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

넉넉히 이기는 비결 롬8:31-39

nam씨 2019. 1. 18. 15:22


넉넉히 이기는 비결 8:31-39 23:1-6,

현대의 무기 중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것으로 꼽히는 것은 단연 핵폭탄입니다. 이 핵폭탄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다른 폭탄이 폭발로 인한 피해나, 파편으로 인한 상해로 그치는 데 비해 네 번에 걸쳐 피해를 입힌다는 점입니다. 먼저 폭발로 인한 피해가 있고, 다음에는 폭발 시 엄청난 고열이 발생해 주번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거나 녹여버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핵 폭풍이 발생해 사방 수 십 킬로 지표면에 있는 모든 물체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이모든 파괴가 지난 후에도 방사능 낙진이 오염되어 무서운 피폭의 피해로 고통을 당하고, 수 십 년 간 그 지역은 그야말로 황폐화 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핵 폭탄 보다 더 큰 힘이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독생자를 희생 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인류 최대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핵폭탄보다도, 그 어떤 강력한 힘보다도 더 큰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 효력은 예수님 당시 뿐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 된다는 점에서 핵폭탄보다 더 큰 사랑의 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는 성경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읽혀지고 위로를 받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약 본문은 이 세상에서 사탄의 세력과 싸우고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주는 말씀으로써, 승리와 개선과 대 환희의 찬송 이라고도 불리 웁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로마서의 최고봉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필립 그페너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성경을 한 개의 지환으로 본다면 로마서는 보석이요 8장은 그 보석 중에도 반짝이는 초점과 같다고 했습니다. ‘로이드 죤스8장을 강해하면서 몸의 지체 중 더 위대하고 중요한 지체가 있듯이 성경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요 보석덩어리로 가득한 성경이 로마서 8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넉넉히 이기는 비결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넉넉히 이기는 비결은,

 

1.사랑의 하나님으로 나의 도움을 삼는 것입니다.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고, 39절에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변하기 쉽고, 끊어지기 쉽습니다. 어떤 상이군인이 제대를 해보니, 부인이 아기를 하나 남겨두고,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와 도망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이를 업고 직장도 없이 구걸하면서, 삼천리 방방곡곡을 헤매다가, 3년이 지난 후 돈도 다 없어지고,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부산의 어느 길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그의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 사진과 함께 한 장의 유서가 나왔는데, 자기를 버리고 간 아내의 사진 뒤에다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나는 그대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 이 얼마나 순정을 간직한 사람입니까? 만일 그 부인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가슴을 치며 울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사랑과는 비할 수 없는 사랑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설혹 연인의 사랑이 변하고, 친구의 사랑이 변하고, 남편의 사랑이 변하고, 아내의 사랑이 변하고,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변하고,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고,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도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38절에 보면 바울은 열 가지, 즉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 무형의 것들을 총망라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 끊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사망은 그리스도와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주님께 아주 가까이 갈 따름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주님과 함께 거함과 같이, 우리의 죽음 역시 예수님의 존전으로 인도하는 관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천사와 권세자도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와 권세 자는 영적인 강자와, 육적인 강자들을 의미합니다. 설사 강한 천사들이라도,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권력을 악용하여 기독교를 박해하는 권력자들 역시, 우리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도 끊을 수 없습니다. 현세에서 그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그리고 이 세대가 다하고 새로운 세대에서, 우리가 미처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능력도 끊을 수 없습니다. 여기 능력이란 육적, 영적 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능력, 보이지 않는 능력을 모두 총칭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 역시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무기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높음이나 깊음도 끊을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점성술이 매우 발달되었고, 따라서 별들이 사람들의 운명을 지배하며, 좌우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높은 별이나 낮은 별, 즉 별의 움직임이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다른 피조물도 끊을 수 없습니다. 설혹 지금의 세계와 전혀 다른 딴 세상이 생겨난다고 가정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 얼마나 변함없는 영원한 사랑입니까? 이러한 주님을 우리도 뜨겁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뜨겁게 느끼고, 체험하면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의 도움을 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항상 믿음 안에 거하여 사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 본문을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항상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만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실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시편 기자는 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고난을 즐기는 용감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요 양이기 때문에 고난과 죽음의 위협 앞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까닭은 그 환경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서도 떠나지 않고 함께하시면서 양을 지키는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자기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양의 생명을 노리는 사단의 위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이 좋아하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동물의 세계에서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굶주린 맹수는 연약한 양을 어디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이 아니라 푸른 초장의 풀 섶이나 쉴만한 물가의 나무 뒤에 숨어서 무리와 떨어진 양이나, 또 양이 물을 마시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습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길이기도 합니다. 사업에는 성공하고 명예는 얻었지만 사단의 유혹과 공격으로 인생에 실패하고, 가정에 실패하고, 신앙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떠나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는 안전합니다. 목자를 떠나고 무리를 떠날 때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고 달려듭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확고한 믿음위에서 살았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무도 정죄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했습니다. 1절과 2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죄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죄 없다고 선언했는데 누가 나를 죄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죄의식, 패배의식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하셨는데 누가 나를 정죄한단 말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결핍에서 해방이 된다는 것 입니다.본문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 하시겠느뇨"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귀 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물며, 나머지 작은 것, 덜 한 것을 안 주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비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자신이 아끼는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듯이 독생자 까지도 주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니 구하는 이가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리라(7:7- 9)" 얼마나 가슴 벅찬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당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구하기만 하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구하면 큰 능력으로 도우실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구하면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물질도, 건강도, 도울 자도, 은혜도, 은사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이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4:13)

