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고린도후서

질그릇의 보배 고후4:7-11

nam씨 2016. 4. 23. 20:01


질그릇의 보배   고후4:7-11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 한분이 격에 맞지 않게 종이 가방을 메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 그 종이가방이 날려 시궁창에 빠져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신사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것을 꺼내기 위하여 첨벙 첨벙 시궁창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길을 가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 신사를 주목합니다. 멀쩡하게 생긴 신사가 종이 가방을 줍기 위해비명을 질러가면서 시궁창으로 뛰어 들어 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쯧쯧쯧……. 정말 안됐군! 멀쩡한 사람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야. 그까지 종이 가방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옷을 버려가면서 시궁창에 뛰어 들어가는 것일까? 또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저 종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저 신사가 저렇게 난리를 피울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 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판단할 때에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고 명문학교를 나왔느냐?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느냐?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느냐?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는가? 누가봉사, 전도, 헌금을 많이 하는가? 물론 그것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신앙이 좋으니 나쁘니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겉 보다는 속입니다. 비록 겉은 종이로 만든 가방이지만, 그 안에 값비싼 보석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겉이 아무리 좋은 가죽으로 된 값비싼 가방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것이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라면 그 가방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외적인 가방이아니라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의 모습을 질그릇에 보배 로 비유합니다. 비록 겉은 질그릇처럼 보잘것없지만 그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찬이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우리의 인격 속에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느냐? 그것에 따라 우리 인생의 삶은 달라지는 법입니다. 오늘은 질그릇에 보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이 보배를 위하여 사는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함께 은혜를 나누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먼저 질그릇에 담긴 보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아마 질그릇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릇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그릇입니다. 모양도 없고 깨어지기 쉬운 그릇으로 흔히들 뚝배기라고 부릅니다. 주부들은 주로 된장찌개를 담을 때에 이 그릇을 사용합니다. 여러분! 이 깨어지기 쉽고 볼품도 없는 질그릇을 성경에서는 우리 인간의 육신으로 비유합니다. 우리의 육신 얼마나 연약합니까? 조금만 상처가 나도 아픔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온갖 것들로 수난을 당하다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육신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 인간이 다른 피조물에 비하여 위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에서 보면 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보잘 것 없는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마치 토기장이의손 안에 들어 있는 한 줌의 진흙덩이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 빚는 데로 만들어지는 질그릇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가 필요 없다고 깨버리면 깨어짐을 당해야 하고, 반대로 그가 귀하게 사용하면 귀하게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는 존재가 바로 우리의 인생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비록 우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그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7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깨어지기 쉽고 보잘것없는 질그릇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입니다. 그렇다면 그 보배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진리 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자기 몸을 내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만약 그분을 나의 주로고백하고 그분을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우리의 연약한 질그릇 속에 보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를 확실히 믿으십니까?

질그릇 자체로는 자랑할 것이 없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질그릇 안에 진리라는 보배,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가지게 될 때에 우리의질그릇은위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그릇 자체가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보배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착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신앙적으로 성숙하면 믿음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고, 죄에 대한 유혹이나 욕심도 없어질 것이며, 또한 쉽게 죄도 짓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이전 보다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란 질그릇이 변하여 사기그릇이 되고 고려청자나 백자와 같은 귀한 그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지 질그릇 자체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진리라는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 보배를 담고 있는 그릇이 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의미가 다릅니다. 질그릇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질그릇 자체가 무슨 보석으로 변한다든지, 질그릇에 무슨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금으로 도금이 된다고 생각하면 크나 큰 오산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질그릇은 질그릇 그대로 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대 한 것은 우리의 질그릇 때문이 아니라 그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만약 우리가 우리의 질그릇 속에 예수의 보배를 갖게 되면 어떠한 일이 나타나게 됩니까?

본문 8-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질그릇 같은 우리인생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게 됩니다. 때때로 원수들로부터 심하게 공격을 받고 포위를 당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답답한 일을 당하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핍박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질그릇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다면, 능히 그러한 환난과 핍박, 크고 작은 답답한 일과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것은 머리로 계산한 어떤 이론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몸소 체험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그의 육신의 질그릇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그는 명문 가문에서 공부한 수재였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에 통달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발견한 이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전에는 질그릇을 위하여모든 생애를 바쳤지만, 이제는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위하여 사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로 바울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원수들로 말미암아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였고, 여러 가지 답답한 일과핍박과 거꾸러뜨림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예수의 보배를 생각하면서 그러한 것을 참고 견디면서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마 여러분은 여기에 예시된 일들을 하나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겨 쌈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핍박이나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나 자신의 질그릇을 위해 산다면,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나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위하여 산다면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 크리스천의 삶이란 질그릇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위하여 사는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그러면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위하여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나타내기 위하여 겉에 있는 우리의 질그릇을 과감하게 깨뜨려 버리는 삶입니다. 본문 10-1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 크리스챤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고난을 받은 것처럼 고난을 받게 됩니다. 때때로 무시와 모욕과 멸시를 당하고 어떤 때는 부당한 대우를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질그릇은 깨어진다할지라도 우리 안에 는 예수의 보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이 감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드러내기 위하여 겉에 있는 질그릇을 과감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의 죽인 것을 짊어진다든지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운다는 표현은 곧 질그릇을 깨뜨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겉 사람과 같은 질그릇은 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있는 보배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담은 옥합이 깨어져야만 그 안에 있는 향유가 흘러나오고 향기가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질그릇에 대하여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 내가가진 달란트, 내가 가진 배경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걸림돌이 되어 우리 안에 있는 보배는 감추어지고 보잘것없는 질그릇만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질그릇은 과감하게 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됨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나의 질그릇이 깨어져야 예수의 보배가 나타나고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기독교만이 가진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문제는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는 너무나 많은 미련과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보배에 대하여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질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보배가 우선순위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질그릇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위하여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인 질그릇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하여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삶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육신의 질그릇을 깨버리고 예수의 보배를 위하여 사는 우리 성도들이 매우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마치 종이 가방을 줍기 위하여 시궁창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미쳐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질그릇이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예수의 보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과감하게 자신의 질그릇을 깨뜨리고 그 안에 있는 보배를 위하여 평생을 기쁨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질그릇 속에 예수의 보배를 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사시겠습니까? 깨어지기 쉽고 보잘것없는 질그릇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질그릇 안에서 지금도살아 역사하시는 예수의 보배입니까? 그 보배를 드러내기 위하여 우리의 겉 사람인 질그릇을 과감하게 깨뜨려 버릴 때에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이사회에 예수의 보배, 예수의 향기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질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보배입니다.