다가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까 아기를 길러가면서 직장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고 또 보모를 들이니까 월급이 그리로 다 나가버리고 해서 생각한 끝에 싫다고 나갔던 시댁으로 어머니 모신다고하며, 생각하는 척 하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공휴일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기를 맡기고 밖으로 나들이를 가다보니까 카드를 안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카드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왔는데 마침 며느리가 통화를 하는데 그 통화 소리가 밖으로 들려왔습니다. ", 시어머니 싫다고 나가더니 어떻게 시댁에 들어와 사니?" "내가 시댁에 온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애기 보모로 부려먹으러 온거야!" "월급은 주니?" "공짜지" "오늘은 뭐하니?" "나 오늘 낮잠 자려고 시어머니 나들이 가시라고 했지 지금 좋다고 나갔다." "너 팔자 좋다." 이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가 '저들이 나에게 대하는 중심이 저렇다면 내가 비참한 존재가 아닌가' 하고 스스로 낙심하면서 다시 카드 달라는 말도 못한 채 돌아가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가림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살면 행복하게 되고, 아버지께서 주님처럼 지극히 높여주실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비움과 낮아짐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비움이 있어야 소중한 채움이 가능합니다.

.낮아짐은 예수님을 닮은 자의 모습입니다.

.비움과 낮아짐 없이 위대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