그리고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여 위해 주십니다.본문 롬8:31"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제 내편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인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감히 누가 나를 대적하겠는가?'라고 하는 자신감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믿고 자기를 높이는 자만심이 아닙니다. 여기 확신과 자신감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시면 온 세상이 다 자기를 대적한다 할지라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항상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천만이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것입니다. (3:6)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승리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담대할 수 있고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항상 믿음 안에 거하여 넉넉히 이기는 자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3.매사에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을 추구해야 마땅합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믿음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은 성도는 매사에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을 추구 하여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실수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우리 인간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표 한 장이 구겨지고 진흙 바닥에 짓밟혀 더러워지고, 찢겨져 있어도 여전히 수표로써의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거나 불의할 때를 불문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났을 때나 못 났을 때를 불문하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그리고 건강할 때나 약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안타까워하시며 좋은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도록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고, 성령께서도 탄식하며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로써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못된 모습이요,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속을 썩이는 못난 자녀의 모습입니다.

구약 본문을 기록한 다윗도 한 때 못난 모습으로 살다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을 받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후에 더욱 하나님을 사랑 하면서 충성 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며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을 받고 더욱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 역시 한 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자였으나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결혼까지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 하다가 옥중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흉조로 여기는 까마귀는 한자로 자오(慈烏) 효조(孝鳥) 반포조(反哺鳥)라고 부르며 은혜 갚는 새로 불립니다. 까마귀는 새끼를 위한 먹이사냥의 고통으로 눈이 멀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말에 까막눈이라는 말도 눈이 먼 까마귀 어미에서 나온 말입니다. 까마귀는 부화 후 60일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나 이후 새끼가 먹이 사냥이 힘에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진정표(陳情表)를 쓴 이밀(李密, 224-287)은 진()나라 무양출신으로 태어나서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고, 네 살 때 어머니가 개가하여 조모 유씨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이후 진() 무제 때 '태자세마(太子洗馬)'라는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조모의 봉양을 이유로 황제에게 진정표를 올리고 관직을 사양했습니다. 이에 무제가 크게 노하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하게 해 달라는 진정표를 올렸고, 무제는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그에게 노비를 하사하고 관할 군현에서는 이밀의 조모에게 옷과 음식을 제공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미물도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값을 줄 아는데, 하물며 우리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서 생명 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도 은혜 갚을 줄 모른다면 미물보다 못한 못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매사에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성도로 삽시다. 정리^^

오늘은 이 두 본문을 중심으로 넉넉히 이기는 비결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비결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의 도움을 삼는 것입니다.

.항상 믿음 안에 거하여 사는 것입니다.

.매사에 주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을 추구해야 마땅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