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이기라 삼상26:5-12, 롬12:14-21
기독교인으로 애국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김구 선생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김구 선생을 죽이려고 권총을 가지고 김구 선생을 만나러 오다가 독립군에게 잡혔습니다. 독립군이 이 청년을 죽이기 전에 김구 선생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을 본 김구 선생은 맨발로 뛰어나와 그 청년을 얼싸안고 “이 객지에서 또 우리 조국 동포를 만났군요. 반갑습니다. 이 김구를 만나러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구 선생을 죽이려고 한 자기를 죽일 줄 알았는데 맨발벗고 뛰어나와서 반갑다고 끌어안고 뺨을 비비는 김구 선생을 미워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김구 선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자임을 보여주는 삶이 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사단에 속한자의 모습입니다.
구약 본문 삼상26:5에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했습니다. 다윗을 잡기 위해 사울 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진을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울 왕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하고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 성령을 받고 예언까지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를 백성들이 왕 세우기를 원하자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을 때 이웃나라와 전쟁이 일어나 위기를 만나기도 했는데, 위기의 때 다윗이 나타나 불레셋의 골리앗 장수를 대적하여 이김으로 다윗은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낸 구국 공신이요, 사울 자신을 위기에서 구원한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연전연승하여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자기의 딸과 결혼하게 하여 사위를 삼기도 했습니다.
사울 왕은 왕이 되고 난 후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가 되었고,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역사했던 성령이 떠나고 대신 악신이 그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악신이 그의 마음을 주장하게 되니 다윗이 행한 선을 선으로 갚는 자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선을 악으로 갚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탈 때도 창을 던져 죽이려 했고, 함께 밥을 먹는 도중에도 창을 던져 죽이려 했으며, 자객을 시켜 죽이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군사를 동원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가 친히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을 잡으려고 온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역사하고, 시기 질투하는 자의 마음에 역사하여 선을 악으로 갚는 배은망덕한 자가 되게 합니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고, 전쟁에 패하고 자기 칼로 자기 배를 찔러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마귀의 길을 가게 되면 결국 패배와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 역사하니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대해주신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더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종노릇 하며 사는 사람은 결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불의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미국 한 마을에서 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의 형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굉장히 많은 공로를 세워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그의 동생을 위해 탄원하는 형의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가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만일 사면을 받아서 나간다면 뭘 하겠느냐?" 그러자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하였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우선!!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그 판사 놈을 찾아가 죽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녀석도 총을 쏴 죽일거야!" 형은 자기 양복 주머니 안에 사면장을 넣어둔 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버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악함을 버리고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천사도 가지고 왔던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사단에게 속한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번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중에는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2.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입니다.
삼상 26:8에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했습니다. 밤에 다윗이 장군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에 들어갔더니 마침 지키던 군인들과 사울 왕이 다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비새는 하나님이 원수 갚을 기회를 주신 것이니 내가 당장 그를 창으로 찔러 죽이겠다고 청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비새는 세상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행한 대로 갚는 보복 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의 태도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본문 롬12:14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했습니다. 예수님은 마5:44-48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하셨습니다.
본문 롬12:17-18 에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했습니다. 화평에 대한 교훈은 주님이 가르치신 팔복 중에서 일곱 번째에 나오는 복입니다. 마5:9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성경에는 화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진정한 화평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고 불화의 모든 근본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하는데 이 응답은 바로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 부부는 결혼을 한 후 인도에 정착하여 교회 뒤뜰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세 자녀를 낳아 기르며 나환자 병원과 교회 일을 해오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두 아들은 성경연구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힌두교 광신도로 보이는 폭도들이 캠프를 덮쳐 이들이 자고 있던 차에 불을 질렀고, 그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폭도들은 곧 쫓겨났지만 그들은 새까만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집에 머무르고 있던 선교사의 아내는 이 소식을 듣고 딸을 안으며 절망이 가득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돌보던 나환자들과 그곳의 원주민들은 종교에 상관없이 장례식에 참가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인도를 떠나지 않고 남편이 생전에 몸 받쳤던 나환자를 돌보기 위해 남은 인생을 다 바치겠노라고 다짐하며 말했습니다.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웠지만 남편을 죽인 이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아이들이 천국에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지요. 남편은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적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수마저 용서해야 하는 사랑의 향기를 지녀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도우시고 사랑을 부어주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모든 허물과 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원수가 있다면 용서하며 기도하므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입니다.
