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때마다 간구할 때마다 (빌립보서 1장 3-6절)
사도 바울이 교회들에게 쓴 편지의 형식을 보면 편지의 맨 앞에 공통적으로 두드러진 특징 세 가지가 삽입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인사와 축복(축도)’로 시작합니다. 1장 2절에서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는 식으로,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는 빠짐없이 들어갔고, 디모데 후서에서는 “긍휼”이라는 말이 추가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 평강, 긍휼, 이런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본인이 개척한 교회들과 모든 성도들의 평안과 안녕을 진심으로 기원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수신 교회에 대한 감사의 조건’으로 칭찬을 합니다. 로마 교회에는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으로 감사한다”(롬 1:8)고 했고, 골로새 교회에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으로 감사 한다”(골 1:4)고 했으며,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며 감사한다”(살전 1:3)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5절에서처럼,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 이것이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칭찬할 일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하고, 비판할 일이 있으면 일대일로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울은 공개적인 칭찬을 통해 교회 전체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셋째는 ‘수신교회에 대한 중보적인 기도’로 각 교회들을 축복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 1:8)고 축복했고, 에베소 교회에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시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소서”(엡 1:17-19)라고 축복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9~11절에서처럼 축복했는데, 제가 이 구절을 이용해서 우리 00교회 성도들을 축복하겠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이 나에게 특별히 내려 주시는 복된 말씀으로 믿고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들은 사랑과 지식과 모든 총명(통찰력)이 날이 갈수록 풍~성게 되어서, 선한 것을 분별하여 악한 것을 다~ 물리치게 하시고, 거짓 없는 진실한 입술로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날에 이를 때에 허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순결한 신부의 삶을 살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영혼 구원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찬송이 되며, 믿음 경주의 완주자가 되어 하늘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5월의 말씀 잘 암송하고 계시죠?(살전 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혼자서 이일 저일 힘들게 하려 하지 마시고, 나의 위로자요, 상담자요, 능력주시는 자요, 해결자요, 인도자 되어 주시는 성령님을 무조건 의지 하십시오. 그 길만이 항상 기뻐함으로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이 세 가지가 동일하게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4절에는 ‘감사’가 있고, 5절에는 ‘기쁨으로 항상 간구(기도)’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4절과 5절에는 “때마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 한다, “간구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간구” 한다고 했습니다.
“때마다”라는 단어 속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얼마나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늘, 항상, 시시 때때로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열심히 교회를 세워가는 성도들을 품고 성령 안에서 항상 기쁨으로 간구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곧 성령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교회도 없습니다. 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이 없이는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때마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때마다” 교회 성도 한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피고 그 영혼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단 한 사람의 눈물의 기도와 간구가 지구상의 모든 교회들을 유지시켜 나가고, 성장 시켜 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간의 사랑의 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정말 사랑해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에게 밥 잘 사주고 커피 사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의 연약함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때마다” 눈물 흘리며 성령 안에서 기도해주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누군가 나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실 분이 있으십니까? 내 주변에 기도의 사람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들과 자주 대화의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기도의 제목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 주심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교통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성도 간에 나눌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교제입니다.
세상 사람들끼리는 만남을 가지면 “때마다”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세상의 관심꺼리, 사건사고, 정치, 연예, 드라마, 이런 것들이 관심의 우선이겠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모습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는 교회의 모습과 성도들이 얼굴이 수시로 떠올라야 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간구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간구(기도)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00교회 모슨 성도가 성령 안에서 “때마다” 감사하고, “때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며,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그렇게 되어가기를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마음을 깊이 두고 “때마다” 감사하고 간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4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아멘.
여기서 ‘첫날부터’에서 ‘첫날’은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시점을 말합니다. 이 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하던(주후 50-52년경) 때 이었고, 지금 편지를 쓰는 시점(주후 61년 경)과 비교하면 대략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지 10년을 넘는 긴 시간동안 수많은 탄압과 박해를 받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일관되게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동참, 협력)하는데 열심을 냈습니다. 기도로 동참해 주었고, 연보로 동참해 주었고, 전도자들을 잘 대접하며 동참해 주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식 사랑하기를 첫째나 둘째나 상관없이 공평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못된 짓만 골라서 하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징그럽게도 말 듣지 않는 자식과, 하라는 일은 무조건 순종할 뿐 아니라 알아서 예쁜 짓을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래도 공평하게 대할 수 있습니까? 머리로는 공평하게 대해줄 생각이 들어도 마음은 당연히 순종하는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의 마음이나 감정)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자녀들을 보시기에 동일한 잣대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지만, 청종하는 자세에 따라 대하시는 태도는 달라지십니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청종 하면 복을 주시고, 불 청종 하면 저주를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들은 말씀 그대로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자녀들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시고 좋은 것으로 보상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바로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제가 오후 예배에 로마서 강해하면서 여러 번 강조해서 말씀 드렸었는데 기독교인들(크리스천)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특별하게 선택, 구별하여 따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 했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 최고 가치의 목표라고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향하여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증인의 삶이다, 제자의 삶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00교회가 소망하며 꿈꾸는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숫자로도 부흥하고, 내면으로도 건강하고, 성도 간에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하여 참여”했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보여준 한결같은 뚝심, 믿음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복음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에게만 집중하는데 온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교회, 복음을 붙잡고 최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주목하여 보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 그런 교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이신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표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예수님만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 교회와 우리 각자의 미래를 크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복음의 결과물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조급하면 안 됩니다. 당장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선한 일을 절대로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루어 주심을 굳게 믿고 확신하며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6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복음의 완성을 이루어 가신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위한 열심만 있다면, 시작도, 끝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미래가 좋게 되어 갈 것이고,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리라는 확신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우리 00교회가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시는 교회중의 교회로 온전하게 세워질 것을 확신 하십니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내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때마다” 감사하고, “때마다” 간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아닌, 다른 일에 관심을 두고 시간을 쏟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무것도 보장 받지 못합니다.
우리 00교회는 지금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복음에 집중해서 먼저 내 자신의 내면을 완전하게 복음화 시키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머리와 마음속에 복음을 가득 가득 채워가야 합니다. 복음과 내가 하나로 움직일 때 우리 교회는 양적으로, 영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누가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곧 성장의 발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잘하면, 나만 잘하면, 우리 교회도, 가정도 성장하고 화목을 이루는 큰 성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저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빌립보 교회와 같이 앞으로 10년 동안, 더 나아가 20년, 30년, 우리 자녀들의 시대를 지나,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00교회가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감사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이루기 위해 늘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로 기도 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때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고,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과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쁨으로 항상 간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복음을 위하여 전심을 다할 수 있는 결단의 은혜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 모두가, 교회와 성도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 중심,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날에 우리의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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