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권능 요20:1-10, 고전15:50-58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짐이 곧 국가다." 라고 외치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 권위를 만방에 널리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성도로서 개신교를 방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의 손길을 뻗쳐 칙령 거역 죄로 기독교 대표인 세오졸프를 체포하여 파리 탑의 감옥에 감금했습니다. 때마침 부활절이 되어 루이 14세는 황제의 복장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 대를 거느리고 파리 시가를 행진하였습니다. 높은 감옥의 탑 위에서 이 행렬을 바라본 세오졸프는 하늘의 영감을 받아 부활절 찬송을 힘차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되신 성령 증거 하시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이렇게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이 찬송 소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해 가던 루이 14세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왕 중 왕"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제는 부활 축제 행렬을 세우고 감옥으로 들어가 세오졸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잘못을 빌고 그를 석방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중요한 두 절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요, 또 하나는 부활절입니다. 성탄절은 이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절기요, 부활절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인간의 구속을 완성시킨 절기입니다. 즉, 성탄이 인류 구속의 시작이라면 부활절은 인류구속을 완성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바로 깨닫고 믿는다면 이 두 절기의 축복과 은혜는 한없이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의 권능”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대적 자들과 사단의 권세를 이긴 권능입니다.
1)대적 자들과 사단의 세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들은 불법으로 재판하여 빌라도로 하여금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언도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병들에 의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 될 때 저들은 승리자 인줄 알았을 것입니다. 제사장과 장로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주님을 십자가에 처형 한 후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했을 것입니다. 백성을 미혹케 하던 자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자부하고 안심했을는지도 모릅니다.
2)예수님을 처형한 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 후 부활하실 것을 여러 말씀으로 암시하고 예고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13-21).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찾아와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자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12:39-40). 그 외에도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후(마 16:31), 변화산 사건 후 갈릴리에서(마 17:22-23),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 직전(마 20:17-19)에도 예수님은 당신이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들이 마음에 걸려 그들은 가이사 황제의 인을 쳐 예수님의 무덤을 인봉하고,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로마 병정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3)그러나 생명 되신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절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올라갔다가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시신이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녀는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줄 알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15절) 묻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인 줄 알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리라 몇 차래 말씀하셨음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무덤을 찾아 왔을 때 무덤이 비어 있고, 주님의 시신을 쌓았던 세마포와 수건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24:4 이하에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아 두려워하고 있을 때 두 천사가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2.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권능입니다.
1)주님의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고, 그 사망 권세는 오늘까지도 죽음의 위력을 앞세워 거짓과 불의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거짓됨으로 오염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누굴 탓할 수 없도록 모두 거짓으로 물들여 졌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10-12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의 세력 앞에,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죄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기억도 하시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의롭다 인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모든 죄와 죄책에서 해방을 받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작품 [부활]은 카츄사라는 한 여성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츄사는 귀족 네흘류도프의 집에 하녀로 있으면서, 네흘류도프의 의하여 더럽혀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유형 수가되어 시베리아로 갔습니다. 눈으로 덮인 시베리아 들판에서 부활절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찾아온 네흘류도프와 함께 "주는 실로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죄에 얽매였던 카츄사의 영혼이 자유함을 얻게 되고, 부활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부터의 해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에서 찾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죄의 세력을 부수고 살아나신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2)주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승리입니다.
사망 권세를 잡은 마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은 그가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오신 것과 관련하여 요일3:8절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고 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 한분의 희생으로 인류를 위한 속죄의 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하는 길을 다 닥아 놓으신 것입니다.
프랑스 북쪽에 칼레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1347년 백년전쟁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칼레는 영국군에 포위되었습니다. 다른 도시는 다 점령되었는데 칼레만 점령되지 못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프랑스군은 영국군에서 생명을 걸고 저항 해서 영국군에게 가장 골치 아픈 곳이었습니다. 영국군을 가장 괴롭힌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에 의하여 완전 포위되었습니다. 포위 된지 1년 정도 지나게 되니 이제 음식이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칼레는 이제 굶어 죽든지 항복하든지 둘 중에 하나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며칠 버티기 힘든 최악 상황이어서 결국 백기를 걸었습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고 해서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사절을 보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테니 생명만은 헤치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영국왕은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하마. 그러나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힌 대가는 받아라. 칼레 시민 대표 6명을 보내라. 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벌은 끝낸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6명이 시민들을 대신해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였던 위스타슈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죽겠다고 나섰습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5명만 더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이 때 시장도 나섰고, 칼레의 핵심 인물, 귀족들이 한 명 한 명 앞으로 모두 7명이 나왔습니다. 한 명을 빼야 하는데 서로 안 빠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제비를 뽑아서 한 명을 빼기로 하여 한 명이 뽑혔습니다. 그 사람은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으로 가서 “나를 제일 먼저 죽이십시오.” 에드워드 3세 영국왕은 이런 모습을 보고 모두를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
나대신 죽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소리 없이 가장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너 대신 죽었으니 너는 생명을 얻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할렐루야!
3)부활은 시기와 미움과 증오를 이긴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들은 시기와 미움과 증오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온갖 모욕으로 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의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사랑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운명하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 모든 시기와 증오와 미움을 이긴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못난 제자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한 번도 책망하지 아니했습니다. 도리어 사랑을 확인하는 말씀만 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자기를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책임 추궁의 말 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만 반복해 물었습니다. 이 사랑 앞에 그는 녹아졌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녹아져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 앞에 예수 믿는 자들을 칼과 맹수와 권력으로 박해했던 로마도 녹아버렸습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젊은 집사 스데반이 돌로 몰매를 맞으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고, 그 포악한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하늘 보좌 위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놀라운 사랑의 근원이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들어간 슈바이처나, 문등이 촌으로 들어간 다미엔이나, 그리고 미개한 지구촌의 곳곳마다 들어가 지금도 자신을 불태우는 많은 주의 종들을 보게 됩니다.
3.성도는 부활의 권능을 가진 자들입니다.
1)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만나주시고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과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도움을 의뢰할 수 있고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일은 승리하는 삶을 위한 가장 완벽한 조건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승리가 바로 주님과의 동행에 근거하고 있었음을 누누이 강조하였습니다. 영적인 승리에 있어서 학벌이나 문벌, 재력 그리고 세속적인 배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께서 내 삶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시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2)부활의 권능을 가진 성도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 됩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으므로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독이 제거된 독사와도 같아서 겉모양은 여전할지라도 전혀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 중에는 그를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약4: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 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가르칩니다. 두려워 피할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적하면 그가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이 성취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는 우리를 해할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주의 약속을 불신하여 용기를 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마귀의 정체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빨과 발톱이 제거된 사자는 아무도 해롭게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부활의 권능을 가진 자답게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주님과 함께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소망하며 삽니다.
살전 4: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고전15:53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했습니다.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6-20) 부활하신 주님은 지상 명령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내 가족,부모,형제를 구원 해야합니다.북한 동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입니다.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의 권능은
☆.대적 자들과 사단의 권세를 이긴 권능입니다. *대적 자들과 사단의 세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한 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했습니다. *그러나 생명 되신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긴 권능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승리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시기와 미움과 증오를 이긴 사랑의 승리입니다.
☆.성도는 부활의 권능을 가진 자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만나주시고 동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권능을 가진 성도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 됩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소망하며 삽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권능을 가지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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