사단을 좇아 사는 사람이 선을 악으로 갚는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구약 본문에 보면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 아비새 장군이 죽이자고 명령만 내리라고 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사울 왕의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왔습니다. 건너편 산으로 와서는 사울 왕을 지키던 아브넬 장군과 부하들을 왜 왕을 지키지 못했느냐고 도리어 책망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간곡히 말하기를 '이 종을 어찌하여 쫓으시나이까? 죽여 마땅한 죄가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할 때 사울 왕은 일시나마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고 내가 어리석은 일을 행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네게 복이 있다. 네가 큰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고 말하면서 뒤 돌아갔습니다.
사울 왕은 전에도 다윗을 죽이려고 쫒아 다니다가 오히려 죽을 번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사울 왕은 자기를 살려준 다윗에게 대하여 이렇게 응답 했었습니다. 삼상24:17-19에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를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이 어떻게 자신을 괴롭게 하며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울 왕을 용서하는 자가 되었을까요? 다윗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분노할 줄을 알고 용서할 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그는 계속 용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삶 자체가 오직 `하나님 중심' 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일을 행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해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행하였습니다. 사울 왕을 살려주는 것도, 그리고 그를 용서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삶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다윗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먼저 정치적인 입지를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왔을 때, 이스라엘 나라의 온 여인들이 사울은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선호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심은 그가 사울 왕을 죽이기만 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록 생명을 구하기 위한 쫓김을 당하고 있음에도 결코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정치적인 출세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없으면 그는 아주 쉽게 정적인 사울 왕을 죽였을 것입니다.
다음에 사람들의 일반적인 판단을 극복했습니다.
본문에서 아비새 장군이 사울을 죽이라 권고 했고, 삼상24:4에서 그를 따르던 자들이 하나님이 원수 갚을 기회를 주셨노라 말하면서 사울을 죽이기를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었기에 충분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외에 다른 것도 하나님의 중심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 롬12:19-20 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했는데, 다윗은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자기가 죽이지 아니하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도 수용했습니다.
본문 삼상26:19에서 “청컨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했습니다. 이 말은 만일 자신이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은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사울 왕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중심에 있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었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고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과 같은 이런 마음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외아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동네의 또래친구들에게 얻어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얻어맞고 울면서 집으로 오면 그 집에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골목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아들! 바보같이 매일 매만 맞고 다녀. 당장 나가서 때리고 들어 와!! 다시는 얻어맞고 들어 와서 울면 가만 안 둬. 얼른 나가서 때리고 와!“
자신의 아들이 친구에게 얻어맞고 우는 모습을 기분 좋게 생각할 어머니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친구와 싸워서 얻어맞은 것도 속이 상하는데 엄마에게까지 꾸중을 듣고 얻어맞으면 그 어린 마음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럴 때 선으로 악을 이기는 다윗 같은 신앙의 사람은 아마 이렇게 반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 주며 "어머나, 우리 아들, 얼마나 아플까? 가엾구나!“ "아들아, 그래도 넌 참 훌륭했단다. 네가 끝까지 친구를 때리지 않고 참은 건 아주 훌륭한 행동이야.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란다. 우리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이처럼 말하면서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복수심과 원망을 사랑으로 녹여 주고, 오히려 용서해 줌으로써 진정한 승자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다투고 나면 끝까지 말을 안 하면서 요리조리 골탕을 먹이며 복수를 하는 아내나 남편의 모습이나 우리 집에 조금 손해를 끼친 이웃 사람을 향해 미움과 원망을 품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그대로 배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인간의 모든 한계를 초월한 온유함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만큼' ‘선으로 악을 이길 만큼’ 온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고 이 세상도 바로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답고 풍성해질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사단에 속한자의 모습입니다.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취하는 방식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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